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탁재훈을 호출하는 이유
- 탁재훈|끝내 감정노동을 거부하는 예능 선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음악의 신’ 이상민은 하염없이 탁재훈을 찾았다. 그런데 최근 탁재훈을 찾는 사람이 이상민만은 아닌 모양이다. KBS2 <승승장구>에 구원투수로 입성한데 이어 mnet <비틀즈코드2>의 MC, 그를 위한 멍석이라고 해도 좋을 MBC <무작정 패밀리>까지, 요즘 들어 탁재훈의 행보가 심상찮다. 뿐만 아니라 <음악의 신> 출연 무산 이유를 스스로 밝히길 당시 게스트 출연 요청이 많아 섭외 거부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어쨌든, 찾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이쯤 되면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받던 그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탁재훈은 한결 같은 사람이다. 그는 한창 잘나갈 때도 웃겼고, 지금도 웃긴다. 주요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사라졌을 뿐 지금까지 그는 방송을 쉰 적도 없었다. 지난 3월 1일 <해피투게더> 10주년 특집에서는 탁재훈에 대한 의문을 대놓고 드러냈다. 박명수는 “잘 웃는 편이 아닌데 탁재훈은 정말 웃긴다. 천재다.”고 예전부터 했던 칭찬을 되풀이했고, 다른 출연자들도 이렇게 웃긴데 왜 탁재훈이 지금 잘 안 풀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대본 의존도가 낮고, 순발력이 좋으며, 캐릭터가 확실한 탁재훈은 스튜디오 쇼보다 훨씬 자유로운 리얼 버라이어티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시대와 조우하지 못한 건 그의 일관된 성향 때문이다. 탁재훈은 철들었을 리가 없는 개구쟁이 초딩 남아와 같다. 오로지 웃음과 장난 밖에 없다. 남을 놀리고, 상황에 맞지 않은 엉뚱한 말을 한다. 장난칠 때는 눈빛이 반짝반짝하지만 몸이 힘들어진다거나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으면 싫은 기색을 낸다. 특히나 감동 코드처럼 간지러운 것은 아예 질색한다. 다시 말해 탁재훈은 웃음 이외의 육체 및 감정 노동은 원치 않는 배짱이면서 간지러운 건 도저히 못 참는 예능계의 시크남이다. 이경규마저 우정과 의리를 발판삼아 성장의 여정에 발을 내딛었음에도 그는 동안 얼굴을 유지하며 여전히 피터팬으로 남아 있다.
요즘 예능은 웃음을 넘어선 무엇을 더 원한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무정형의 쇼에서 캐릭터쇼가 되면서 출연진들이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성장’으로 스토리가 확장됐다. 이는 필연적으로 웃음을 넘어선 감정, 감동의 정서로 이어졌다. 그 후 등장한 오디션 서바이벌쇼는 훨씬 노골적으로 감정을 전시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토크쇼도 마찬가지다. <무릎팍도사>가 터부시되던 질문을 통해 감정의 기승전결을 만들어낸 후, <힐링캠프><승승장구> 등의 토크쇼는 누가 더 짧은 시간 안에 희로애락을 모두 뽑아내느냐의 대결이 됐다.
특히나 <승승장구>는 희로애락을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배분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슬픔, 즉 눈물의 타이밍에서 탁재훈은 어김없이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대화의 맥을 이어가고 가장 활발하게 웃음을 만들던 탁재훈은 그때만큼은 침묵하고 어색해진다. 눈물에 대한 탁재훈의 매뉴얼은 없는 듯하다. 이 타이밍에서 클로즈업이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데 다행이도 탁재훈의 자리는 김승우 옆이 아닌 이기광의 옆이다.
감정을 품는 데 약한 것이 바로 탁재훈이 강호동, 유재석 시대와 맞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다. 예능이 웃음 이외의 여러 감정을 집어삼킬 때, 탁재훈은 거꾸로 모든 상황과 감정을 웃음과 장난으로 비껴낸다. 동료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웃음을 만들고, 함께 쌓은 시간들이 다음 단계를 위한 거름이 되고 이런 건 체질상 그와 맞지 않아 보인다. 탁재훈은 누군가를 놀리거나 난처하게 만드는 걸 즐기고,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농담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승승장구>에서 백지영이 정석원 씨는 실물이 훨씬 낫다고 하니까 그럼 연극하는 게 났다고 하고, <무작정 패밀리>에서 규리가 도쿄돔에서 공연한다고 하니 역시 전 세계 어디나 돔은 비싸다고 하는 식이다. 콤비플레이도 필요 없고, 다른 캐릭터와 상부상조할 이유도 없다. 이렇게 낄낄거리는 탁재훈 식의 장난과 애드립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다. 따라서 감성의 시대에 탁재훈의 가벼움은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탁재훈이 부쩍 눈에 띈다. 이는 정치적 이슈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아성에 균열이 생기고 한편에서는 감정 소모가 심한 오디션 쇼가 범람하면서 ‘또 다른 것’에 대한 모색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탁재훈은 신동엽과 함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유이한 예능 MC이기에 그의 재능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패밀리>에서 탁재훈이 ‘애드립으로 어떻게든 막아요.’ ‘우리에겐 애드립이 있어요.’ 라고 읊조린 건 실제 그의 예능관의 발로이며, 최면이 걸린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이 연기이자 설정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변함없는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두가 감동과 눈물을 말 할 때, 감정 표현에 어색해 하는 상남자. 예능이 더 이상 코미디나 웃음만을 말하지 않는 시대에 끝까지 감정노동을 거부하는 예능 선수. 그런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온 듯하다. 물론, 탁재훈은 그 기회를 잡으려고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탁재훈이란 선택지를 다시 쿨하게 여기느냐 아니면 여전히 가볍다고 느끼느냐에 달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U>mcwivern@naver.com</U>[사진=MBC, KBS,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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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예능이 다시 대세가 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한다. 예능에서 진정성 타령하는거 레알 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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