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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초단편] 공포의 마차-08

앙졸라이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07 2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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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안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한데요."


엘사가 갑자기 제자리에 우뚝 서서 말했다. 크리스토프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마차를 돌아보았다.


"잠시만요."


크리스토프가 끌고 있던 마차를 놓아두고 마차 문을 벌컥 열었다.


"비었어요."


크리스토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엘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안나가 없다고요?"


"올라프도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진작에 스벤도 사라졌어요."


"점점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되어가네요."


"뿌샷!"


엘사가 말을 마친 순간,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사는 소리가 난 곳을 휙 돌아보았다.


"누구지?"


"꺄"


"꺄?"


크리스토프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스노기잖아."


"딱 하나네요."


"도대체 스노기가 여기서 뭘 하는 거죠?"


"나도 몰라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말을 마친 직후, 엘사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내 생각엔, 올라프는 이 스노기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겠죠. 스노기들에게 각자 이름을 붙여준게 올라픈데요."


"뀨?"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요점은, 사실은 아무도 이 스노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거라는 거죠."


"사... 사... 아무튼 올라프가 이름을 끝맺지 못한 그 친구요?"


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안개의 강력한 저주에 휘말린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 스노기와 마주친 것으로 보아 저주에 휘말린 게 안나가 아니라 우리쪽이었다는 거죠."










"대체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스벤이 사라지더니, 이제 언니랑 크리스토프도 없어!"


안나가 발을 동동구르며 말했다. 올라프가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촛불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봐요, 안나. 여기에도 안개가 껴있어요."


"아직 새벽도 아니고, 물가도 없는데."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석 근처에서 흘러나온 안개가 여기까지 왔다는 거야? 언니랑 크리스토프가... 그 안개에 휘말렸다고?"


"그... 그런건가요?"


"하지만 그건 이상해. 난 지금 언니랑 크리스토프가 똑똑히 기억난다고. 안개에 휘말린 존재는 잊혀진다는 거였잖아?"


"하지만 저도 이제 사만다를 똑똑히 기억해요, 안나. 엘사가 말했잖아요. 우리가 숲의 저주를 풀면서, 비석의 안개에 걸린 저주도 약해지고 있을 거라고요."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안나가 뭔가 중요한 게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행이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졌어. 그리고 안개... 나, 뭔가가 떠오르는 것 같아. 우리 어머니가 어릴 때 들려주셨던 이야기야."







"일행이 반으로 찢어졌어요."


엘사가 말했다.


"그리고 안개가 그 중심에 있었죠. 사실 아까전부터 떠올렸던 이야긴데, 아무래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무슨 이야긴데요?"


"우리 어머니가 어릴 때 들려주셨던 이야기에요."



"옛날 옛날, 먼 옛날에, 용맹한 청년 한 사람이 있었어. 힘이 무척 셌고, 그 누구보다도 용감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대쪽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지. 청년은 칼 한마리에 의지해 수많은 악마들을 베었고, 수많은 괴물들을 처치했어. 수많은 악마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피해다녔지만, 딱 한 악마만이 청년을 증오하고, 그를 없애고 싶어했지. 없앤다기보다도, 그는 청년의 영혼을 산산조각내고 싶어했어.


악마는 마법의 안개를 풀어 청년의 영혼을 통채로 삼키려 했어. 하지만 악마의 마법이 감당하기에 청년의 영혼은 너무나도 강력했던 거야. 청년은 마법의 안개를 뚜벅뚜벅 걸어나가 악마를 공격했어. 악마는 겨우 목숨만 부지해 숲속으로 도망쳤지.


악마는 다음에는 생각을 바꾸고 청년의 영혼을 조각내버리기로 결심했단다. 악마는 이번에도 마법의 안개를 풀었지만, 이번 안개는 청년의 영혼의 일부만을 흡수했지.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간 청년은 본래 지니고 있던 무시무시한 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악마는 완력을 잃은 청년의 영혼이 쇠약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년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청년의 용기와 성품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청년의 영혼을 삼키기 못하고 거꾸로 당해버리고 말았어.


악마는 힘을 뺏는 것으로는 청년을 굴복시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안개를 풀어서 청년의 용기를 빼앗았지. 용기를 빼앗긴 청년은 처음에는 악마의 위협 앞에 두려워하며 굴복하려 했지만, 그의 굳센 성품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빼앗긴 용기 없이도 스스로 용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 청년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칼을 휘둘러 악마로부터 빼앗긴 용기를 되찾아왔어. 그 뒤로 청년은 두배는 용감해졌어.


악마는 청년의 영혼을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절망했어. 아무리 악마의 마법의 안개라 해도 청년의 성품을 빼앗아갈 수는 없는 거였거든. 그런데 악마의 눈에 재밌는 장면이 보였어. 바로 청년이 이웃나라의 공주와 사랑에 빠졌던 거야.


청년의 영혼은 악마조차도 감히 범하기 힘들었지만, 공주라면? 그럭저럭 노려볼 만 했지. 악마는 청년과 공주가 손을 잡고 걸어가던 길에 안개를 흩뿌렸어. 안개가 걷혔을 때, 청년의 손을 붙잡고 있던 공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 악마가 안개를 뿌려서 공주의 영혼을 전혀 다른 세계로 납치했던거야. 청년은 절망했고, 영혼은 반쪽나버리고 말았어. 그리고 다시는 공주를 찾을 수 없었단다."









"그게 대체 무슨 종류의 이야기에요?"


크리스토프가 물었다. 엘사가 어께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요. 베갯머리 동화로는 참 형편없는 이야기죠. 그렇지 않나요?"


"그런 얘길 듣고도 밤에 잠이 왔어요?"


"사실 그날 밤엔 제대로 잠을 못잤어요. 그런데 왠지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괜히 하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어떨거 같아, 올라프?"


안나가 물었다. 올라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요, 안나?"


"사만다를 잃어버리게 만든 마법의 안개를 말하는 거야, 올라프.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마법의 안개하고, 비석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안개는 상당히 유사해. 혹시 같은 종류의 저주는 아닐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 어떤 강력한 저주라도 사람의 영혼을 맘대로 박살낼 수는 없어요. 잠시 납치해서, 다른 세계에 옮겨두는 것 뿐이죠. 그게 바로 지금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에요."


엘사가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마치고 해주신 말씀이 있어. 청년이 어떤 실수를 저지른 건지,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신다고 하셨지."


안나가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리 악마의 힘이 강해도 뿌리까지 자를 순 없었을 거라며, 청년이 자신의 뿌리를 찾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릴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는 이해해요."






"뿌리는 아토할란을 의미한 걸거야. 안개의 강력한 저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서 두 영혼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분리했겠지. 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잇는 근원인 아토할란까지 가를 순 없었을 걸? 올라프, 우린 북쪽으로 올라갸야 해. 거기 가면 다시 언니와 크리스토프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애당초 누군가가 우리가 이 놀이를 하도록 이끌었던 거에요. 우리가 저주에 걸려 잊혀진 사만다를 찾아내도록, 더 멀리 나아가서 비석의 저주를 풀어낼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 옛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마법의 안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내서, 저주를 풀 수 있는 해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 거라고요."






"그럴 만한 존재가 누가 있을까? 나랑 엘사 언니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아토할란에서 우리 모두를 이끌어줄만한 사람?"







"난 매우 익숙한 사람이 우리를 저 먼 북쪽에서 부르고 있는 거라고 확신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를 이끌기 위해 애초에 이 놀이를 시작하도록 한거라고 확신하죠. 가요, 크리스토프. 마차를 끌고, 누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던 건지 확인하러 가자고요."







"마차를 끌고 아토할란까지 가는길에, 올라프."


안나가 물었다.


"하던 놀이를 계속 하는 건 어떨까? 뭐 재밌는 이야기 생각나는 없니? 좀 으스스한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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