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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민음사정주행 중] 54번 조서 (감상문)

00(182.228) 2024.05.24 23:01:35
조회 601 추천 14 댓글 1
														

조서


작가 이상의 소설과 매우 닮았다. 이상의 작품을 좋아하면 추천, 아니면 비추천. 

이상은 1910년 태어나 1937년 사망했으니 1940년생인 『조서』의 작가 클레지오보다 무려 30년 앞서 그토록 혁신적인 스타일의 소설을 쓴것. 진정한 천재였구나, 천재라는 말이 흔한 칭찬이 아니었군.


아무튼,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전개가 이상의 여러 소설과 매우매우 닮아있다.

파격적인 구성이다.


『조서』라는 제목에 걸맞는 상세 진술이 특징적이다. 감각에 대한 정밀묘사가 탁월하다.시시각각 변하는 아담의 감정, 동일한 상황과 장면에서도 부정적 인식과 긍정적 인식을 오가는 의식의 불안정 상태, 사람들이 소리를 내지르는 시끄러운 상황을 사람들이 소리죽여 웅얼거리는 상황으로 인식하는 감각과 심리의 변화가 세밀하게 묘사된다.


주인공 아담 폴로는, 섞일 수 없지만 섞이고 싶어한다. 고립을 자처하지만, 인간과의 소통을 원하며 다가선다. 소외되기 위해 버려진 폐가에 터를 잡고 은둔하기로 하지만 끊임없이 사랑하는 미셸에게 시시콜콜한 모든 내용을 담아 간절한 편지를 쓰고, 틈만 나면 해변으로 상점으로 술집으로 동물원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배회한다. 물론 시도된 대화들은 모두 그의 온전치 못한 행색과 양태로 경계되고 차단된다.


인간과의 교류에 실패한 아담은 동물원의 표범에 집착하고, 개의 뒤를 쫓으며 감정을 이입을 하고 집중한다. 동시에, 인간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숨어지내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흰 쥐를 잔혹하게 죽이며 본인의 처지를 혐오한다.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며 여러 인격으로 분열하며 극심한 정신착란 증세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버려진 외로움의 쌓인 압력이 터지듯 광장에서 대중을 상대로 연설 난동 끝에 결국 정신병원 독방에 수용된다. 진단과 치료를 위한 상담사들의 질문과 그들의 경청과 반응으로, 아담은 그동안 좌절되었던 소통을 드디어 경험하지만, 실어증에 걸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글은 끝난다. 그러나, 억지로 고립되고 싶어해야하는 피곤한 마음의 짐을 벗어버려서 인가. 물리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어 고립되고 싶은 사람인 척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일까.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자다 깨다 하며 어렴풋이 잠에 든다. 그는 드디어 평화롭다.


*그러고 나서 그는 평소 밤이 오기를 기다리던 창 앞, 햇볕이 드는 곳에 앉았고, 한숨 돌리기 위해 먼지 바닥 위에 손톱 끝으로 되는대로 줄을 찍찍 그어 미세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처럼 언덕 위에 버려진 집에서 철저히 홀로 산다는 것은 분명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추스를 줄 알아야 하고, 두려움, 나태, 이국적 취향을 사랑해야 하며, 마치 어린아이였을 때 낡은 물탱크의 갈라진 두 틈새 사이에 숨어 그랬던 것처럼 굴을 파고 싶어하고, 무척이나 창피해서 아무도 몰래 굴 속에 처박히고 싶어해야 한다. (p. 27)



*성가셔진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감각은 사소한 일들을 증폭시켜 그의 존재 전체를 고통으로 가득한 괴물 같은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때 살아 있다는 의식은 그저 물질에 대한 짜증스러운 인식일 뿐이었다. / 그의 몸에 깔린 자갈들을 적시고 있는 축축한 얼룩이 마치 그 주위의 단단함과 소금기가 약간 배인 먼지 낀 뿌연 색을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듯했다. (p.30)



* 아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파에게로 가서 바나나 한 개와 편도과자 몇 개를 샀다. 그가 값을 치르는 동안 노파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그러시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요?아뇨.....근데 왜 그러시죠?」

그녀가 대답했다. 「이젠 시간이 지났다우. 왜냐하면 지금은 동물들에게 먹이 주기에는 너무 늦었거든. 5시 이후에는 먹이를 주지 못하게 되어 있다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물들이 배고픔을 모를 것이고 그러다간 병이 나니 말이오」

아담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원숭이에게 줄 것이 아닙니다. 제가 먹을 거예요.」

그는 노파 앞에 서서 바나나를 먹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원숭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나나를 다 먹자 그는 편도과자 봉지를 뜯었다.

「하나 드시겠어요?」하고 그가 물었다. 노파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고맙소. 그럼 어디.....」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들 둘은 계속해서 계산대에 서서 원숭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편도과자 남은 것을 먹었다. 아담은 노파에게 여러 가지 것을 물어보았다. 그냐 쪽으로 점점 더 몸을 기울이며 마치 몇 시간 전에 암사자들과 악어들 그리고 오리너구리들을 바라보던 때처럼 정다움을 더해 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결국 그녀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담이 지나치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경찰을 부르겠노라고 위협했다. 그는 정중하게 노파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노파는 불빛을 향해 등을 돌린 채 대꾸를 하지 않았다.(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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