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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광야의 가시덤불

운영자 2020.12.07 1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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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광야의 가시덤불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물었다.

“여보 당신 고시칠 때 마지막 삼차시험 치르지 못할 뻔 했었지? 왜 인천에서 인질 사건이 터져서 말이야.”

“그랬었지. 왜?”

“힘들어 하는 청년이 있어서 카톡의 글로 위로해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때 일이 떠 올라서 말이야”

아내의 말 때문에 기억 저편 아득한 안개 속에 묻혀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당시 장기 직업 장교로 인천을 관할하는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직업 장교로 있으면서 사법고시를 준비했었다. 대학 시절부터 도전해서 실패를 거듭하고 군에 직업 장교로 들어와 근무하면서 마지막으로 도전했었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밤늦게까지 젖먹던 힘을 법서에 매달렸다. 마침내 전능하신 분이 불쌍하게 여겨 눈을 찡긋하신 것 같았다. 이차에 합격을 하고 그날은 삼차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삼차까지 통과해야 완전히 터널을 다 통과하는 것이다. 컨디션 조절을 하려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방에 있던 군용전화에서 비상을 알리는 듯 ‘띠리리리’하고 불안한 신호음이 울렸다. 예하 부대의 한 병사가 실탄과 엠 식스틴을 들고 탈영해서 인천의 한 까페에서 인질 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급히 현장으로 출동했다. 범인은 한 시간에 한명씩 인질로 잡은 호스티스들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있었다. 그를 잡으러 용감하게 들어간 헌병 대장도 복부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상황이었다. 인질범과 군부대의 대치상황이 상당 시간 걸릴 것 같았다. 사람이 죽어가는 속에서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것 같았다. 그 인질범 때문에 나는 사법고시 삼차시험을 치러 갈 상황이 아닌 것이다. 운이 안되는 놈은 어쩔 수 없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공허가 순간 밀려왔다. 그 몇 년 전 삼차시험에서 두 번을 떨어지고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몸을 날려 죽은 대학 동기가 있었다. 대학 사학년 무렵 일차시험에 계속해서 떨어진 친구가 빈 하숙방에서 목을 매달고 죽은 일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고시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우도 결국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당시 인천에서 면접을 보는 중앙청으로 가려면 한 시간 이상 차를 달려야 했다. 인질범의 대치는 끝이 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희부윰하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계가 오전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울까지 갈 시간을 계산하면 시험에 응시하기는 불가능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둠침침한 까페에 있던 인질범이 갑자기 총을 밖으로 던지고 항복하고 나왔다. 헌병들이 그를 체포해 가고 상황이 종료됐다.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군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고 간신히 사법고시 삼차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합격했다. 상위 십퍼센트 이내에 든 좋은 성적이었다. 하늘에 계신 그분의 선물인 것 같았다. 좋은 일에는 마귀가 낀다는 말이 있다. 삶의 곳곳에 가시덤불과 지뢰가 깔려 있었다. 시기와 질투를 하는 장교 상관들에 의해 나는 사법연수원을 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방해 속에서 정말 힘들게 제대를 하고 연수원을 마쳤다. 인생이 한번 꼬이면 그 여파가 계속 갔다. 관료주의에서 아무리 우수해도 한번 진급이나 임관의 기회를 놓치면 패자부활전이 용납되지 않는 인생이었다. 우수한 성적이었던 나는 꼴등에 가깝게 취급되고 임관이 불가능했다. 같은 해 합격을 했던 홍준표씨나 추미애는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했던 엷은 인연이 있다. 그들은 검사와 판사를 하고 장관 당 대표, 대통령 후보를 하는 사회적으로 화려한 길을 걷게 된다. 그걸 보고 마음 한편으로 부러워 한 적도 있었다. 나는 뒷골목의 개인 변호사로 중장년의 강을 흘러와 노년의 산기슭에 다다랐다. 요즈음은 내 삶에서 마주쳤던 가시덤불에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그 가시와 채찍들은 그분이 나를 몰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덕분에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성경을 읽고 문학을 하게 됐다. 나 같은 놈은 검사나 판사가 되었더라면 공명심과 출세욕에 실수를 하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했을게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내게 헛된 욕망을 버리게 하고 겸손을 선물로 주셨다. 전관예우가 없는 변호사는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시간을 벌었다. 내가 번 시간을 써서 십오년동안 세계를 흘렀다. 평택에서 엘엔지선을 얻어 타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지난 동지나해의 밤바다의 별을 봤다. 싱가폴에서 이태리 배를 갈아타고 인도양과 홍해를 건너 베네치아까지 갔다. 세계의 바다를 흐르고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고 히말라야 계곡 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그분은 내게 잠시 들렸다 가는 원색의 화려한 세계인 지구별을 구경하게 했다. 돌이켜 보면 그분이 설치한 가시덤불이 내게는 사랑이었고 은혜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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