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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 엘사방정식앱에서 작성

이두나팬클럽회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05 00:48:57
조회 449 추천 38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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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처음으로 책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그 책은 엘사의 책이었다. 이미 안나의 발치에선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구겨진 종이뭉치들이 무질서하게 구르고 있었다. 아직 채 구겨지지 않은 종이 위엔 마른 잉크의 궤적을 따라 해괴한 수학공식(안나의 의견에 따르면) 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안나는 국왕이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어 카이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보았지만 선대왕들은 모두 무역회의에 실질적으로 참여를 했으며 곧 폐하께서도 회의를 주도하셔야 하지 않겠느냐며 충고를 들어야만 했다.



다분히 핀잔의 의도가 가득한 발화임을 느낀 안나는 반박하는 걸 포기했다. 곧 한 시간 뒤 회의가 시작하기 때문에 시종장 카이의 무엄함을 꾸짖으며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을 홀로 개탄하고 있을 노릇이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안나에게 중요한 건 관세가 어쩌니 환율이 어쩌니 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놓고 첫 회의장에 들어가 엘사 못지않은 왕 노릇을 무사히 마치고 오는 게 오늘의 가장 큰 목표였다. 하지만 끔찍했던 인수인계가 끝나고 엘사가 다시 숲으로 돌아간 지 사흘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잦은 실수는 햇병아리 여왕인 안나가 꼭 감추고 싶은 허물이었다.



물론 왕이 갖추어야 할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몸가짐이나 태도 같은 것들은 곁눈질로 봐 두던 게 꽤 있었기에 선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안나가 아무리 노력해도 뒤꽁무니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수학이었다. 벌써 다섯 번째 공책을 뜯고 나서야, 안나는 언니가 마법뿐만 아니라 수학에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이 아예 못난 건 아니구나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게 왜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안나는 문득 엘사가 자신에게 어려운 일을 지시하거나 가르쳐줄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과거 엘사는 자신의 여동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여왕이었지만 안나의 수학능력까지 모두 덮고 사랑할 정도로 자비로운 편은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안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그땐 안나에게 그런 결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공주가 방정식의 해를 구하고 좌표평면에 포물선을 그리는 일 따위를 할 일은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렌델의 왕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는 것이었다.



엘사는 왕의 자질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에 항상 월등했다. 아렌델에 나와있는 수학책을 모두 섭렵해 전부 이해해버리는 것은 예삿일이고 자기가 발표한 현대 수학과 건축공학 어쩌고 저쩌고 논문이 위즐튼까지 알려져 각국의 수학자들이 엘사를 만나지 못해 안달인 지경이었다. 엘사가 무역 정책에 쓰이는 자신만의 방정식을 구축해 공식화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모름지기 왕이라면 건물이나 책에 이름 정도는 남기는 것이 당연지사임을 늘 강조해왔던 엘사였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방 안에 십 수년 동안 틀어박혀 있었다니.





아니, 어쩌면 방에 있었던 것만큼 자신의 천재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었을까 안나는 추측 했다.



--



"안나, 그러면 여기에 이 값을 넣으면 어떤 해가 나올까?"



어김없이 엘사가 안나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던 날이었다. 별 소득 없이 머리 싸매고 있는 시간만 길어질 무렵 엘사는 안나에게 넌지시 힌트를 던졌다.



"방정식을 풀 때는 항상 변수를 먼저 생각해야 해. 변수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이 식이 아예 변할 수 있거든."



이보다 더 기초적이고 친절할 수 없는 설명에도 더 이상 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안나는 방정식의 해를 구하기에 앞서 뇌리에 변수라는 단어가 스쳐 문득 언니와 자신의 관계엔 무슨 변수가 있었는지 생각했다. 마법과 모험, 아렌델과 노덜드라, 인간과 정령.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까다로운 방정식이 있을까.



너저분하게 쓰인 수학공식들 따위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결과값으로 도출된 어떤 선택 하나 함부로 '참'임을 나타낼 수 없는 미지수들. 셀 수 없이 켜켜이 쌓인 변수들 아래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겨우 두 어개 주어진 방정식 하나로 쩔쩔매고 있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12?"



무심코 한 마디를 내뱉은 안나를 바라본 엘사가 화들짝 놀랐다.



--



안나는 요즘에야 엘사가 자신을 볼 때마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 거두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은 안나에게 너무 큰 짐을 얹어준 엘사의 미안함이자 자랑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는 잉크가 다 떨어져 갈 때쯤에야 엘사가 집필한 <아렌델 대수학>을 차마 던지지는 못하고, 세차게 덮어버렸다.



수학 하는 사람들 다 죽으라 그래.



회의를 목전에 두고 안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해 상기했다.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왕의 책무니까, 안나는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문을 힘차게 열었다. 또 다른 해를 구할 시간이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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