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항상 일찍 올라가서 5시 전에 하산하는게 맞다.
설악산을 가기로 하기 전, 정동진에서의 일출을 보고싶어서 급히 내린 탓에
다음 날, 일정을 늦게 맞추게 되었다.
설악산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1시.
태백산 왕복 4시간을 2시간 만에 왕복했던 자신감으로 설악산도 6시 전에 내려올거라 예상했었다.
날씨가 영 좋지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눈이 엄청 내릴 것 같은 느낌이다.
긴장 반, 기대 반 마음가짐을 하고 오르기로 했다.
생각보다 산 밑은 그리 눈이 쌓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르기 전에, 경치 구경하느라 바빴다. 앞으로의 무뎌짐을 생각치 못한채.
중간중간 눈이 등산로 이상으로 쌓여서 옆 돌계곡을 따라서 올랐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신고연락처를 등록하고 등산.
대청봉 7.5km? 별로 안되는 거리였다. 말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상상으로만.
한참 올랐을까? 진짜 미친듯이 쉬지않고 오른 것 같았다.
1.5km 오는데 너무 미끄러워서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아이젠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운동화차림으로 올랐기에. 속도는 더디었다.
등산로를 눈이 가득 메워져있어서 이동 할 때, 매우 조심해야 했다.
얼어있는 폭포 옆에서 찰칵. 내일로 여행 중에 무작정 설악산을 올랐기에
등산복이며, 장비이며 전혀 없이 체력만 믿고 행동했던 것 같다.
50대 어르신 5분이서 천천히 오르며, 그리 오르다가 위험하다고 하시는데
나는 괜찮다며 먼저 오르겠다고 하며 무작정 올랐다.
평탄한 곳은 괜찮은데 옆 비탈길 이동시 너무 힘들었다.
아예 몸을 옆으로 붙어서 나뭇가지로 미끄러지지않게 박으면서 이동했다.
경치는 참 이쁘다.
그런데 금방 어두워지는 느낌이..산 속에 나혼자 버려진 느낌이다.
올라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이제 정상쪽은 아예보이지 않는듯. 불안함이 급습한다.
고민이 슬슬 된다.
눈안개 속은 정말 추울 것 같다. 조만간 여기까지 내려올 듯.
시야도 보이지 않을테고 그렇다고 내려가기는 싫어서 무작정 오르기로 했다.
내려가고픈 마음이 계속 생겼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너무 아깝다.
이곳은 등산로가 아예 눈으로 덮여져 있다.
체력이 점점 방전되는 느낌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표지판에 대피소가 있다고 나온다. 그냥 피해야 살아남을 듯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괜히 올라온 느낌이 수백번 뇌리를 스쳐간다.
200m... 얼마 안남았다.
너무 추웠다. 지금 내려가면 더 위험해진다. 그냥 무조건 대피소로 향했다.
저쪽에 대피소가 있는 듯하다. 다행이다.
45년 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하셨던 사건의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피소를 곳곳에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하마터면 기사에 실리는 꼴이 될뻔 조심해야겠다.
사전 예약제이지만, 간곡히 말씀드려 1칸을 주셨다. 8,000원을 낸 것으로 기억한다.
먹을 것도 가져오지 않아서 햇반1개, 참치캔1개를 사고 먹으려고 취사장으로 이동했다.
아까 오르다가 만났던 5명의 어르신들이 나중에 올라오셨는데
그거 먹지 말고 맛있는 밥을 먹으라고.
삼겹살, 김치찌개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인복은 타고났다.
라면은 정말 꿀맛
즐거운 시간이 될 수 밖에...죽을뻔했는데 감사하지.
어느 덧, 오후 6시가 되어간다.
방은 성인1명 눕는 크기인데 내부가 따뜻하고 아담해서 너무 좋다.
감사하게도 라디에이터 옆에 내 자리를 주셨었다.
의류도 말리고, 내 자리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항상 일기를 써온 탓에 여행일지와 같이 적고, 잘 준비를 하고 내일 일정을 위해.
다음 날 새벽5시 30분쯤 취사장이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이 깼다.
5명의 어르신들은 나를 깨우며 빨리 밥 먹고 같이 오르자고 하시고
허겁지겁 먹고 오전 6시에 대청봉을 향해 무작정 올랐다.
날씨는 어제보다 더 악화됐다.
오르는 곳이 또 능선이라 여러명이서 가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구간이다.
저 멀리서는 눈이 내리는게 보였다.
왠지 대피소에서 하루 더 묵고 가야하는 기분이 든다.
너무 추워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못 버티는 정도였다.
패딩을 겹쳐입고 내복,츄리닝,청바지를 입었다.
다행히 대피소에서 10,000원에 아이젠을 구입해서 아저씨들과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입구까지 가려면 약 10km를 하산 해야 한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추워진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어서 운동화에도 눈이 들어갔다.
발에 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르신들 뒤를 따라가는데 중간중간 낭떠러지도 너무 위험했다.
떨어지면 여름에 시체를 찾아야 할 판.
중청봉 대피소에 도착해서 젖은 의류를 말리기 시작했다.
금일 9시부터 대설특보 발령. 입산통제가 되었다고 한다. 절망의 순간.
아예 자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피소는 너무 따뜻해서 계속 있고 싶었지만 눈이 조금 그치면 그 때 대청봉을 오르기로 했다.
아저씨들과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여유가 없기에 그냥 오르기로 했다.
아래에는 뭐가 있는지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
젊은 피부과 원장님과 같이 오르면서 오던길로 가지말고
반대쪽 입구로 나가자고 하고 같이 올랐었다.
대청봉에서 기념 사진. 진짜 추웠다. 내복, 츄리닝, 청바지에 운동화.
다시는 겨울산은 무식하게 오르지 않기로 했다.
하산 할 때, 둘이서 얼어있는 등산로로 미끄럼틀을 타며 내려왔다.
낭떠러지 제외하고 등산객들이 대부분 누워서 내려온다.
오히려 더 안전하다.
거짓말도 안되게 내려오니 폭설이 내리지 않았다.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듯하다. 산 밑은 굉장히 고요했다.
여기서 속초터미널까지 40분이 걸리는데. 반대편 입구라. 차가없으면 이동하지 못한다.
나는 인복이 있는 듯. 피부과 원장님 친구분이와서 대기하고 계셨고 무사히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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