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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일어나려면

운영자 2020.09.07 10:02:21
조회 137 추천 3 댓글 0
오래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나는 법정들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법정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었다. 나는 닫혀 있는 한 법정 앞에서 한 늙은 여인이 절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재판을 받는 젊은이의 늙은 어머니 같았다. 기도를 하는 늙은 여인의 등에서까지 간절함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예수는 그런 기도의 힘은 산을 옮길 수도 있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성경 속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늙은 여인의 간절하고 순수한 기도는 하늘에 상납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하늘의 기운이 재판을 하는 판사의 영으로 들어와 그를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변호사로 재판을 하다 보면 마귀의 수법을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판사들의 저울대를 기울어지게 하기 위해 별별 수가 다 나온다. 거짓말을 하는 게 보통이고 증거를 없앤다. 증인을 매수하기도 하고 판사에게 뇌물을 주려고 애를 쓴다. 전관예우를 받을 것 같은 변호사를 사서 재판장에게 얼굴을 들이밀게 하기도 한다. 감옥 안에서는 밤새 생각해서 꼼수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탄원서나 진정서 안에 진정이 별로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결정적인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들을 다 흐트러 놓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한 재벌 회장의 재판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법정에서 옆에 있던 젊은 변호사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저는 주심판사에 대한 로비 담당입니다. 재판을 받는 회장님은 변호사를 쓰는 데는 귀신입니다. 수사검사담당 변호사는 수사상황에 대한 정보를 빼내고 수사검사와 로비를 하는 거죠. 그런 역할을 하는 재판장담당변호사가 있고 법저에서의 변론만 맡은 변호사가 있죠. 저는 주심 판사와 연수원 동기인 인연으로 사건을 맡게 됐습니다. 이 주심 판사는 정권의 실력자인 박 장관의 사위죠. 내가 잘 알아요. 제가 만났어요. 주심 얼굴을 보니까 잘 될 것 같더라구요.”

판사 출신인 법정 변론을 맡은 변호사는 그런 유형의 사건을 여러 번 재판을 해 본 베테랑이라고 했다. 회장의 석방을 위해 동원 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된 셈이다. 보통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법정의 완벽한 방어체계였다. 그러나 그 회장에게 중한 징역형이 선고됐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십여년 흘렀다. 한 법정에서 상대변호사와 서로 변론을 하고 재판을 마치고 같이 걸어 나오는 데 그 변호사가 “저를 모르시겠어요? 그 회장사건에서 주심 판사였는데”라고 말했다. 그랬다. 젊은 변호사가 로비를 했다는 그 주심판사였다. 그는 법원을 그만두고 큰 로펌에 있다고 했다. 그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그 사건을 맡고 재판을 할 때 그 회장이 측은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재판장을 하는 부장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재판장님과 저는 둘이서 징역 오년 정도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해 놓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제 사법연수원 동기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중요한 말을 할 게 있어 꼭 만나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녁에 만났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상했어요. 다 법정에서 다 한 말이고 별 게 없는 거예요. 그 순간 나한테 로비가 들어오는 거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다음날 재판장인 부장님께 그 사실을 보고하고 오해받지 않으려면 징역형을 올려야겠다고 했어요. 부장님도 그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징역 십이년을 선고하게 된 거죠. 그 회장 괜히 로비를 해서 큰 손해를 본 셈이예요. 잘 있나 몰라.”

나는 그 회장의 주변에서 진정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가벼운 형을 선고받고 오래전에 석방됐을 것이라고 믿었다. 오랜 세월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이 법정을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를 변호할 때였다. 모략의 덫에 들어간 그는 빠져나오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최소한의 변호비도 없다면서 나의 변호를 주저했다. 개결한 자존심을 가진 그는 사사건건 검사와 부딪치고 판사 앞에서도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신학대학 출신인 그는 절대자에 대한 기도의 힘은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이 간절하게 염원하면 그 기도가 하늘에 닿고 하늘이 움직인다는 이론을 그의 책에서 서술하고 있었다. 나는 성경 속의 아론 같은 그의 대변자가 되어 그의 입장을 원고지 백 장 분량의 변론서로 써서 법원에 제출했다. 기도하면서 한 줄 한 줄 쓴 것이다. 옆에서 나의 긴 변론서를 본 아내는 그런 긴 글을 판사가 읽을 리가 없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변론서 머리에 읽기 싫으면 읽지 마시라고 전제하기도 했다. 속으로는 읽어주기를 기도하면서. 그 다음날 해 질 무렵 뜬금없이 원로 소설가 정을병씨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어제 저녁 감방 안에서 잘 준비를 막 하고 있는데 교도관이 오더니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판사가 변론서를 읽고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직권으로 보석명령을 내렸다고 하면서요.”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보석신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판사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석방한 것이다. 현인들은 의로운 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큰 능력과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건 것들을 현장에서 경험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기도의 힘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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