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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문학대회 참가작]Two sisters, one mind - 4

Mede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8 2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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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른 언니의 목소리는 무서우리만큼 차분했다.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함이었다. 하지만 새하얗게 질려 있는 언니의 얼굴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순간 하얀 피부의 언니가 더 하얗게 변할 수 있음에 놀라고, 그것은 그 어떠한 말보다도 언니의 당혹감을 나타낸다고 느꼈다.

그 일기, 어디서 발견한 거야?”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

아니, 이게 아니지……일기 내용도 읽었니?”

미안해, 언니……하지만!”

언니의 단호한 얼굴. 나라 말아먹으려던 망할 전남친이랑 언니의 대관식 날 결혼하겠다 말했을 때, 허락할 수 없다고 내비친 표정과도 같았다.

아니야……잘못했어. 미안해, 정말로.”

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언니였다. 한숨 하나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언니에게 미안해서, 아니 미안한 감정보다도 언니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야.”

?”

어쩌면 없애지 않고 그저 얼려서 숨겨뒀던 내 잘못이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제야 나는 태풍의 방향이 애초에 날 향하지 않고 언니에게 향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미련한 언니가……!

아니야, 이건 명백히……!”

그런 뜻이 아니야, 안나.”

내 잘못이라고 말하려던 입을 막은 것은 언니였다.

일기를 읽었다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언제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마 금방 읽었겠지, 안나 너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3년 전의 언니는 이걸 내게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언니는 일기와 함께 왕의 자리를 넘기고 아렌델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현재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계획은 이룬 듯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없애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의 권유로 쓰기 시작한 일기라서였어. 너와 방을 따로 쓰기 시작하고 나서, 종일 숨죽여 울고 있으니까 오셔서 말씀해주셨지. 종이에 감정을 적어 써내려가다 보면 그 감정은 비워진다고.”

그게 무슨…….

그래서 13년 동안 비워나가기 시작한 내 감정들은 전부 그 안에 담겨있어.”

언니가 눈짓으로 일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기 곳곳에 남아있던 눈물 자국. 남몰래 울어온 여린 언니의 모습이겠지. 감정에 솔직할 수 없는, 여왕의 책임을 져야 했던 언니가 택한 방법은 숨기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짊어진 무게를 버텨내려고 전부 숨겨왔다. 그 대가가 고독과 슬픔일지라도.

“3년 전, 아렌델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렇게 생각하니 차마 없애지 못했어.”

언니…….”

“13년의 감정이 불태워지는 게 한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못 태우겠더라고. 태우면 13년의 나는 없었던 거나 다름없어질까 봐.”

언니의 눈동자에 씁쓸함이 내비쳤다. 나는……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

……조금 우습지. 이미 너를 외면했던 13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없었던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으면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언니의 모습에 내가 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 내뱉는 저 모습을 보고 어떻게 내가…….

이렇게 약한 걸 보면 아직 멀었나 보네, 나는.”

아니야, 사실 나도…….”

언니는 숨기는 것 없이 내게 속마음을 다 이야기했다. 나도 이제 말을 꺼냈다.

요 며칠 잠을 설쳤어. 언니가 전해 들었던 크리스토프의 말이 맞아.”

아니, 말해야만 했다.

여왕의 자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쉽게 말하지 못했어. 부정해서 미안해.”

언니는 그저 옆에 앉아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대관식 이후로 매일같이 꿈을 꿨어, 13년 동안의 일들을……. 그리고 그때의 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자꾸 되뇌게 되더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들이 보면 언니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내 눈에 이미 언니의 눈빛이 흔들린 것이 보였다. 이런 것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얼마나 여리디여린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언니는 이럴까 봐 이야기 안 하고 참아왔던 거야.”

……어?”

벌써 자책하려 했잖아.”

여왕이란 위치를 신경 쓰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언니와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언니에게 이야기 안 했던 이유는 죄책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나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내가 언니를 사랑했기에 그런 감정을 언니에게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지만.

하지만, 안나……. 그 시간 동안 내가 네게 상처를 준 건 변함없잖아.”

상처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조심스레 물어오는 언니에게 나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언니도 그 13년 동안 나를 내치며 상처받았잖아? 그러면서 자책했을 거고, 계속 미안해했잖아.”

나는 언니의 일기를 한 번 어루만지며 말했다.

왜 미안해했는지는 알지만, 더는 그런 걸로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일기를 돌려주며 말했다.

꿈을 되뇌는 동안 그 13년 속에서 언니의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했어.”

안나, 나는 그저…….”

걱정 마, 이제는 알아.”

언니의 말을 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는 13년의 시간 동안에도 날 사랑해주었고, 지금도 사랑해주고 있잖아.”

, 안나.”

언니는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그저 안겨있었다. 한차례의 태풍은 끝난 듯하다.

 

***

 

으음…….”

눈이 부셨다. 그리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니, 불어왔다기보다는 주변을 맴도는 듯했다.

……게일?”

눈을 떠보니 침대였다. 침대에 누워 잠든 기억은 없는데. 이불을 펄럭이며 장난을 치는 게일 때문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오랜만에 푹 단잠에 빠졌던 것 같다. 그나저나 언니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이번 주 금요일 제스처 게임도 힘들다고 했으니 돌아간 건가.

게일, 그만 장난치고. 언니는 어디에 있어?”

이불을 펄럭이며 놀던 게일은 문을 열어 복도로 나갔다. 그래도 아직은 성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게일을 따라 걸어간 곳은 서재였다.

여기라고?”

내 물음에 게일은 맞장구를 치고 창문을 통해 나가버렸다. 카이가 늦잠을 잤는데도 깨우지 않은 이유가 이건가.

 

--

 

-”

나야, 언니.”

역시나였다. 나 대신에 언니는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안나, 일어났어? 좀 더 자도 되는데.”

충분히 늦잠 잤어. 게일이 깨울 정도로.”

그러니?”

웃으며 대답하는 언니 옆으로 다가갔다. 몇 시부터 했는지 몰라도 꽤 많은 양의 서류가 이미 검토가 끝난 듯했다.

아렌델에 왔을 때는 편히 있어도 된다니까.”

편했어. 그리고 어제처럼 몰래 들어와서 네 얼굴 보는 게 훨씬 좋아. 온 게 알려지면 편히 지내라며 베푸시는 친절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거든.”

하여튼 카이에게 말해둬야겠어.”

그러지 말렴, 카이한테 내가 하겠다고 절대 깨우지 말라고 했거든.”

정말이지……. 언니는 의외로 고집 있는 편이었다.

노덜드라의 일도 많다고 하지 않았어? 돌아가지 않고 아렌델 일을 해도 괜찮은 거 맞아?”

, 그거.”

언니가 조금 생각하더니 곧이어 웃었다.

서둘러서 끝내고 왔어. 아렌델에 계속 머무르려고 그랬던 거라.”

?”

연말에는 여기서 계속 있으려고. 그래서 미리 정리해두느라 일이 많았던 거야.”

잠깐, 잠깐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희소식일지라도 이렇게 듣게 되면 두뇌 회전이 안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언니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노덜드라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정리해뒀고, 아토할란도 정돈하고 녹크에게 관리를 맡겼고, 바위 거인들도 이제는 노덜드라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지켜주니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지. 정 급하면 정령들이 연락해주기로 했고.”

……그랬던 거였어?”

, 아무리 오랜 연휴를 집에서 보내기 위함이라지만 지금을 같이 있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해서.”

그래서 편지도 보내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언니가 제스처 게임에 오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내가 어린아이처럼 굴었으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진짜 바보 같은 건 나네.

물론 마냥 놀지만은 않을 거야. 너에게 여왕 직을 급하게 넘겨줘서 안 알려준 것도 많고.”

뭐야- 온다고 일을 잔뜩 하고 와서는 또 일한다는 거야?”

너와 함께 하는 거라면.”

언니의 사정도 모르고 쌀쌀맞게 대했던 내 자신이 민망해 부러 농담을 섞어 던진 물음에 언니는 싱긋 웃어주며 대답해주었다.

, 맞아. 안나.”

?”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서류를 말하는 건가? 서류를 대신 검토하는 게 기분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언니라면 나보다 좋은 선택을 해둘 테니까. 서류를 힐끗 보고 대답했다.

위즐튼과의 무역 말이지? 아무래도 이 물자는 교류하는 양을 좀 줄여야 할 듯싶은데. 쓰고 남는 게 너무 많아.”

아니, 이거 말고 후후.”

언니가 웃으며 옆에 놓여있던 일기를 집어 흔들었다.

일기 말이야.”

어…….”

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내게 물어볼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언니의 물건이었으니까.

음……언니가 없애지 않고 얼려서 숨겨뒀던 거라면 아마도 없애지는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을 했다. 아무래도 숨겨둔 걸 찾아서 읽어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었으니까. ……언니가 말이 없는 걸 보니 이게 답은 아니었나 보다.

물론 언니가 지금은 원하는 게 없애는 거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해. 지금이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 혹시라도 일기를 볼 때마다 언니가 슬퍼진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몰라.”

푸훗.”

?”

방금 내가 이 일기를 없애고 싶어 한다 생각했지?”

웃으며 물어보는 언니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대답하길 바란 건 아니었다는 듯 언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3년 전에는 미련이 남아 없애지 못했지. 지금에 와서야 미련이 남지는 않았지만, 굳이 없앨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이미 언니의 일기는 원래 지고 있던 역할을 끝냈기에 던지는 말 같았다. 마치 그에 대한 수고로 주는 안식이라는 듯.

하지만 이번에는 꼭 숨겨둘 거야, 다시는 못 찾도록. 아무리 그래도 동생에게 옛 일기를 들키는 건 생각보다 부끄럽거든.”

히히…….”

언니의 말에 실없는 웃음을 흘려주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바보 같은 고민을 했다는 걸 알았는걸.”

-? 안나, 너어-”

일기를 몰래 읽은 걸 반성하고는 있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긴 했다. 언니도 그걸 아는지 짐짓 화내는 척만 했고.

헤헤, 엘사 언니.”

, 안나?”

이정도면 오늘 업무는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말을 할까. 말을 고르고 골랐다. 하지만 역시 이 말만큼 내 마음을 잘 전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랑 같이 눈사람 만드는 거 어때?”

정말~”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언니는 의자에 기대어 고민하는 척 눈을 감았다. 이윽고 한쪽 눈만 뜨고는 대답해주었다.

오늘만이야.”

!”

그럼 나갈 준비 하자.”

들떠서 서재 밖을 나가다 몸을 돌렸다. 그래도 가끔은 직접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왜 그래, 안나?”

사랑해, 언니.”

피식 웃으며 돌아온 언니의 대답은 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실려왔다.

나도 사랑해, 안나.”




-Fin-




---------------------------


아까 올릴까말까 고민했던 유동입니다. 5장 구성으로 생각하고 썼던 글인데 안 올리려다 올리려고 해서 그런지 긴장해서 하나도 기억이 안 나 4장으로 올리게 되었네요.

원래는 문학 읽는 거 좋아하고 사실 정말 쓰고 싶은 소재들만 가끔가다 글 쓰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프로즌은 특히 써보고 싶은 소재만 많이 생각해두고 글 쓴 적이 없어서 프로즌 관련 문학은 이 글이 처음이네요. 문학대회 참가작으로 제출했지만 현퀘에 치여서 시간을 들이지 못해 솔직히 제가 읽어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글입니다. 특히 제가 담고 싶었던 것을 글을 쓴 저 외에는 아무도 모를 법한 작품이라 수치사할 것 같아서 문학용 고닉 파왔습니다.

나중에 제 글솜씨가 나아지면 제가 담고 싶었던 것, 엘사 시점 등으로 리메이크는 해보고 싶긴 합니다. 그래서 수정도 안 하고 올리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라서 묻어두렵니다.


내일이면 벌써 문학대회가 끝나네요. 2002 문학대회 주최자분, 심사위원분들, 그리고 문학에 관심 가져주시는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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