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신약성경

운영자 2020.07.20 10:15:45
조회 147 추천 1 댓글 0

백 년 전 무렵이다. 일본 홋카이도에 농업학교가 세워지고 미국인 클라크가 교장으로 오게 됐다. 학교의 설립자인 일본인 구로다는 무엇으로 학생들의 정신 교육을 시킬 것인가를 물었다. 구로다 박사는 일본으로 올 때 신약성경 오십권을 가지고 왔다. 일본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기운이 강할 때였다. 클라크 박사는 정신교육에는 그 이상이 없다고 자기 확신을 말했다. 얼마간 일본에 있던 클라크 박사는 떠나가면서 “보이즈 비 앰비셔스”라는 말을 했다. 클라크 박사의 그 말은 내가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도 교실 뒤쪽 칠판에도 좌우명처럼 적혀 있었다. 백 년 전 일본의 문교부 장관이 된 사람이 미국의 대학의 실러 교수에게 일본의 정신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청한 적이 있다. 미국의 실러 교수는 논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는 신약성경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구한말의 이세종 씨는 머슴 출신이었다. 어깨 넘어 겨우 한글을 깨친 그는 우연히 신약성경을 얻어 그걸 탐독하기 시작했다. 신약성경은 그에게 신성한 노동을 가르치고 성실과 근면을 가르쳤다. 부지런 하나로 그는 논과 밭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을 불러 자기가 깨달은 신약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믿음은 동광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동학의 교주 최제우의 일대기를 읽다 보면 어느 날 신선이 나타나 천서(天書)를 전해주어 그걸 공부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학자들 중에는 그 천서가 ‘천주실의’라고 해서 성경을 의미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구한말 강증산은 지나가는 보부상에게서 신약성경을 얻어 읽었다. 그는 교회에 가서 설교하는 것도 들었다. 최초로 수도원을 만든 기독교계의 존경받는 인물 중에 엄두섭 목사라는 분을 그가 생존 시 만난 적이 있었다. 작은 아파트의 구석방에서 병으로 누워있던 그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일어나 나와 대화를 했었다. 대화라기보다는 그 분의 뼈 속에 박혀있거나 피에 녹아있는 성경의 말씀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분은 구한 말 이세종이라는 성인의 제자쯤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세종 그 양반 작달막한 분이 겉으로 보기에는 거지같았어. 쑥을 뜯어 먹으면서 살고. 그런데 성령이 들어있는 분이었어. 활짝 핀 꽃들과도 대화를 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분이 한 말을 누군가 공책에 써 뒀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나는 성자라고 불리는 엄두섭 목사를 만나고 그런 말을 들었던 것을 보석처럼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가난하게 살던 강태기 시인이 폐암으로 죽기 한 달 전 쯤 내게 선물로 주었던 귀한 말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는 자동차 수리공 시절인 열아홉 살 무렵 신문사에서 하는 신춘문예에 두 곳에서 당선된 문학의 천재였다. 평생에 걸쳐 엄청난 책을 읽은 독서인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죽어가는 임대아파트의 어둠침침한 자기 방에 누워서 찾아간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제 작은 방에 읽었던 그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없어서 정부 버렸어요. 그러면서 죽는 순간까지 옆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을 생각했죠. 제가 내린 결론은 성경과 논어였어요.”

 

그는 자기 체험의 가장 진수를 내게 알려주었다. 나의 경우는 삼십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성경을 끊임없이 읽어왔다. 매일 아침 고정적으로 성경을 두 세장 읽는 게 나의 기본적인 영적 양식이었다. 성경은 진리를 추구하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두 같은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나의 경우가 그랬다. 겉으로는 백삼십 번이 넘게 읽었어도 아직도 성경의 페이지를 들출 때 마다 이해할 수 없고 모르는 것 천지다. 이성이나 논리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책이다. 그래도 그 속에는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어떤 신령한 힘이 분명히 있는 걸 느꼈다. 올라가고 싶었던 내가 어느 순간 내려와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던 내가 어느 순간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알게 됐다. 나의 생명이 잠시 존재했다가 꺼지는 물거품인걸 알게 되고 나의 존재가 먼지라는 걸 깨닫게 됐다. 눈이 보일 때까지 죽기 전날까지 읽을 예정이다. 그러면 성경은 나를 저세상으로 건너가게 하는 든든한 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3044 노년에 혼자 행복해지는 방법 운영자 23.07.10 99 4
3043 기름집 벽의 윤동주 시(詩) 운영자 23.07.10 75 2
3042 사교육 전쟁은 왜 일어날까? 운영자 23.07.10 95 1
3041 품위 있는 노인들 운영자 23.07.10 75 2
3040 밤바다의 주인 잃은 신발 운영자 23.07.10 69 2
3039 소년 시절의 부끄러운 고백 운영자 23.07.10 80 2
3038 고시 출신 노무현이 좋은 세상 만들었나? 운영자 23.07.10 91 6
3037 노인들의 자기소개서 [1] 운영자 23.07.03 98 3
3036 저는 3류작가 입니다 운영자 23.07.03 70 1
3035 저승행 터미널 대합실 운영자 23.07.03 65 1
3034 지리산 수필가 운영자 23.07.03 74 1
3033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이야기 운영자 23.07.03 81 2
3032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 운영자 23.07.03 83 1
3031 고시 공부를 왜 했나 운영자 23.07.03 104 3
3030 하던 일과 즐거운 일 운영자 23.06.26 81 2
3029 좋은 사람 구분법 운영자 23.06.26 124 2
3028 내 엄마였어서 사랑해 운영자 23.06.26 68 3
3027 지팡이와 막대기 운영자 23.06.26 74 2
3026 참회한 악마 운영자 23.06.26 67 2
3025 대통령이 찾아간 국수집 운영자 23.06.26 76 4
3024 삼성가의 손자 운영자 23.06.26 80 2
3023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 운영자 23.06.26 81 2
3022 빨간쟈켓에 백구두를 신은 수행자 운영자 23.06.19 69 2
3021 글쟁이 여행가이드 서현완 운영자 23.06.19 66 2
3020 냄새 운영자 23.06.19 70 2
3019 닷사이 술잔을 부딪치며 운영자 23.06.19 68 2
3018 선한 이웃 운영자 23.06.19 68 1
3017 진짜 군사 반란이었을까(2) 운영자 23.06.12 106 2
3016 전두환 심복의 고백(1) 운영자 23.06.12 108 2
3015 정치공작을 부인하는 그들 운영자 23.06.12 80 3
3014 마음이 넉넉한 사나이 운영자 23.06.12 68 1
3013 고문 운영자 23.06.12 69 1
3012 대학도 전문대도 다 떨어졌어요 운영자 23.06.12 92 1
3011 늙은 수사관의 고백 운영자 23.06.12 92 1
3010 김대중내란음모 사건 운영자 23.06.05 94 1
3009 노인 왕따 운영자 23.06.05 79 0
3008 노랑 신문 운영자 23.06.05 66 1
3007 내가 몰랐던 그들의 시각 운영자 23.06.05 67 1
3006 어항 속 금붕어 같은 법조인 운영자 23.06.05 75 1
3005 남산 지하실의 철학 운영자 23.06.05 69 2
3004 북파 공작원의 얘기 운영자 23.05.29 97 3
3003 멀리서 찾아온 친구 운영자 23.05.29 71 1
3002 정보요원들의 따뜻한 내면 운영자 23.05.29 30 0
3001 먹는 물에 독이 들어간다면 운영자 23.05.29 79 1
3000 정보부의 탄생배경 운영자 23.05.29 83 1
2999 정보기관 변론에 앞서 운영자 23.05.29 22 0
2998 매 맞는 정보요원들 운영자 23.05.29 29 0
2997 권총 사격 운영자 23.05.22 88 1
2996 죽어야 할 사람들 운영자 23.05.22 96 2
2995 박쥐 사나이와의 대화 운영자 23.05.22 131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