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중세 일본의 자력구제가 얼마나 위험한건지 알아보자

lemi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4.09 08:40:01
조회 30248 추천 181 댓글 381



중세 일본에서 복수 관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에서 이어집니다. 



중세 일본의 악당은 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a17d34aa1e22782a967a5a52f25cd1c573de23517fbbc79fa37a7f6830a8c7381530e4

-----전원 옥쇄하라!!! 에 나오는 타도코로 소좌의 옥쇄 사랑----


 미즈키 시게루의 유명한 만화 "전원 옥쇄하라!"에는 다이난 공(大楠公)처럼 되기를 꿈꾸는 또라이 지휘관 타도코로 소좌가 나옵니다. 그는 "오직 옥쇄뿐!!!"을 외치며 게릴라전을 반대하죠. 그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글이 이해시키려고 시도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처럼 말이죠.



a76d30ad223ab479ae342b69565ae3d408c7e6847424831617ea7d4e7eed3e333888b1ee4eab7b9dd58f45321bb9b571cdc0f2b5de686db81bddee4d7b621eaff2c1a6108c55ab7d99986b2ae1b7e8c665158a31

-----가마쿠라 막부에 저항한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동상----


 타도코로 소좌가 존경하는 다이난공,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는 악당(惡党) 구스노키 효에노이(楠木兵衛尉)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타도코로 소좌가 상상한 것과 달리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산악지형을 활용한 게릴라전의 명수였고, 이는 당시 악당(悪党)이라 불리는 재지무사들이 그들과 분쟁을 벌이는 장원영주들을 괴롭히던 분쟁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중세 일본의 악당(悪党)들은 대체 어떤 존재였고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기록에 남아있는 일본의 악당(悪党)은 헤이안 말기인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주로 쿄토 근교의 광역 지역인 긴키(近畿)를 중심으로 장원(荘園)내에서 장원영주의 지배권과 충돌을 일으켰던 이들을 지칭합니다.



a16210ad242eb34daa3328709a2cdc7d187dc6a433dd4e0dad9e457f3c7655370b7a9f7f0b6867

----쿠로다장의 위치는 현재의 미에현 나바리시(名張市)로 수도 교토와 멀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 도다이지(東大寺)소유의 이가쿠니(伊賀国, 현재의 미에현)에 존재했던 장원인 쿠로다장(黒田荘)의 악당이라 지칭받았던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스즈키 사토시의 "쿠로다장 악당의 재검토"에 의하면 쿠로다장에서 장원영주인 사찰 도다이지(東大寺)와 분쟁을 벌였던 악당들은 재지무사들인 오오에씨(大江氏)와 핫토리씨(服部氏)였습니다.


 오오에씨(大江氏)는 현지에서 장원을 관리하는 실무 하급직인 게시(下司)였습니다. 그는 장원영주의 대리인인 장관(荘官)의 직무권한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다가 도다이지에 의해 직책을 몰수되자 도다이지와 싸우게 됩니다. 핫토리씨(服部氏)의 경우 자신의 영지를 확대하려다가 도다이지와 대립하게 되죠.  1278년에 시작된 분쟁은 90년 가까이 이어져 1369년까지 지속됩니다.


 도다이지가 제출한 고소장(訴状)에 기록된 악당들의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적(山賊), 산속에 근거지를 두고 사람이나 민가를 덮쳐 재물을 빼앗는다.

 강도(強盗), 폭력과 위협으로 사람들에게서 금품을 빼앗는다.

 유린(蹂躙), 폭력과 강제로 타인을 괴롭힌다.

 야토(夜討), 야간에 민가를 습격해 재물을 빼앗는다.

 연공운반의 방해(年貢課役の打止), 운반되는 연공을 도중에 막는다.

 도로 차단(路次の切り塞ぎ) , 중요 도로지점에 성을 쌓아서 차단한다. 


 재지무사들이 장원과 분쟁이 발생했을때의 실력행사는 거의 게릴라전 수준으로 에스컬레이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카리타(刈田)같이 벼를 베는 수준에서 시작되었을런지도 모르지만 악당들은 게릴라전에 가깝게 과감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이들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산적(山賊)이나 화적(火賊)같은 무리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향리나 사족과 같이 재지유력자였고, 이들이 도다이지와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호응하는 장원의 백성들도 존재했습니다. 


1328년 도다이지(東大寺)가 제출한 고소장에는 장원에 속한 백성(土民)들이 빠지지 않고 악당에게 가담하고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들이 단순히 약탈을 일삼는 무리가 아니라 재지유력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무력을 가진 무사의 협박에 의한 것이기도 할거구요.


 12세기에 도다이지가 쿠로다장의 지배권 확립을 실시하던 무렵 주변의 공령의 고쿠시(国司)와 100년간의 분쟁을 벌인바 있습니다. 이 때 당시만 해도 오오에씨(大江氏)는 장원영주를 대리해 장원을 관리하는 장관(荘官)으로서 도다이지의 휘하에 들어 지방관인 고쿠시를 상대로 자력구제를 통해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을 지원한 바 있었습니다. 

 

 다시 100여년이 지나 1278년이 되면 충성스러운 현지 무사인 오오에씨가 오히려 도다이지의 장원 지배권에 위협이 되버리고 다시 90여년간 진행될 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토에서 먼 것도 아니고 근방에 붙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악당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장기간 유지되었습니다. 


 조정이나 막부에서 이보다 먼 지방에서 장원영주와 재지무사간에, 재지무사와 재지무사간에.. 자신의 영지를 확대하거나, 자신의 영지를 지키려는 무장한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상상하는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a65f28ad261ab540aef1c6bb11f11a390b19f9348069494264

----나루토의 원형이 중세 일본의 악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결국 무로막치 막부 시기에 진압되지만, 이가쿠니 지역의 악당들은 재지무사계층인 고쿠진(国人)으로 상당수 남아있었을 겁니다. 이런 이들에게서 아마도 그 유명한 이가닌자(伊賀忍者)가 유래한 걸지도 모르죠. 


 악당들의 게릴라전과 산악전, 산성을 사용한 농성 방식은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가마쿠라 막부에 맞서 봉기했을 때 그 실효성을 증명합니다. 이들은 마상전 중심이었던 중세 일본의 전쟁양상을 보병 중심으로 바꾸게 만들고, 산악전투와 산성에서의 농성을 일반화시키는데 기여했죠.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1331년 아카사카성 전투(赤坂城の戦い)에서 가마쿠라막부의 30만 대군(물론 과장)을 상대로 겨우 수백명의 병력을 가지고 3달 동안 막아내다가 무사히 탈출합니다.  이는 일본 전쟁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막부의 권위도 손상시키는데 기여합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을 예견하는 사건이었죠. 


 세력을 확대하고 자기 영역을 공고히 하려는 재지세력이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중앙권력으로서의 장원영주에게 억압을 받을 때 재지세력이 그 권위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고 악당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는 율령제 해체 이후에도 여전히 지방의 통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중앙세력인 권문(權門)의 권위가 재지유력자들에게 도전받는 시대상을 알게 해줍니다.


 이들은 자기 권익을 지키려고 실력행사에 그치지 않고 거의 전쟁을 벌이고, 심지어 이들이 발전시킨 악당의 전술이 일본 중앙권력의 핵심인 막부의 대군을 패배시키기도 하죠. 


 중세 일본에서 자력구제 문화는 재지유력자인 무사계급의 성장과 이들이 자기 권익을 지키기 위한 실력행사와 타인, 또는 중앙권력과의 충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에 나서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일본의 복수의 관습 역시 악당들처럼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로운 늑대로 가득찬 세상에서 양으로 보여서는 안된다."는 자력구제 문화를 공유하는 세계 공통의 원칙 하에서 발전해나갔을 것입니다. 


 악당이라 불린 재지무사들의 실력행사는 벼를 깎는 수준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유혈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합리적 판단은 세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복수의 관습처럼 분쟁을 확대하고 인명피해를 야기합니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드는거죠. 


 이런 문화는 재지유력자인 무사계급에게서만 나타났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율령제가 해체되어 국가에 의한 지방통치가 약화되고 다시 중앙의 권문으로서의 장원영주의 권위가 재지세력의 실력행사에 의해 무너져 버린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농민들 역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곤란했을 겁니다. 


 이는 자력구제 사회를 보다 사회 밑바닥까지 확대시킵니다. 





중세일본의 농민들은 낙오무사만 사냥하지 않는다.




----13:52부터.. 고전명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촌락을 도와주러 온 사무라이들은 마을사람들이 낙오무사사냥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일본의 전국시대의 촌락이 산적들에게 약탈당하는데 지쳐 사무라이들에게 부탁해 마을을 지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시대 농민의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오치무샤가리(落ち武者狩り), 전투에서 패배한 낙오무사를 농민들이 사냥해 갑옷과 무기등 전리품을 약탈했던 이야기를 넣어놨죠.


 하지만 실제 역사를 충분히 제대로 고증한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마을은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산적, 또는 노부시(野武士)에게 무력하게 약탈당하고 사무라이들을 고용해야 전투훈련이 가능할 만큼 만만하지 않았거든요.



a65f29aa1d16b36aba333479565dc6f1cc7dec301d818284397b1a0ea76ce2ae0890416c48f18d08256b1b9b93359a96557ff65044ab1055dd449e94e3941b9ceec5ce7c11098471c044a3aa54c804ac18105d6d

----아케치 미쓰히데, 패주 도중 농민에게 살해당하다.----


 천하인 오다 노부나가를 혼노지에서 살해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는 1582년 야마자키 전투에서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패배합니다. 도망가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낙오무사 사냥에 나선 농민의 죽창에 찔려죽었다고 전해지죠. 


 농민들의 낙오무사 사냥은 패배한 자는 법외의 인간으로서 재산이나 생명을 빼앗아도 잘못이 아니고, 자기 집단 외의 인간에 대해서 매우 가혹한 당시 중세 일본의 관습을 통해 정당화됩니다.  하지만 낙오무사 사냥의 근본적인 원인은 촌락의 자체적인 치안활동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패잔병은 주변의 촌락을 약탈하거나 치안을 어지럽힐 수 있으므로 촌락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이들을 살해하는 적극적인 치안행위를 통해 일대의 치안을 유지하는 겁니다. 위에서 소개한 장원영주의 사법 및 치안권인 검단(検断)을 자체적으로 행사하는 관습이죠. 자검단(自検断)이라고도 합니다.


 중세 후기부터 전국시대까지 일본의 촌락은 단순히 순박한 농민들의 주거지가 아닙니다. 그들은 조총과 창, 활로 무장했고, 주기적인 전투훈련을 수행했으며 지휘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자체적인 치안행위에 그치는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주변 마을과 연합해 대규모 분쟁을 벌이거나, 막부나 영주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집단행동 잇키(一揆)를 하기도 했죠.


 만약 7인의 사무라이의 내용처럼 산적이 나타나 마을을 위협하고 마을 혼자 그를 상대하기 어려웠다면 마을은 주변 마을들과의 연합을 통해 대규모 군세를 모아서 산적을 토벌하고자 했을 겁니다. 겨우 7명의 사무라이를 고용하지 않고 말이죠.


 처음부터 일본의 촌락이 이런 면모를 보였던 것은 아닙니다. 중세 일본의 자력구제 사회가 상층사회 뿐만 아니라 촌락사회까지 확장된 장기적인 변화의 결과라고 봐야하죠.


 중세 초기의 농민들은 장원(荘園)이나 공령(公領)에서 영주나 재지무사들, 유력한 부농인 묘슈(名主)등에 의해 예속되어 분산 거주했습니다. 아직 촌락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죠. 이 시기에는 장원영주의 권위에 의한 지배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13세기가 되면서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지방에서 장원영주는 지토(地頭)나 장관(荘官)등 재지무사들의 도전으로 지배체제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는 지역내에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치안을 약화시키죠. 


 이 불안정한 가마쿠라시대 후반기에 중세 일본의 피지배층인 농민들 역시 자체적인 자위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경작지마다 분산되어있던 주거가 밀집해 촌락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는 수리시설의 개발등 농민조직의 경제적 필요성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됩니다.



a65f18ad3333b467beff5a5eea5ac8dd2a35276dccc724df02b0872a57d0052d87fcf4fa70d215b6d8

----1349~1352년 남북조 시대 세력도, 북조의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아시카가 타다요시, 남조의 3파전 양상, https://twitter.com/Gonza_Orc 참조-----


 14세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전란을 거치면서 마을의 단결과 자립, 자치를 추구하는 촌락들이 교토 주변의 기나이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이를 소손(惣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성격의 촌락발달은 기나이 지방에 그치지 않고 관동지방이나 관서, 규슈에 이르기까지 확대됩니다. 


 이렇게 발전한 촌락들은 장원의 불입권(不入權), 즉 자체적으로 치안,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을 모방하여 공동체 내부의 치안, 사법권을 자체적으로 행사하고자 했습니다. 장원이나 공령에 명목상 속해있지만 장원영주는 이들이 독립적으로 자치권을 행사해나가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촌락을 이루는 가문들(이에, 家)은 서로 평등하게 모여서 합의하에 규칙을 만들고 이를 어기는 자를 자체적으로 처벌했고 외부의 영주들의 개입을 거부, 배제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단결이 아니라 실력이 필요합니다. 촌락은 자체적으로 무장해서 무력을 보유하고 필요에 따라 촌락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농민들이 낙오무사를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은 촌락이 무력을 갖추고 자신을 방어할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처음에는 불안정한 치안과 외부의 위협, 즉 자력구제 사회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무력을 갖춘 것이었겠지만 사람 사는게 그렇지 않죠. 무력을 가지면 당연히 자기 권리를 지키거나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쓰고 싶어지는건 당연합니다. 


 이렇게 무력을 갖춘 자치적 촌락들은 서로간의 분쟁에서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7ce984736e37dce6e255123fc631a8c73a369c6f6b0259f650c073ffd8a08196d70cdb7aab31fdad3676ba85bbaccb8e6e1856a6a359c59e0b457006708fd0b291611a08c53617f04b8aad306b

-----붉은색으로 표기된 곳이 스가우라(菅浦)와 오우라(大浦)----


 오미노쿠니(近江国)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를 둘러싼 지방을 말합니다. 교토의 동북쪽 근방에 위치해있죠. 수도 근방인 기나이(畿内)에 속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매우 근처라고 볼 수 있죠.


  비와호 북안에 위치한 스가우라(菅浦)에는 중세 촌락사회에 대한 1200여점의 고문서인 스가우라문서(菅浦文書)가 남아 있어 당시 촌락사회의 사회상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중세의 스가우라(菅浦)는 20명의 오토나(乙名)라고 하는 마을의 대표들을 중심으로 장원영주와 별도의 대관(代官)을 두지 않고 직접 조세인 연공(年貢)을 바치는 대신 자치권을 유지했으며, 마을 자체적인 법률을 문서화한 오키테가키(掟書)를 만들었고, 마을 내부의 재판권을 행사하고 전투를 지휘하도록 했습니다.


 전형적인 중세 후기 자치촌락의 모습을 보여주죠.

  

 스가우라(菅浦)와 오우라(大浦)간에 벌어진 분쟁은 중세 일본의 자치촌락들이 자신이 갖춘 무력을 어떻게 서로에게 사용했는지, 이들이 단순히 수동적이고 방어적 목적으로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했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a15714ac3532b45cbe342b699a28c47d54ec93e3d91b6d8b8b23c6977df3f2c80e46768566515b7e828918c45309eca3786ee17bbb45f7cf3c1aa8

----스가우라와 오우라의 입지와 분쟁지역인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


 비와호 북안에 위치한 스가우라의 입지를 보면 대부분 산지지형이고 농지가 매우 협소하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 스가우라 사람들은 비와호에서 어로활동이나 수운에 종사하는 비중이 컸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식량수급이 가능한 농지의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겠죠. 


 오우라와 스가우라 사이에는 모로카와와 히자시라는 계곡에 형성된 16정(町) 7반(反), 약 16헥타르에 달하는 농지가 형성되는데, 바로 이곳이 150여년간 지속되는 두 마을간의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사실 원래 이 땅은 오우라가 경작하고 있는 곳이었으나, 1295년 이 지역의 농지 중 4정(町)8단(段) 중 4정(町)5단(段)에 대하여 교토의 사찰인 "檀那院"에 22석 5말의 연공을 바치고 8관문(貫文)의 돈을 기름값으로 납입하는 조건으로 스가우라에 의해 경작이 이루어집니다.


 원래 이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는 오우라장(大浦荘)에 속해 있지만 사찰인 檀那院과 신사인 日吉神社의 세력을 배경으로 해서 스가우라가 차지하려고 한 것이었죠. 스가우라의 촌민들은 이 농지의 실효지배를 위해서 같은 해 농지의 수확 전 벼를 베어버리는 카리타로우제키(刈田狼藉)를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오우라의 백성들을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즉 교토에 있는 권문인 檀那院과 日吉神社와 같은 종교세력의 권위를 활용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실제 무력을 동원하여 실력행사로 토지를 점유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 후기에 형성된 무력을 갖춘 자치촌락이 재지무사들과 크게 다름 없이 행동하는걸 볼 수 있죠. 사람을 죽이기도 하구요.


 오우라와 스가우라간의 분쟁은 이후 계속되게 됩니다. 그 중 가장 다이나믹한 사건은 150년이 지나 1445년에 발발한 양자간의 분쟁입니다. 


 1445년 3월, 오우라(大浦)는 원래 양자 모두 이용이 가능했던 공유지(入会地)였던 오우라산(大浦山)에 스가우라(菅浦)의 주민들이 입장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스가우라는 이에 대응하여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에 대한 오우라 주민의 진입을 금지하게 되죠. 



a1400cad360ab45b96ff5d57dd9f2e2d5055929d8292380fb89f1762b8

----전근대 일본의 풀베는 낫-----


 1445년 6월,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에 아마도 꼴을 베기 위해 진입한 오우라의 농민에게서 스가우라측은 낫 7개를 빼앗았습니다. 오우라는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스가우라의 선박을 압류해버립니다. 

 이 사건은 오우라 서쪽의 마을은 가이즈니시하마(海津西浜)의 장로격인 오토나(乙名)가 중재인으로 나서서 양자의 낫과 배를 서로 반환하고, 양측 모두 이전처럼 산을 이용하기로 협상함으로서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7월 2일, 산에 들어가던 스가우라의 젊은이들 20~30명이 오우라측에 의해 매복공격을 당합니다. 스가우라의 젊은이들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으나, 이제 분쟁의 격화는 피할 수 없는 사태가 되버렸습니다. 



a66434aa1c32b55eb6ff5d63f75af2dd98f664590e20d268f66e33103c5a3e5ed71b7e08de6c4e4fe7e3a4568dc1aee5df1846892354fa4b2ba30a05a0b84e81e34444

-----오우라와 스가우라편에 선 주변의 촌락들의 위치, 노란색이 스가우라측, 붉은색이 오우라측-----


 오우라는 보복에 대비하여 가이즈니시하마(海津西浜), 이마즈(今津), 야기시하마(八木浜), 카타다(堅田)와 같은 마을들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만 스가우라가 보복을 하지 않자 아예 과감하게 여기까지 온 이상 스가우라로 간다!!!! 하면서 스가우라로 쳐들어갔습니다.


 스가우라측도 마찬가지로 니시노(西野), 야나기노(柳野) 마을의 지원으로 몰려온 40~50기(騎)의 가세만으로 맞서 싸웠죠.  수십척의 배가 호수를 봉쇄하고 육상으로도 공세를 가해 스가우라측의 집 2채가 불태워지는 피해는 있었지만 스가우라측이 결국 승리하여 공격해온 오우라측의 연합군을 물리치는데 성공했습니다.


 7월 10일 스가우라는 안요지(安養寺), 야기(八木), 니시노(西野), 야나기노(柳野), 시오쓰(塩津), 가이즈아가리하마(海津東浜)등의 지원을 받아서 오우라측에 역공을 가해 불을 지르는 등 싸움을 유리하게 진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원군에게서 16명이 사망했습니다. 스가우라에 남은 기록에는 이 은혜를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한다고 기록하고 있죠.


 여기서 이렇게 마을들이 서로 힘을 합쳐 공동의 적과 싸우는 것을 합력(合力)이라고 합니다. 오우라와 스가우라간 분쟁사태이 두 마을에 그치지 않고 여러 마을의 동맹세력간 분쟁으로 확대되는데, 그 범위는 거의 오미노쿠니(近江国) 지방 전체로 확장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배를 타고 마을사람들이 갑옷을 입고, 창과 칼, 활로 무장하고 몰려드는 걸 상상해 보세요. 고려나 조선이었으면 중앙군이 진압을 위해 출동할 대사태였겠죠?


 특이한 점은 대부분 비와호 북부에 위치한 마을들만이 분쟁에 끼어든게 아니라 지도에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비와호 남쪽에 위치한 카타다(堅田)같은 마을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우라와 스가우라 바로 옆쪽의 가이즈아가리하마(海津東浜)와 가이즈니시하마(海津西浜)가 각각 다른 마을을 지원한 것처럼 각각의 마을들이 서로 분쟁관계를 가지고 있는 평상시의 대립관계가 이러한 연합의 형성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스가우라에게 가이즈아가리하마(海津東浜, 제가 참조한 자료 2개에서 스가우라 지지마을이 각자 다릅니다. 때문에 海津西浜일수도 있습니다. ) 마을에서 보낸 서신에서는 발생하고 있는 분쟁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며, 만약 군세가 필요하다면 연락만 해주면 지원을 보내려 하니 상황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각각의 마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수립하고 있고 상호지원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자력구제가 일반화된 세상에서는 재지무사와 같은 향촌의 지배층 뿐만 아니라 촌락의 피지배층 사이에서도 경제적, 정치적 요인으로 분쟁이 상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적의 적은 친구"라는 개념하에, 또한 유사시 자신을 지원해줄 동맹세력의 확보를 위해 분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는 분쟁규모와 피해를 급격하게 늘리는데 기여하게 된다고 볼 수 있죠.


 스가우라는 이렇게 많은 마을들의 지원을 받아서 수륙 양면으로 오우라를 습격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만, 그 결과 스가우라는 우세를 점해 가을동안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에서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오우라와 스가우라간 분쟁이 실력행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쌍방 모두 교토에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오우라는 장원영주인 히노(日野) 가문에, 스가우라는 교토의 사찰인 檀那院을 통해서 막부에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장원영주인 히노가문에서는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의 소유권이 오우라에 있다고 판결했죠. 



a65618aa1e22b554833330589d3ec0b1b1b3c4b2ac6d8d55e9bf1da16b0002bc6f7d7595e71620a97ad75d1509b5cb45bcc87e4e38c78dbf7e5adb91dfb82b71fb25d0

-----단원풍속도첩의 논갈이, 이렇게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라 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서 이듬해인 1446년 4월 오우라측은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에 모내기를 위해 논갈이를 했으나 스가우라측은 소송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논갈이를 하러 나왔습니다. 당연히 다시 전투가 벌어졌죠. 스가우라는 수적으로 우세한 오우라측을 패배시키고 영역을 야마다미네(山田峯)까지 확대합니다.


 장원영주의 판결이 실력이 없으면 집행될 수 없다는걸 보여줍니다. 물론 항상 그런건 아니었지만 왜 이 시대가 자력구제의 시대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죠.


 사실 중세 일본의 경우 판결의 집행이 승소자가 알아서 실력으로 집행해야 하는 경우가 대체로 더 일반적이긴 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상세하게 사례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a1480cad223ab34daaff5d7ace5ac0f930e87bcc647761b6057b0bdb31e30aa2e8f7f7eae04baa9d46a7df68abf8e4cfac275f376d5918b1fd622612

----야마다미네까지 더 밀려난 오우라. 싸움을 좀 못하는 것 같다.----


 5월에는 오우라측이 스가우라의 보리를 베어버리는 카리타로우제키를 감행했고, 보복으로 스가우라는 오우라의 농지에서 보리를 빼앗아갔습니다. 스가우라가 히자시(日差) 지역의 농지에 모내기를 하자 오우라는 또 습격해 왔습니다.

 스가우라의 병력은 70~80기(騎)로 오우라측의 수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상대로 활로 사격전을 벌여서 오우라측에 상당한 인명피해를 입히고 물리쳤습니다.

 

 6월에는 스가우라의 주민이 오우라 주민을 길가에서 습격해서 살해하고, 오우라 일대에 방화, 살해행위를 벌였고, 7월에는 반대로 스가우라의 주민 4명이 오우라가 고용한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스가우라의 청년들은 보복하자고 이야기했으나, 이 시기에 교토에서 소송이 다시 진행중이어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죠. 


 이정도면 마을간 분쟁이라고 하기 어렵겠죠. 마을간 분쟁에서 수군이 활약하고 농성전이 벌어지며, 서로 활을 쏴대는데다가 자객을 고용하고 게릴라전을 벌입니다. 마을간 분쟁은 무사들간 전쟁보다 훨씬 극단적입니다.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두 전쟁에 참여하는 총력전이 되죠.


 1446년 초부터 스가우라는 이 분쟁사건을 막부에 소송을 걸어놓은 상황이었고, 12월에 드디어 반대로 스가우라의 히자시(日差)・모로카와(諸河) 소유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이 분쟁은 일단락을 짓게 되죠.


 이 분쟁을 마무리지은 것은 막부의 판결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스가우라가 오우라에게 실력행사를 통해서 승리하여 우세를 차지하고 실효지배권을 쟁취하지 못했다면 분쟁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이 분쟁과정을 기록한 스가우라측의 치서(置書)에서 당시 사건을 마무리한 스가우라측의 마음가짐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만약 오우라(大浦)와의 경계분쟁이 다시 발생하면, 교토(京都)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가우라에서 용감하고 강인하게 행동해야한다.


 스가우라측의 기록에는 이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70~80살 먹은 노인도 활과 화살을 잡았으며, 여성들도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뿌리고 음식을 보급하며 방패를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2년간의 분쟁과정에서 소송에 들인 비용만 200관문(貫文)이었고, 지원군을 보내준 마을들에 대해 보상으로 군량미 50석(石), 술값(酒直) 50관문(貫文)이 소비되었는데 300관문 정도의 전비가 소모된 셈입니다. 


 스가우라가 장원영주에게 바치는 연공이 쌀 20석, 돈 20관문으로 40관문에 불과했다는걸 생각하면 이 분쟁은 스가우라의 백성들에게 꽤나 오랜 기간 고통스러운 경제적 부담을 안겨야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가우라는 오우라와의 분쟁이 재발해도 물러서서는 안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20년쯤 후에 나중에 소개할 사건 이후에는 견해가 바뀌게 됩니다만, 당시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물러서선 안된다는 자력구제 사회에서의 촌락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도와줍니다.


 베두인 노인의 칠면조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죠?


 스가우라와 오우라 두 마을의 분쟁기록은 위에서 반복해서 소개한 자력구제 문화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줍니다. 공권력에 의한 무력의 독점과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스가우라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상대와 피를 보는 싸움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사소한 권익의 침범에도 양보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한 결과 분쟁은 빠르게 격화되고 비와호의 다수 마을들이 분쟁에 참여하는 대규모 분쟁으로 확대됩니다. 


 그 결과 보복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스가우라와 오우라 사이에 대를 이어갈 원한이 쌓여나가는거죠. 이는 아주 작은 불씨로도 분쟁을 일으키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을간 분쟁은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전국시대가 되면 마을이 연공을 바치는 센고쿠다이묘들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언제든 존재했습니다. 




중세 일본의 자력구제 사회는 미개하다는 증거인가?


 벼를 깍는 카리타로우제키부터, 중세에 출현한 악당, 그리고 촌락의 낙오무사사냥과 촌락간 전쟁까지 살펴본다면 중세 일본의 자력구제 문화가 당시 일본 사회의 후생을 악화시켰을 거라는 걸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자기가 원래 가진 땅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내놓고 싸워야 되고 불필요한 전쟁비용을 써서 빚도 져야 하며 잘못하면 자기나 친족이 죽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옆 마을에 장사하러 갔다가 갑자기 살해당할 수도 있죠. 



a67a14ad162eb361ab333c7158c6213fc8485372192f46bfa02c96d4

----매드맥스에 묘사되는 세기말 아포칼립스------


 자력구제 사회란건 북두의 권이나 매드맥스에 나오는 세기말 사회같이 무법자들이 날뛰는 걸 의미하는 걸까요?


  일본인들이 중앙집권도 하지 못하고 원래 근본이 못배워먹은 미개한 인종들이라 수백년동안 이런 사회에서 비참한 삶을 겪어야 했던 걸까요?

 

 자력구제가 일반화된 사회가 구성원의 삶에 상당한 고통을 야기하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단순히 미개하다거나 원래 폭력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런식으로는 현상도 그 원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려나 조선의 사족들이 국가재정에서 현물수취의 비중을 확대, 유지하고, 선물경제를 향유한 것은 그들에게 그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라는게 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세 일본에 자력구제 사회가 발전하고 유지된 것은 당시의 일본인들이 당시 환경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한 결과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 글을 보고 나서 지금 일본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옹호하고 조선은 기득권층이 이익을 위해 피지배층을 착취했다고 비하하는 편중된 시각을 가진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분을 위해서 다시 한번 설명드립니다. 


 중세 일본의 무사가 자기 영지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겁니다. 그 과정에서 공적 권력에 의한 제약과 분쟁조정이 없으니, 소령확대에서 실력행사를 해 인정받기 위해 벼를 깎고 민가를 약탈하고, 사람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습니다. 


중세 일본 스가우라 마을이 히자시와 모로카와의 농지를 옆 마을인 오우라에게서 뺏으려 하는 것도 이익추구입니다. 그 과정에서 공적권력의 제약이 없으니 오우라 농지를 뺏고, 오우라 사람을 죽여버립니다. 


 조선 사대부가 지방관과의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피지배층을 수탈한 것도 이익추구입니다. 중세 일본과 달리 공적 권력을 통한 현물수취체계와 재량적 지방재정시스템이 이를 가능하게 하니, 굳이 사람을 죽이거나 실력행사를 할 필요 없이 서신의 전달이나 선물 교환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겁니다. 


 양자의 차이는 선악이나 지능의 높낮이가 아닙니다. 양자가 살아가고 만들어간 정치사회적 환경의 차이죠.


 양자는 어떤 이유로 10~11세기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로 인한 환경변화 속에서 구성원들은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판단을 하고 환경에 적응해나가고, 다시 그러한 판단과 행동들이 그들이 있는 사회, 국가체제를 다르게 만들어나간거죠.


 그에 따른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른 폐해도 발생하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뒤떨어졌다가 아니라, 중세 한국과 중세 일본은 다른 길로 분기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드리는 겁니다. 


 단지 자력구제 사회의 날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역시 일본 미개하구만!!!"정도의 오해로 끝나기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다보니 여기서 끊고 다음편으로 이어나가 저 어떤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편에서는 중세 일본의 자력구제 사회에서 일본인들이 어떻게 분쟁을 조정하고, 대처해 나갔는지, 가마쿠라 막부는 왜 자력구제 사회를 타파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는지, 그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어떻게 자력구제 사회의 폐해를 줄여나가서 최종적으로 고려나 조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력구제 사회를 종식시켰는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력구제 사회라고 해서 무법천지인 것도 아니며, 나름의 분쟁해결방식이 존재합니다. 또한 조선이 선물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되어갔던 것처럼, 일본 역시 자력구제가 아닌 공적 권력에 의한 중재와 통치가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이었거든요. 


 이를 통해서 고려와 조선의 중앙집권의 발전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김중락, "16세기 스코틀랜드 고지대 친족전쟁의 원인과 양상"

MAHMUT TEZCAN, "The Tradition of Blood Feuds in Turkey"

요코야마 카즈키 "가마쿠라, 무로마시시대 일본의 화폐경제"

福田充孝, "我が国の不動産登記制度の沿革について-所有者不明土地問題資料-"

鈴木聡史, "黒田荘悪党の再検討"

本間志奈, "悪党召し捕りについての一考察"

張思捷, "「国衙軍制」論の再検討"

服部良久, "中・近世の村落間紛争と地域社会: ヨーロッパ・アルプス地方と日本"

滋賀県長浜市, "菅浦の湖岸集落景観 保存活用計画報告書"

http://sonnet.egloos.com/4540919 

https://www.tamagawa.jp/ "御成敗式目 貞永式目 現代語訳全文" 

http://harada-iory.cocolog-nifty.com/seikoudoku "百姓たちの戦国"

https://www.city.nagahama.lg.jp/ 菅浦文書





출처: 군사 갤러리 [원본 보기]

추천 비추천

181

고정닉 41

12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이슈 [디시人터뷰] 웃는 모습이 예쁜 누나, 아나운서 김나정 운영자 24/06/11 - -
226174
썸네일
[기갤] 피자가 뭔지 모르는데 손자들 주려고 피자 만든 할머니.jpg
[48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30373 524
226173
썸네일
[주갤] 념요청) 요즘 예비군 교육 내용보고 깜짝 놀란 여시...
[947]
주갤러(119.198) 04.25 33932 1130
226171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모닝지구촌 0425
[84]
모닝지구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4050 67
226169
썸네일
[이갤] 버스서 홀로 앉은 남성..."주요 부위 드러내고 음란행위"
[26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9978 75
226167
썸네일
[부갤] 시대에 역행하는 임대주택 정책 근황 ㅋㅋㅋ
[517]
시마시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1082 230
226166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국밥 평생 무료 이용권 받은 여고생
[496]
권유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32288 313
226165
썸네일
[금갤] 오박사님과 겜중독호소맘의 표정 주고받기
[281]
금쪽이(113.190) 04.25 24101 208
226163
썸네일
[코갤] 민주당, '금투세 유예' 가닥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552]
Carmicha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0789 486
226162
썸네일
[야갤] '유니폼이 수치'…술 취한 축구팬, 기내 난동.jpg
[5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2266 13
226161
썸네일
[새갤] "비가 너무 와" 하소연에도‥"수색 정상 실시"d
[394]
정치마갤용계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5876 193
226159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되팔렘 차단한 넥슨행사.png
[349]
ㅇㅇ(183.99) 04.25 44654 403
226158
썸네일
[야갤] 불길 활활 치솟는데... 시내 달린 불타는 열차.jpg
[10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4636 37
226157
썸네일
[새갤] 주최측 “천하람 정치적으로 뜰려고 성인페스티벌 이용한다”
[28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9384 319
226155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냉혹한 유희왕의 세계
[42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31393 348
226153
썸네일
[디갤] 여기 진짜 장비갤 아니고 사진갤 맞음?
[46]
머레이코미디는주관적인거라고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6796 19
226151
썸네일
[야갤] 야준석…이번에는 찢재명 25만원 저격 떴다 ㅋㅋㅋㅋㅋ
[1096]
bbb(211.36) 04.25 39918 1938
226150
썸네일
[케갤] 하이브, 민희진 오늘 고발…“대화록 물증 입수했다” + 블라인드 타임라인 정리
[613]
버랜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6167 264
226148
썸네일
[싱갤] 전문대생과 동기라 자괴감 든다는 인서울대생.jpg
[521]
ㅇㅇ(1.225) 04.25 33440 136
226146
썸네일
[주갤] 한국 소금공장'초유의 사태' 터짐 ㅋㅋㅋ
[635]
주갤러(203.205) 04.25 34941 299
226145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AI가 찾아낸 플라톤의 무덤 위치
[192]
니지카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7050 196
226143
썸네일
[헌갤] 지정 헌혈 첫 경험 - 125회차 아미커스 - 다종 (헌카 미아)
[63]
길콩이(175.125) 04.25 6102 40
226141
썸네일
[디갤] 두근두근 디붕이 첫 업로드, 홍콩 사진 낭낭하게 10장.
[18]
디붕이(59.15) 04.25 4138 31
226140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개원의가 말하는 실제 의사 연봉
[54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3893 437
226138
썸네일
[카연] 유니버셜 조인트. 24화
[19]
마포대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000 16
226135
썸네일
[오갤] 근본을 찾아서 #1 - 다이버의 근본
[57]
모주에서부곡하와이한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8482 55
226133
썸네일
[싱갤] 우주 개발과 패러다임의 역사_32.
[14]
대한민국인디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6548 22
226131
썸네일
[우갤] 원조 국가대표 명마 당대불패를 알아보자
[18]
ㅇㅇ(58.127) 04.25 8356 34
226130
썸네일
[필갤] [나의 여행지] 두브로브니크
[34]
야루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4256 34
226128
썸네일
[인갤] 게임 '플로렌스'에서의 감정 연출
[8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4753 116
226127
썸네일
[디갤] [광각의신] 흑백간다.
[24]
용접왕씨부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958 39
226125
썸네일
[포갤] 커버만 보고 음반 사는 만화
[69]
whitebe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1715 89
226121
썸네일
[블갤] 라이브러리안 마린 만들기
[36]
BBiyag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9554 28
226119
썸네일
[위갤] 아일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2일차 / 라프로익 파트1
[43]
bin29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9887 34
226117
썸네일
[싱갤] 의외의외 한결같이 인성평이 좋은 연예인...jpg
[44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67077 467
226115
썸네일
[유갤] 오쿠노지마(토끼섬),미야지마(사슴섬) 백패킹 후기 (2)
[45]
Mobicamp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2341 29
226113
썸네일
[F갤]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 F2004, 페라리의 황금기를 이끈 압도적 머신
[47]
LewisHamilto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16635 79
226111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전두엽 절제술 받은 트랩가족의 음악.manhwa
[147]
ㅇㅇ(211.172) 04.25 32688 165
226109
썸네일
[포갤] 일본 찐따들의 아이돌 밴드 총출동 라이브 영장vol.3
[66]
가속주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5192 57
226107
썸네일
[철갤] 이번 EVO Japan 에서 기대되는 한일 선수들 아라보자
[182]
철갤러(1.11) 04.25 21103 132
226105
썸네일
[야갤] 저출산..허본좌 일침 레전드 ..jpg
[917]
김준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4925 944
226103
썸네일
[박갤] 일본사람들이 한국 보다 더운 여름을 버티는 방법
[47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50742 164
226101
썸네일
[야갤] 강에서 포착된 검은 그림자.. 길이 5m 초대형 악어 포획.jpg
[9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24634 50
226096
썸네일
[싱갤] 스압) 신비한 일본투구의 세계
[257]
모토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5 30603 179
226086
썸네일
[카연] 복알못의 라이언 가르시아 VS 데빈 헤이니 경기리뷰하는 만화.manhwa
[40]
카갤러(210.221) 04.24 11233 26
226082
썸네일
[헬갤] 가수 김종국의 3박 4일 미국 여행 브이로그.jpg
[104]
헬갤러(185.114) 04.24 23784 90
226080
썸네일
[싱갤] 뉴욕 맨해튼에서 자차로 출퇴근하면 벌어지는일.jpg
[144]
ㅇㅇ(121.167) 04.24 39522 190
226078
썸네일
[기갤] 이종섭 황상무 때 얼마나 난리였냐면 (한동훈
[16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8883 220
226072
썸네일
[이갤] 요즘 수요가 많다는 1인용 캠핑카
[310]
제주도조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38128 67
226065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sm흑역사
[81]
ㅇㅇ(210.90) 04.24 33464 159
226062
썸네일
[기갤] 여행 싫어하는 신혜선
[173]
긷갤러(211.234) 04.24 28948 87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