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가 기원에서 내기바둑을 좀 뒀는데, 내 나이가 어려서 어른들이 신기해했다. 뭐 큰 건 아니지만, 방에 1,2나 2,4까지는 했다. 큰판은 어른들이 끼워주질 않았지. 아무튼 어느날 김좌기 사범이 왔었다. 당시 물주가 없어서 그냥 맞수랑(내가 선으로 좀 밀렸다) 밥내기 정도 하고 있었는데, 맞수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그때, 마침 옆으로 보니까 김좌기 사범이 부채들고 내 바둑을 구경하고 있더라.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신기해서 그냥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농담조로 말했다. '여기서 어떻게 둬야해요?' 그랬더니 김좌기 사범이 순식간에 서너군데를 지적하면서 여기는 무슨 맛이 있으니까 이렇게 정리하고 어쩌고 저쩌고... 약 30초 정도 부채로 지적하면서 말했는데, 불과 몇초 사이였지만 그 뜻이 심오하고 약간은 섬뜻할 정도였다. 역시 프로구나. 그래서 내깐에는 그냥 웃으면서 주위 구경하던 사람들한테 '뭔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하면서 개설레발을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한 무례였는데, 당시 내가 어려서 그냥 김좌기 사범이 웃으면서 넘어가더라. 지금 생각하면 존내 쪽팔리고 죄송하단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