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엄마가 델타룬 사 줄게. 저런 건 이상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알겠어?"

"아, 엄마아~!"

소녀는 화끈거리는 뺨을 매만지며 여자의 손에 이끌려 멀어지는 아이를 바라봤다. 얼얼하게 퍼지는 고통이 갈라진 살갗을 타고 번졌다.

마음 속에 먹물이 번진 것마냥 퍼져 나가는 감정이 턱까지 차올라,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뜨겁게 비명을 지르는 뺨 위로 더욱 뜨거운 눈물이 선을 긋고 지나갔다.

턱으로 맺혀 방울지는 눈물이 보도블록 위로 부서져 바닥을 적셨다.

"엄마! 애들이 자꾸 로우바둑이한테도 진다고 놀려!"

"괜찮단다, 히오스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분이 돕거든...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도 갓겜이 될 수 있어"

"진짜? 우리도 피시방 인기게임 폴더에 갈 수 있어?"

"그럼..."

어릴 적 쌓아 올린 희망이란 탑이 안쪽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소리가 머리를 웅웅 울렸다.

시공을 믿고 병상에서 HGC를 시청하던 어머니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2.0 트레일러마저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어쩌면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공 따위는, 히오스를 돕지 않았잖아.

"깜짝이야, 쟤 갑자기 왜 저래...?"

"레스토랑스가 또..."

"저거 다 누가 치우지?"

쌓여 있던 음료수들를 길가에 내던진 소녀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이 창대마냥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야..."

소녀는 겨울 바람에 싸늘하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실물 전리품 상자를 하나 집어들었다.

"안 망했어..."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소녀는 실물 전리품 상자를 가슴에 안고 근처의 피시방으로 달려갔다.

"어서오십... 어이쿠, 뭐가 이렇게 급해?!"

리니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피시방 사장이 미친 듯이 달려가 자리를 찾는 소녀를 바라보며 내뱉었다.

소녀는 제일 구석진 곳에 빈 자리에 앉았다. 음료수와 실물 전리품상자를 하나도 팔지 못해 돈이 없어 후불로 등록을 하고 게임 폴더에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라는 글자를 찾기 시작했다.

없었다.

소녀는 차오르는 감정을 씹어 삼키며 배틀넷을 키고 직접 게임을 설치했다. 실행한 뒤 바로 영웅리그를 돌리기 시작했다

예상 대기시간:20351초

결국에는 망1겜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망1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베타때부터 시작된 여정의 끝은, 소녀에게 잔혹한 종말을 알렸다.

"엄마..."

소녀는 상점에 가서 영웅을 한명한명씩 눌러보며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하나하나 느끼기 시작했다

83명의 영웅이 스쳐 갈 때마다 머릿속에 환상과도 같은 무언가가 그려졌다.

갓겜이 되어 있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10만 관중 동원에 성공한 스타크래프트 1을 잇는 완벽한 국민게임의 행보

블리즈컨 HGC Final 결승전 시청자수 100만 달성

피시방 점유율 압도적인 7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3.0

그런 환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쏟아지는 졸음은 소녀를 차갑게 감싸안았다.

그렇게, 소녀는 83번째 말가니스 끝난 뒤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롤과 배그를 하러 온 학생들이 소녀를 발견했을 때에는 너무 늦어 이미 소녀가 동사한 뒤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녀는 실물 전리품 상자를 끌어안은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즐겁게 히오스얘기를 하는 꿈이라도 꾸는 듯.

p.s 이 문학을 크리스마스에도 집에서 갤질이나 쳐 하는 길붕이들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