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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밤의 해파리는 헤엄칠 수 없어 1권 01-1

Umik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0 07:30:05
조회 822 추천 4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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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밤의 해파리


살면서 최악의 기상이었다.


"그럼 SJK(*고2 여고생) 언니가 일어날 때까지, 3, 2ㅡㅡ어, 어라?"


눈을 뜨자 날아오는 스마트폰 렌즈. 바로 옆에는 됐다는 듯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카호의 모습이 보였다. 잠에 취해 흐릿한 머리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진부한 몰카를 기획하고 있는 나, 코우즈키 마히루의 어리석은 여동생이다.


"아, 일어나버렸다."


"깨우려고 한 거겠지만."


팟, 하고 이마에 찹을 날려주고, 아직도 날 향한 채인 스마트폰을 빠르게 빼앗는다.


"자, 잠깐!"


"이런 걸 찍어서 어쩌려고."


"그야 당연하잖아!"


카호는 뭔가 기분 좋게 노래하듯 내게 말한다.


"리얼 JK의 잠자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수요가 있는 거잖아? 이건 떡상이야♪"


"초5가 떡상이라느니 말하지 마."


글렀다. 이 애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없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몸을 일으켜서 빼앗은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자, 거기에는 TikTok의 편집 화면이 있었다. 보기 좋게 입을 반쯤 벌리고 방심한 내 자는 얼굴이 놀리듯이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아니 잠깐, 나 이런 얼굴로 자는 구나.


"이걸 세상에 내보낼 순 없어......"


급히 화면 아래에 있는 X표시를 탭해서 얼빠진 내 자는 얼굴을 영원히 세상에서 묻어버렸다. 가능하면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나의 이 기억도 뇌에서 삭제해줬으면 한다. 저런 얼굴로 잤었다니, 앞으로 마음 편히 잘 수 없을 거 같아.


"무, 무슨 짓을!"


"평범한 JK라면 TikTok에 썩을 정도로 있으니까. 게다가 쌩얼. 수요 없음."


"너무해! 기물손괴! 부정 액세스 금지죄!"


"그 전에 도촬이지?"


"직권남용!"


"어디가."


떠오르는 모든 불법 행위를 적당히 늘어놓는 카호에게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그런 것보다 얼른 학교 갈 준비나 해."

"뭘 모르네. 지금 시대엔 말야? 공부하는 것보다 SNS에서 터지는 게 돈이거든? 노려라, 인플루엔서!"


"끝장이다......."


우리 여동생이 끝장나버렸다. 초5가 인플루엔서니 온라인 살롱이니 마인드셋이니 말을 꺼냈으니 끝장날 게 확실하다.


"카호..... SNS에 간장통에 침 바르는 영상은 올리지 마......"


"뭐야 그게, 안 해!"


어떨까, 생각하면서 일어서니 카호의 시선이 내 발 아래를 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언니, 의외로 애같은 점이 있단 말이지."


"에?"


시선의 끝엔ㅡㅡ아아, 그렇구나.


분명 내가 신은 양말을 말하는 거겠지.


"......뭐 어때. 남들이 보는 것도 아닌데"


바다를 본딴 듯한 물빛 원단에, 느슨하고 아슬아슬하게 귀엽다고 말할 수 있는 디자인의 해파리가 몇 마리고 그려져 있는 내 양말. 그 아슬아슬한 귀여움이 취향이지만, 거기에 동의해주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뭐야 그거, 애같아, 그런 게 좋은 거야?하고 시끄럽게 굴어서 그런 스마트폰 케이스를 쓰는 건 포기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양말에 좋아한다는 마음을 숨기고 있다.


"참 좋아하더라, 해파리. 옷도 화장도 항상 무난하고 어른스러운 느낌이면서"


"초5가 어른어쩌고 하지 마"


"그게...... 봐"


카호의 시선이 내 방을 구석구석까지 핥는다. 침대에 널부러진 옷이나 옷장 속은 흰색 흰색, 검은색 검은색 검은색, 남색, 올리브 올리브, 갈색. 흑백에 어스 컬러인가 하는 패션 초보자는 일단 이걸 사라 5선! 같은 느낌으로 YouTube의 섬네일로 나올 것만 같은 무난한 컬러가 넘치고 있어서 너무나도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 옷도 립도, 팔로워 30만의 유코치가 인스타에서 소개한 거야. 당연히 귀엽단 거지"


나빠진 형세를 역전하기 위해, 현대의 호랑이의 세를 빌어서 우쭐한 얼굴로 유세를 부린다. 고마워요 유코치, 팔로워 수 덕을 보네요.


카호는 어째서인지 나보다도 더 우쭐한 얼굴로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든다.


"치치치~ 그건 말이지?"


그대로 오른쪽 손바닥을 전등에 가져다 대더니 뮤지컬 배우처럼 빙글 돌아선 내 얼굴의 중심을 슥 가린다.


"색이 희고 얼굴이 작고 콧날이 클레오파트라인 사람이 하니까 모습이 사는 거라구?"


"크......클레오파트라"


푹 하고 찔러온다. 침대 옆의 거울을 보며 콧날을 만지자니, 내 콧날은 뭐랄까 평범 그 자체라는 느낌이라 적어도 세계 3대 미녀의 풍모는 아니었다. 무난한 코가 미인의 조건이라고 미용 계정에서 자주 말하니까 괜찮아 괜찮아하고 자신에게 항상 말하고는 있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는 클레오파트라처럼 역사에 남을 정도의 압도적인 존재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점이 또 평범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 거를 보통 사람이 따라하면......"


"따라하면, 뭐"


카호는 이쪽으로 얼굴을 바짝 대더니, 내 평범하고 둥글어서 기억에 남지 않는 코끝을 툭툭 만진다.


"ㅡㅡ양산형♡"


양산형, 인가.


확실히, 말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자각은 있는 만큼, 되갚아 줄 말이 없었다.


"......아팟!?"


그렇기에 되갚아 주는 대신 다시 한 번 찹을 날리기로 했다. 언니는 강한 것이다.



***


오오미야 고등학교의 교실. 방과 후의 빈둥대는 토크는 여고생의 생태로 무심한 의견에 "그러게!" "나도!" 하며 공감을 표명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같은 편이란 것을 암암리에 약속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사이를 깊게 한다던가 시간을 때운다던가 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 가혹한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진을 치는 전략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에에? 모처럼 할로윈인데!? 가장하자 가장!"


"에에?"


치에피의 말에 에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 그룹의 중심 인물로, 귀차니스트인 에미. 그래서인지 몇 주 앞으로 다가온 할로윈에 대한 모티베이션은 드물게 우리들 안에서도 온도차가 있는 듯 하다.


"뭐, 가는 건 상관 없지만, 그렇게 진심으로 가장까지 할 건 없지 않아?"


"그러게~ 뭐, 교복에 뭔가 다는 정도로"


언제나 쿨하고 어른스러운 사오리도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중에서도 키가 작은 치에피의 뺨을 말랑말랑 만져대고 있다. 에미, 사오리, 치에피, 나 이렇게 넷으로 구성된 이 그룹 중에 치에피만이 살짝 다르다. 우리들 셋은 보통 무리에 섞이려 하고 잘 하루를 보내려고 하지만 치에피는 주변과는 다른 나, 같은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난 자신은 무언가가 되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죽고 싶어!"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치에피의 말은 뭔가 내게도 와닿는 게 있어서.


"아, 그건 좀 알 것 같아"


조심조심, 하지만 조심조심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음색을 만들며ㅡ, 나는 치에피에게 동의해 보았다.


"아, 성급해 성급해"


"그, 그래?"


파삭.


사오리가 슬쩍 한 부정의 말에 의해 나의 누군가를 향한 동경은 간단히 꺾여버린다. 흐물흐물 웃다가, 자신을 낮추듯 뒤로 빠진다. 이것이 현실, 나를 관철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 힘든 것이다.


"그렇지 않다니까! 다가오는 수험! 남겨진 시간은 적다구!? 새로운 자신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치에피는 순지무구하게, 즐거운 듯 말한다. 키도 작고 목소리도 어리고, 그래서 이렇게 미숙한 말을 해도 그림이 되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맞고 안 맞는 것이 있는 것이다.


"아, 그거라면 괜찮지. 응? 마히루"


"응? 아아, 이거?"


분위기를 읽는 게 특기인 나는, 에미가 말하는 게 지금 내가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는 작업을 가르키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챈다.


"자"


"봐, 나 말고는 귀엽게 변신!"


내가 내민 스마트폰 화면을, 에미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가리킨다. 거기에는 과하게 가공된 우리들 넷의 사진이 있었다. 그것을 본 사오리가 놀리듯 말한다.


"오~. 역시 일러스트레이터 마히루 선생님"


일러스트레이터.


마히루 선생님.


아마 장난치는 감각으로, 살짝 놀리자는 생각으로 풀어낸 그 말은, 그렇지만 내 안의 따끔따끔한 추억을 깨워내버렸다.


나는 그 말에 담긴 비웃는 듯한 뉘앙스에 상처받으면서도, 둔감한 척을 한다.


"......정말, 선생님 아니야"


만들어 내려는 생각이 없어도 멋대로 실실 장착되는 내 미소는,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것이 없을 정도로 유효하다.


"일러스트같은 건, 몇 년도 전에 그만뒀다니까"


츳코미같은 말투로, 뭣하면 웃음마저도 자아내는 톤으로. 하지만 조금씩 내가 닳고 있다는 감각은 있기에, 실은 횟수제한이 있는 기술일 지도 모른다.


내 망설임따위는 전혀 모르고, 에미는 치에피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알겠어 치에피? 한창의 여고생은 눈앞의 일로 가득이야. 하지만 그걸로 충분"


고등학교 2학년은 아마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이고, 이런 식으로 눈앞의 일을 착착 해내는 게 효율적이고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즉.


그거야 말로ㅡㅡ평범, 인 것이다.


"그렇지, 마히루!?"


향해 오는 말끝은, 내가 동의해줄 것을 부드럽게 강요하고 있었다.


"......응"


반짝반짝거리는 것을 동경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은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전부를 해파리처럼 둥실둥실 밀어낸다.


나는 그대로, 내가 싫어하는 말을 해버린다.


분명 이것은, 내 말버릇.


"ㅡㅡ정말 그래!"


***


의지가 흐물흐물한 해파리 인간 코우즈키 마히루는, 다시 여기로 돌아와버렸다.


"그래~ 마히루 선생님이라느니 말해서 말야"


자주 걷는 시부야의 거리. 역전의 하치코(*시부야역의 충견 하치코 동상)에게 체중을 맡기며,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그래서, 납득하지 못했다고"


귀에 전화 너머로, 소꿉친구인 키위짱의 목소리가 와 닿는다.


"뭐, 그러니까 지금 투덜대는 거겠지......"


"꽤나 귀찮을텐데 괜찮겠어?"


"정말, 여전히 딱 잘라 말하네?"


쩔쩔매면서도 결코 싫은 기분이 아니라, 오히려 상쾌하다. 유치원때부터 소꿉친구인 키위짱은, 내 꼴사나운 점을 확실히 지적해주는 멋진 여자애다.


"뭐 그렇지. 그게 류가사키 녹스님 인기의 비결이니까"


"......그러네, 역시 키위짱"


슬쩍 스쳐지나간 호칭. 개인 VTuber로서도 활약하고 있는 키위짱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도쿄의 진학교, 타테키타 고등학교 학생회장이자 인기인, 와타세 키위. 세계 최강의 슈퍼 히어로계 VTbuer, 류가사키 녹스. 어느 쪽의 얼굴이든 인기인인 게 역시 나의 키위짱이구나라는 느낌으로, 예전부터 변하지 않는 카리스마성이 거기에 있었다. Discord의 이름란에는 『류가사키 녹스』라고 쓰여 있다.


".....그렇지만, 나도 그 애랑 비슷한 걸 생각해서"


"비슷한 거?"


"딱히 그저 화려한 가장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라구? 그치만 뭔가 바꾸고 싶달까,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고 싶달까, 그런 거는 이해돼서"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말을 못하니까 곤란한 거야!"


거침없는 말투가 날 대신해서 세상에 연설을 해주는 것만 같아서 기분 좋다. 내 한심한 점을 알면서도 받아주는 듯한 거리감은 키위짱의 품이 넓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무엇보다 그런 키위짱이 내게 시간을 써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긍정해 준다.


"......예전부터 마히루는 변하질 않네"


귀가를 위해 역으로 향하는 지친 회사원들과 역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이 엇갈린다. 목적지가 없는 나는 그 어느쪽도 아닌, 체중을 맡기고 있던 하치코 군, 혹은 하치코짱과 작별하고 둥실둥실 걷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서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어버려서ㅡㅡ"


"응?"


"OL이 된 저는, 같은 부서의 사원들 모두의 음료 취향을 기억해서 정말 멋진 차 심부름꾼이 되거나 합니다. 그래서ㅡㅡ"


"뭐, 뭔가 시작됐어......"


내 안에서 엄청나게 선명한 비전이 떠오른다. OL 마히루가 커피를 세 개 나르고 있고 부장님은 밀크와 설탕 많이, 과장 미즈카와 씨는 블랙으로, 부하인 신죠 군은 커피를 잘 못마시니까 녹차였죠~ 같은 느낌으로, 모두가 원하는 것을 적확하게 내놓는다.


"그리고 듣는 거지. 코우즈키 군은 눈치가 빠르군. 하고"


"으, 응, 그래"


"하지만......"


OL 마히루는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지쳐 있다. 신발도 벗지 않고 엉망인 방의 현관에서 쓰러져선 혼자 캔 츄하이를 따는 것이다.


"크윽~! 술은 생명수! ......하게 되는 거에요. 세상 살기 힘드네"


"쓸데없이 너무 구체적이라 웃겨"


"그렇게 되고 싶진 않잖아!?"


전화 너머로 키득키득 서로 웃고 있으니, 키위짱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듯


"그럼......마히루는, 뭐가 되고 싶은데?"


"그건......딱히 없지만"


"아니 없는 거냐"


역시 인기 방송인이라는 느낌의 츳코미 템포가, 내 사소한 발언을 웃음처럼 바꿔준다. Discord의 렉이 있는데도 이 스피드란 건, 대면으로 수다를 떨었다면 분명 기분 좋았겠지. ......벌써 2년 정도, 만나지 못했지만.


"굳이 말하자면......되고 싶은 거나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까다롭네? 난 방송에 노래 녹음에 영상 편집. 하고 싶은 게 잔뜩이지만"


슬쩍 몇 개고 자신이 하고싶은 게 나오는 게 키위짱의 굉장한 점이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달까, 그런 올곧은 점을 나는 동경하고 있다.


"그야 키위짱은 특별한걸. 나같은 평범한 여고생은 말이지, 고르는 것보다 골라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구"


"골라질 뿐......인가"


말을 되풀이하는 키위짱.


분명 나와 같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6년 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키위짱네 집에서 하고 있는 그림 교실에 다니던 어느 날의 일.


그림 교실의 선생님이기도 한 키위짱의 어머니가, 모두의 앞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시부야의 낙서 방지 아트의 건인데요......"


아무 것도 없는 터널에는 낙서를 해버리지만, 본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낙서하기 힘들다. 그런 시부야구가 주최하는 기획에 협력하게 된 그림 교실의 학생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각자가 원안을 제출하고 그 중에서 선택된 한 가지가 시부야 역 터널 근처의 벽에 그려진다. 시부야의 1등지의 벽을 자신이 그린 그림이 가득 채울지도 모른다.


다들 술렁술렁거리고, 기도하는 사람마저 있었다.


"이번에는ㅡㅡ코우즈키 양의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제작하려고 합니다!"


"네!? 저로 괜찮은 거에요!?"


기뻤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헤에, 마히루, 꽤 하잖아"


옆에 앉아 있던 키위짱이 날 팔꿈치로 쿡쿡 찔러 나는 동경하던 존재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둥실둥실 행복한 부유감 속에 있었던 걸,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ㅡㅡ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내 그림을 모델로 하여 다 같이 그렸던 시부야의 벽화는, 낙서로 뒤덮여져 있었다.


시선을 왼쪽 아래로 내리자, 금속 플레이트에 『와타세 그림 교실 기증』 『원안 코우즈키 마히루』라는 문자가 써져 있다. 『코우즈키 마히루』의 문자는 위에서 박박 돌같은 걸로 깎여져 있어서 아마 본디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읽을 수 없겠지.


마치, 내가 그린 것을 부정하는 듯한 그 흠집.


심한 이야기다,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ㅡㅡ





그것을 한 것은, 나인 것이다.




벽화가 완성되고 몇 주 후.


내가 초등학교 반 친구 둘과 처음으로 시부야에 왔던 때.


셋이서 잔뜩 쇼핑백을 들고, 들뜬 기분으로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 경우엔 옷과 잡화뿐 아니라 그림 도구 가방도 들고 있어서, 좋아하는 걸로 양손이 가득이었다.


"멋진 사람도 가게도 잔뜩이네! 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야!"


반 친구 중 한 명의 말에 "그러게!"하고 대답하며, 나는 기분 좋게 걷고 있었다.


"아......"


터널 앞을 지나간다. 거기에 있던 것은, 해파리 벽화다.


"봐봐, 이거 말야ㅡㅡ"


하고, 내가 그걸 자랑하려고 했던 때였다.


"응~? 뭐야 이거? 이상한 해파리네"


"에......"


가볍게 내뱉은 말에 분명 악의는 없었다. 내가 그린 것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본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정말이다~ 좋아, 우리가 어른이 된 기념! 마히루, 그거 빌려줘!"


"에?"


다른 한 사람도 거기에 동조해서, 아니, 더 나아가 내가 산 가방에서 그림 도구들을 꺼내서는 벽화에 날짜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하하, 혼날걸?"


"뭐 어때, 원래 이상한 낙서니까! 그렇지!? 마히루!"


두 사람이 뻔히 날 바라봤다.


사실은, 이 그림은 이상한 그림이 아니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그림이라고, 두 사람을 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역시, 내가 싫어하는 내 말버릇이었다.



"응. ㅡㅡ정말 그렇네"




가슴이 쓰라리고, 입꼬리가 당긴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알려질까봐 두려웠다.


평소에는 그림 붓을 쥐고 그리던 오른손으로 내 이름이 써져 있는 플레이트를 가리고, 내 것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짓고 식은 땀을 흘려가며.


분명 나는 이때, 그리는 것을 그만둬 버린 거겠지.


"이상한 그림이네, 이거"




"......그림, 더 안 그리는 거야?"


키위짱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의식에 파고들어서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이렇게 떠올리는 과거를 분명 키위짱은 모를 것이다. 플레이트의 흠집은 분명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림......이라"


솔직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릴 이유가 없달까, ......뭘 위해 그리는 건지, 모르겠고"


"그건 자신을 위해서든, 뭐든 괜찮다니까"


눈 앞에 있는 벽화, 가려진 내 이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그것은, 내 패배의 표식이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렇게 한정지을 순 없잖아......"


"......해파리란 건 말야, 헤엄칠 수 없잖아? 그런 해파리가 전혀 물살이 없는 수조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지 알고 있어?"


"......아니"


어렸을 때, 나는 해양생물 책에서 그 해파리의 생태를 알게되었을 때, 뭔가 정말 슬픈 기분이 됐었다.


"헤엄칠 수 없으니까 바닥까지 가라앉고, 그렇지만 그래선 살 수 없으니까 힘내서 조금이지만 헤엄쳐서 떠올라. 하지만 윗쪽까진 헤엄칠 체력이 없으니까 다시 가라앉아. ......그걸 줄곧 되풀이해서 말야"


"......"


"쇠약해져서, 죽어버리는 거야"


***


시부야를 돌아서, 할인점 앞에 섰다.


"......아"


그러자 거기에는 내가 몰래 신고 있는 해파리 양말과 같은 게 팔리고 있었지만, 뭔가 잘 안 팔리는 듯 60% 할인이 붙어 있었다. 애초에 싼데 이래선 거의 적자 아닐까. 이렇게 떨이가 될 정도로 인기가 없구나.


뭔가 불쌍해서, 뭔가 한숨이 나왔다.


"......나는 네 편이야"


나는 나와 닮은 그것을 집어들어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몇 분 후, 할인점의 비닐 봉투를 들고 미야시타 파크(*시부야의 공원)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고 있자니 아까도 지나갔던 벽화가 보였다. 다시 한 번 들릴 생각은 없었지만, 뭔가 아까와 모습이 달랐다. 오렌지색 옷을 입은 보브 헤어의 여자애가, 몇 명의 팬에 둘러싸여 내 벽화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들 고마워ㅡ☆ 채널 구독 부탁해ㅡ!"


......노상 라이브?


의문을 가지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서 다가가자, 그것을 보고 오싹해졌다.


안 그래도 낙서투성이가 되어 버린 내 그림 위에, 노래하고 있는 여자애의 얼굴과 "채널 등록 부탁해!"라고 하는 문자가 크게 인쇄된 포스터가 주르륵 몇 장이고 붙어 있다. 핑크색으로 꾸며진 글자로 『미ㅡ코(17)』이라고 써져 있는데, 저게 저 아이의 이름과 나이겠지. 중앙에는 유독 큰 포스터가 자리잡고 있고, 지저분하게 벗겨진 테이프의 접착제가 분명 내 그림에 다신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숨을 들이쉰다.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ㅡㅡ그만둬! 이 이상 내 그림을 더럽히지 마!!"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외치는 열혈 소녀가 아니라, 오히려 어느 쪽이냐면 말하고 식어버리는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들이마신 숨은 공상의 소리를 내지르는 마음의 준비에 사용되었을 뿐, 빠르게 폐에서 쫓겨나 그대로 마지못해 시부야의 거리에 녹아들었다.


거기에, 만약 말할 배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그림을 이상한 그림이라고 하고.


정말 그래, 라고 모두에게 맞춰서 웃었던.


내게 불평할 권리따윈, 있을 리 없는 것이다.




"ㅡㅡ어이!"




강하고 올곧게, 자신을 주장하는 듯한 여자애의 목소리가, 인파 사이를 통과해 간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더럽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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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들렸다, 이번엔 현실의 목소리로.


나도 노래하던 아이돌도 그 관객들도 일제히 목소리 쪽을 향한다. 거기에는 니트 모자에 흰 마스크, 파란 트랙 재킷을 입은, 레이와라는 느낌의 금발 소녀가 서있었다. 아이돌은 그 금발 소녀를 어찌할 줄 모르고 바라본다.


"뭐, 뭔데, 지금 라이브 중...... 이랄까 이거 그냥 단순한 낙서잖아......"


술렁술렁 관객들도 당황한다. 계속해서 흐르는 오케스트라의 음원만이 울려 퍼지는 그 공간은, 무언가 부족한 위화감으로 가득차 있다. 평소라면 나는 그 "이상한 분위기"에 불편해져선 눈을 내리깔거나 그 자리를 떠나거나, 아무튼 도망치는 행동을 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소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곧바로 말을 부딪혀 오는.


마치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걸 체현해준 것만 같은, 내가 모르는 소녀.


"낙서가 아냐! 내가 좋아하는 해파리 그림이 그려져 있어!"


말에, 숨이 막혀온다.


지금, 저 여자애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좋아하는, 해파리 그림?


"응? 어라? 너 어딘가서....."


"읏!"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하는 미코라는 아이돌의 말을 계기로, 어째선지 기세를 잃은 소녀는 당황해서는 뒤돌아서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그럼에도 뒷모습은 강함으로 가득찼고, 가슴을 펴고 걷는 발걸음은 당당하다. 만약 학교에 있었다면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 같은, 분명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인간.


저 여자애가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해준 장본인인 것이다.


"......"


마음이 술렁거린다.


정체불명의 초조함이 나를 몰아간다.


아이돌이 노래하는 교태 섞인 목소리도, 시부야의 젊은이들의 혼잡도 전부 사라지고 그 아이의 발걸음만이 내 귀에 울린다.




여기에서 발을 내딛지 않는다면ㅡㅡ후회할 것만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말할 작정인지.


그런 것조차 전혀 몰랐지만ㅡㅡ


깨닫고 보니 지면을 박차고, 그 아이를 뒤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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