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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괴로울 때

운영자 2020.06.08 10:12:58
조회 241 추천 3 댓글 0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였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했다. 밤하늘 높이 둥근달이 걸려있었다. 그 달을 보면서 나는 걱정으로 가득 찬 내 마음에 질식할 것 같았다. 가족을 벌어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돈이 없었다. 아내가 옆집에서 돈을 일부 꾸어왔다. 처음으로 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손을 내밀어 보았다. 그의 은행 구좌에는 큰 액수의 정기예금이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손해가 나면 나중에 다 갚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냉정하게 거절을 당했다. 오랫동안 우정을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던 친구였다. 그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일면이 반사 된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했구나 자책을 했다. 세상은 변수가 많았다. 생각지도 않게 다른 고교 선배가 돈을 선뜻 내주면서 쓰라고 했다. 회사의 부도가 난 친구가 책상과 탁자와 책장 등 비품을 가져다 쓰라고 했다. 그렇게 사무실을 차렸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도 없었다. 파리를 날리는 자영업자의 괴로운 마음이 어떤 건지 몸으로 실감했다.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작은 돈이라고 해도 순간순간 돈을 번다. 그렇지만 나 같은 자영업자는 순간순간 모래시계 속의 입자들처럼 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 속을 털어놓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뽑아놓은 여직원은 대충 사무실의 상황을 보더니 조용히 나가버렸다. 더 있을 곳이 못 된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사무장으로 들어온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계산해 보니까 금년 말이면 망하겠는데요. 그리고 세월이 갈수록 커지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겠어요.”

그는 내 사무실에 있을 의사가 조금도 없었다. 그도 나가 버렸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의뢰인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직접 영업활동에 나서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동창회 명부를 보고 매일 점심이나 저녁을 부유한 친구들과 함께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들을 만나 밥을 먹을 때면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더러 나의 힘든 입장을 솔직히 얘기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들은 빙긋이 웃으면서 도와드려야지 하고 매끈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순간 나의 등 뒤에 묘한 냉소의 화살이 꽂히는 기분이었다. 변호사가 필요한 사건이 생겼을 때 그들은 결코 내게 오지 않았다. 고교 시절 나는 그들이 있던 메이저 그룹에 속해있지 않았다. 부자 집 아들은 부잣집 아들끼리 모였다. 또 머리가 좋고 성적이 탁월한 아이들은 그들끼리 어울렸다. 나는 가난한 회사원의 아들이었고 성적은 바닥을 헤맸었다. 나는 마이너그룹에 속했었다. 그들은 결코 나를 선택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도 나는 헛발질을 하고 다녔었다. 동창들을 찾아다니면서 연줄로 책이나 씨디를 월부로 파는 친구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학교를 다니면서 고교시절 건달 그룹에 속했던 친구였다. 회사에서 해고된 후 영업사원이 되어 동창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네가 변호사라는 게 이해가 안 돼. 지금 변호사하는 동창들을 보면 학교 때 다들 공부로 날렸잖아? 그런데 넌 나하고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직한 나의 인상이었다.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을 그렇게 우연히 들리는 말들을 통해 알아가 는 것 같았다. 저녁이 되고 어둠이 밀물같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 나는 텅 빈 사무실의 책상에 혼자 앉아있곤 했다. 상자 속의 암흑이 내게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 나는 매일 같이 기도했다. 그냥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했다. 너무 없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음이 뒤틀릴 것 같다고 고백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나의 아픈 마음을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외쳐도 그걸 공감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이 괴로울 때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거나 하소연하지 않기로 했다. 괴롭지만 침묵하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자신 속에서 고뇌들이 다 타버리고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이 광야에 내려주던 만나가 내게 내려왔다. 그분을 믿으면서 땀을 흘리면 절대 굶주리지 않는 걸 알았다. 삼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절규했다. 나는 마음의 괴로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벽을 보고 혼자서 하나님에게만 말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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