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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남자

운영자 2023.05.15 10:25:48
조회 94 추천 1 댓글 0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던 날 그가 나를 찾아왔다. 거의 노숙자에 가까운 피폐한 모습이었다. 한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재벌그룹 기획실에 근무한다고 했다. 빈틈이 없고 똑똑했다. 예의도 바르고 부드러운 편이었다. 물건으로 치면 최상급으로 평가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보명 유리같이 투명한 정직과 결백성이 느껴졌다. 그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온 것이다. 그가 바로 솔직히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집에서도 쫓겨났구요. 그리고 아파트도 퇴직금도 전부 압류당했습니다.”

“왜요?”

“바람을 펴서 그랬습니다.”

“바람이요?”

“그렇습니다. 나이 먹고 엉뚱한 로맨스를 하는 바람에 모든 걸 잃게 됐습니다. 바람을 핀 여자가 임신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바람둥이라면 그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처음 도둑질한 놈이 밤이 새는 걸 모르듯 제가 그랬습니다. 바람 한번 피고 인생의 모든 걸 잃었습니다.”

그는 임원승진을 앞두고 홍콩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 중국계 회사와 거래를 트고 실적을 올려야 했다. 접대로 중국회사 간부의 뼈까지 녹여야 했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그 회사 회장의 여비서를 포섭해 둘 필요도 있었다. 그가 중국회사 회장의 여비서에게 선물도 하고 친절하게 하니까 상대방도 마음 문을 금세 열었다. 둘은 어느새 호텔에서 만나는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렸다. 한편으로 달콤하고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청교도적인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근무하는 회사에서 추파를 던지는 미녀들을 보면서도 눈길 한번 안 주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여자 문제로 고민하는 동료가 있으면 선비 같은 태도로 질타를 하기도 했었다. 그가 거래회사 간부를 접대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내가 와이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발견하고 따졌다. 아버지가 교회 장로인 아내는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접대업무를 하다 보면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술집에 간 거 가지고 그러냐?”

그는 속에 비밀을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에서 실적을 올려야 해.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자구. 내가 당신한테 한 번이라도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이거나 한 적이 있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필요하면 정식으로 젊은 여자와 사귈 수도 있어.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런 상황이라구.”

그는 말하지 말 것을 뱉어 버렸다. 그 말은 불에 휘발유를 붓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아내는 그걸 참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내의 감시가 뒤따랐다. 아내는 삼십분 간격으로 사무실로 전화했다. 집에 들어오면 침실문이 잠겨 있었다.

아내는 전 재산을 넘겨 준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는 아내를 달래기 위해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얼마 후 서울의 본사에 소환됐다. 인사 담당이사는 그에게 사표를 쓰라고 했다. 아내가 그의 불륜을 회사에 통보하고 귀국시켜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해를 하지만 그렇게 공론화되면 회사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표를 썼다. 아내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들 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쌍욕을 했다. 직장을 잃은 그에게 아내는 매일 삼천원을 주었다. 그 돈으로는 지하철을 타기도 힘들었다. 아내는 빨래는 물론이고 밥도 해주지 않았다. 그가 퇴직금을 타기 위해 회사 경리부로 갔을 때였다. 그의 퇴직금이 아내에 의해 이미 가압류되어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아파트도 가압류가 되어 있었다. 그 아내의 배신감은 극에 달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예전으로만 환원시킬 수 있다면 평생 공처가 노릇을 각오하겠습니다. 집사람은 성격이 너무 강합니다. 폭발하는 성격이라 자기도 순간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나는 그저 죽은 듯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도 냉철히 생각하면 아이도 있고 이제 여자로서 나이도 있으니까 그냥 한 번 눈감아 주고 살겠다는 계산을 왜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자신의 성질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의 아내가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장이 기록을 들추면서 원고인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이혼은 하지 않고 재산은 전부 뺏겠다는 취지입니까?”

“그렇습니다. 이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재판장이 나와 같이 온 그에게 물었다.

“남편인 피고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어떻게 되십니까?”

“회사 다닐 때는 이것저것 혜택도 주고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표를 내고 그 조직원의 자리를 떠나는 마당이니까 새삼 인색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삼십평짜리 작은 아파트 한 채와 오천만원 가량되는 퇴직금이 저의 이십년 청춘의 모든 겁니다. 그나마 저 같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잘 나간다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재판장은 화해를 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도 아내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그는 용서받지 못했다. 모든 재산을 건네주고 집을 나왔다. 그 후 그의 아내가 보험모집원을 하는 걸 보고 중소기업체에 다시 취직한 그는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꼬박 보내주는 걸 보고 그가 괜찮은 사람이 맞는 걸 확인했었다. 그 이전에는 그래도 뭔가 아내의 증오를 폭발하게 한 원인이 있겠지 하고 의심도 했었다.

불륜은 드라마의 달콤새콤한 단골 소재다. 불륜은 로맨스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변호사로 그 현장을 보면 어처구니 없이 씁쓸한 결과가 되는 현실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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