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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을 만드는 비결

운영자 2022.02.03 10: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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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을 만드는 비결




삼십대 중반 무렵 일본에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일본 정부기관의 간부들을 만나 자료를 얻고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공식적인 거창한 회의가 아니라 실무적인 방문이었다.

나는 그 출장에서 큰 걸 얻었다. 작고 소박한 방이지만 하얀 테이블보가 깔끔하게 깔린 탁자 위에는 한국과 일본의 작은 국기가 서로 고개를 숙인 듯 엇갈리게 놓여있었다. 독특한 메시지를 주는 느낌이었다. 일본 내각의 담당 공무원이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면서 나를 맞았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정쩡하게 같이 고개를 숙였지만 버릇이 안되서 허리가 제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서양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악수를 하는 걸 보아 왔지만 손을 내미는 것도 어색한 것 같았다. 나의 태도는 엉거주춤했다. 탁자에 두 명씩 마주 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내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대답했다. 몇 마디 대답을 듣다가 가슴 속으로 잔잔한 감동의 파장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본 공무원의 태도가 겸손하면서도 진지했다. 말 한마디에도 진정성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을 살폈다. 서양인처럼 자연스럽게 미소짓는 게 아니라 담담하고 조용한 얼굴이었다.

대답을 하는 그의 태도에도 관심이 갔다. 그는 나의 질문에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한 후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또박또박 했다. 그가 하는 일본어는 품위와 깊이가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일본어를 배운다면 기존의 어학테이프보다 그의 어조를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일본어에서는 자기 정체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식어나 형식적인 답변이 없는 그의 말에서 나는 진정성을 느꼈다. 그는 회의가 끝나고 복도를 따라와 엘리베이터까지 나를 배웅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음과 인격의 향기가 담겨져 있는 걸 나는 느꼈다. 잠시 사무적으로 만난 일본 공무원이지만 나는 예의가 어떤 것인지를 선물 받은 것 같았다. 가짜 예의는 비굴함이나 상업적 미소일 수 있지만 진짜예의는 그와는 다른 어떤 알맹이가 있었다. 예의란 무엇일까? 예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부부라도 예의 없이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예의는 좋은 관계를 오래오래 지속하는 필수조건이다. 나는 그날 정말 큰 걸 배웠다. 누구를 만나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먼저 고개를 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게 막상 잘되지 않았다.

좀 색다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탄현에 있는 촬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수많은 세트들이 있고 탈랜트들이 그 곳에서 각자 자기가 배역을 맡은 작품을 녹화하는 것 같았다. 세트장의 한 골목길 앞에서 한 원로 탈랜트가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원로 탈랜트였다. 사극에서 보면 그의 카리스마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반갑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그가 목에 힘을 주고 다른 곳을 보면서 머리를 까딱했다. 그건 인사받는 태도가 아니라고 느꼈다. 나를 무시하면서 자기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내가 그곳에 촬영하러 온 단역이나 조역 배우쯤으로 인식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인기 탈랜트의 발가벗은 실체의 일부를 들여다 본 것 같았다. 모두가 스텝들까지 보살피고 따뜻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면 자기에게 굽실거린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회를 봤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에게서 겸손과 예의를 볼 수 없었다.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빈 깡통’이라고 하면서 모욕을 주면 모두들 웃고 떠들었다. 여럿앞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어 웃게 하면 당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가 남기 마련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한 사람은 방송에 인터뷰를 하러 나가서 사회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왜 당신은 아직도 목이 잘리지 않고 이렇게 방송합니까?”

우파시장 아래의 좌파방송인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건 대놓고 주먹질을 하는 것보다 더한 폭력이었다. 주먹은 멍들게 하지만 혀는 상대방의 뼈를 깍는다. 그 대통령 후보가 또 다른 시사방송에서 다른 패널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어떻게 말은 그렇게 반지르르하게 합니까?”

그가 대통령이 되면 저항하는 국민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할까 의문이었다. 여당의 또 다른 후보가 형수를 향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험한 욕을 하는 걸 인터넷을 통해 듣기도 했다. 예의가 실종된 시대다. 국민들도 대통령을 그냥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한다. 그런 속에서 어떻게 좋은 사회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예의는 인간에 대한 존경이다. 경건의 표현이다. 예수는 제자의 발을 직접 씻겼다.

예의를 벗어나서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예의의 정신이다. 참된 겸손이 없는 곳에는 예의도 없다. 그런 것들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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