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극 영혼의 레뷰가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이런저런 생각 하다가

감상글 한번 정리해봄. 궁예질 비중이 심하니 주의바람.

1.

영혼의 레뷰 초반에 드러나는 마야의 세계는 무대 속 배역이 있고

그보다 메타적으로 상위인 현실에 자신이 고고하게 있으며

한층 상위인 형이상학의 영역에 모든 것에 일반적이고

따라서 영원불멸한 이상이 존재하는 세계다

명확하게 구분된 계층들로 구성된, 차갑고 엄숙하고 정적인 세계

극중 마야는 자신의 이상을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내심 자신이 깨달은 세계의 구조, 그 한가운데의 자신에

처연함을 느낀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사가 있음

마야: "우리는 무대를 사랑하며"

클로: "무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마야: "가엾은 광대"

세계의 완결적 구조를 알고 나니, 그 속의 자신은 결국

모든 것이 결정된 이 완전한 세계의 작동을 위한,

이상을 무대에 현현하기 위한 현실의 껍데기, 부품.

텅 빈 영혼일 뿐인 것으로 느낀 것 아닐까.

난 이렇게 홀로 소외되어 세계의 구조에 압도된 마야를 보면서

인간이 형이상학이나 과학기술에 압도당해 존재를 망각한다는

하이데거의 고향상실이 떠올랐음.

2. 

반면 클로딘의 세계는 자신과 타인들이 관객 앞에서, 세상 앞에서

스스로를 한껏 펼치며 계속해서 경쟁해나가는 세계임

치열한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요동치는 세계.

이런 세계관을 가진 클로딘이 마야를 불변하는 완결적 세계로부터 

미완의 열린 세계로 이끌어주는 구도때문에

진짜 영혼의 레뷰 볼때마다 카타르시스가 미친다ㅠㅠ

클로: "이제야 평소의 너로 돌아왔구나."

마야: "이 얼마나 추악한 모습인가! 감정으로 휩싸인 이런 모습은."

클로: "더 드러내 보라고 텐도 마야. 관객은 그걸 보고싶어한다고."

클로: "너,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제일 예쁘다고!"

이 대사에서도 역시나 하이데거 철학이 떠오름.

테크네, 즉 존재자가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드러내는 탈은폐와

이를 통해 인간이 존재의 근저로 돌아가는 귀향의 모습이.

3.

마야: "우리는 무대를 사랑하며"

클로: "무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마야: "가엾은 광대"

클로: "아니지, 라이벌!"

마야: "당신이 있어준다면 더욱 더 높게!"

클로: "네가 나를 보다 아름답게!"

영혼의 레뷰는 또한 둘이 이상을 현실에 현현시켜나가는

일순에서 영원으로의 외삽법을 자연스레 깨닫았다는 것을 보여줌

대등한 상대와의 경쟁이 서로를 끊임없는 이상의 갱신 및

동시에 현현으로, 새로운 경지로 계속해서 이끄는 것임.

이는 이제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영원불변한 박제된 이상이 아닌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이상으로 변모했음

클로: "이 레뷰가 끝나는 건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반짝임. 그것을 발견했을 때 뿐."

클로: "라이벌의 레뷰는 끝나지 않아. 영원히."

4.

마야의 천상의 성스러움과 고고함을 클로딘이 악마 매력으로

유혹해서 끌어내렸다는 류의 감상이 많이 보여서

반대 관점의 감상글 한번 써봤음. 재밌게 읽었다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