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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사건과 사람 - 강가 조약돌의 행복

운영자 2017.03.30 15:14:35
조회 137 추천 0 댓글 0
강가 조약돌의 행복

  

  

몸이 아파 일주일에 한 번씩 지압을 하러 간다. 나이 탓인지 몸의 부품들이 녹슬어 가는 것 같다. 작은 방에서 사십대 말의 남자 지압사가 혼자 일을 한다. 엎드려 있을 때 지압사는 자신이 보고 들은 세상을 내게 얘기한다. 

“제가 아는 육십대 중반의 총각이 계시는데 세월을 잊어버리신 것 같아요.”

“무슨 소리죠?”

내가 되물었다.

“누가 중매를 서겠다면서 40대 여성을 소개한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어떻게 그런 할망구와 사귀라는 거냐면서 그래도 30대는 돼야 참을 수 있다는 거예요. 본인은 아직도 자신이 잘나가는 장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벤츠 500을 끌고 나가면 여자들이 아직도 ‘오빠 오빠 멋있어’ 하고 자기를 칭찬한다는 거예요. 아직도 인기가 있다는 거죠. 제가 그 분을 보면 완전히 노인이예요. 이도 풍치로 다 내려앉았어요. 그런데도 자기가 늙은 걸 전혀 모른다니까요.”

나도 육십대 중반이다. 마음은 항상 사십대 정도였다. 그러다 거울을 보면서 깜짝 놀란다. 그 속에 낯선 한 노인이 나를 바라다보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허옇고 눈썹에도 흰털이 부스스 나 있다. 탄력을 잃은 볼 살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내가 엎드린 채 지압사에게 물었다. 

“아플 때 옆에서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또 간호를 해 줄 아내가 필요한데 그 분 계속 혼자 사는 거예요?”

“그래도 그 분한테 다가오는 여자 분이 있었어요. 그런 여자를 보면 저 여자가 내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다고 하면서 밀어내는 겁니다. 나중에 몸을 못 쓰게 될 때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혼자 살아도 그 분이 돈은 많거든요.”

단단한 껍질 속에 틀어박힌 스쿠루지 영감들이 많았다.지압사가 말을 계속했다.

“이 동네 당구장에 노인들이 친구들끼리 몰려와서 게임을 하는데 당구장 주인이 하는 말이 그 싸우는 모습이 가관이래요. 반칙을 했다고 쌍욕을 하다가 젊은 시절 같이 싸움을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완전히 애들로 돌아간 것 같다고 그래요.”

몸이 늙어도 영혼이 항상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불쌍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따금씩 석양이 질 무렵이면 강가로 간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같은 세월 속에서 소년에서 장년으로 그리고 노년으로 흘러왔다. 이제는 강물의 흐름에서 옆으로 비껴선 조약돌 같은 존재가 됐다. 조약돌이 되어 강을 무심히 바라본다. 강물은 내게 수많은 소리들을 들려주었다. 흙탕의 격류가 흐를 때면 그 속에서 한탄과 탄식 삿대질 같은 별별 소리가 다 들리기도 한다. 푸르게 흘러갈 때면 강물은 내게 더 깊어지라고 했다. 나이 먹은 만큼 나이답게 살아가라고 늙어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제는 밥을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할 사람이 없다. 걱정하며 지켜야 할 재산도 없다. 빼앗길 까 두려운 자리도 없다. 편들어야 할 당도 없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지혜의 책을 통해 성자와 마주하며 영혼의 대화를 나눈다. 나에겐 벗을 받아들일 방이 있다. 노인인 나는 책상앞에서 노트북으로 사랑과 인정을 엮는다. 아내는 옆에서 돋보기를 쓴 채 성경을 읽는다. 감사하며 간소한 식탁을 대하고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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