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 1위 업체인 SK에너지가 3일 전격적으로 휘발유, 경유 가격을 리터당 100원씩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SK측은 인하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에 따른 국민의 고통을 분담하고 국내 물가안정을 위한 노력에 협력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유업계의 영업이익이 리터당 20원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리터당 100원 할인이 미칠 경영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격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정부의 ‘팔 비틀기’에 업계가 순응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할인 방법은 주유소 현장 할인

SK측은 이번에 가격할인은 주유소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말해, SK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주유소 공급가격)을 할인하고, 이에따라 주유소들이 가격을 덩달아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도매가격(주유소공급가격)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주유소 현장할인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주유소 이용 고객들은 신용카드로 결제하거나, 현금결제 상관없이 리터당 100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 또, 보유하고 있는 신용카드의 종류와는 상관없으며, 기존 신용카드 할인혜택도 그대로 받으면서 추가로 SK에너지가 제공하는 리터당 100원의 할인이 적용된다. 전국의 SK주유소는 4400여개에 달한다.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은 리터당 100원을 OK캐쉬백 포인트로 돌려받게 되고, 이는 현금으로 환급받거나 다음 주유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주유금액에 대한 신용카드 할인 또는 OK캐쉬백 포린트 적립을 통해 주유시 직접적으로 가격 할인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SK에너지측의 설명이다.

◆ 정유업계, 국민-정부 눈높이 맞춰 가격인하 단행

SK에너지는 리터당 100원씩 할인해줄 경우 매달 1000억~1500억원 정도 손실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가격인하가 업계 전체로 확대될 경우 3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정유업계가 이같은 손실을 감수하고도 가격인하를 하기로 한 데는 고유가 지속으로 수출실적이 크게 호전되는 등 올 1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 기록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인 7500억~8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는 등 정유 4사가 대부분 사상 최대의 분기 실적이 예상된다. 국제유가가 당분간 상승국면을 지속할 것으로 보고, 가격인하에 따른 손실을 수출 등에서 보전하겠다는 전략이다.

가격인하 기간을 놓고도 SK측은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측은 “가격인하를 너무 짧은 시기만 실시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할인 흉내만 내느냐’는 질타를 받을 수 있고, 또 가격인하 기간을 많이 잡을 경우, 적잖은 영업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결국 SK는 가격인하 기간을 3개월로 정했다.

그러나, 이번 정유업계의 가격인하는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정부의 압력에 의한 ‘반(半)강제’의 의미가 크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경부측은 이번 정유업계의 가격인하 움직임에 대해 “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일뿐, 정부가 구체적으로 가격조정을 요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정유업계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가격인하를 요구해온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석유가격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정유업계에 가격인하 강도높은 압력을 가해왔다. SK에너지가 가격인하를 결정함에 따라 GS칼텍스 등 다른 정유업체들도 가격인하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