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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의 형

운영자 2020.11.02 10: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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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의 형



십 여년 전 드링크 박스를 하나 들고 사무실을 찾아왔던 그가 불쑥 마음속으로 쳐들어 왔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맏아들이었다. 그 엄마는 믿음이 독실한 시골 여인이었다. 성경속 율법처럼 맏아들을 하나님에게 바친다고 하면서 목사가 되게 했다. 둘째 아들은 농협에서 빌린 돈으로 야산자락에 창고 같은 바라크 집을 지어 부모님을 모시면서 인근의 과수원을 하는 영감 집 일꾼이 되어 배 농사부터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거들었다. 혼자 살고 있던 과수원 주인 영감은 인색하고 성격이 괴팍한 노인이었다. 고용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을 천대하고 모멸감을 주었다.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급료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그 방글라데시에서 온 일꾼의 분노가 폭발해 영감을 주먹으로 때려 눕혔다. 순간 그곳에 함께 있던 그는 방글라데시인을 옆에서 도왔다. 인내하며 참아 왔지만 그동안 느꼈던 분노와 굴욕감은 방글라데시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살인죄로 징역형이 확정되어 김천교도소에서 살고 있었다. 그 형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동생의 변호를 부탁했었다. 형제는 착했다. 그리고 배우지 못했지만 아파트 경비원이던 아버지도 남의 밭에 나가 일해주던 어머니도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골고루 고난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무렵이라 찾아온 그와 함께 사무실 근처의 설농탕 집으로 갔다. 창가 옆 구석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감옥 안에 있는 동생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이제는 감옥 안에서 자리를 잡고 편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농협에서 융자받은 걸 동생이 갚지 못해 경매가 되고 아버지 어머니가 쫓겨나오셨죠. 그렇다고 아들인 제가 모실 형편이 아닙니다. 변두리에서 지하실을 빌려 신도 여덟명인 교회를 하고 있는데 임대료도 아내가 구로동에 있는 공구상가에 취직해서 받는 월급으로 꾸려가고 있는 형편이예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어머니가 살던 집 근처 교회의 목사님에게 부탁했더니 그 교회 사택 옆에 있는 차고를 개조해 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했는데 교인들이 들고 일어났어요. 살인범의 부모를 성전에 둘 수 없다구요. 교인들이 그러니까 그 교회 목사님도 어쩔 수 없다고 그러시더라구요.”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세상이었다. 그 부모는 명색이 아들이 있으니까 극빈자 보호 대상에도 해당 되지 않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교회가 조금 커지면 출감한 동생이 제 교회에서 일하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 어디서나 받아들이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네요.”

“지금 형편이 구체적으로 어떤데요?”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 주일마다 누가 쓰레기를 가져다 버려요. 일부러 그러는 거죠. 주일이면 신도로 오시는 할머니들이 일층에 와서 ‘강목사’하고 소리치세요. 계단을 못내려가니까 제가 와서 부축하라는 거죠. 그 할머니들이 안오시면 신도가 없는 셈입니다.”

나는 그의 부모가 법원에 보낸 탄원서에서 받은 감동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엄마가 맞춤법도 맞지 않고 비뚤배뚤 쓴 글자이지만 그 안에는 무서운 지혜와 감동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주는 영적인 특별한 은혜는 그렇게 간절하고 믿음이 깊은 어머니에게 부어 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목사를 계속한다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게 진짜 좋았어요. 제가 직접 여러 가지 고통을 겪고 저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나누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자리가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겁니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다 노동자였으니까요.”

나는 그의 촌스러운 복장과 초라한 모습 뒤에서 작은 예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이 왜 그의 집안에 가난과 고통과 차별을 보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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