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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애가(愛歌) _ 45(수정) + 46

..(118.42) 2021.05.21 01:24:05
조회 570 추천 31 댓글 8




- 마흔 다섯 번째 이야기 -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씨가 차디찬 한기를 품고 서재로 들어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피로한 눈을 감고 있던 이혁이 바르게 일어나 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깊은 고뇌가 느껴지는 표정과 행동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다카하시와 합의만 잘 끝내면 풀려날 수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 그게...

총독부에서 강주승이 제물포 역 인근의 일본 은행과 경찰서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는 없는지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시차가 너무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마치 서로 미리 얘기가 된 것처럼요.

게다가 테러 용의자들의 종적이 묘연해 강주승이 더 의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 결국은, 그들의 자존심 문제인거야.

윗선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데다 자국민들로부터도 원성이 자자하니, 대신할 인물을 찾는 거겠지.

그가 서희를 위해, 강주승의 일에 어디까지 나서줄 지 의문이군.”


“유라 그 아이를 일찌감치 일본으로 빼돌린 걸 보면, 이번 일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 런지요?”


“기대만큼 따라주면 좋겠지만, 변수가 있어. 강주승에게 내 누이의 정보를 알려준 이 말이야.

그렇게 추궁을 했는데도 그에 대해서 한 마디도 없던 걸 보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오늘은 그만 쉬고, 내일부터는 명월관을 기점으로 그 자에 대한 것부터 알아보도록 해.”


“네, 도련님.”


“그리고, 추사장에게도 도움을 청해 놓고. 조선 팔도의 정보가 집결하는 곳이니 뭔가 길이 보일지 모르지.”


한씨가 묵례를 하고 몸을 돌려 서재를 나가자, 책상에 손깍지를 올리고 턱을 괸 이혁이 다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회사와 주승의 안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니, 조금 더 냉정하게 사안을 볼 필요가 있었다.

사실 사건의 경위를 시간대별로 정리해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데 대해 의심을 가질 만도 했다.


만약, 유라의 다카하시 살해 시도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찔렀든, 베었든, 결국 유라는 그를 죽이진 못했을 것이다.

다카하시가 한때는 사업을 했지만, 그렇더라도 결코 자신과 같은 평범한 장사치는 아니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다카하시가의 사람이었다.


다음으로, 유라의 살해 시도 뒤 이어진 두 발의 총성.

총격의 목표를 사람으로 삼을 정도면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다카하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도 않았는데 두 발에서 멈춘 것은 그 목적이 단순 살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제물포역 인근에서 그의 공식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총독부 고위 관료가 나타날 것을 미리 알고 목표로 삼은 걸까.

이는 사전에 유라를 통해 다카하시의 움직임을 예상했던 거라고 밖엔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 은행과 경찰서의 폭탄 테러에 있었을 것이라 예상 가능 했다.

그들에게 다카하시의 암살 시도는 그저 관내 경찰의 주의를 돌려 폭탄 테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에 불과했을 것이다.


문제는 한동안 실종 상태였던 주승이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유라는 다카하시가 자신의 사람을 붙이면서까지 서둘러 일본으로 보냈으니, 이 일에선 이미 제외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남아있는 유일한 용의자인 주승이 총독부로부터 의심을 받고 추궁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테러가 무장 독립 단체들 중 하나의 소행이라면... 유라와 강주승 모두 그들과 연관돼 있단 뜻인가.’


제 짐작대로면, 주승의 일에 이 이상 깊이 관여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동안 왜놈들한테 개처럼 비굴하게 굴며 사업 영역을 넓혀온 것이 단숨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이혁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관자놀이를 꾹 눌러댔다.






문 밖에서 느껴졌던 서희의 기척이 사라지자,

욕조 안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몸을 맞대고 입을 맞추던 다카하시와 엔도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못내 아쉬운 듯 번들거리는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훔치는 엔도와는 달리,

다카하시는 욕조의 저 끝으로 물러나 앉아 건조하게 말했다.


『그만 욕조에서 나가.』

『침실로 모실까요?』

『아니, 조금 후에. 조금 더 있다가 침실로 가지.』


욕조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엔도가 수건으로 제 몸의 물기를 대강 닦고 유카타를 입었다.

그리고 욕조 물의 온도를 확인하고는 뜨거운 물을 퍼 보충해 넣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저 조선 여인의 마음을 얻으셔야겠습니까?』

『세상 유일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니까.』


『저 여인이 참, 야속하네요.

뭇 일본 여인들은 다카하시상의 손끝이라도 한 번 닿아봤으면,

그 눈빛 한 번 따스하게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는데.

그 모든 것을 가지고서도 제 마음 하나 주지 못하다니요.』


『마음을 주지 못한 게 아니라, 그동안 소중하다 여겼던 것들을 버리지 못한 탓이겠지.

측은지심이 많은 성정이라 늘 약한 것들이 먼저 마음이 쓰이니, 나는 항상 뒷전일 수밖에.

내가 평범한 사내라면 그런 서희를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난 이미 오래도록 참았어.

결국, 그걸 서희도 알게 될 거고, 선택할 거다.』


『다카하시상 옆에 있으려면 그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엔도가 욕조의 물을 퍼 다카하시의 어깨를 피해 등에 졸졸 흘려보냈다.

그의 상처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총독부 감옥에 있는 강주승 말입니다.』

『그래.』


『테러 용의자 중 하나로 의심받으면서 곧 고문이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사토상을 총독부에 보내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니 내가 다시 출근할 때까지 이를 늦춰 달라 해야겠군.』


『꼭 그래야 하나요? 본가에도 전해질 텐데요.』


『그렇겠지. 하지만, 강주승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희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고도 놓칠 수 있어.』


『결국, 이 일의 귀결은 저 여인에게 있군요. 후...

이제 그만 욕조에서 나오시는 것이 좋지 않을 런지요. 수술한 상처가 덧날까 염려됩니다.』


제 말에 다카하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얼굴에 미소를 띠운 엔도가 얼른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

그가 안정적으로 내려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엔도가 손을 거두고 바싹 마른 수건을 집었다.

다카하시의 몸의 물기를 꼼꼼히 닦아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엔도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 여인의 마음을 얻고 나면... 첩이라도 좋으니 저를 다카하시상 옆에 머물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죽을 거다. 점점 말라가며 처절하게. 너한테 나눠 줄 내 마음 따위 전혀 없으니까.』


『너무 하십니다. 나라만 다를 뿐, 저나 그이나 똑같은 기생인데요. 게다가 저와의 인연이 더 깊지 않습니까.』


『사전에 약속된 것 말고는 욕심 부리지 말라 일렀을 텐데?

넌 계속 지금처럼 내 눈과 귀 역할만 충실히 해. 그마저도 싫은 거라면, 지금 당장 가도 좋다.』


『죄송합니다... 다카하시상.』


『서희는 내 누이를 저버리면서까지 뼛속 깊이 원했던 여인이야. 너랑 같지 않지.』


『부디... 그 여인의 마음을 얻으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엔도가 입을 꾹 다물고 다카하시의 몸을 말끔히 닦은 후 유카타를 입혔다.

다카하시의 눈길이 여전히 비죽 열려져 있는 문틈에 닿았다.

제가 그녀에게 조금은 잔혹하게 군다 할지라도 서희가 한시라도 빨리 그 마음에 오롯이 저만 담아주길 바랐다.






서희가 소파 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온 몸으로 스며드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저히 침실로는 갈 수가 없었다.

얇은 벽 사이로 차마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나나코... 렌은 언제부터 엔도상을 그렇게 불렀던 걸까.’


다카하시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에 서희는 왠지 모를 서운함이 들었다.

그리고 슬쩍 심통이 났다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라 이내 도리질을 했다.

누군가에게 투기를 잘 하지 않는 성정이라 이런 자신이 못나 보였다.


‘렌 말대로, 주승일 포기할 수도 없으면서.’


그 때, 침실 쪽에서부터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카하시와 엔도가 욕실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간 듯 했다.

애써 지웠던 두 사람의 입을 맞추던 소리가 다시 귓전을 맴돌았다.


‘싫어, 싫다...’


서희가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품고 소파에서 내려와 천천히 침실로 향했다.


『흐읏, 하아...』


문 앞에 섰을 때, 안으로부터 다카하시의 얕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에 신음하는 것인지, 아님, 육체적 열락에 젖어 신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리며 빨리 뛰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듣고 싶지 않아 피했던 최악의 상황이 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대면하는 것이 나을까, 지금처럼 외면하는 것이 나을까.

또, 대면한다고 해도 저는 어쩌면 좋을까.

제3자가 되어 다카하시가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을 수 있을까.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다 못해 날카로운 무언가가 제 마음을 연신 찔러대는 것 같았다.


서희의 몸의 방향이 틀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손으로 문을 짚었다.

때문에 문이 흔들려 덜거덕 거렸다. 멀거니 한참을 서 있다 막 걸음을 뗐을 때, 문이 열리고 엔도가 말을 건넸다.


『들어오세요.』

『하지만.』


흐트러진 유카타 차림의 엔도가 서희가 들어오기 쉽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마지못해 서희가 침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그녀가 다시 문을 닫은 후 서희에게 다가갔다.


『다카하시상의 붕대를 교체하고 그 과정에서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제가 다카하시상의 몸에 입을 좀 댔습니다.

서희양이 깨어있는 줄 알았으면 부탁드렸을 거예요.

지금에라도 제가 자리를 비켜 드릴 테니, 서희양이 다카하시상의 고통을 덜어주시겠어요?』


『나나코, 내가 너에게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있었나?』

『다카하시상.』


『오서희는 날 만질 자격이 없어. 그렇지 않아?

나에게 안길 자격도, 나와 교합할 자격도 없지.

날 기쁘게 하거나,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은 더더욱 없고.

그러니, 네가 해, 나나코.』


서희가 부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카하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를 확인 사살하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냐고 묻고 있는 것도 같았다.

엔도가 쓰게 웃더니 다카하시에게 다가가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양물을 잡아 부드럽게 손으로 쓸더니, 이내 입 안에 넣었다.


『흐읏... 나나코.』


충격에 휩싸인 서희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점점 더 거칠어지는 그의 숨소리를 듣는 제 마음 한 구석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제 몸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다카하시가 자신을 다른 여인에게 맡겼다는 건,

이제야말로 그와 자신이 정말 끝일 수도 있단 뜻이었다.






- 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




『하아... 하...』


한껏 고조됐던 다카하시의 숨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점차 잦아들더니, 이내 엔도가 제 입에서 그의 것을 빼내고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제 입 안으로 흘러들어온 그의 체액을 삼키고 입가에 묻은 것 또한 손가락으로 훑어 핥아먹었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가히 색정적이었다. 총독부의 고위 관료들이 그녀에게 안달 난 것이 납득될 만큼.


하지만, 다카하시의 눈은 엔도가 아닌 서희를 향해 있었다.

엔도가 그를 씁쓸하게 바라보다 손을 뻗어 다카하시의 뺨을 감싸고 그의 시선을 제게로 돌렸다.


『다카하시상의 것을 제 안에 넣게 해주세요.』


다카하시의 눈빛이 이내 싸늘하게 식더니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다른 때 같았다면 이미 그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져 저택에서 쫓겨났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 안의 화를 억누르며 참았다. 서희 때문임이 분명했다.

엔도는 매순간 그에게서 여지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저를 향한 그의 태도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만 확인받고 있었다.


한편, 엔도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서희가 제 입술을 더 세게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깨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비죽 솟아나와 곧 흘러내릴 듯이 차올랐지만 티내지 않으려 양 손을 꼭 힘주어 맞잡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온 몸이 얼어붙은 듯 꼼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위로 올라와, 나나코.』


유카타를 벗고 다카하시의 위로 올라가던 엔도가 미묘하게 변한 그의 표정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또다시 그의 눈길은 자신이 아닌 서희를 향해 있었다.

그가 그 답지 않게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가 서희의 어떤 변화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자, 비참했다.

제 안에 그의 것을 넣고 아무리 가슴을 흔들어대고 신음을 흘려도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의 여자는 저 조선인 기생 서희뿐이었다.



『렌...』


엔도가 내려앉으며 다카하시의 것을 막 제 안에 품으려는 그 순간, 희미하게 떨리는 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엔도에게 눈짓을 했다.

그녀가 입술 안 쪽 살을 잘근 깨물며 그의 위에서 내려와 유카타를 다시 제 몸에 걸쳤다.


『엔도상을... 제 침실에서 물려주세요.』

『네 침실이라... 언제부터 네 것이 됐지?』


『내가 렌의 여자가 되고부터, 줄곧. 그러니, 이 방에서 물려주세요.』

『하...』


다카하시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서희를 향해 비척비척 걸어가며 엔도에게 말했다.


『이층에 가 있어.』

『네, 다카하시상.』


엔도가 일어나 침실을 나가며 야속한 듯 서희를 향해 눈을 흘겼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방에 둘 뿐이란 안도감 때문인지 가득 차올랐던 눈물이 비로소 서희의 뺨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 앞으로 다가와 선 다카하시가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를 훔쳤다. 축축한 눈물이 묻어났다.

서희의 입술에 뭉개진 핏자국이 언뜻 보이자,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다카하시가 그녀의 턱을 손으로 받쳐 치켜들었다.


『왜 우는 거지? 당돌하게도 저 아이를 밖으로 쫓아 달라 말할 땐 언제고.』

『주승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단 것만 확인하면...』


『아니, 그런 건 없어, 오서희. 난 너와 타협을 하려는 게 아니거든.

고문당하다 죽던 말던 그를 버리겠다고 말해. 그게 날 얻을 수 있는 방법이야.』


다카하시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있던 손을 거두자 서희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극심한 마음의 고통이 그녀를 괴롭혔다.

방울진 눈물이 아래로 떨어져 유카타가 점점이 얼룩져갔다.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다카하시가 서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 줘봐, 오서희.』


서희가 한 손을 그에게 내밀며 다른 손으론 제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다카하시가 그녀의 내민 손을 붕대가 감겨있는 제 손 위에 살포시 얹었다.


『너 때문에 생긴 상처야.

   유라 그 아이가 너를 향해 휘두르던 칼날을 내가 움켜쥐다가 생긴.

   이런 내가, 네 마음속엔 없어.』


『아니에요, 렌. 난...』


다카하시가 제 손에 잡힌 그녀의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차라리 여기에 총알이 박혔으면 했어.

   그럼, 최소한 너한테 동정심 정도는 오롯이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렌...』


『난 하나밖에 볼 줄 모르는 사내야. 그래서 내 상대도 그랬으면 했어.

   하지만, 내가 뭘 어찌해도 네가 오롯이 나만 볼 수 없다면...

   오서희, 죽을 만큼 괴롭겠지만 내가 널 버릴 수밖에.』


얕게 들고 나던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당연히 자신의 자리라 여겼던 그의 옆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다 못해 터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애써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카하시가 서희의 손을 제 손에서 툭 놓아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없이 떨어져 내리던 서희의 손이 제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었다.

그의 걸음이 제게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가 내딛는 걸음의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제 심장도 그를 따라 조금씩 내려앉았다.

어쩌면 엔도에게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그건 싫었다.


『사랑해요, 렌.』


다카하시의 걸음이 문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일말의 원망으로 점점 얼어붙어 가던 마음엔 어느 새 몽글몽글한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못 들은 척 드르륵- 문을 조금 열었다.

그러자 조금 더 다급하고 조금 더 커진 서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해요.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말아요.』


그가 문을 닫고 서희를 향해 돌아섰다.


『그럼... 그를 버리는 건가?』

『흐흑...』


서희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버릴게요, 모두.. 다.』

『모두...?』

『네.』


가만히 서희를 바라보던 다카하시가 다시 그녀 앞으로 걸어가 섰다.


『과연 내가, 여러 날 동안 날 속였던 네 말을 믿어도 될까?』

『사실이에요. 나, 렌 옆에 있고 싶어요.』

『그래...?』


그가 허리를 숙여 서희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제 양물을 만지게 했다.

서희가 흠칫 놀라 큰 눈망울을 끔뻑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입 벌리고 핥아.』


잠시 머뭇거리던 서희가 그의 것을 혀로 부드럽게 핥더니 이내 입 안에 머금었다.

정염에 일렁이는 다카하시의 눈이 힘들어하면서도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승자의 미소였다.






『하아, 하아... 그만... 그만, 렌... 흐읏!』

 

제 밑에 깔린 이불을 손으로 움켜쥔 서희가 물기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숨이 넘어갈 듯 교성을 내질렀다.

애무 없이 시작된 행위는 서희에게나 다카하시에게나 서로가 주는 열락을 훨씬 넘어서는 고통을 안겨주어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하읏, 그게... 아니야, 오서희.』

『사랑해... 사랑해요... 하아, 렌...』

『더... 더 듣고 싶어...』

『사랑해... 흐으응... 렌, 사랑해...』

『하아, 하아...』

『아흐흑, 렌...』


서희의 입에서 힘겹게 토해지는 사랑한다는 고백이 다카하시로 하여금 점점 더 애가 끓게 만들었다.

그녀를 위해서도, 또 부상당한 자신을 위해서도 이러면 안됐는데도 한 번의 파정 이후 이제 두 번째 파정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곧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감각에 서희가 몸을 떨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절정을 맞이했다.

그 순간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다카하시는 제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머무른 채 파정했다.

그렇게 잠시 여운이 남은 상태로 그녀와 맞물려 있던 다카하시가 밭은 숨을 내쉬며 내려와 그녀의 옆에 누웠다.

입에선 어깨 부상의 고통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오서희...』

『네...』

『아팠어?』


『아팠어요... 렌이 엔도상 때문에... 흥분했을 때보단... 참을 만 했지만.』


피식-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서희가 옆으로 돌아눕더니 다카하시의 허리에 제 팔을 감으며 안겨들었다.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왜 웃어요?』

『네가 나 때문에 아픈 게 좋아.』

『악취미네요.』

『앞으로도... 날 위해 아파 줄 수 있어?』


『하...』

『난 너 때문에 수술 부위가 다시 벌어진 것 같은데, 오서희 넌.』


다카하시의 말에 서희가 깜짝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훑어 올라가더니 어깨를 감싼 붕대를 매만졌다.

하지만, 만져보는 것만으로는 상태를 알 수가 없어 애가 탔다.


『가서 엔도상을 불러올까요? 나만큼이나 렌도 아플 거란 걸 잊고 있었어.』


『나가랄 땐 언제고. 괜찮아, 오서희. 농담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쓰이면, 오서희... 지금 내 위로 올라와.

   네가 내 위에서 흔들리는 걸 보면 통증이 가실거야.』


『렌...』

『대답 아직 안 했잖아. 날 위해 아파 줄 수 있냐는 질문에.』


서희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다카하시의 위로 올라가 그의 것을 품고 내려앉았다.

그녀의 입술 새로 얕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서희의 여체가 작게 흔들렸다.

다카하시가 잔뜩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른하게 웃었다.


『널, 이보다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걸. 네 몸이 기억하는 게 오롯이 내가 될 수 있게.』


『예전 기억은, 아으응... 이미 잊고도 남았..어요.』

『그런 예쁜 말을 잘도.』


다카하시가 팔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더니 곧 옆으로 이동해 서희의 입술을 매만지다 입술 사이를 벌리고 손가락을 넣었다.

서희가 그의 양물이라도 되는 양 손가락을 핥고 빨았다.


『말만 예쁘게 하는 게 아니네. 이젠 빠는 것도 예뻐.』

『흐읏... 흐응.』


그녀의 입에서 손가락을 빼낸 그가 제 손으로 서희의 목덜미에서부터 쇄골, 가슴까지 찬찬히 훑어 내리더니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고 지분거렸다.


『흐응, 렌...』

『왜, 하지마?』

『으응, 아니... 더 만져줘요. 좋아...』


『나도 좋아, 네가 날 밝히는 거.

   아무래도 나나코는 내일 이 집에서 내보내야겠어.

   사토상도 정해진 시간 말고는 집 안에 발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고.』


『날 아프게... 할 생각이군요.』

『날 마음 고생하게 만든 대가라고 생각해.』

『당신한테... 입 맞추고 싶어요...』


자신을 지분거리던 다카하시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자 서희가 상체를 숙여 땀으로 촉촉한 그의 가슴에 입을 맞추고 또 맞췄다.

서희가 온전히 다카하시의 것이 되는 밤이었다.







p.s. 문제 되는 표현 있으면 알려주기!

       이제 갈팡질팡 하는 서희는 끝임다.




애가(愛歌) _ 43~44 _수정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109&no=18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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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공지 ##황후의 품격 종방연 통합 공지## [36] 황품종방총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29 6697 94
공지 황후의 품격 갤러리 이용 안내 [6] 운영자 18.11.21 14997 12
공지 ◆◆◆ 황후의 품격 갤러리 가이드 ◆◆◆ [14] 황후의품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20 30892 30
공지 ◆◆ 황후의 품격 기회의도&주요인물 소개 ◆◆ [13] 황후의품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1.16 29921 58
183757 렌은 더 볼순 없는 건가... [2] ㅇㅇ(14.52) 03.03 134 5
183755 [상플] 망국의 초상 61.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의 붕어(이혁x오써니) [5] 유리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8 220 20
183753 드라마 리뷰 관련 유튜버입니다. [1] 황갤러(175.201) 01.31 139 19
183752 황실 가족이 몇화에 나와? 황갤러(223.33) 01.26 61 0
183747 오슷 앨범은 지금 들어도 좋다 ㅇㅇ(219.250) 23.11.09 125 3
183736 오이 본체들 재회 좀 해 줬으면 좋겠다 [1] ㅇㅇ(117.111) 23.11.02 356 37
183733 노블 보고싶음.... ㅎ ㅇㅇ(118.235) 23.10.30 156 14
183732 진짜 이만한 드라마가 없다 ㅇㅇ(223.38) 23.10.27 164 5
183731 7탈보다가 황품재밌대서보러왔는디 [2] 황갤러(211.209) 23.10.17 310 13
183730 조금만 소프트하게 갔어도 이드라마는 명작됐을듯.. [1] 황갤러(121.179) 23.10.15 218 2
183729 나쁜놈도 매력있게 그리는게 김순옥 능력인것 같음.. 황갤러(58.120) 23.10.10 173 5
183728 [상플] 만개한 눈꽃의 잔상 42. 방종放縱 (이혁X오써니) [7] 유리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2 360 24
183726 집나간 정상책을 찾습니다 ㅋㅋ [1] ㅇㅇ(118.33) 23.10.01 170 0
183725 애가 렌에게 있었음 하는 설정 ㅇㅇ(210.95) 23.10.01 151 4
183723 근데 금사월 초반 전개 ㄹㅇ 미쳤었음ㅋㅋㅋㅋㅋ ㅇㅇ(106.101) 23.09.24 151 0
183722 오이 그립다.... 황갤러(121.145) 23.09.19 135 5
183721 황품굿즈 관심있는 갤러 있어? [1] 황갤러(118.235) 23.09.16 240 0
183720 추석전까지... ㅇㅇ(220.95) 23.09.15 158 4
183719 [상플] 애가(愛歌) _ 66 [7] ..(61.81) 23.09.09 340 21
183718 여름이 가기전에.. ㅇㅇ(115.23) 23.08.17 147 3
183717 여기 그래도 비교적 최근까지 리젠 있네 ㅇㅇ(223.39) 23.08.08 193 1
183713 여름이야말로 독서의 계절... ㅇㅇ(118.235) 23.06.27 189 2
183712 대본집 파는 사람?? ㅇㅇ(106.101) 23.06.08 277 0
183711 망국의 진짜는 지금부터..? ㅇㅇ(220.87) 23.06.03 256 4
183710 0528 이혁 (175.112) 23.05.28 267 8
183709 애가서 신기한게 ㅇㅇ(110.9) 23.05.24 226 3
183708 현태랑 화룡이랑 둘다 106.10x네 ㅇㅇ(104.28) 23.05.16 187 0
183707 정주행 간다 플리커꿈나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5.08 205 0
183706 [상플] 애가(愛歌) _ 65 [6] ..(61.81) 23.05.06 408 21
183704 오이데이 방금 지났네 ㅇㅇ(117.111) 23.05.03 216 3
183703 [상플] 망국의 초상 60.하늘에 새 그물 땅에 고기 그물(이혁x오써니) [7] 유리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4.24 510 32
183702 망국이 다음편 보고 싶어요... ㅇㅇ(211.36) 23.04.23 193 2
183701 쓰앵님들 언젠가 담편 좀..^^ [3] ㅇㅇ(221.162) 23.03.13 378 6
183700 작가선생님들 봄이 왔어요 ㅇㅇ(39.7) 23.03.02 231 4
183699 혁이 기일 다 가기 전에 (175.112) 23.02.21 278 4
183698 작가선생님들 기다려요 ㅎ [1] ㅇㅇ(221.158) 23.02.13 326 4
183697 퍼스트 슬램덩크 봤는데... [1] ㅇㅇ(175.211) 23.01.24 410 1
183696 긴글+상플주의)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그립다 오이 [1] ㅇㅇ(125.182) 23.01.19 525 16
183695 이번 설날까지는... ㅇㅇ(110.70) 23.01.15 282 2
183694 귤하! 황품갤도 오랜만이네 [1] ㅇㅇ(222.99) 23.01.11 406 16
183693 [상플] 야만의 제국 (망국의 초상 연말 특집 정만두 외전) [6] 유리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2.26 558 25
183692 유쓰앵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2] ㅇㅇ(180.66) 22.12.08 397 7
183691 [상플] 애가(愛歌) _ 64 [7] ..(61.81) 22.12.04 544 24
183690 애가 렌서희 생각나는 노래 [1] ㅇㅇ(111.91) 22.11.22 343 6
183688 오늘 4주년이래 (175.112) 22.11.21 325 12
183687 애가 보고싶어요... [1] ㅇㅇ(110.70) 22.11.09 34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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