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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평민의식

운영자 2024.02.19 10:03:37
조회 116 추천 2 댓글 0

화면 속에서 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이 보였다. 이십여명의 국회의원들이 준엄한 심판관 같이 앉아 있고 그들의 앞에 김문수위원장이 재판을 받는 사람 같이 앉아 있었다. 볼이 홀쭉하고 깡마른 체구였다. 김문수위원장이 거기 참석한 운동권 출신 한 국회의원에 대해 다른 곳에서 한 말이 문제가 된 것 같다. 그 국회의원을 김일성주의를 따르는 종북좌파라고 했다는 것이다. 먼저 사과를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대상이 된 국회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국민대표로 국정감사장에 앉아 있는 자신이 어떻게 그런 김일성 주의자인 종북좌파일 수 있느냐고 호소했다. 그 당의 국회의원이 김문수위원장에게 물었다.

“국정감사장에 앉아 있는 저 의원이 지금도 김일성주의를 따르는 종북좌파라고 생각합니까?”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질문을 받는 그가 참 난감할 것 같았다. 특정인을 ‘빨갱이’라고 해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였다. 그의 말은 그 정도 수위인 것 같았다. 새끼라는 쌍욕보다 우리 사회에서 더 강한 말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 지 호기심이 일었다.

공개사과하고 말을 거두어 들일지 아니면 변명을 할지 궁금했다. 침묵하고 있는 김문수씨의 작은 눈이 반짝거렸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전에 제가 말했듯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정감사장에 나와 그를 쳐다보고 있는 국회의원이 김일성주의를 따르는 종북좌파라는 걸 그 면전에서 다시 확인시켜주는 말이었다. 국정감사장이 들끓고 고성이 오갔다. 김문수위원장이 자료를 들고 걸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다른 방송에서 그가 했던 이런 한마디가 나의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정치는 자기를 희생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감옥에 갔다오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야 합니다. 돈을 얻거나 권력을 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저는 국회의원을 세번하고 도지사를 했어도 남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김문수씨의 태도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큰 그릇이라는 생각이다.


어젯밤 JTBC방송에서 ‘아침이슬’이란 노래를 만든 김민기씨의 인터뷰를 우연히 봤다. 그를 보면서 나의 기억이 짙은 청록색 안개 저편의 열여덟살 소년으로 되돌아갔다. 어둠침침하고 추운 독서실의 딱딱한 책상 앞에서 나는 양철 도시락에 담긴 딱딱하게 굳은 밥을 점심으로 먹고 잠시 쉬고 있었다. 벽 위에 있는 작은 창의 깨진 유리틈으로 서늘한 바람같은 노래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그 노래는 나의 공허한 마음을 빨간 노을로 물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묘지라는 가사 내용은 나의 힘든 일상이나 짓물린 시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할까. 강한 멜로디가 굽이치는 물결처럼 내 마음에 들어와 솟구치며 포말을 일으키는 것 같았었다.


사회자인 손석희씨가 김민기씨에게 묻는다.

“그 노래는 유신 시절 금지곡이었는데 어떻게 작곡하게 됐습니까?”

사회자는 그가 독재시대 민주화영웅임을 부각시켜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서울 변두리에 있는 창고방 같은 데서 작업을 했어요. 방 앞에 연탄아궁이가 있던 초라한 곳이죠. 거기서 그림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노래를 만들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했죠. 그 방의 작은 유리창을 통해 보면 뒷산에 묘지가 몇 개 있었어요. 그 묘지 위로 해가 뜨는 걸 보고 노랫말을 만들었죠.”

그는 영웅의 자리를 손을 저으면서 사양하고 평민의 자리로 내려오는 모습 같았다. 공명심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침묵으로 은근히 칭찬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는 정면으로 그런 자리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일부러 꾸민 위선도 아니었다. 사회자인 손석희씨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인생의 노년을 어떻게 보내실 계획이십니까?”

“그냥 평범한 늙은이로 사는 거죠. 뭐.”

그는 위대한 평민인 것 같았다. 살아보면 이 사회의 곳곳에 ‘사람다운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의 나침반이 되어 주고 빛과 소금 역할을 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들은 양떼를 이끄는 목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냥 맨 앞에서 길을 찾아가는 모범이 되는 양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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