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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및 크보 야구사에서 이상군이 갖는 의미.jpg

123(223.131) 2017.11.19 16:37:07
조회 4105 추천 69 댓글 4
														

타 선수 얘기 ㄴㄴ라고 했는데



'함괠주가 뭘 잘못 건드렸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정리함




간단히 얘기하면 롯데 최동원 깐 것 보다 더 심함. 롯데 최동원 깐 건 우리로 치면 이정훈이나 한희민, 송집사 깐 거랑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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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알아주던 유망주였던 상군매직



훗날 고교 야구 최고의 스타가 되는 박노준(인사이드 파크 호텔 그 분 맞음 ㅇㅇ)를 꺾고 MVP를 먹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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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일전 대표팀까지 선발됨. 크보 초기 명장 김영덕, 해태 초기 에이스 이상윤, 이번에 재계약 실패한 양상문, 삼성 코치로 있는 양일환, 야왕 한대화, 쌍방울 하드캐리하던 김광림 정도가 눈에 띈다 ㅇㅇ 



참고로 지금도 한일전이 매우 중요한 경기인데, 지금보다 민족 감정과 국가주의가 훨씬 강했던 저 시절(주1)에 한일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그만큼 매우 중요 선수였다는 걸 뜻하지




주1 : 일본 영화 상영 금지, 일본 노래 수입 금지하던 시절. 니들 토토로나 라퓨타 알지?? 그거 전두환 때 나온건데 일본 영화 금지 때문에 노무현 때 상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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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우여곡절이 뭐냐? 하면 아래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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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147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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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중 있는 도내고교면 청주고인가? 암튼 상군매직이 북일고 간다고 하니깐 청주중이 빡쳐서 보복조치함 ㅇㅇ 



보복 조치 당하고도 결국 한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받고 북일고 가서 초기 북일고 우승시킨 갓-상군매직




그리고 김종희 한화 초대 회장이 작고했을 때 김영덕, 이희수 감독과 더불어 관 운구했다는 얘기도 있음. 당시 기사 보면 김영덕, 이희수 얘기는 나오는데, 선수들은 그냥 '북일고 선수들'로 나옴. 근데 당시 상군매직은 졸업생이라 여기에 해당되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인증 기사 있으면 제보 좀





아무튼 빙그레가 창단되자 상군매직은 당연히 입단을 해 초기 에이스로 활약하게 됨





전성기가 지난 상군매직의 빙그레 시절 모습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가장 뛰어난 제구력을 가진 투수로는 이상군이 꼽힌다. TV 중계 해설을 하던 하일성씨가 화면에 이상군이 잡히기만 하면 입버릇처럼 '저 선수는 심판들 훈련용 선수예요'라는 설명을 달 정도였다. 심판들이 선수처럼 스프링 캠프를 할 때 이상군을 마운드에 세워놓고 이 구석 저 구석으로 공을 던지게 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하는 훈련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흔히 그의 공을 '면도날 같다'고 했다.



그런 제구력 덕분에 그는 사사구를 적게 내줬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었고, 더 오래 많은 이닝을 책임질 수 있었다. 그는 14시즌동안 1411.2이닝을 던져 443개의 사사구를 내주었는데 경기당 평균으로 따져보면 2.82개에 불과했다. 이상군은 프로에 데뷔한 1986년 시즌 단 한 개의 사사구도 내주지 않고 48.1이닝을 버티는 묘기를 보였고, 3경기 연속 완봉승을 올리는 괴력도 발휘했다. 단 한 개의 사사구도 내주지 않는 경기를 7번이나 기록하기도 했다. 그 모두가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들이다. 이상군은 데뷔하던 해부터 신화를 만들어 갔지만 프로야구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히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의 에이스로 감당해야 했던 버거움이었고, 둘째는 강력했던 경쟁자의 그늘이었다. 1982년 6개 팀으로 출범한 프로야구에 후발주자로 끼어 든 빙그레 이글스는 신인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꾸려 1986년과 1987년 각각 7위와 6위에 그쳤다. 노련한 상위권 팀들의 승수 쌓기의 제물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인 두 해 동안 이상군은 무려 490이닝을 던졌다. 30승에 평균자책점 2.59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빈약했던 공격력 탓에 28번의 패전도 안아야 했다. 창단 멤버인 이강돈에 이어 장종훈, 이정훈, 강석천 등이 잇따라 합류하던 1988년과 1989년 두 시즌과 비교해 보면 첫 두 해의 고전이 그대로 드러난다. 뒤의 두 시즌동안 이상군은 그 전 시기의 절반 밖에 안 되는 275이닝을 던지며 2.4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그가 올린 성적은 26승 8패 19세이브로 오히려 더 훌륭했다. 그러나 첫 두 해의 무리는 이미 그의 '지구력'을 상당히 갉아 먹고 말았다. 첫 두 해 동안 한 시즌에 거의 250이닝을 소화했던 그는 무려 14년 동안 이어진 그 뒤의 선수생활에서 단 한 번도 시즌 150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점점 줄어든 그의 투구이닝은 1996년 23.2이닝까지 몰리게 됐고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코치연수를 떠나게 됐다. 그러나 두 해 뒤 그렇게 망가진 몸으로 떠났던 마운드로 그는 무려 서른 여덟의 나이로 다시 돌아온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상군이 버텨낸 첫 두 해를 지나 빙그레 이글스는 강팀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앞서 말한 타자들을 주축으로 공포의 타선이 이뤄졌고 한희민, 한용덕, 송진우 등이 마운드의 높이를 올려놓은 결과였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다섯 해 동안 빙그레 이글스는 무려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시절의 최강팀은 빙그레 이글스가 아니라 해태 타이거즈다. 왜냐하면 빙그레 이글스가 치렀던 네 번의 한국시리즈 가운데 세 번이나 맞상대해 그때마다 우승컵을 가져 간 팀이 바로 타이거즈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선동렬이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프로야구 시즌은 마지막 1구를 꽂아 넣고 포효하는 선동렬의 얼굴 위로 저물었다. 그런데 그 때, 흐릿한 뒷배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것이 대개는 주황색 줄무늬의 이글스 유니폼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기억 속에서도 흐릿하다. 그렇게 타이거즈는 이글스가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고, 그 벽에 가려진 커다란 얼굴 하나가 이상군의 것이었다. 그라운드를 떠나있던 두 해 동안, 이상군의 가슴을 치받는 것이 어쩌면 바로 그 선동렬의 포효 뒤에서 씹어 삼켜야 했던 눈물의 쓴맛이었을 것이다. 그는 돌아왔다. 무려 서른여덟의 나이였다. 물론 공에 힘이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칼날 같던 제구력도 무뎌져 타자들은 더 이상 그의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가뭄에 콩나듯 나왔던 사사구가 줄지어 나오기도 했다. 한 타자를 상대하면서도 서너 번은 모자를 벗고 진땀을 훔쳐내야 했다. 그렇지만 그나마 16년간 열 네 시즌을 뛴 노련함으로 버티며, 이제는 화려한 에이스의 위치가 아니라 한 타자만 상대하며 다음 투수의 몸 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이건, 혹은 이미 기운 경기를 뒤처리하는 역할이건, 가리지 않고 던졌다. 그 고단한 마지막 세 시즌동안 그는 다시 6승을 올렸다. 그 마지막 6승은 그가 거둔 통산 100번째 승리였다. 그리고 99년, 이글스 비원의 첫 우승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비록 계투요원으로 잠깐 바람만 쐬고 들어와야 했지만, 그는 코치석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첫 우승의 희열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통산 100승과 한국시리즈 우승. 결국 그는 그것을 모두 이루어내고 2001년 5월 31일,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를 나누었던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은퇴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면도날 같은 제구력. 그러나 그보다 더 날카로웠던 집념과 도전정신으로 일구어낸 그의 성적은, 통산 100승 77패 30세이브. 62완투와 10완봉승이다. 비록 우리 야구사에 가장 높이 올릴 것은 못되지만, 가장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성적표중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348120




2006년도 기사인데, 저 기록은 아직도 안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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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기 연속 무사사구 완봉은 한국 유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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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성기 때 9이닝당 볼넷 비율을 보면 2미만이다. 전성기 이후에 깎아먹어서 통산 28위, 1000이닝 이상으로 기준 잡으면 13위. 1000이닝 기준 선수들 중에서는 15번째로 볼넷이 적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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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24&aid=0000001307




단일 시즌 완투 역대 2위, 15완투 이상 기준 역대 완투율 1위, 역대 두번째이자 마지막 2년 연속 240이닝 달성




혹사가 심했던 초기 크보 선수들 중에서도 장명부와 더불어 혹사의 정점에 있던 게 바로 상군매직



우승만 못 시켰다 뿐이지 최동원처럼 팔 부숴서 아무 것도 없던 이글스를 지탱했던 인물이 바로 상군매직이라는 거다



함괠주가 똥칰 운운했는데, 상군매직은 저 성적 찍고 두 자릿수 패배(2년간 30승 28패......) 찍었어. 17패가 뭐냐 17패가. 그러고도 상군매직은 똥칰 운운은 커녕 아무런 불평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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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시절에는 전성기가 훌쩍 지나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감격의 90승을 달성함



요새야 혹사도 많이 줄고, 관리 체계도 훨씬 좋아져서 100승 달성이 비교적 쉽게 됐지만, 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100승 투수 찾기 힘들었다. 90승도 많이 없었어



당장 00년대 중반에 칰팬이랑 롯, 갸랑 키베 붙었을 때 나왔던 소리가 '느그 손민한, 이대진은 100승도 못 채웠잖아. 우선 상군매직부터 뛰어넘고 와라' 이 얘기였다 



실제로 당대 에이스로 이름 날렸던 박철순은 76승, 염종석은 93승, 박충식 77승, 주형광 87승, 이상훈 71승 정도. 



다른 선수들이 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상군매직의 100승은 정말 값지고 대단한 기록이었단 거다 ㅇㅇ 



그리고 96년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구단에서 해외 연수를 보내줘 결국 은퇴(이 때 유승안도 아마 같이 보내줬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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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99년도에 다시 선수로 복귀(정확히는 플레잉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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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때 실력 다 잃어버리고, 선발, 구원 안 가리고 여기 저기서 고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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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분부터 상군매직 나옴 ㅇㅇ



그 유명한 송집사 빨랫줄 송구 때 투수가 바로 상군매직




결국 상군매직은 포시에서 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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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소원하던 100승까지 찍음



2001년에 최고령 선수를 찍었지만, 결국 그 시즌에 은퇴




상군매직이 할 수 있었다면 감독을 이미 했었겠지



하지만 권력욕이 없어서 안 함 ㅇㅇ 





한마디로 이글스 야구의 상징이자, 초기 크보를 대표하는 제구력 마스터, 혹사의 상징이 바로 상군매직이라는 거다



함괠주는 한 것도 ㅈ도 없으면서 뭔 자신감으로 상군매직을 까냐



상군매직처럼 자기 팔을 제물로 팀에 바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팀에서 폐급 선수에게 다시 한 번 기회줬더니 뭐? 똥칰? 멍청도? 장난하나 진짜




상군매직 까도 우리 칰팬들이 까지, 함괠주가 상군매직을 깐 건 곧 이글스 전체를 깐 것과 다름 없다 



아재들에 비하면 칰팬 생활 오래 안 한 나도 빡치는데, 빙그레 시절부터 본 아재들은 얼마나 빡칠까




+ 글 작성 중에 리틀 보이랑 팻맨 터졌었네 ㄷㄷ 




++ 아 왜 롯데 최동원 깐 것 보다 더 이상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안 했네


물론 롯팬들 입장에서는 최동원이 최고겠지. 근데 아쉽게도 최동원은 구단에서 팽하고 버렸지 ㅠㅠ 그래서 영결도 늦게 됐던가 그럴테고. 삼성으로 틀드 된 이후에는 롯데에서 지도자 생활 한 번도 못했지. 심지어 은퇴 후에도 생전에는 롯데에서 계속 생깠지. 오죽했으면 장례식 때 롯데가 아니라 한화 구단에서 챙겨줬겠냐 



근데 상군매직은 끝까지 구단에 남았다. 중간에 엘지로 코치 갔었지만(거기서 거하게 욕 먹고...) 다시 한화 코치로 복귀했고.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이글스의 상징이었던 사람이 바로 상군매직



게다가 단순 이글스 뿐만 아니라 ㅈ도 없던 충청 야구에 우승을 안겨다 준 인물이 바로 상군매직. 



팬, 구단, 지역민 입장에서 상군매직은 뼛 속까지 이글스와 충청 야구의 상징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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