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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주의

운영자 2022.01.24 10: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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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주의




며칠 전 평생 장애를 가진 친구가 내게 놀러와서 하루를 자고 갔다. 그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다리를 절었다. 같이 음식점을 갔는데 한 두개의 계단도 힘겨워보였다. 늦은 밤 이런저런 얘기 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는 안 그랬는데 나이 칠십이 되니까 걸으면 한쪽다리가 삐걱거리고 아주 고통스러워. 조금만 있으면 못 걸을 것 같아.”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가 갑자기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말을 계속했다.

“유튜브에서 며칠 전 밤 서울 의대교수출신이 죽음학을 강의하는 걸 들었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체험을 했다는 거야. 그런 임사체험은 현대의학에서 이제 인정한다는 거야. 그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죽는 순간 모든 게 보이더라는 거야. 처음으로 파란 하늘에 하얀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고 멀리 아래 짙푸른 녹색의 숲이 보이더래. 껍데기인 불완전한 육신을 벗으니까 보이더라는 거야. 나 같이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산 사람도 이 몸을 벗어나면 달라진다는 거야.”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바다를 보는 해변가로 간 소년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평생 소아마비라 그런지 꿈 속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녀. 그런데 아주 드물게 내가 정상적인 다리가 되어 산을 걸어 오르거나 아니면 날아다닐 때가 있었어. 그럴 때면 꿈을 깨고도 너무 기분이 좋은 거야.”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를 깨닫는다.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 나도 한마디 거든다.

“너는 한쪽 다리를 못 쓰지만 나는 지금 한쪽 눈이 녹내장으로 보이지 않아. 높낮이 구별이 잘 안되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지막에 엎어지기도 하고 돌이 많은 산길을 못걸어. 내게는 젊은 날 두 눈이 잘 보이던 시절이 너무 그리워. 주위에서는 나이가 먹으니까 귀가 안 들리는 친구도 있고 말이야. 이제는 너만 장애가 아니라 모두 장애를 가지게 되고 평등하게 되어가는 거야.”

그가 기분이 좋은 듯 싱글싱글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죽으면 평생 불구였던 이 몸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까 요즈음은 전혀 죽음이 두렵지 않아. 오히려 기다려지는 거야.”

몸은 장애로 불편하지만 그 친구는 위에 있는 그 분에게 시선이 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힘들게 살아온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을 보고 있다. 대학 동창인 그는 자신을 비관해서 방에 박혀있지 않고 그 다리를 이끌고 항상 햇볕이 밝은 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자기의 몸을 불구로 만든 사람을 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사무실로 데리고 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독한 수행과 기도를 한 사람이라고 했다.

“거세까지 하셨다면서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많은 수도자들이 여자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저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타고난 목사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잘하기 위한 책만 봤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집트 시내산에 올라가 사십일 금식기도를 세 번이나 올렸습니다. 거기서 기도하다가 삼십대 남자를 봤어요. 그 남자가 저에게 큰 교회를 주겠다고 했어요.”

믿음이란 뭘까? 수행보다는 신앙이아닐까? 자기 이외의 존재를 믿고 바라면서 그 분이 목표로 정해준 예수를 바라보면서 정결해지고 그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자기의식이 너무 강하면 그건 오히려 해독이 된다는 생각이다.

카알라일은 그런 걸 ‘배꼽주의’라고 했다. 자기 배꼽을 응시해 봤자 사람은 좁아지기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금식을 못하는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독한 고행을 부러워하거나 기적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 땅에 집착하면서 과거에 연연하고 인생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급한 사회개선이나 제도의 완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도움을 하늘에서 바란다. 땅에서 찾지 않는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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