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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성자가 된 도둑

운영자 2024.05.27 10:41:34
조회 66 추천 0 댓글 0

삼십년전 우리 가족은 분당 야탑역 옆의 다가구 주택인 나의 집에서 한 달 가량 대도와 같이 살았었다. 사람들은 전혀 다른 그와 내가 어떻게 동거를 했는지 의아해 한다. 솔직히 말해서 힘들었다. 그는 밖에서 돌아오면 옷을 벗어 소파 여기저기에 던져놓기도 했다. 아내가 질색을 했다. 그는 속옷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새벽에 우리 부부가 자는 방으로 불쑥 들어와 침대 가운데 털썩 주저앉아 가족회의를 하자고 하기도 했다.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고아로 거지생활을 하면서 자라 배우지를 못한 것 같았다. 같이 외출해서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매너가 없었다.


몰라서 그런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하나하나 가르쳤다.

“먹물 세계가 뭐가 그렇게 복잡해? 하여튼 알았어요.”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걸레로 집을 깨끗이 닦고 밖에 나가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이런 말을 했었다.

“여기 야탑동에서 한 삼십분 뛰니까 분당 중심가가 나오더라구요.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면서 구경했어요”

“골목 구경하다가 혹시 훌쩍 남의 집 담을 뛰어넘는건 아니겠죠? 그러면 변호한 나는 망하는 건데”

내가 농담하듯 말했다.

“에이, 무슨 말씀을--”

그가 픽 웃었다.

그는 옆방에서 늦잠을 자는 아들에게 사람이 부지런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기도 하고 아내의 무거운 짐도 들어주었다. 그는 조금씩 세상을 배워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낮은 데로 내려가 믿음을 가진 땀 흘리는 성실한 노동자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게 도둑에서 변화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았다.


한번은 외출했다가 저녁에 돌아온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나를 수사했던 정홍원 검사장이 불러서 갔더니 앞으로 잘 살라고 하면서 백만원짜리 수표를 주더라구요. 그 돈을 받으니까 감옥에서 내게 편지를 해 주던 여자집사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그 집사를 만나 내가 받은 수표를 주고 왔어요.”

그는 돈에 대한 관념이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돈 얘가 나온 김에 그를 지켜 보았던 점을 얘기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퇴근 했다. 대도는 서울에서 돌아올 때면 택시를 탔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왜 꼭 택시를 타고다니죠?”

“택시가 훨씬 빠르죠.”

“변호사인 나는 왜 대중교통을 이용할까요? 될 수 있는 한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그러지 않나요?”

“-------”

그는 내 말을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살아온 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그에게 땀과 노동의 가치 그리고 검소하게 사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아직 왕초 기질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들을 마치 왕초가 똘마니를 다루듯 했다. 기자를 만나 십분쯤 지나가면 슬며시 말을 놓으면서 젊은 기자들을 자기 부하같이 다루었다. 한 번은 인터뷰를 하고 간 기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님 대도 교육좀 철저히 시키세요. 그래도 변호사님이 은인인데 변호사님을 동생같이 취급하고 막 얘기하더라구요. 대도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되죠. 단단히 가르치세요.”

그는 아직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세상과 조화하려면 적응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백통씩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 왔다. 범죄계의 후배라고 하면서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도와 결혼하겠다는 장애인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를 하자는 기자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한번은 대도와 함께 탄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대도를 알아보고 환호했다. 싸인이라도 한장 받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대도는 엉뚱한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전국의 교회들로부터 간증요청이 밀어닥쳤다. 그가 몇 번 교회에 나가 말을 했다. 신도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열광했다. 그는 순식간에 이미 성자가 되어 있었다. 부자인 신도들이 그에게 명품 옷들을 선물했다. 그의 홍보 가치를 봤는지 기업가들 중에는 그에게 오피스텔을 제공하고 후원금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머리 속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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