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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변호사 7

운영자 2010.02.11 10:16:12
조회 331 추천 1 댓글 0

   그러게 2주일이 흘렀다. 곧 다음 변론 기일이 열릴 예정이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K목사가 담담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섰다. 소파에 앉은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제가 매형이 일했던 조합에도 가보고 동사무소를 찾아다니면서 천신만고 끝에 조합의 전직 전무라는 사람이 사는 집을 찾아냈습니다. 성남 변두리의허름한 판잣집이더군요. 제가 찾아갔을 때는 저녁 7시 경이었는데 집에 불이 꺼져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걸로 생각하고 그 집 앞에서 네 시간을 서서 기다렸어요. 11시경이 되니까 웬 할머니가 머리에 그릇을 이고 기진맥진해서 그 집으로 들어갑디다. 바로 따라 들어갔지요. 그 집으로 들어가 보니까 글쎄 불기 없는 방 한구석에 바짝 마른 노인 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흰머리가 파뿌리 같이 엉클하고 이빨도 다 빠졌어요. 중풍이라고 합디다. 그리고 들어간 할머니가 부인인데 중풍인 칠십 남편을 집에 그대로 두고 지하철 역 앞에서 김밥을 팔아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 노인이 자기가 조합 전무를 할 때 잘못한 일로 피해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는데 차마 증인으로 나가서 잘못을 말해 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기도해 주고 위로하고 나왔어요. 변호사님. 이것도 제게 시험을 주시는 주님의 뜻인 걸 같아요. 그냥 주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저에게 잘못이 많습니다. 변호사님께 원망하지 않을테니 이대로 제가 전부 지는 것으로 소송을 끝내 주시지요. 제가 잘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누워 있는 노인을 보고서야 목사인 제가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K목사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돌아갔다. 나는 어두워 오는 창문 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증인의 증언만 있으면 재판은 반전되어 승소할 가능성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승부사인 변호사로서는 아까운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중풍이 걸린 칠십 노인을 법정에 나오게 해서 자기가 조합 전무 시절 잘못했음을 추궁하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 늙고 힘없는 노인을..


  나는 마지막이 되는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장이 증인의 출석 여부에 대해 물었다.


  “지금 증인을 찾아냈는데 중풍으로 누워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내어 증언시키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증인신청을 철회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재판에서 할 것이 없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K목사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 주었다.  K목사는

  “저는 이번에 나오는 판결이 주님의 성령이 판사를 통해 저에게 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라고 담다하게 대답했다. 그의 음성 속에는 물 속 같은 조용하고 시원한 기운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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