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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지?

운영자 2024.02.26 11:02:31
조회 130 추천 1 댓글 0

동해에서 서울로 올라와 친구 두 명을 찻집으로 불러냈다. 약속을 하지 않고 아무 때나 불쑥 전화를 걸면 반갑게 만난다. 만나면 허물없이 무슨 얘기라도 하고 서로서로 잘 들어준다. 나는 그런 관계가 친구라는 생각이다.

찻집의 비가 내리는 창가에서 세 명이 모여 소년 시절 같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지내냐?”

내가 두 명에게 물었다.

“나는 주민센터에 가서 요가와 중국어를 배우고 점심을 사 먹는데 값이 싸. 사천원이면 해결이 돼. 그리고 요즈음은 아일랜드 피리를 배우고 있어. 음색이 아주 깊어.”

그는 우리들의 학생 시절 같이 기초 중국어 교본을 배낭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나이을 먹어도 악기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건 성장하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이어서 다른 친구가 자신의 근황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갑자기 나무가 좋아지는 거야. 그래서 천리포수목원부터 시작해서 수목원들을 돌아다녀 봤어. 몇십년전 부터 땅을 사서 수천 그루의 나무들을 심고 그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물주고 비료 주고 키우는 과정을 꼼꼼하게 공책에 기록해 놓았더라구. ‘가드너’라는 직업이 훌륭하고 보람있는 걸 이제야 알았어. 내가 나무를 좋아하고 정원을 좋아하는 걸 칠십이 넘은 이제야 안 것 같아. 늙었지만 나무를 심어야겠어.”


두 친구는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젊어서는 긴장하며 살고 있었다. 행동할 때 조직에 누가 될까 봐 항상 조심스럽다고 했었다. 판사같이 말하고 판사같이 행동하느라고 힘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유로워진 이제야 진정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덕담을 나누면서 나는 소년시절부터 정말 뭘 좋아했었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지저귀는 새의 소리를 들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나도 반성해 본다.

내남없이 사람들은 바쁘고 형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음으로 미룬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사정이 여의치않아도 가슴이 시키는 일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방에서 같이 밥을 먹고 공부하면서 일년 가량 지낸 친구가 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치열하게 공부를 할 때였다. 그 친구는 아무리 공부가 바빠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클래식 중고 기타를 사서 하루에 십분 가량씩 연습했다. 틈틈이 소설인 삼국지를 보고 있었다. 그는 공부방식도 특이했다. 학원에 가서 배우지 않고 수학 문제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명상하듯 보고 있었다. 자기 속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기타를 연습하고 일년쯤 흘렀을까. 그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카페에 나와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만한 실력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무난히 서울대 수학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졸업후 학위를 따고 카이스트에서 수학교수로 평생 있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뒤늦게야 소년 시절 그의 용기와 지혜를 깨달았다. 그의 방법을 본받아 사십대 무렵 나는 하루에 일본어 한 단어씩 익혀 보기로 했다. 단어 하나를 보는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십년가량 해보았다. 일본어 성경이 읽어지고 여행을 가서도 길거리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조각 시간의 위력인 것 같았다.

살아보면 정말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뭔지를 발견하는 게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가 아닐까.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사교를 위해서 골프를 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골프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사귐을 만들지 못했는지 몰라도 아쉬움이 없다.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밧데리 같이 내 몸에 남아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 핸드폰의 밧데리가 마지막 한 칸 정도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 작은 인생의 여백을 나는 밀도있게 살고 싶다. 인생의 군더더기를 빼고 내게 정말 중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조금씩 꾸준히 한다면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지저귀는 새의 소리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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