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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번역] 그래도 오늘이 끝나기를 - 14.절망에 몸부림치다

ㅁㄴㅇ(211.226) 2015.12.28 21:38:43
조회 75 추천 0 댓글 0

유린이다.

 

눈 앞의 광경을, 그것 말고 뭐라 말해야 좋은 것일까. 그 부조리하고 압도적인 폭력만이, 웃는 것을 용서받고 있었다. 언제나, 절망은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성검의 검집의 단서가 되는 보라색 돌은, 마계의 입구에 무척이나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마족마저도, 한번 발을 들이밀면 두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전해지는 깊은 숲. 하지만, 우리들은 망설임 없이 그 숲 안을 나아 갈 수 있었다. 성검이 이정표가 되어, 플람을 숲 안까지 인도한 것이다.

 

보라색 돌을 지키는 성수는, 비교적 온화한 성격이었다. 용사의 실력을 시험한다고 말하며, 결국 싸우긴 했지만, 승부가 지어지자 우호적으로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남은 것은 하얀 돌 하나뿐이었으며, 성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숲을 나올, 생각 이었다.

 

"이렇게 가까이까지 왔으면, 한마디라도 해주지 그랬어."

 

목이 하늘을 날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곧바로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다. 목, 누구의? 성수의 목이다. 지면에서 잠시 튕기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순식간에 느껴지는 공포와 압도감. 몸이 무겁다. 하지만 그 위압감은, 내가 잘 아는 것이었다.

 

"쓸쓸한데."

 

그 분은 명랑하게 웃었다. 소년다운 면모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람에 검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뼛속까지 얼어붙을 법한 금빛 눈동자로. 상냥하게, 상냥하게 웃었다. 내 공포감을,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졸여낸 듯한 얼굴로.

 

익숙한 공포심에 몸이 위축되어진 나보다도 빠르게, 플람들은 대세를 정비했다. 곧바로 전위와 후위로 나뉘어, 그 분에게 달려든다. 그만둬,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다. 그만둬, 이길리가 없어,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 모르는것인가, 그 분은.


마왕 폐하다.

 

어째서 내가 폐하와 적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그런 역할이다, 폐하의 명령이다, 그 역할을 나는 계속해서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발이 떨린다. 그저 무섭다. 폐하를 향해 어찌 영창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내 입장이 폐하가 원하시는 것이라 해도, 지금 당장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 결과는, 유린이었다. 타당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 애초에 성수와의 전투에서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던 플람 들은, 첫 일격을 버티는 것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날아갔다. 그런 데다가, 폐하의 마법이 하나씩 확실하게 상처를 입혀나간다.


"아쉬운데에, 아직도 이렇게 약할 줄이야."

 

아쉽다고는 말씀하시지만, 폐하는 무척이나 즐거워보이는 모습이었다. 폐하에게 있어선 이런것 따윈, 단순한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임이 틀림 없었다. 내 바로 곁에서 레드가 정신을 잃고있다. 플람과 아르바도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나무에 등부터 부딫힌 유노의 의식도 흐릿해 보인다. 리아와 헬리오도르도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서 문득, 폐하의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전신의 닭살이 돋아나는걸 느낀 순간, 새까만 칼날이, 내 어께를 꿰뚫었다.

 

"아, 아아아아아......!"

 

아파. 아파! 어께가 탈 것 같다. 죽음, 죽음......싫다. 아니다, 진정해. 이정도론 죽지 않아. 죽지 않, 을거야. 젠장. 도망치고 싶다. 진정해. 폐하는 천천히 괴롭히다 죽이는 취미는 없으시다. 맘에 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죽인다. 이런 어중간한 공격을 하시는 건, 분명 내 정체가 용사 일행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라고 누가 좀 말해줘.

 

"자, 누구지? 확실히 하얗다고 들었던 적이 있는데......아아, 저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폐하의 눈이, 나무에 기댄 상태로 기절해있는 유노에게 향한다. 누구나가 움직일 수 없는 와중에, 폐하만이 천천히 대지를 짓밟아 걸으시며, 그녀의 눈 앞에 멈춰선다.

 

"[성검의 수호자]......지금은 [성검의 소녀]라고 부르던가. 꽤나 귀여운 별칭으로 바뀌었네. 용사와 성검에 일생을 바치며, 용사를 위해 살고, 용사를 위해 죽는다니. 그걸 스스로 원해서 되고 싶다는 건, 난 이해가 안가려나. 얼마나 별난건지."

 

유노의 턱이 살며시 올라간다. 다소 의식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을 거는 폐하께 무언가 대답을 할 기력도 없는 듯 했다.

 

"너도 명예롭지? 원하는 대로, 용사를 대신해 희생하게 될 거니까."

 

주저앉은 내 눈에는, 두 사람의 모습만이 비치고 있었다. 폐하의 의도를 모르겠다. 그것이, 나에게 한층 더 공포심을 부여한다. 그런 와중에,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떨어져, 빌어먹을 꼬맹이."

 

발걸음은, 꽤나 불안정하다. 그래도 겨우겨우 일어선 헬리오도르가 자신의 코피를 소매로 닦고, 경망스럽게도 마왕 폐하를 향해 검을 향한다. 그 틈에 달려나간 리아가, 폐하와 유노의 사이에 들어가, 그녀를 지키려는 듯이 감싸 안았다.

 

헬리오도르는 강하다. 검술 실력은 일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며, 마법 실력도 전문가인 리아나 유노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초면에 겨루기를 할 때, 확실히 그는 봐주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졌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겨루기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전투였다면, 마족인 나조차도 그에게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불투명하다.

 

"약하면 가만히 있어."

 

그런 그거, 간단하게도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야 그럴 것이지, 상대는 마왕 폐하다. 반발하는 것 자체가 크나큰 착각이다. 폐하와 마주한 시점에서, 그들에게는 더이상 꿈도 희망도 볼 자격이 없다.

 

"아팠어? 미안. 나는 아픔을 모르니까 이해가 안가네."

 

땅에 주저앉아, 더이상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괴로울 몸으로, 헬리오도르가 폐하의 발목을 잡는다. 폐하는 그걸 한방에 걷어차시고, 다시 유노에게 얼굴을 돌린다. 리아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유노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오지마."

 

"그렇게 말해도 있지. 나름대로 인내심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대로는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유노를 건드리지 마."

 

리아는 폐하와 눈을 피하지도 않고, 그렇게 외쳤다. 어째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인가. 무섭지 않을리가 없을 것이다. 자신보다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의 공격이다. 실제로 리아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데도.

 

"으음......"

 

폐하가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으 보이셨다. 빨리, 용서를 구해, 라고 말이 되지 않는 부탁을 했다. 폐하는 변덕스러우시다. 어쩌면, 이대로 살려보내주실지도 모른다. 내 때와 같이.

 

"넌 어째서, 용사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거니?"

 

"에......아, 플람이 걱정되서......"

 

"플람? 아아, 용사 말이지? 어째서 걱정이야?"

 

"왜냐면 플람은, 생각도 안하고, 바로 무리하려고하고, 동생, 같아서......"

 

"그렇구나아!"

 

환성과도 같은 밝은 목소리가, 폐하에게서 들렸다. 절망으로 물들어버린 이 장소에서,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듯한.

 

 

 


"그러면 너라도 상관없겠네?"

 

 

 


폐하의 손이 유노를 끌어안고 있던 리아의 팔을 잡아 들어올린다. 폐하는 결코 큰 편이 아니다. 그래도 소녀들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리아를 일으키니, 간단하게 그녀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리아의 표정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진다.

 

"용사가 강해지는 걸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대로는 너무 길어. 그래서 있지, 제한 시간을 주려고 생각했어."

 

리아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들린다. 전신을 팔 하나에 매달려 있으면, 어께가 빠질 것 처럼 아플 것이다. 거기다, 그분을 그정도로 가까이에서 보게되는 공포감은, 인간인 그녀에게는 얼마나 큰 것일까.

 

"이렇게 만난 것도 그런데 이름이라도 알려줄래? 아아, 아니 괜찮아. 어차피 금새 잊어버릴 것 같으니까."

 

왼 팔로 리아를 들어올린 폐하가, 오른 손을 리아의 입에 집어넣는다. 리아는 헛구역질을 하지만, 폐하의 손은 용서없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내측부터 찢어버리실 생각인걸까. 차마 볼 수 없어서, 나는 무심코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걸 포기한 내 마음이, 손톰에 갈기갈기 찢어지듯이 기분이 나빴다. 아아, 아아, 아아......

 

그녀는, 웃는 얼굴이 잘 어울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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