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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검은 소

운영자 2021.04.05 1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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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검은 소




구십년대 초 중국 서안에 있는 한 동물원에서 본 끔찍한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호랑이들이 있는 넓은 우리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높은 육교가 있고 그곳에서 관람객들이 보게 되어 있었다. 그 동물원은 특이했다. 호랑이의 야성을 키우기 위해 이따금씩 살아있는 황소 한 마리를 호랑이 우리 안에 넣는다는 것이다. 호랑이들이 살아있는 황소를 잡아 뜯어먹는 장면을 관광객들에게 보게 하는 것이다. 뿔이 앞으로 나 있는 건강한 소 한 마리가 우리에 넣어졌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듯 소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이 충혈된 눈 속에 가득한 게 느껴졌다. 소는 어쩔 줄을 모르고 그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이미 제 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호랑이 두 마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 중 한 마리가 방향감각을 잃고 날 뛰는 소의 등에 펄쩍 뛰어올라 양쪽 발톱으로 허리를 꽉 잡았다. 잔뜩 겁을 먹어 정신이 없던 소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랑이는 살아있는 소의 등에 난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길다란 혀로 핥고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지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것 같이 허겁지겁 잡은 동물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소는 그냥 엎드려서 가만히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공포와 불안으로 새빨갛던 소의 눈빛이 변한 것 같았다. 그 눈에서 이상한 푸른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를 흘리던 소가 등에 타고 있던 호랑이를 뿌리치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호랑이 쪽을 향해 버티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날카로운 뿔을 조준했다. 이미 소의 눈에서 공포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호랑이가 움찔하는 표정이었다. 소가 발굽으로 땅을 헤집더니 서서히 호랑이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다급하게 그곳에 나 있는 나무 뒤로 몸을 피했다. 소는 호랑이를 쫓고 호랑이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모습이었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그때 다른 호랑이가 나타나 소의 꼬리를 물어 움직이지 못하게 협공을 했다. 소는 두 마리의 호랑이를 상대로 목숨을 건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등에 난 처음에 물어뜯긴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잔인한 동물 학대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광경에서 엄청난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무리 강적이 나타나도 두려움을 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덤비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적이 아니라 두려움이 먼저 소를 집어 삼켰다. 중학교 시절 보았단 한국문학전집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아이가 놀다가 집근처 토굴속에 죽어있는 병사의 시체를 보았다. 공포에 질인 그 아이는 다시는 그 굴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동네 골목대장인 아이가 겁먹은 그 아이를 끌고 토굴 속으로 갔다. 싫다고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골목대장은 눈을 뜨고 토굴안 광경을 똑바로 보게 했다. 그 순간 끌려간 아이의 공포가 안개같이 걷혔다. 두려움이란 피하면 커지고 마주 서면 없어지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주먹 싸움을 하고 다니던 한 폭력조직의 두목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권투나 태권도 같은 운동을 많이 하고 근육이 강한 사람이 싸움을 잘 하는 게 아니예요. 분노가 강한 사람이 더 싸움을 잘 해요. 그리고 분노보다 더 싸움을 잘하게 하는 요소가 있어요. 살기가 싫은 사람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어요.”

그 조폭의 두목은 내 또래였다. 내가 다시 물어보았다.

“저는 변호사고 싸움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저 사람하고 같이 죽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제가 당신한테 덤빈다면 어떻겠어요? 살자니 문제지 맞아 죽을 각오를 하면 덤빌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저는 질 겁니다.”

그의 대답이었다. 예수도 두려움에 떨었다. 죽음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했다. 양팔을 벌리고 사형대인 십자가 위에 올랐다. 그 위에서 예수는 하나님 저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고 이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하고 숨을 거두었다. 인간과 하나님의 모습이 겹쳐져 있다. 십자가의 예수는 오늘도 내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각오하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게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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