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시마네현 죽도문제연구회 좌장 시모죠마사오(下條正男)
는 태정관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보다 똑똑한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김화경 (독도연구소장)의 견해를 들어보자.
"1876년 10월 16일 시마네현 참사(參事)인 사카이 지로
(境二郞)가 내무성의 내무경(內務卿) 오쿠보 도시미찌(大
久保利通)에게 「일본해(동해를 가리킴: 인용자 주) 내 죽
도 외 1도 지적 편찬에 관한 질의(日本海內竹島外一嶋地
籍編纂方伺)」를 하면서, “산인(山陰) 일대의 서부에 꿴 듯
이 붙여야만(貫附) 한다.”고 하면서, 울릉도와 현재의 독
도를 시마네현의 지적에 편입해야 하는지 어떤지를 질의
하였다. 이런 질의를 하면서 붙인 지도가 아래와 같은 「기
죽도 약도」이다.
<그림 8. 시마네현에서 첨부했던 「기죽도 약도」>
http://postfiles5.naver.net/20100909_132/skjchyk_1283960292223MTlEp_jpg/5.%B1%E2%C1%D7%B5%B5%BE%E0%B5%B5_skjchyk.jpg?type=w2
그러자 내무경 오쿠보 도시미찌의 대리(代理)인 내무소
보(內務少輔) 마에시마 히소카(前島密)가 “판도(版圖)의
취사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인식에서, 이것을 그 이듬해
인 1877년 3월 17일 태정관의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岩
倉具視)에게 문의했다. 이렇게 하여 같은 해 3월 29일 태
정관의 우대신이 내린 것이 “문의한 죽도 외 1도에 대하여
우리나라(本邦)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주지할 것”이
라는 지령문이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의 독도 강탈을 정당화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래의 그림 8 「기죽
도 약도」와 “죽도 외 1도는 우리나라와 관계가 없다.”고
우대신의 지령이었다. 이런 자기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던
시모죠는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시볼트의 「일본도」에는,
동경(東經) 129도 50분에 위치하는 죽도와, 동경 130도 56
분의 송도가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죽도는 동경
131도 5분에 위치하며, 당시는 ‘리양쿠르 섬’이라고 불렸
던 암초(暗礁)였다. 동경 129도 59분의 죽도와, 동경 131도
56분의 송도는, 처음부터 “본방(本邦) 여기 관계가 없다.”
였던 것”이라고 하는 해괴한 논리를 날조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시모죠의 논리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태정관의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는 첨부된 그림 8의 「기죽도 약도
」를 보지 않고 일부러 소재 불명의 엉터리 지도(그림 7과
같은 것)를 참조한 정신이상자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
지만 이와쿠라가 그 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
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더불어 당시에 개화
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지도
한 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시모죠 이외에는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김화경. 일본의 독도 인식에 관한 연구: "'일로청한 명세신도'에
그려진 국경과 독도의 귀속을 중심으로 한 고찰. 한국지도학회
지 제10권 제1호 2010 (pp. 39-53). pp.49-50
http://www.cartography.or.kr/public/10_1/10_1_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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