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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거짓예언자들 (14)-수령님에서 주님으로

운영자 2015.04.29 1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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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에서 주님으로 

  

베두인 텐트에서 그들의 둥그런 밀떡에 소스를 묻혀 아침을 먹고 난 후 이철수 목사와 나는 아랍인 마을로 들어가 낙타를 빌렸다. 아랍인은 우리가 낙타에 익숙하지 않은 걸 알고 여섯 살 짜리 꼬마를 뒤에 함께 태웠다. 어려서부터 낙타와 함께 자란 꼬마는 낙타와 친구같이 익숙한 사이인 것 같았다. 낙타를 타고 마을 입구쪽으로 가는데 포대자루를 짐칸에 실은 소형트럭이 보였다. 그 옆을 낙타가 갑자기 트럭의 짐칸에서 포대자루 하나를 입으로 물어 번쩍 들더니 냅다 길바닥에 패대기쳤다.

“어이구 그 놈 성질 좀 봐. 여물냄새를 맡고 알아 챘네” 

이목사가 말했다. 그 속에 사료가 들어있는 걸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낙타 놈은 가다가 길바닥의 작은 풀이라도 보이면 목을 땅에 내려 길다란 주둥이를 옆으로 비비듯 하면서 이빨로 작은 풀을 뜯었다. 사람을 태우고 간다는 책임의식이 전혀 없었다. 잠시 후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 미디안 광야로 들어섰다. 태양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광야에 놓아기르는 낙타와 그 새끼가 나란히 서서 망연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다.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나무 옆을 지날 때면 갑자기 낙타는 목을 쳐들고 높은 나뭇가지에 붙은 잎을 뜯어먹으려고 정신이 없었다. 제멋대로였다. 그런 때면 미끄럼틀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광야를 걸어가면서 차츰 낙타가 온순해 졌다. 일정한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편해졌다. 힘을 빼고 낙타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방바닥에 앉듯 낙타 등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 위에서 책을 읽어도 될 것 같았다. 실크로드를 다니던 캬라반들은 낙타위에 있는 오랜 시간을 그렇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서로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가는 낙타위에서 이철수 목사가 말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미디안 광야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마흔 살 때 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와서 40년을 양치기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모세는 이 광야에 살면서 대상로가 어딘지 또 물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와 묵은 곳은 이 미디안 광야가 틀림없어요,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 반도 남쪽까지 갔다고 말하죠. 저는 그 견해에 찬성할 수 없어요. 그곳에는 물이 없어요. 광야에서는 샘이 없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존재하기 힘들어요. 이스라엘 군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을 때 몇 년 동안 학자들을 동원해 철저히 시나이 반도 남쪽에서 출애굽의 흔적을 조사한 적이 있죠. 그리고 나서 시나이 반도를 아무 말 없이 되돌려 줬죠.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소리죠. 조상들의 흔적이 있었으면 돌려줬겠습니까? 절대 아니죠. 이 미디안 광야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래 동안 정착해 살던 장소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도 시나이 반도의 남쪽이 아니라 미디안 광야와 홍해 사이에 있는 산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성서 고고학자들이 그런 의견을 논문으로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우리는 광야의 순례길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모스크바 선교 때 얘기를 계속해 주시죠.”

내가 말했다.

“제가 선교사지만 모스크바 대학의 종교철학부에 적을 두고 있으니까 자연히 북한 유학생을 거기서 만났어요. 그 중에서 김일성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물리학박사인 김명세씨가 있었죠. 아버지가 북한 대사관의 일등서기관이고 삼촌이 인민군 공군참모총장이었죠. 김정일이가 직접 유학을 보낸 북한 최고의 인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소련이 무너지는 걸 보고 회의가 든 것 같아요. 그가 유토피아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평양도 결국 무너지지 않나 하는 회의가 들게 된 거죠. 그런 회의에 빠져 매주금요일 열리는 사상학습에도 소홀하고 자아비판도 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이 친구가 공산주의 사상은 알지만 예수의 사상이 뭔지 성령이란 뭔지 너무 궁금해 하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예수고 하나님이예요. 그의 말씀을 공부해야 하고 그의 사진을 보고 엎드려 절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주 만나 집으로 불러서 밥도 먹이고 그랬죠. 제가 복음을 전했죠. 그랬더니 저한테 성경을 받아서 열심히 읽더라구요. 점차 사상학습에도 빠지고 그 사회에서는 찍히는 것 같았습니다. 슬슬 겁을 내기 시작하더라구요. 나보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거예요. 북한 쪽에서 비난 받고 그러다가 뭔가 다급해졌는지 이 친구가 어느 날 저의 집에 왔어요. 그가 믿겠다고 했어요. 제가 이제는 예수의 사람이 되라고 하고 안수기도를 했죠.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철저히 사상에 물들었던 사람에게는 사상의 영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공산주의자도 안수기도를 해 주니까 입에 거품을 물더니 푹 나가 떨어지더라구요. 나도 놀란 성령의 힘이죠. 회개하고 방언까지 하는 거예요. 신기하죠? 믿어져요?”

“정말 신기하네. 믿어지지 않네.”

이 목사는 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담백하고 고지식한 면을 가지고 있다. 탈북자들의 간증에서 더러 그런 사례가 있었다. 이목사가 말을 계속했다.

“하여튼 진짜 그랬어요. 그 김명세씨가 지금 한국에서 목회자를 하고 있으니까 만날 기회가 있으면 직접 물어보세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어요. 북한대사관에서 알고 이상한 놈들을 보낸 거예요. 우리 집은 모스크바시 아조르나야25번지 아파트 8층에 살고 있었죠. 북한의 험한 놈들이 우리 아파트 앞 복도에 와서 ‘나오라우 확 죽여 버리갔어’라고 겁주더라구요. 겁주는 게 아니라 진짜였죠. 러시아경찰도 와서 문을 열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복음을 전한 북한청년을 도저히 내줄 수 없었어요. 현행범이 아니니까 러시아 경찰도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오지는 않더라구요. 문제는 북한의 막나가는 험한 놈들입니다. 저는 침대나 가구들을 아파트 철문 앞에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그 놈들이 못 들어오게 했어요. 아내가 잔뜩 겁을 먹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더라구요. 그동안은 북한유학생을 중국교포라고 거짓말을 했었거든요.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했죠. 당시만 해도 북한사람하고 만나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위반이 될 때입니다. 아내가 공포로 손이 비틀리고 눈이 돌아가더라구요.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죠. 아이들은 장롱 안에서 토끼처럼 숨어 있구요. 저는 한국대사관에 구조를 요청했어요. 러시아와 북방외교로 막 관계가 개선되는 시절이었죠. 한국대사관에서도 일단 그 사람을 빨리 내보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도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제가 보기에 김명세씨가 나가서 살 길은 없었어요. 그 사람을 내놓지 않으면 저희 가족도 마찬가지죠. 저는 복음을 전한 김명세를 내 보낼 수 없었어요.”

복음을 전하고 함께 죽어주는 진한 믿음이 거기 있었다. 북한에 선교하는 많은 선교사들이 그럴 것이다. 그가 계속했다.

“모스크바에 아는 고려인이 있었어요.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옐친대통령에게 살려달라는 편지를 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종교상의 이유로 정치적 망명을 한다고 신청하라고 했어요. 그 고려인이 외신기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줬어요. 탈북자가 없던 당시 그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게 됐어요. 한국과 러시아의 북방외교가 거론될 시점에서 러시아 당국이 전통적인 우호를 맺고 있던 북한과 남한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사건이었죠. CNN을 비롯해서 수십명의 외신기자들이 우리 집 주변에 몰려왔어요. 다행히 김명세씨는 소련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보위부 사람들이 마구 집에 들어오지는 못한 겁니다. 옐친 대통령에게 북한사람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최초의 사건이었어요. 정치적 망명을 허가해서 남한으로 보내면 북한은 완전히 죽이 되는 거죠. 그러니 북한은 더욱 더 펄펄 뛰게 되어 있었어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라리 현지에서 김명세를 죽여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아예 목숨 걸고 몇 명이 우리 집 문짝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하더라구요. 나는 안에서 몸으로 막았구요. 그래도 모스크바의 아파트 문들이 두꺼운 철문으로 만들어서 쉽게 부서지지는 않았어요. 어느 날 밤 한국대사관에서 몰래 소식을 전해주는 데 그날 밤 옥상에서 줄을 타고 북한 보위부 출신들이 창을 깨고 들어올 거라는 겁니다. 한국대사관에서도 그 이상 도와줄 수는 없는 것 같았어요. 혼자 그걸 감당해야 했죠. 그렇지만 제가 주님 외에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이제 마지막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내가 초등학생 5학년 아들에게 할 수 없이 고백했죠. 아빠가 순교할 때가 온 것 같다고요.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요. 이 녀석이 아무 말 하지 않고 눈물만 똑똑 흘리는 거예요. 아들이 한 참 있다가 아이가 ‘저도 아빠하고 순교하겠어요’라고 하더라구요. 아들이 눈물을 꾸역꾸역 참으면서 하나님 앞에 마지막 결심을 하는 겁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죽기로 순교결정을 했어요. 죽을려고 각오를 하니까 그 때 하나님이 생명의 줄을 내려주셨어요. 한국대사관의 김영환참사가 기자들과 북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우리 집으로 그냥 들어와 아내와 아이들을 보자기로 씌운 채 데리고 나가 살려 준 겁니다. 저는 그래도 김명세를 두고 갈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한국대사관에서 그를 데리고 갈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저와 김명세 둘만 아파트 안에 남았습니다. 복도에서 북한 사람들이 ‘오늘 밤 너희들 둘 다 죽여 버리갔어. 김명세 걔 내보내면 목사놈 네 목숨만은 살려주갔어’라고 협박 하더라구요. 어느새 그 놈들은 북한에 있는 김명세가족의 육성녹음까지 가지고 와서 틀어 주더라구요. 김명세의 가족이 하는 말이 우리들 다 죽는다고 돌아오라고 하더라구요. 이목사가 강제로 지금 잡고 있어서 그렇다고 발표하면 모든 걸 용서해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순간순간 문틈으로 복도에 있는 북한 보위부 놈들의 행태를 살폈어요. 30분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담배를 피더라구요. 그래서 그 담배 피는 시간에 살짝 나가 옆집 러시아 영감에게 김명세를 숨겨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혼자 사는 술주정뱅이 영감인데 북한 놈들이 보드카를 사가지고 선물하면서 그 영감을 꼬셔서 그 집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오려다가 거절당하기도 했어요. 그 집은 원룸형태로 되어 있었죠.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면 둘 다 죽을 판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명세씨를 그놈들이 담배를 피우러 층계참으로 간 순간 러시아 영감 방으로 옮겼어요. 그리고 문틈으로 보니까 이게 왠일 입니까? 북한 보위부 놈들이 올라와 갑자기 내가 김명세씨를 숨겨놓은 옆 집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죠. 눈앞이 깜깜해 지더라구요. 원룸에서 김명세가 숨어 있을 자리가 없어요. 보위부 놈들이 문을 열면 김명세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발각되지 않은 거예요. 그 놈들이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지는 못했습니다. 러시아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겁니다.”

“어떻게 원룸에서 발각되지 않았다고 그래요?”

내가 물었다.

“저는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닫아주셔서 보이지 않게 됐다고 확신합니다. 아멘.”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다시 김명세씨를 우리 집으로 끌어들였죠. 이제는 옐친 대통령이 북한출신 대학생의 정치적 망명허가서에 싸인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았어요. 전 세계의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죠. 북한당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김명세는 북한의 잡범출신이라 정치적 망명은 사유가 안된다고 이의를 제기했죠. 또 내가 강제로 김명세를 납치해 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대사관과 북한의 국제적인 외교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우리가 북방외교라고 해서 처음으로 공산권과의 수교를 맺고 들어갈 때 아닙니까 국가적 힘의 대결인 셈이기도 했죠. 북한당국은 김명세를 우리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데려다 놓고 진짜 정치적 망명의 뜻이 있는 건지를 확인하자고 요구 했습니다. 그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러시아 당국이 보낸 검은차에 김명세씨와 함께 타고 이상한 건물로 끌려 갔습니다. 어둠침침한 복도 벽 아래 오래된 나무의자가 있어서 거기 앉아서 기다렸죠. 조금 떨어진 어떤 방 앞에 북한 사람들이 와 있는데 저를 보고는 독오른 눈을 치뜨고 죽이고 싶어 하더라구요. 막 욕을 해대는데 그래도 어떻게 하지는 못하더라구요. 그때 옐친대통령이 미국방문을 하루 앞둔 밤이었어요. 미국으로 가면 싸인을 할 기회가 없어지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거의 절망상태였죠. 러시아가 우호관계를 맺어온 북한 쪽에 아무래도 더 무게를 둘 것 같구요. 

러시아 정보부 사람들이 우리를 다시 아파트로 경호해서 데려다 줬어요. 다음날인 1992년6월15일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미국 순방길에 올랐다는 뉴스가 흘러 나오더라구요. 이제 다 틀렸구나 생각하면서도 지난 밤 꿈이 떠올랐어요. 옐친 대통령이 우리 아파트 옥상에 내려오는 꿈이었어요. 오전에 전화가 왔어요. 아침에 옐친 대통령이 출발 전에 정치적 망명을 허락하는 싸인을 하고 떠났다구요. 미국순방에 대한 선물카드였죠. 미국의 지원도 받고 할 목적이었죠. 그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죽었다가 살아난 거죠. 러시아 외무상이 와서 전 세계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가한다고 통보했어요. 아파트 앞을 지키던 북한 사람들이 막 소리쳤어요. 혈맹인 소련이 어떻게 우리를 배반할 수 있나? 개 썅,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들이 복도에서 철수했습니다. 한국대사관에서 다음날 와서 김명세씨를 데리고 한국으로 가게 했죠. 그가 지금 한국에 가서 목회자를 합니다. 가면 한번 만나보세요.”

그는 목숨을 건 선교사가 맞는 것 같았다. 보내는 물자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한은 그런 믿음의 선교사들의 목숨을 건 사랑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다섯살 아들까지 고생시키고 순교하려고 하는 그 믿음을 저는 도저히 이해를 못할 거 같습니다. 그게 교계에서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이나 명예가 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도대체 왜 그렇게 목숨을 내걸고 하나요? 현실은 현실 아닙니까?”

내가 이철수 목사에게 물었다. 그때 길 앞에 저쪽에 작은 나귀가 보였다. 이목사가 그걸 보면서 내게 말했다.

“차를 잠시 멈추겠습니다. 저 어린 나귀를 한번 보세요.”

차가 길가에 정차했다. 어린 나귀는 무심한 눈길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이목사가 내게 말했다.

“저렇게 어린 나귀는 사람이 타면 허리뼈가 부러지는 수가 있습니다. 몸무게 때문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어요. 그만큼 몸이 가볍다는 거죠. 볼품없고 초라한 예수님이었습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출생도 그렇고 말이죠. 우리는 그런 초라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던져 버릴 수 있는 그게 예수의 도를 따라가는 거 아닌가요? 예수가 왕이거나 부자 집안이면 더 많은 신도들이 몰렸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셨어요. 초라한 예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게 하나님의 일선 군대노릇을 하는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믿음의 행동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선교활동이었다. 그는 한국을 떠날 때 유서를 써 놓고 왔다고 했다. 그는 진짜 예수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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