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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김일성대학 교수(7)

운영자 2020.11.30 09: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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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김일성대 교수(7)



김일성대학교수 출신이라는 북한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쪽 세계의 단편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는 표정이나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럴 수 있었다. 조직에 얽매여 있는 생활이라면 순간순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의 말을 들어야지 그의 마음을 열고 아무 얘기나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얘기는 자유로운 내가 끌어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그냥 호기심일 뿐이었다.

“문학을 좋아합니까? 소설들 많이 읽었어요? 나는 사회주의 소설들이나 사상 서적도 제법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했다.

“저도 책을 좋아합니다.”

“고골리 좋아해요?”

“아, 그 어머니란 소설을 쓴 작가 말이죠”

“맞아요, 그리고 저는 ‘강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든가 중국혁명사나 그 당시 상황을 쓴 소설 붉은 바위. 그리고 만주의 혁명투사이면서 소설가인 김학철이 쓴 작품들도 읽었어요. 사회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그쪽의 리얼리즘 소설이 좋더라구요.”

“자본주의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책을 읽었죠? 엄 변호사는 마치 북에서 파견된 사람 같습니다.”

그가 싱긋 웃으며 처음으로 표정이 풀어졌다. 동질감이 조금 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에게 설명했다.

“새는 양 날개로 날아야 합니다. 역사책을 보는 데도 왕조중심의 역사도 읽어야 하지만 민중의 입장에서 쓴 역사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입체적으로 균형이 잡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알 듯 모를듯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건시대 왕이나 귀족에게 착취를 당하는 인민봉기의 역사관만 배웠을 것이다. 역사발전단계는 공부했어도 근대 시민혁명에서 나온 자유를 그가 알까 의문이었다. 알아도 말조심을 하고 있는 그였다. 내가 마음문을 열고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않으려고 나는 조심하고 있었다.

“엄변호사는 책이 많습니까?”

그가 물었다.

“많은 편이죠. 우리집 지하 서고에 내가 읽은 것도 한 삼천권 그대로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러시아 서적을 빌려줄 수 있어요?”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어요. 그것 뿐 아니라 모택동사상이나 체게바라, 중국혁명사, 불란서혁명사 같은 이념서적을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주의 북한의 김일성대학교수 출신이 자본주의 변호사에게 좌파 사상서적을 빌려달라고 하니 그건 좀 이해할 수 없는데요, 왜 그렇죠?”

“사실 저는 북에서 컸지만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조선 인민공화국이 러시아와 관계가 멀어졌을 때에는 평양에서 러시아 서적이 모두 없어져 버렸어요.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도 중국서적을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6.25 인민해방전쟁후 완전히 초토화됐을 때도 러시아나 중국은 조국의 재건을 도와주지 않았어요. 순전히 우리 인민의 힘으로 해 낸 겁니다. 남은 제국주의 미국의 덕을 많이 봤겠지만 말이죠. 우리는 주체적으로 발전을 해 낸 겁니다.”

“북쪽만 힘든 게 아니라 서울에 살던 나도 어린 시절 힘들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살았던 셈이죠. 우리집은 아버지 월급이 한 달 식구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머니가 뜨개질 품팔이도 했으니까. 오육십년대 평양에서 살 때 어땠어요? 반공교육으로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그 시절 북이 더 잘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때는 평양이 쌀 배급도 괜찮았고 밀가루도 많이 줬어요.”

그가 짧게 대답했다. 그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이렇게 물었다.

“제가 남북회담으로 서울에 갈 기회가 있다면 그 때 빌려주는 책 중에 영어공부할 책을 부탁해도 될까요? 평양에 있는 우리집 애들 영어공부를 시키려고요. 기왕이면 전자영어사전도 구해주면 좋겠구요.”

“그 정도야 얼마든지 기쁘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어떤 목적으로 온 거 알죠?”

“북에 있는 외가 친척을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사셨습니까?”

내가 외가의 해방 전 주소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그에게 내놓으면서 말했다.

“전에도 만주의 조선족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북으로 들어가 외가의 소식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회령은 북에서도 들어가는데 통제가 심하다는 소리도 전해 들리구요.”

“조선족이라면 당연히 일이 안되죠. 제가 오늘 평양으로 들어가는데 꼭 찾아 드립니다. 엄 변호사님은 효자입니다. 그런데 북의 가족을 찾으면 평양으로 올 수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북에서 서울로 온 분인데 외아들인 내가 평양으로 간다고 하면 아들을 잃어버릴까 봐 기절하실걸? 나는 안가요. 거기서 데리고 나와요.”

그가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고 나더니 말했다.

“회령의 오산동은 좋은 동네죠. 뒤에 동산이 있고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앞에 기차역이 있죠. 국경도시이기도 하구요.”

“평양사람이면서 어떻게 회령을 그렇게 압니까?”

“우리 집안에 회령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자주 갔죠.”

“그러면 이번에 정말 외가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우리 어머니도 삶이 얼마 남지 않으신 나인데. 형씨 정말 부탁해. 잘해주면 나도 잘해줄께.”

“하여튼 내가 두 달 이내에 결과를 가지고 올 께요.”

그가 자신 있는 얼굴로 내게 대답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엄 변호사 서울의 아파트 값은 얼마나 됩니까? 재산이 얼마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냥 있을 만큼 있어요. 일하는 보수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 데 수고비는 충분히 줄 께요. 그렇지만 일한 성과를 보고 난 후에 줄 거야. 아직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리 많이 줄 수는 없어. 기본 착수금은 조금 줄께요. 내일 아침 내가 묵는 호텔로 찾아와서 로비에서 전화 걸어요. 지금 숙소는 어딥니까?”

내가 물었다.

“대표부 부근에 숙소를 잡아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단 그렇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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