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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애가(愛歌) _ 45

..(118.42) 2021.05.02 02:28:56
조회 651 추천 30 댓글 10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씨가 차디찬 한기를 품고 서재로 들어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피로한 눈을 감고 있던 이혁이 바르게 일어나 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깊은 고뇌가 느껴지는 표정과 행동이었다.


“아직... 살아는 있다던가?”


“네. 일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유라, 그 아이는 일에 잘 도착했고?”


“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강주승은 지금, 다카하시상의 암살 미수건 말고도

제물포 역 인근의 일본 은행과 경찰서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까지 받고 있습니다.

시차가 너무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이대로면 본인의 자백 없이도 중형을 구형받을 겁니다.”


“문제의 답이 다카하시에게 있는데, 지금 그를 만나는 건 불 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니... 일단은 다른 방도를 구해보지.

내 누이의 정보를 알려준 이와 이번 일이 무관하지는 않을 거야.

명월관부터 시작해. 오늘은 그만 쉬고, 내일부터 알아보지.”


“네, 도련님.”


“그리고, 추사장에게도 도움을 청해 놓도록 해.

조선 팔도의 정보가 집결하는 곳이니 뭔가 해결의 방도가 생길지 모르지.”


한씨가 묵례를 하고 몸을 돌려 서재를 나가자, 책상에 손깍지를 올리고 턱을 괸 이혁이 다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회사와 주승의 안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니, 조금 더 냉정하게 사안을 볼 필요가 있었다.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료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 용의자는 강주승으로 밝혀졌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큰 사건은, 현장에 있던 그 주변인까지 철저히 참고인 조사를 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용의자가 조선인이라면, 더더욱 그 장소에 있던 서희와 유라는 그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둘 다 그러한 조치에서 빠졌다.


그리고 다카하시는 유라 옆에 자신의 사람을 붙이면서까지 서둘러 일본으로 보냈다.

그건 그 아이를 보호하는 동시에 서희에게서 유라를 분리시켜 오롯이 제 감시 하에 두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럼, 주승은...?

이 사단이 날 것을 예고했던 주승의 전보를 생각하면, 이 일의 단초는 그 자신이 아닌 유라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벌여놓고 타인에게 수습을 요구할 만큼 무모하고 뻔뻔한 녀석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유라와 길이 엇갈렸던 주승은 언제, 어떻게 그 아이의 뜻을 알았던 걸까.

그리고 하필 그 시점에, 역 인근의 일본 은행과 경찰서에 폭탄 테러가 일어난 건... 과연, 우연일까.


일에 있는 제 누이의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이들이라면,

저들이 짠 판 안에 유라 그 아이와 강주승을 집어넣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애초 그들의 목적이 다카하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폭탄 테러에 있는 것이었다면...

그 두 사건에 약간의 시차를 둔 것은 관내 경찰의 눈을 다카하시에게 돌림으로서 폭탄 테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번 일에 무장 독립 단체들 중 하나가 개입됐다는 뜻이군.’


짐작대로면, 주승의 일에 자신이 이 이상 깊이 관여하는 건 위험했다.

그동안 왜놈들한테 개처럼 비굴하게 굴며 사업 영역을 넓혀온 것이 단숨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이혁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관자놀이를 꾹 눌러댔다.






문 밖에서 느껴졌던 서희의 기척이 사라지자,

욕조 안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몸을 맞대고 입을 맞추던 다카하시와 나나코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못내 아쉬운 듯 번들거리는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훔치는 나나코와는 달리,

다카하시는 욕조의 저 끝으로 이동해 건조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욕조에서 나가.』

『침실로 모실까요?』

『아니, 조금 후에. 조금 더 있다가 침실로 가지.』


욕조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나나코가 수건으로 제 몸의 물기를 닦고 유카타를 입었다.

그리고 물의 온도를 확인하고는 뜨거운 물을 퍼 욕조에 보충해 넣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저 조선 여인의 마음을 얻으셔야겠습니까?』

『세상 유일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니까.』


『저 여인이 참, 야속하네요.

뭇 일본 여인들은 다카하시상의 손끝이라도 닿아봤으면,

그 눈빛 한 번 따스하게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는데.

그 모든 것을 가지고서도 제 마음 하나 주지 못하다니요.』


『마음을 주지 못한 게 아니라, 그동안 소중하다 여겼던 것들을 버리지 못한 탓 일거다.

측은지심이 많은 성정이라 늘 약한 것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니, 나는 항상 뒷전일 수밖에. 

 내가 평범한 사내라면 그런 서희를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지.

결국, 서희도 알게 될 거고, 선택할 거다.』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나나코가 욕조의 물을 퍼 다카하시의 등에 졸졸 흘려보냈다.

그의 복부에 난 상처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총독부 감옥에 있는 강주승 말입니다.』

『그래.』

『어떤 고문에도 묵묵부답이라고 합니다.』


『유라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버텨야겠지. 그래서, 공판기일의 연기 신청은?』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3일이 최대라고 합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총독부의 일이라면 죄다 아버지 귀에 들어갈 테니 곤란하긴 하겠지.

제물포 일각에서 있었던 다른 건의 용의자는?』


『여전히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 하나로는 힘들겠지... 일이 더럽게 꼬였어.』


『이제 그만 욕조에서 나오시는 것이 좋지 않을 런지요. 수술한 상처가 덧날까 염려됩니다.』


제 말에 다카하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얼굴에 미소를 띠운 나나코가 얼른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

다카하시가 안정적으로 내려선 것을 확인하고 나나코가 그에게서 손을 거둬 바싹 마른 수건을 집었다.

그의 몸의 물기를 꼼꼼히 닦아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나코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 여인의 마음을 얻고 나면 정말, 저는 이대로 내치실 생각이십니까?

첩이라도 좋으니 다카하시상 옆에 머물게 해주시면.』


『죽을 거다. 점점 말라가며 처절하게. 너한테 나눠 줄 내 마음 따위 없으니까.』


『너무 하십니다. 국적만 다를 뿐, 저이나 나나 똑같은 기생인데요.

게다가 저와의 인연이 더 깊지 않습니까.』


『사전에 약속된 것 말고는 욕심 부리지 말라 일렀을 텐데?

넌 계속 지금처럼 내 눈과 귀 역할만 충실히 해. 그마저도 싫다면, 지금 당장 가도 좋다.』


『죄송합니다, 다카하시상.』


『서희는 내 누이를 저버리면서까지 뼛속 깊이 원했던 여인이야. 너랑 같지 않지.』


『부디... 그 여인의 마음을 얻으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나나코가 입을 꾹 다물고 다카하시의 몸을 닦고 유카타를 입혔다.

다카하시의 눈길이 여전히 비죽 열려져 있는 문틈에 닿았다.

그녀에게 조금은 잔혹하다 할지라도 서희가 한시라도 빨리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서희가 소파 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온 몸으로 스며드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도 다카하시와 강주승 그 누구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새삼 자신이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강주승을 빼내야 하는데... 하지만, 그게 렌이 원하는 답은 아니지. 어쩌면 좋지, 난...’


그 때, 침실 쪽에서부터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카하시와 나나코가 욕실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간 듯 했다.

애써 지웠던 두 사람의 입을 맞추던 소리가 귓전을 다시 울려댔다.


‘싫어, 싫다...’


하지만, 역시나 지금의 자신은 강주승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제 가족이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제 팔, 다리를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녀가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소파에서 내려와 천천히 침실로 향했다.


『흐읏, 하아...』


문 앞에 섰을 때, 안으로부터 다카하시의 얕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에 신음하는 것인지, 아님, 육체적 쾌락에 젖어 신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리며 빨리 뛰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믿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대면하는 것이 나을까, 외면하는 것이 나을까.


또, 대면한다고 해도 저는 어쩌면 좋을까.

제3자가 되어 다카하시가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을 수 있을까.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다 못해 날카로운 무언가가 제 마음을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았다.

서희의 몸의 방향이 틀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손으로 문을 짚었다.

멀거니 한참을 서 있다 막 걸음을 뗐을 때, 문이 열리고 나나코가 말을 건넸다.


『들어오세요.』

『하지만.』


흐트러진 유카타 차림의 나나코가 서희가 들어오기 쉽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마지못해 서희가 침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그녀가 다시 문을 닫은 후 서희에게 다가갔다.


『다카하시상의 붕대를 교체하고 그 과정에서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다카하시상의 몸에 제가 입을 좀 댔습니다.

서희양이 깨어있는 줄 알았으면 부탁드렸을 거예요.

지금에라도 제가 자리를 비켜 드릴 테니, 서희양이 다카하시상을 기쁘게 해주시겠어요?』


『나나코, 내가 너에게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있나?』

『다카하시상.』


『오서희는 날 만질 자격이 없어. 그렇지 않아, 오서희?

나에게 안길 자격도, 나와 교접할 자격도 없지.

날 기쁘게 하거나,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은 더더욱 없고. 그러니, 네가 해, 나나코.』


서희의 꾹 다문 두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다카하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저를 확인 사살하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냐고 묻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나코가 쓰게 웃더니 다카하시에게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양물을 잡아 부드럽게 손으로 쓸더니, 이내 입 안에 넣었다.


『흐읏... 나나코... 하아.』


서희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점점 더 거친 숨을 내뱉는 그의 숨소리를 듣는 제 마음 한 구석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제 몸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다카하시가 자신을 다른 여인에게 맡겼다는 건,

이제야말로 그와 자신이 정말 끝일 수도 있단 뜻이었다.






p.s. 모르겠다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ㅋㅋ

       아무튼 댓에 참고할 부분 있으면 참고해서 수정할게요.

       다음화는 많이 질척일 것 같아...요. ㅠㅠ




애가(愛歌) _ 44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109&no=183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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