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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옹 이야기(5)

운영자 2021.02.15 10: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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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옹 이야기(5)




지금 생각하면 생존해 있던 김상돈옹으로부터 들은 여러 가지 얘기는 정말 듣기 힘든 귀중한 내용들이다. 일본이 천구백 삼십년대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 시절 지금의 서울인 경성의 모습과 조선인 부자들의 모습은 역사책에서 강요당하는 암울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자료를 통해 본 당시의 광경은 이랬다.



경성은 건축붐이 일어났다. 종로네거리와 광화문에 빌딩이 섰다. 조선인 부동산 재벌이 나오고 그들은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 오오사카등지에 있는 호텔을 시찰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박흥식은 경성에서 최고층 기염을 토했다. 효자동 근김상처에는 조선최초의 데파트가 준비중에 있었다. 경성거리가 달라지고 있었다. 뉴욕이나 파리에서 유행하는 것이 동경과 거의 동시에 경성에 퍼졌다. 극장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종로에는 우미관, 단성사, 조선극장이 조선인 관객을 놓고 삼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의 명동, 을지로쪽으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남촌에는 황금관, 대정관같은 극장들이 일본인 관객들을 끌고 있었다. 극장들이 관객을 조선인 일본인 따로 받은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설명하는 변사들이 조선인과 일본인으로 나뉘어지면서 자연스레 관객도 갈라졌다. 당시 조선민중에게 불을 당긴 영화는 프랑스영화 ‘몽파리’였다. 프랑스 영화 ‘몽파리’에 대해 1930년4월2일자 조선일보와 그에 관련된 기사들은 이런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불란서 영화 몽파리의 세례를 받은 청춘남녀는 모든 것에 있어서 최첨단이어야 한다는 이 1930년이다. 이땅 경성의 청춘남녀의 옷차림이나 걸음거리는 확실히 영화 몽파리에 나오는 그것이다. 거미줄보다도 더 설핏한 옷사이로 움직이는 모던 걸의 몸뚱아리 그 여자들은 큰 길거리를 그런 벌거벗은 몸으로 쏘다닌다.’

경성거리는 숱한 모던보이와 모던걸로 넘쳐났다. 서양의 음악이 들어와 대중화 되면서 경성거리는 댄스가 유행했다. 생활이 넉넉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저마다 재즈나 블루스 혹은 왈츠의 춤바람에 빠져들기도 했다. 총독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해 팔리는 레코드가 120만장이었다. 그중 40만장은 조선의 소리판이었다. 식민지 경성의 레코드업계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영화산업도 발달하고 있었다. 1935년 만들어진 영화 춘향전이나 이어서 제작된 ‘은하에 흐르는 정열’등이 흥행에 성공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성은 하루가 다르게 상업중심의 근대도시로 탈바꿈해 가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아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여성인 김옥교는 당시 화폐 60만원(현재가격 720억원)을 투자해서 순조선풍의 호텔을 신축했다. 당시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인 김옥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변변히 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미모가 뛰어난 그녀는 기생의 길에 들었다. 그녀가 인사동에 차린 ‘천향원’이라는 조선요리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녀는 성북동에 별장을 짓고 마침내 시내 한복판에다 대형호텔을 지었다. 점차 자본주의하에서의 신분계층으로 사회가 바뀌고 있었다. 여기에 신흥부자가 더 생기게 한 게 금광열풍이다. 갑자기 금값이 폭등하자 조선전체는 금광열풍이 불어 닥쳤다. 금광부자로 탄생한 것이 최창학이라는 인물이었다. 평안북도 일대의 금광을 전전하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청년 최창학은 백여명의 금전꾼과 어울려 얻은 조악동의 광산에 운명을 걸었다. 그 광산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젊음과 재산을 빼앗아 버린 폐광이었다. 박쥐집이 된 폐광은 지하수가 벽을 따라 흘러내리고 썩은 갱목에서는 버섯이 돋아나고 있었다. 백여명이 망치질을 하는 속에 끼어 최창학도 하루종일 망치를 휘둘렀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금은 나오지 않았다. 오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백명한테서 나던 망치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금을 찾는 사람들이 백명에서 스무명 열 명 세 명으로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최창학 한명만 남았다. 홀로 남겨진 그는 매일같이 바위만 내려치고 있었다.어느날 아침 ‘툭툭툭 쨍’ 조악동 돌산에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선 최대의 금맥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조선인 백만장자가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경성거리를 다니던 부자들의 고급차는 세단형인 포드나 시보레였다. 최창학은 미국에서 리무진을 수입해서 종로거리를 타고 다녔다. 그의 리무진은 조선최초로 히터와 방탄유리가 장착된 차였다.마흔아홉살의 그는 이화여전을 나온 스물네살의 여성과 조선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소유한 현금은 웬만한 은행의 총자산보다 많았기 때문에 그는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한성은행등에 분할해서 예치했다. 그는 경성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방이 되고 귀국한 김구선생의 숙소가 그의 주택이었다.



그 시절 신흥부자인 박흥식은 평남 용강사람으로 간신히 평강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열여섯살 무렵 용강읍에서 쌀장사를 했다. 그가 스물 네살이 되던 해에 경성으로 올라와 지금의 을지로 이가인 황금정 이목에 종이도매상인 ‘선일지물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선일이란 조선에서 일등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박흥식은 명함을 들고 지물포를 찾아다니면서 호소했다. 한 푼이라도 값싸게 사들여서 한 푼이라도 값싸게 판다는 경영철학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경성 시내 종이 소매점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게 됐다. 일본인 도매상들의 견제가 들어왔다. 박흥식이 종이를 주문해도 재고가 달린다며 주지 않았다. 수입상에게 자금공세를 펼치는 방법으로 박흥식이 종이를 받지 못하도록 숨통을 조였다. 박흥식은 종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일본의 생산업체인 ‘왕자제지’를 찾아가 담판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문전박대를 받았다. 그는 일본의 여관에 머물다가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종이생산국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동경의 한복판에 있는 스웨덴 영사관을 찾아갔다. 거기서 일본의 왕자제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스웨덴으로부터 양지를 직접 수입하는데 성공했다. 산넘어 산이었다. 이번에는 관공서, 회사, 은행등은 물론 일본인 지물상점조차 서로 결탁해서 박흥식의 종이를 사가지 않았다. 이때 그가 찾아가 사정한 사람이 경성방직의 김연수사장이었다. 김연수는 동아일보의 대주주였다. 동아일보에서 필요한 종이를 박흥식에게서 구입하기로 했다. 박흥식으로 보면 절명의 순간 구세주가 김연수였다. 그 무렵 경성에 미쓰코시백화점이 들어섰다. 르네상스식으로 지은 삼층 건물이었다.북촌의 고관대작들이나 돈많은 부호가 미쓰코시백화점에 드나들었다. 박흥식이 조선인들의 거리인 종로통에 르네상스식 대형 건물을 지어 올렸다. 미스코시백화점에 대응하는 조선인의 화신백화점을 만든 것이다. 그는 그 안에 직물부를 설치해 김연수회장의 경성방직 제품들을 판매했다. 식민지 조선을 연구한 미국학자 에거트는 박흥식은 창조적이고 공격적인 천부적인 기업가라고 평가했다.

박흥식의 야망과 정신은 대부분 헝그리정신의 산물이었고 그의 기업에는 영리하나 가난한 스무살 청년의 굶주림과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하고 있다. 일본 자본주의에서 탄생한 청년부자 박흥식은 식민지가 되기 전 조선왕조에 대한 품을 수 없다고 했다. 조선왕조가 박흥식에게 양지바른 자리를 주지 않은 것과는 달리 식민지체제는 영리하고 유능한 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재계의 대표격인 경성방직의 김연수는 순수 기업인을 중심으로 하는 인적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갑부인 조선인들의 자본을 끌어들였다. 이사로 새로 참여한 민병수는 조선왕조말 세도가였던 민씨 일족의 대표인 민영휘의 아들이었다. 민영휘는 한일은행을 인수하여 은행가로 있었다.

또 다른 이사 현준호는 영암의 대지주 출신으로 호남은행을 창립하고 동아고무공업, 영암운수창고, 조선생명보험등 여러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 반면 새로 이사가 된 박흥식과 최창학은 차별받는 서북인 출신이고 특히 최창학은 하층 빈농출신이었다. 당시의 일반적 관념으로 그들은 부자가 됐다고 해도 함께 모여 일을 함께 할 사이는 아니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그들이 함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업을 함께 도모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신분과 핏줄에 따라 분단되어 있던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대신에 재산을 축으로 한 새로운 사회가 도래했음을 의미했다. 이런 이사진의 구성은 일제하의 조선사회가 바야흐로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사회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경영자의 대표인 김연수 회장의 아들이 김상돈 옹이었다. 그는 경리책임자로 평생 회장인 아버지를 보좌했었다. 내가 김상돈옹에게 물었다.

“금광왕이었던 부자 최창학씨를 직접 본 적이 있으세요?”

“한번은 사업차 아버지와 그분이 일본으로 가는데 내가 따라간 적이 있어요. 그때는 내가 경복중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최창학씨 그양반 뚱뚱한 사람이 완전히 호걸풍이더라구요. 일본으로 가는데 커다란 트렁크에 돼지고기를 가득 담아가는 거예요. 돼지고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일본에 가서 그걸로 스키야키를 만들었는데 맛있게 얻어먹었죠.”

“아버지와 박흥식씨와의 관계는 어땠어요?”

“화신백화점 포목부에서 우리 경성방직의 직물들을 많이 팔아줬어요. 그 점에서 우리회사가 신세를 많이 진 거죠. 박흥식씨는 아버지를 많이 따랐고 우리 집에도 몇 번 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박흥식씨 같이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을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김상돈 옹은 잠시 침묵했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이렇게 말했다.

“참 박흥식씨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어요. 한번은 박흥식씨가 우리 아버지보고 창씨개명을 할 거냐고 묻더라구요. 아버지가 안하겠다고 하니까 ‘그러면 나도 창씨개명을 하지 말아야 겠네’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양반 해방후 친일파 일호로 몰리더니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마지막에 보니까 단칸방에서 설렁탕 한 그릇 제대로 사먹을 돈도 없더라구요. 그 부자가 말이죠.”

그들은 저주받을 친일파로 역사책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날아오는 돌을 맞고 있다. 얼마전 구한말의 역사 드라마 속에서 나오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었소? 조선에서 백정은 또 인간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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