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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대회 참가작] 녹지 못한 것들 -2-

hippocamp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9 2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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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헬렌에게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네. 내가 글 잘 못 쓰는 거 알잖아. 지금도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서, 어떤 것부터 전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먼저 거짓말 한 건 미안해. 그리고 이렇게 나와 버린 것도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정말, 정말 당신을 위한 일이야. 엄청난 기회고, 해야 하는 일이고, 옳은 일이지. 그리고 무역선을 타는 건 진짜야. 상품들도 실제로 실었어. 이렇게나 철저히 준비해서 간다니, 아마 이분들도 정말 숨기고 싶으신 거겠지. 공주가 마법을 부린다는 소문, 기억해? 아무도 믿지 않았던 가십이었는데, 그게 정말이었어. 아렌델의 공주가 마법을, 그것도 얼음을! 그리고 이건 엿들은 것이지만…. 왕비가 노덜드라 인이라더군! 믿어져? 항해가 끝나고 나면 이건 정말, 정말이지 엄청난 뉴스가 될 거야. 글쎄, 얼마나 파장이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거고. 물론 나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해, 하지만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그 강은 알고 있겠지. 이제 나는 북쪽으로 갈 거야. 헤엄치지 못할 강. 아토할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그곳 말이야. 만약 당신이 들었다면 분명 뜯어말렸을 테니 비밀로 했던 거야.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이 기회를 마다하겠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길어봐야 이 주일 정도. 만약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리고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과 빌렘이 더 이상 울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사랑해. 빌렘에게도 전해줘.


아버지는 도망친 게 아니었다. 왕비와 왕이 탔던 그 배에, 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토할란에서 돌아오지 못한 거야.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지도를 잘 보던 청년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바람대로 왕실의 항해사가 되길 원했지만, 당연하게도 노덜드라 인과 결혼한 사람은 왕실에 드나들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역선에도 몸을 실을 수 없었다. 우정을 약속하고선 왕을 죽인 역겨운 부족과 결혼한 사람이, 언제든 누구를 배신하지 못하겠는가? 당연했다. 이주했던 노덜드라 인들과 우리가 함께 국경 근처로 내몰린 건 당연했고, 아렌델 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단지 어머니와 아버지에겐 당연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우리가 옳다고, 틀리지 않았다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거란다.” 이게 당신이 말한 옳은 일이었어요? 왜 말하지, 왜 그때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요? 이 편지는 대체 누가 전해준 건데요? 당신이 죽은 지 육 년이 넘었고, 이젠 어머니도 죽었어. 이제야 이야기를 하면 내가 당신을 용서할 줄 알았어요? 머리가 울리는 것같다. 쏟아낼 말들은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입에 머무른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기침이 자꾸만 나온다.


탄 내, 탄 내가 나. 방문은 꼭 닫아뒀는데, 냄새는 자꾸 들어온다. 처음엔 장작을 너무 많이 넣은 줄 알았어. 하지만 이건 나무 타는 냄새가 아니다. 이렇게 매캐해서 기침이 계속 나오는데, 이게 어떻게 참나무 장작 타는 냄새야? 엄마. 엄마가 쭈그려 앉아서 운다. 아무 소리도 안 나고, 흔들림도 없지만 울고 있는 건 확실해. 엄마가 태웠구나. 그럴 줄 알았어. 엄마가 막대로 잿더미를 쿡쿡 찌른다. 아버지 옷, 아버지 담뱃대. 전부. 저거 다 태우려면 오래 걸릴 텐데. 


사실, 당신이 싫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아니, 몰랐다는 게 맞다. 당신이 그날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며 사라졌을 때도, 그렇게 돌아오지 않았을 때도, 당신이 싫거나 원망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글쎄, 당신 때문에 벌이가 갑자기 사라져서 힘들기는 했다. 나나 어머니나. 그만큼이나 내가 당신에게 기대를 갖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남겨진 우리는 당신이 도망쳤다고 생각한 채로 살아왔는데, 그렇게 남겨진 채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금에서야 당신이 우리에게 말을 했다. 그래서, 그래서 당신이 이젠 미워. 정말 원망스러워서 미칠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거야? 나에게 책임을 떠넘긴 거잖아. 당신이 마무리 짓지 못한 옳은 일을, 육 년이 지나서 내가 끝내라니, 끝까지 이기적이야. 


말을 빌리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이 근방에 마구간이라고는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어디를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빌려줄 일은 없었다. 만약 알려줬어도, 지금 주머니에 든 돈으로는 턱도 없었겠지. 그러나 순록이라면 다르다. 늙은 수놈 하나를 거의 거저에 빌릴 수 있었다. 주인 눈치를 보아하니 어차피 얼마 못 가 처분할 녀석이었지 싶다. 아마 아렌델 성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당장 갈 수 있다면 노새라도 훔쳤을 거다. 


마법을 쓰는 공주, 이제는 여왕. 그녀도 이 사실을 알까. 알았다면 어머니가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시진 않았겠지. 어릴 적 들었던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삶을 사는 사람. 여왕은 그런 사람이었다. 착한 공주는 동생을 사랑했고, 동생도 그녀를 사랑했답니다. 운명의 장난으로 둘은 떨어지게 되었고,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도움과 진정한 사랑으로 극복해냈죠.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그녀는 아마도 착한 사람일 것이다. 당연해,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겠지. 그녀와 주변의 행복은 깨뜨리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이 편지를 들고 달리 뭘 할 수 있겠어? 아렌델로, 지금 당장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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