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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78 - 조선인 실업가들

운영자 2019.07.22 16:11:04
조회 215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78


조선인 실업가들


김연수가 일에 묻혀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의 아내가 아예 살림보따리를 가지고 다섯 살 된 큰아들 상준(相駿)과 함께 찾아왔다. 둘째 아들 상협(相浹)은 줄포의 어머니에게 맡긴 채였다. 어머니는 신혼 초에 동경유학을 떠나 10년 만에 돌아온 후에도 집에 오지 않고 곧바로 일에 미쳐 지내는 아들 때문에 며느리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상협은 맡아서 키워줄 테니 맏아들만 데리고 공장 숙직실에 가서 같이 살라고 며느리에게 권했다. 

김연수의 아내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후덕한 인상을 풍기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들에게는 자애로웠다. 검소하면서 인색하지도 않아 공원 등 주위 사람들에게 너그러웠다. 일년 후 셋째 아들 상홍(相鴻)이 태어났다. 

아버지 김경중(金暻中)은 사업에 필요한 주식자금을 정확히 납입해 주고 있었다. 당시 김연수는 어떤 성격을 가진 사업가였을까.

일제시대 조선인 부자들은 대개 구한말(舊韓末) 왕족이거나 관료 출신의 양반계급들이었다. 나라가 망하면서 왕족과 정승판서 고관대작들은 앞다투어 경성 시내의 여러 곳에 수십 채의 가옥을 사두는 등 부동산 투기에 전념했다. 철종의 손자였던 왕족 이재현은 서울과 지방에 수많은 토지를 사들여 판매차익을 노리기도 했다. 민씨 집안의 대표격인 민영휘(閔泳徽)는 엄청난 토지를 소유한 부자였다. 그는 조선한일은행, 조선제사회사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구한말 세도가 출신인 박영철(朴榮喆)은 일본 동경에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수, 도지사 등을 지내다가 조선상업은행장이 된 인물이었다. 그들의 모임인 조선실업구락부가 만들어졌다. 한성은행의 한상룡(韓相龍) 등 금융계에 포진하고 있던 조선인 자본가들이 주도하여 설립한 친목단체였다. 

창립 오찬회에는 조선은행 총재 미노베 기치,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미조노 등도 초대됐다. 이 모임에는 은행과 기업 등의 재계(財界)인사, 총독부의 고위관리들, 군대의 장교들, 사회 명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조선 최고의 사교 모임이었다. 정관재계(政官財界) 인사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서로 긴밀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유대를 가질 수 있는 친목을 다져나갔다. 조선호텔에서 좌담회가 종종 열렸다. 구락부는 총독부 근처의 빌딩에 강연장, 회의실, 사교실, 특별좌담회실, 도서실, 그리고 바둑, 장기, 음악, 미술, 한시 및 일본시 등의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한 공간도 갖추고 있었다. 또 여러 종류의 소모임을 위한 방들이 있었다. 회원들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저명한 초청연사를 주빈으로 한 정례(定例) 저녁모임을 가졌다. 

그들과는 달리 서구식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신진 사업가군(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김연수였다. 김연수는 경성방직의 지배구조를 안정되고 강력하게 만든 후 순수 기업인을 중심으로 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경성방직의 이사로 현준호(玄俊鎬)를 끌어들였다. 현준호는 영암의 대지주 출신으로 메이지대 법과에서 유학을 한 후 돌아와 호남은행을 창립했다. 그는 영암 일대의 700정보가 넘는 경지(耕地)에서 지주경영을 하고 있었으며, 동아고무공업, 영암운수창고, 조선생명보험 등 여러 회사의 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김연수는 신흥부자 박흥식(朴興植)과 최창학(崔昌學)도 이사로 끌어들였다. 박흥식과 최창학은 차별받는 서북인 출신이고, 특히 최창학은 하층 빈농 출신이었다. 금광(金鑛)열풍이 불면서 최창학 같은 부자가 생겨났다. 미국에서 갑자기 금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금본위제로 돌아섬에 따라 갑자기 조선 전체는 금광열풍이 불어닥쳤다. 농부, 학생, 변호사, 의사까지 황금을 찾아 나섰다. 맨주먹으로 금광을 찾아 벼락부자가 된 전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주인공이 최창학이었다. 

평북 일대의 금광을 전전(轉轉)하던 최창학은 운명을 건 한 판의 승부를 시작했다. 그가 찾아 들어간 조악동의 광산은 오래 전에 문 닫은 폐광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뼈아픈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곳이었다. 그가 찾은 폐광은 지하수가 흘러내리고 썩은 갱목에서는 버섯이 돋아나고 있었다. 박쥐가 날아다니는 어둡고 적막한 동굴이었다. 최창학은 어둠 속에서 하루 종일 망치를 휘둘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금은 나오지 않았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의 나이 어느새 30대 중반이었다. 그는 매일 부자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바위만 내려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최창학은 망치 끝에 묻은 반짝거리는 가루를 보았다. 조선 최대의 금맥(金脈)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 금광은 조선 굴지의 금광이 되었다. 그 무렵 미쓰이 재벌은 조선의 금광업에 진출했다. 미쓰이는 금맥을 찾기보다는 채굴 중인 금광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최창학은 미쓰이에 자신이 발견한 금광을 거액을 받고 팔았다. 조선인 백만장자가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박흥식은 1903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났다. 학교도 용강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그는 열여섯 살이 되자 용강읍내에 나가 쌀장사를 시작했다. 그가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경성으로 올라왔다. 그는 지금의 을지로 1가인 황금정 2목에 종이도매상을 차렸다. 지물포를 찾아다니면서 호소했다. 한 푼이라도 값싸게 사들여서 한 푼이라도 값싸게 판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흥식이 경성 시내 종이 소매업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게 됐다. 일본인 도매상들의 견제가 들어왔다. 박흥식이 종이를 주문해도 수입상이 주지 못하게 숨통을 조였다. 박흥식은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를 직접 생산하는 회사와 담판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문전박대를 받았다. 수입상들로부터 공급받으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는 일본의 여관에 머물다가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종이 생산국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동경의 한복판에 있는 스웨덴 영사관을 찾아갔다. 거기서 일본의 왕자제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스웨덴으로부터 양지(洋紙)를 직접 수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이번에는 거래처가 말썽을 부린 것이다. 관공서, 회사, 은행 등은 물론 일본인 지물상점조차 서로 결탁해서 조선인 박흥식의 종이를 사가지 않았다. 이때 그가 찾아가 사정한 사람이 경성방직의 김연수 사장이었다. 김연수는 동아일보 주식의 상당부분을 가지고 있던 대주주였다. 동아일보에서 필요한 종이를 박흥식에게서 구입하겠다고 했다. 

그 무렵 박흥식의 눈에 들어온 것이 종로 네거리의 화신상회였다. 당시 화신상회는 대형 잡화점이었다. 그 무렵 남촌 혼마치에 미스코시 백화점이 들어섰다. 르네상스식으로 지은 삼층 건물이었다. 일본 미스코시 백화점의 경성지점격이었다. 고관대작들이나 돈 많은 부호가 점차 미스코시에 드나들면서 화신상회가 주춤거렸다. 미스코시의 제품들이 훨씬 질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화신상회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당시의 화신상회는 기와집 건물이었다. 거기에다 간판을 붙이고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겉모양새가 3층 르네상스식 미스코시 백화점에 비교할 수 없었다. 박흥식이 화신상회를 인수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형 콘크리트 건물로 산뜻하게 화신백화점을 건축했다. 그는 화신백화점을 서울의 5대 백화점 중의 하나로 키웠다. 섬유제품은 주요 품목 중의 하나였다. 그 안에 직물부를 설치하고 김연수의 경성방직 제품들을 판매했다. 

김연수는 조선 말 세도가였던 민씨 일족인 민병수(閔丙壽)도 끌어들였다. 민병수는 미국 유학을 한 후 돌아와 조선견직의 이사를 맡았다. 당시의 관념으로 그들은 부자가 됐다고 해도 함께 모여 일을 할 사이는 아니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그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신분과 핏줄에 따라 차별하는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경제 사회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김연수는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 동창인 일본인들도 활용했다. 그들은 일본 곳곳의 경제계에 핵심으로 박혀 김연수의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당대 조선의 최고 엘리트들을 끌어 모았다. 그는 일본유학을 통해 경제학, 법학, 정치학, 공학 전공의 다양한 지식배경을 가진 인재들과 관계를 놓지 않고 있었다. 와세다대학의 현상윤(玄相允), 최두선(崔斗善), 장덕수(張德秀), 도쿄제국대학의 유억겸(兪億兼)과 박용희(朴容喜), 김준연(金俊淵), 메이지대학의 조만식(曺晩植), 김병로(金炳魯), 현준호(玄俊鎬), 조소앙(趙素昻), 게이오대학의 김도연(金度演), 교토제국대학의 김우영(金雨英) 등이 그런 인재들이었다. 그들은 특출한 두뇌와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에 돌아와 각종 사회 경제사업의 조직자가 되었고 에너지 넘치는 활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가인 김연수에게는 은행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기관은행이 난립하고 있었다. 기관은행이란 1개 회사 혹은 소수의 기업에만 융자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은행을 말했다. 일본 사업가들은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친족만으로 기업을 경영하려고 했다. 주식공개와 차입은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별도로 은행을 설립해서 회사의 필요자금을 조달했다. 은행 설립자가 유명인이라면 재무상태를 몰라도 사람들은 예금을 했다. 그런 기관은행이 일본 전역에 200개가 넘었다. 김연수는 그런 은행문제의 해결을 위해 해동은행의 대표취체역으로 취임을 하게 된다. 

왕족이나 신세대 기업가군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부자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여성인 김옥교(金玉嬌)는 경성에 조선풍의 호텔을 신축했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인 김옥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변변히 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미모가 워낙 뛰어나 머리를 길게 땋고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녀는 기생의 길에 들어섰다. 그녀는 기방(妓房)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어 소리 잘하고 춤 잘 추고 거문고 잘 타는 장안 1등 명기(名妓)란 명성을 얻었다. 이어서 그녀는 인사동에 ‘천향원’이라는 요리집을 개업하면서 안주인으로 들어앉았다. 천향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그녀는 돈을 자루에 쓸어 담는다는 소문이었다. 그녀는 성북동에 별장을 짓고 마침내 거액을 투자해서 시내 한복판에 대형 호텔을 짓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빈농 출신으로 부자가 된 최창학(崔昌學)은 미국에서 리무진을 수입해서 종로거리를 타고 다녔다. 그의 리무진은 조선 최초로 히터와 방탄유리가 장착된 차였다. 그는 우연히 지나치다 본 스물네 살의 김정숙이란 여자와 소공동 조선호텔 대광장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김정숙은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당대 최고의 엘리트 여성이었다. 최창학은 거액의 현찰을 대부분 은행에 예금했다. 그가 소유한 현금은 웬만한 은행의 총자산보다 많았기 때문에 한 군데 돈을 맡겨두지 못하고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한성은행 등에 분할해서 예치했다. 그는 호화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주택이 후일 김구(金九) 선생이 돌아와 묵던 경교장(京橋莊)이기도 하다. 

방응모(方應謨)라는 인물도 금광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다. 방응모는 평북 정주읍에서 잡화상과 동아일보 정주지국을 맡아 운영했다. 평양에서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을 하기도 하고 대서업도 해보는 등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금광 열풍이 방응모에게도 닥쳤다. 망치 하나 들고 이 산 저 산으로 금맥을 찾아 나섰다. 그의 발길이 머문 곳은 평북 삭주의 교동이었다.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닿은 적이 없는 천애(天涯)의 계곡이었다. 그 계곡에서 방응모는 금을 찾아냈다. 몇 년 후 방응모는 광산을 매각하고 경성으로 자신의 무대를 옮겼다. 그는 조만식(曺晩植)과 이광수(李光洙)의 간청을 받아들여 부도상태에 놓여 있던 조선일보를 인수했다. 

경성에서 부자들의 건축 붐이 일어났다. 종로 네거리와 광화문에 빌딩이 섰다. 민규식(閔奎植) 소유의 5층짜리 종로빌딩이 섰다. 종로빌딩은 박흥식의 화신상회, 개화경 장사로 큰 돈을 번 김재덕의 유창상회, 삼성상회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장안의 부호로 알려진 한학수와 이철은 공동으로 종로빌딩 맞은편에 한청빌딩을 건축했다. 현대식 일류호텔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1층은 점포용으로 포목, 양품, 잡화, 수예점, 화장품, 악기, 식품점 7개 부문으로 정하고 새로운 경영방식인 위탁 경영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점포는 빌딩주인이 제공하고 그 점포로 들어오는 상인은 인테리어와 상품판매를 맡고 이윤은 공동으로 분배하는 형태였다. 2층 이상은 호텔을 경영할 목적이었다. 

한학수와 이철은 장안의 부동산 재벌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들은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 오사카 등지에 있는 호텔을 시찰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박흥식은 종로통의 덕원상점 자리와 그 부근 일대를 매수해 당시 경성에서 최고층인 8층의 빌딩을 짓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효자동 근처에는 조선 최초의 데파트가 건축 중에 있었다. 조선인 기업가들은 일본이 탐을 내던 만주에 대한 기대로 흥분하고 있었다. 조선은 공업의 성장에서 일본과 비교할 수 없지만 만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조선은 원료와 식량을 수입하는 대가로 직물과 기타 공업제품을 만주로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성은행장 한상룡이 말했다. 그는 만주시찰단으로 갔다가 막 돌아왔다.

“일본제국의 새로운 보호가, 그동안 중국인 부패관리, 마적, 지주들의 속박 아래 신음하고 있는 만주의 조선인 주민들에게 크나큰 행복이었습니다.”

일본은 만주에서 조선인들을 중국인보다 우대했다. 만주국 경찰에 수많은 조선인들을 고용했고, 중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인들을 만주국 관료로, 특히 통역으로 폭넓게 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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