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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31 - 最後의 나날들

운영자 2019.11.18 16: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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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마녀사냥


131


最後의 나날들


1945년 4월1일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일본군 우지마 사령관이 지휘하는 제32군은 4개 사단과 5개 여단에 불과했다. 이 병력을 가지고 막강한 화력의 지원을 받는 미군의 공격을 당해 내기란 어려웠다. 더욱이 제공권과 제해권을 완전히 빼앗긴 일본의 입장으로서는 눈앞에 보이는 절망의 섬 오키나와에 증원군조차 보낼 수 없었다. 조선의 아베 총독은 오키나와를 미군이 장악하면 다음에는 규슈와 제주도에 쳐들어 올 것을 예상했다. 제주도는 조선반도의 섬, 그곳은 아베 총독 자신의 통할지역이다. 이제 전쟁의 불똥은 아베 노부유키의 발등에 떨어진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는 정변이 일어났다. 지난해 7월 조선 총독에서 일본의 총리로 간 고이소 내각이 총 사직을 단행했다. 그 무렵 소련은 한 통의 통첩을 일본에 보내왔다. 일소(日蘇) 중립조약의 파기였다. 그것은 일본에게는 북방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었다. 4년 전 외상 마쓰오카가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은 북쪽에 대해서는 한시름을 놓고 오로지 남방의 미국, 영국과의 전쟁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소련이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본국 정부로부터 이 연락을 받은 조선총독부는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총독, 정무총감, 경무국장, 법무국장, 학무국장에 제17군사령관과 참모장 그리고 헌병사령관 등이 모였다. 

경성과 주요 도시에는 소개령(疏開令)이 내려졌다. 미군 비행기의 공습이 심해질 것을 예상하고 비전투원은 시골로 분산하려는 것이다. 밤마다 전등을 끄고 살았다. 방공연습과 대피연습이 잦아졌다. 거리에는 방공호가 만들어졌다. 남의 집 축대에도 굴을 뚫었다. 집집마다 지하실을 팠다. 거리를 걷는 일본군들의 눈엔 살기가 어렸다. 그들은 이제 불리해진 전국(戰局)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일본 본토는 더욱 술렁거렸다. 유황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는 한 달 동안의 격전 끝에 일본군을 전멸시키고 그 섬을 점령했다. 

유황도를 잃은 일본은 크나큰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과달카날이나 아츠 섬, 그리고 필리핀에서 일본군이 전멸한 것은 군사적 패배이기는 했어도 그 섬들은 일본군이 빼앗았던 것을 도로 빼앗겼을 뿐이었다. 유황도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 역사상 일본 영토를 외국군에게 빼앗긴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일본인들 머릿속에 뿌리깊이 박힌 자부심이었다. 

1945년 3월10일 일본의 수도 도쿄는 역사상 유례없는 불벼락을 맞았다. 사이판 섬을 떠난 미(美) 공군의 B29 150대가 도쿄의 하늘을 뒤덮었다. 이날 떨어뜨린 폭탄은 18만9586개였다. 8만8793명의 시민이 폭사했다. 4만9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두 시간 반 동안의 폭격으로 12만9000여 명이 한꺼번에 살상된 것이다. 일본 대본영에서 열린 참모회의에서는 조선반도의 전략적 전술적 문제가 토의됐다. 대본영에서는 미군의 2개 내지 5개 사단이 제주도 아니면 한반도 남부의 어느 곳에 상륙하리라 상정하고 ‘결7호작전’을 조선군사령부에 지시했다. 제주도에 즉각 3개 사단이 투입됐다. 한라산 중턱에 군용도로가 닦였고 온 섬에는 벌집처럼 토치카의 구멍이 뚫렸다.

1945년 6월24일 경성 상공에 미 공군의 B29기가 나타났다가 유유히 사라졌다. 그날 오전 경성의 부민관에는 조선의 명사(名士)들이 모여 있었다. 박춘근, 이광수, 이성근, 김동진, 김광민 등 조선의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주장하는 인물들이었다. 일본 그 자체가 된 조선지역의 정당을 만들기 위한 발기인 대회였다. 일본에서 와타나베, 후지하라, 오노, 나카야스 등의 정계 인물들이 초청되어 왔다. 대의당이라는 당명이 통과됐고 당수로 박춘금이 선출됐다. 박춘금이 단상에 나가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모든 비결전적 사상에 대해 단연히 이를 분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박춘금은 전쟁을 반대하고 일본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척결하자는 장황한 내용의 연설문을 읽었다. 서늘한 광기가 부민관에 흐르고 있었다. 그는 “대의당은 총독부의 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의당은 돈의동 145번지에 간판을 걸었다. 그들은 지체 없이 ‘아시아민족 분격대회’, ‘남녀청년분격웅변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면서 이런 결의를 발표했다. 

‘우리 대의당은 조선 반도에서 반도인만 상대하는 협의적인 단체가 아니다. 우리의 활동무대는 아시아 전역이며, 우리가 하는 일은 아시아 민족을 위한 정치·사회·문화의 광범한 사업이다.’

박춘금은 중국대표와 만주대표까지 경성으로 끌어들였다. 조선, 중국, 만주의 세 민족 대표가 자리를 같이해서 일본의 전쟁목적을 다시 확인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적극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도시는 순간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8월9일 심야에 열린 일본 황실의 어전회의에서는 항복하자는 측과 끝까지 항전하자는 측으로 양분되어 격론이 벌어졌다. 그들은 최후로 천황의 뜻을 따르자고 결론을 내렸다. 천황은 항복할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는 군부와 일부 각료의 극렬한 반발은 쿠데타 등 과격한 사태로까지 몰고 갈 위험에 직면했다. 

8월9일 0시 대일(對日)참전과 함께 소련군은 두만강 연안의 일본군 진지를 공격했다. 이날 오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또 떨어졌다. 미국 폭격기가 나진항을 폭격했다. 일본의 군함 11척이 침몰됐다. 웅기에서는 일본함선 18척이 손실되고, 육군병원의 일본군 부상병 100명이 자살했다. 경원 부근의 마유산은 일본군 70명이 사망한 채 점령당했고, 청진의 전투에서는 일본군 227명이 사망했다. 1945년 8월11일 오후였다. 

조선의 아베 총독은 스즈키 내각의 서기관장으로부터 극비전문을 받았다.

‘방금 본국 정부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할 것이며, 카이로 선언도 추인할 방침으로 연합국과 그 절차를 교섭 중에 있음. 따라서 조선반도에서의 모든 대책을 아베 총독 책임하에 진행하기 바람.’

포츠담 선언의 수락이란 한마디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동시에 일본 영토를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로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카이로 선언 내용을 추인한다고 했으니 조선은 독립한다는 말이었다. 아베 총독은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를 불렀다. 

“우리 일본은 연합국한테 무조건 항복할 모양이오. 조선에서의 우리의 생명은 위태롭소. 조선에 있는 우리 100만 동포의 구출계획을 세우시오.”

1945년 8월11일, 폭염이 쏟아지고 있었다. 총독부의 경무국장 니시히로는 청진의 소련군이 열차로 남하한다면 20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계산했다. 소련군은 정치범들을 석방할 것이며, 조선은 약탈과 폭행의 혼란상태가 야기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것을 막자면 치안유지를 조선인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일을 수행할 인물로 송진우(宋鎭禹), 여운형(呂運亨), 안재홍(安在鴻) 등을 떠올렸다. 

다음날 새벽 4시,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 총독부 경무국의 차석사무관 하라다가 원서동의 민족지도자 송진우의 집을 찾아 ‘종전(終戰)의 뒷수습을 부탁한다’는 총독부의 의지를 전했다. 

다음날 송진우는 총독부 경무국 보안과장 이소자키와 조선군 참모 간사키 그리고 경기도 경찰부장 오카가를 시내의 어느 일본인 집에서 만났다. 경무국 보안과장 이소자키가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의할 것은 소련군의 조선 침입에 따른 치안문제입니다. 저희 총독부로서는 조선의 치안을 신망이 두터운 조선인 지도자에게 맡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하(古下) 선생께서 맡아주신다면 모든 권한을 넘기도록 할 예정입니다. 조선과 일본 양 민족의 충돌을 막고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그 일에 협력을 해달라고 이렇게 뵌 겁니다. 조선에 있는 60만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이 중요하고 앞으로 조선 정부가 수립되는 경우 지금 일본인들이 투자하고 있는 모든 사업체나 재산들에 대한 권한이 유지됐으면 합니다.” 

그들은 향후 조선에 정부가 설립되더라도 일본인들이 그대로 거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시기에 경거망동을 하는 것은 자칫하면 프랑스의 페탕 정권이나 중국의 왕조명(汪兆銘) 같은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진우는 그렇게 우회해서 거절했다. 그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태평로 거리를 질주하는 두 대의 군(軍) 트럭이 있었다. 노소(老少)가 한데 섞인 일본인 입대병들이 목이 찢어져라 군가를 불러대고 있었다.

‘반다노 사쿠라와 에리노 이로. 하나와 요시노니 아라시 후쿠 야마도 잔지토 우마레데와 삼페이센노 하나 토 지레.’

(가지마다 벚꽃은 노을의 빛깔 요시노 꽃동산엔 폭풍이 분다. 일본의 남아로 태어났으니 산병전의 꽃으로 지라.)

이미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그들은 군가가 끝나면 대일본제국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그 무렵 정무총감 엔도는 사회주의 세력의 대표로 추앙받던 여운형(呂運亨)을 관저로 초대했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연합군에 항복하기로 했습니다. 소련군이 서울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조선은 한강을 경계로 미소(美蘇) 양군이 분할 점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저로서는 소련군이 들어오기 전에 정치범들을 모두 석방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대신 여운형 선생께서 치안유지에 협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운형은 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제 입장에서는 정치범뿐 아니라 경제범의 석방, 앞으로 3개월간의 식량확보, 건국활동에 일절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치안유지에 협력하겠습니다.”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여운형은 지하조직을 주축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송진우를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좌우합작으로 정부를 수립합시다.”

그것은 상해의 임시정부를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했다.

“일본이 항복을 했다고는 하지만 북한에만 관동군사령부 직속의 18만 명, 그리고 남한에 대본영 직할의 23만 명의 병력이 있습니다. 또 일본의 경찰병력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런 군사력과 경찰력을 우리 힘으로 물리칠 힘이 없는 한 총독부를 상대로 권한을 이양받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심부름꾼을 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가볍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정권은 국내에 있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을 게 아닙니다. 해외의 망명선배들, 특히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연합국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부를 세우는 일은 그때까지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여운형이 이렇게 반대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중국의 임시정부에 있어봐서 그 실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환국을 기다리느라 한시가 급한 정부수립을 보류할 수는 없습니다.”

그날 저녁 평양에 있는 조만식(曺晩植)으로부터 송진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일인(日人) 도지사로부터 시국을 담당해 주면 좋겠다는 교섭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조만식이 물었다.

“제 생각으로는 치안유지 정도라면 무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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