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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철학

운영자 2020.03.23 10:07:07
조회 160 추천 1 댓글 0
열다섯 살 소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고 가난했다. 얼음같이 찬 세상에 대한 복수는 돈이라고 그는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었다. 어떤 수모도 참았다. 그는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 같던 돈을 잡았다. 누구나 그 기러기를 볼 수는 있지만 그걸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어느새 노인이 된 그가 내게 말했다.

“압구정동에 있는 빌딩에 화려하고 잘나가는 커피숍을 만들어 값이 올라가게 할 거야. 그리고 분당에 있는 땅 오천 평도 폭포가 있는 최고의 정원과 건물을 만들어 비싼 땅으로 만들 거야.”

그의 욕심은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았다. 어느새 그는 칠십을 향하는 노인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제는 여행이라던가 명상 등으로 마음의 숨구멍을 열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욕심을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를 보면서 부에 성공했던 또 한 사람의 얼굴이 포개지는 것 같았다. 신당동 산 위 루핑과 함석을 덮은 판자집 출신인 그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문인식기술을 개발했다. 살아있는 인간의 지문은 수시로 규칙적으로 변화했다. 사람마다 그 정보가 달랐다. 휴대전화에 그 기술을 이용하면 세계의 금융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업은 순풍을 맞아 돈의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부자가 됐다. 회사들을 인수 하고 이탈리아에서 세계적인 천재들을 끌어다 썼다. 재벌그룹에서 그의 기술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는 그걸 거부했다. 혼자의 힘으로 삼성재벌을 능가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이미 그의 눈에는 최고 재벌이 되려는 욕망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한번 탐욕의 늪에 빠지면 인간은 스스로 그걸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모양이다. 지위도 그랬다. 재벌을 이룬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마지막에는 대통령이 되려고 애를 쓰다가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고 애를 쓴다. 한 일간지의 편집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제가 종종 유명한 김 목사님에게 칼럼을 써달라고 부탁하면 다른 필진이 누구이고 그 사회적 지위가 어떤지를 물어봐요. 수준이 맞아야 칼럼을 보낼 수 있다는 거예요. 김 목사님은 대통령과 장관을 만난 걸 말하면서 자신의 지위가 그 이상이라는 걸 과시하는 것 같아요.”

그는 대형교회의 십여 만명의 신도를 가진 목사였다. 그를 보면 신도수가 늘어나고 그의 지위가 성장하는 게 목표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한때 인터넷상에 미국의 부자 스티브 잡스의 글이라는 게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 진위는 모르지만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 내용은 대충 이랬다.

‘나는 비즈니스 세상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의 즐거움은 많지 않다. 결국 부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을 뿐이다.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 삶을 회상하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부와 사회적 지위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생명 연장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깨닫는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했었다. 끝없이 부를 추구한 것은 결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만을 남긴다.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저 세상으로 가져갈 수 없다. 나는 내 차를 대신 운전해 줄 기사는 고용할 수 있었지만 나대신 아파줄 사람은 구할 수 없다. 부는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도 있지만 인생은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되찾을 수 없다. 아내를 사랑할 걸, 가족을 사랑할걸, 친구들을 사랑할 걸. 나 자신을 좀 더 잘 대해줄 걸. 하나님은 부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선사해 주셨었는데. 그리고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만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었는데’

누구나 성장을 원한다. 부(富)의 성장, 지위의 성장. 오로지 성장을 위한 성장은 암세포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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