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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장편문학]아이스게임_7_8편

안나병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09 21:50:54
조회 476 추천 42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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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1 이전 12살 크리스토프 서사를 다룬 소설입니다.

(크리스토프 3부작 문학 중 마지막/

1부 순록이름짓기

2부 소년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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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724141

2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728517

3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732202

4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736179

5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742585

6편 https://gall.dcinside.com/frozen/474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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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으로 읽으시려면 이곳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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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ce Games

아이스 게임



7.


크리스토프는 영혼 없는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소년들이 잡고 있을 때 멍이 들었는지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린다. 어떻게 트롤계곡까지 올 수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산산이 부서지고 잔해가 돼, 원래 형체는 추측할 수도 없는 나무 조각들이 쌓여 있다.

그는 소년들이 목표했던 바를 달성하고 사라진 이후에도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연장을 가지러 왔다가 그의 모습을 본 채빙꾼들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기웃거렸지만 그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도, 위로를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지나치게 바빴다. 크리스토프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스벤을 구속하고 있던 밧줄을 풀어 준 다음, 나무의 잔해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주워 올렸다. 세게 내리친 커다란 종 안에 들어가 서 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웅웅거리고 심장이 뛰었다. 그는 참으려 애썼지만 계속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눈가를 훔쳐냈다. 자신의 운반용 썰매에 아주 작은 조각까지 남김없이 주워 모두 실은 다음에야 눈물이 멈췄다.

‘나무의 영혼이 돌아와 이걸 본다면 나를 탓할지도 몰라.’

클리프의 애정 어린 잔소리, 크리스토프를 생각하는 마음, 끝까지 참견을 놓지 않으면서 썰매를 매만지던 눈빛과 손길, 트롤 가족이 치장해 주던 손, 축하 인사, 따뜻한 미소... 모든 것은 산산이 조각나 형편없는 쓰레기 더미 속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는 저 사람들과 뭐가 다른 거지?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거지?

나한테 왜, 왜 이러는거지?

내가 이상한건가?

난 충분히 ’사람’다운가?


‘나는 이런 것들도 지키지 못한 쓰레기! 병신! 바보, 천치! 약해 빠졌어!!’

크리스토프는 양쪽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손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숨어들어가 온몸이 산산이 조각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기분이 그를 점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들었던, 알고 있는 온갖 종류의 욕설을 기억해 내려 애썼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나 같은 건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지도 몰라, 나 같은 건...!’

친구의 이상한 행동을 제지하려 스벤이 크리스토프에게 큰 코를 들이댔다. 그의 얼굴을 문지르고 몸을 비볐다. 비참한 기분에 빠져 있던 크리스토프에게, 익숙한 순록의 체취와 보드랍고 탄력이 있는 털이 와 닿는다.

“스벤...”

크리스토프는 순록의 목을 가득 껴안았다. 따뜻했다. 순록은 그의 몸짓에 맞춰 고개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크렁크렁 차오른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다. 참으려고 애를 써 시뻘게진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흐으...스베엔, 으..윽.”

그의 흐느끼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여기저기서 돌이 서서히 움찍거린다.


불다와 클리프는 크리스토프와 상당한 시간동안 함께 걸었다. 불다는 크리스토프의 손을 잡은 채, 클리프와 스벤은 뒤를 따랐다. 아무 말 없이 걷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라플랜드 숲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높지 않은 작은 언덕을 올라 반짝이는 별빛이 커다란 화면이 돼 눈 앞 가득 펼쳐졌을 때, 그들은 멈췄다. 진녹색 물결이 하늘을 가득 메우는 시기, 까만 하늘을 바탕으로 매번 새로운 마블링이 펼쳐지는 장면은 고개 들어 바라보는 누구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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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나쁜 생각 했어요 불다. 정말로 나쁜 생각이요.”

적막을 깬 것은 크리스토프였다.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를 잡고 있던 소년들의 팔을 밀치고 튀어 올라, 주먹을 날리고, 얼굴을 때리고, 몸 위에 앉아 모든 것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묵사발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다 같이 한꺼번에 터져 버리는 상상.

“...”

잔뜩 웅크린 채 무릎을 안고 얼굴을 뭍은 크리스토프의 주위에 앉아있던 불다와 클리프, 스벤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크리스토프..”

불다는 크리스토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트롤가족은 제게 정말 소중해요...하지만 전 다른 사람에게 제 가족이 누구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하는 크리스토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니, 네가 원하면 할 수 있어. 소중한 사람에게 말이야, 크리스토프.”

“아뇨, 난 말하지 않을 거에요. 난 저 사람들이 싫어요. 나를 바보 취급 한다구요. 저를 전염병처럼 피하구요! 사람들 속에 있으면 전 행복하지 않아요, 완전 반대에요, 사람들이 싫어요! 그런 사람들을 피해 여기로 오면 트롤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트롤이 아니에요! 회색이 아니고 이끼도 없고, 돌이 자라지 않고, 낮에 깨어 있으니까. 돌로 변해 구를 수도 없고. 아시다시피, 사람이니까요. 트롤이 아니라. 그런데 모르겠어요. 진짜 제가 뭔지. 불다, 저는 뭐죠? 저는 사람인가요, 트롤인가요?”

“넌 우리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해.”

불안한 눈빛으로 큰 눈을 도록 도록 굴리는 스벤이 크리스토프와 불다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기 싫어요.”

“해야 해. 크리스토프.”

“전... 제가 저인 게 싫어요. 저를 완전히 트롤로 만들어 주면 안돼요? 패비 할아버지는 그럴 수 있잖아요? 그쵸?”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은데,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이들이 너무 조용해서 크리스토프는 얼굴을 들었다. 모두의 안타까운 눈빛이 보인다. 스벤은 어느새 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엎드려 있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나 봐요...가끔 제가 사람인지, 트롤인지 헛갈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절 이상하다고 하는 걸까요?”

슬픈 표정의 불다는 크리스토프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많이 힘들었구나..”

“제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좀... 무서웠어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정말 무서워요. 하지만 불다나, 클리프나, 리틀락, 로코...내 가족들과 친구들...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분명히 내 앞에 있는데, 이렇게 옆에 있어주시잖아요, 그런데 저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아니 몰라야 한다는 게 가끔 이상해요. 네, 정말 많이 이상해요. 매일 아침 깨어나면 간밤에 만났던 트롤들의 모습이 마치 꿈을 꾼 것 같죠! 맞아요, 제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제가 진짜 사람이면 트롤보다 사람이 더 편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그저 뱉어냈다. 명백한 것은, 그동안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감정과 느낌이라는 사실이다.

“크리스토프, 너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서, 우리 가족이 된 거야. 넌 확실히 최고로 멋진 사람이야, 네 스스로를 믿으렴.”

“...멋지다구요? 제가요? 어디가요?”

울먹거리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클리프가 말했다.

“트롤의 생에서도 그렇지만, 내가 인간이라면 너처럼 그렇게 어린 나이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했을 거다. 얼음 채취 일 말이다, 크리스토프.”

힘없이 시선을 떨구고 있던 크리스토프는 눈을 크게 떴다.

“..얼음은 달랐거든요..다른 사람들이랑. 속이 투명하게 비치잖아요. 특히 호수 얼음은 수정같이 맑아요. 속이지도 않고 사기 치지도 않아요. 얼음은 정직해요.”

“그게 네가 얼음장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구나.”

힘없이 숙이고 있던 허리를 들어 올리며 클리프가 말했다.

“맞아요. 일은 힘들지만, 그런 얼음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져요. 욕심내지 않고 필요한 만큼 정확한 물이 굳어 얼어 있는 걸 캐낼 때면 그걸 보는 게 좋았어요. 치장하지고 않고 꾸미지도 않고 애써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데 그렇게나 멋질 수 있다는 건 놀랍죠...그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도요.”

어느새 크리스토프의 말에는 힘이 실리고 있었다.

“크리스토프, 우리 아들.”

불다와 클리프는 눈물로 얼룩진 금발머리 소년을 꼭 껴안아 주었다.

“그게 우리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란다, 크리스토프. 네가 어떤 존재든 상관없어. 따뜻하고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너 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크리스토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란다. 너의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지. 우리는 네가 너 스스로를 좀 더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왜냐면 우리들이 이미 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

크리스토프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 높은 해일이 밀어닥쳤다.

“저는,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끔 잘 모르겠어요. 트롤 계곡은 정말 좋고, 계속 있고 싶지만, 저는 일을 해야 하고요. 사람들 때문에 힘든데, 정말 힘든데 마주치지 않을 수도 없어요. 신경 쓰지 않으려고 진짜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게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전 지지 않을 거에요!”

불다의 손 위에 크리스토프의 굵은 눈물 방울이 뚝 떨어졌다.

“어떤 사람은 하루살이처럼 살지만 또 어떤 사람은 조개처럼 살지. 여기서 멀리 떨어진 바다 속 조개는 500년을 산단다. 긴 시간 동안 거센 조류를 묵묵히 건뎌 내는 거야. 하루 몇 시간 밖에 못사는 하루살이도 다르지 않아. 단 몇 시간을 위해 오랜 시간 고치에서 때를 기다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오직 네가 결정하는 거야, 크리스토프.”

그는 끅끅대며 눈물이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게 용을 썼다.

“..흐으...미안해요, 불다, 클리프, 흐윽,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그의 친구 스벤은 커다란 혀로 크리스토프의 얼굴을 핥았다. 그의 손을 꽉 잡은 불다와 클리프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불다와 클리프의 크리스탈이 영롱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에 위안을 받으며 크리스토프는 한참동안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크리스토프는 이제야 생각해 냈다. 사람들에게 맞고, 욕을 듣고, 사기를 당한 후 낙담하고 있는 그에게 패비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을.


어떤 것은 네 마음 속 힘으로만 이겨낼 수 있단다. 과거에 겪었던 일은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야. 경험을 통해 배워 나가는 것이지. 우리 모두는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거란다.


크리스토프는 심장이 두근댔다.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가슴이 뛰었다. 뿔에 랜턴을 걸고 앞장 선 스벤의 뒤로 불다와 크리스토프, 클리프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너에게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말해주렴. 우리가 너를 입양한 것은 네가 뭔가 문제가 있어서도, 불쌍해서가 아니라 특별해서였다는 걸.”

“그럴게요.”

난 나와 내 가족이 자랑스러워. 난 버려지지 않았어.

크리스토프에게는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이들이 있었다.그를 지탱해 주는 확실한 힘이 그의 곁에 생생히 살아 있다.






8.


새로운 썰매는 완전히 새롭지는 않았다. 채빙할 때 사용하는 썰매에 경주용 날을 만들어 붙였다. 전처럼 아주 완벽하지도, 꼼꼼하게 제작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크리스토프는 아이스 게임 행사에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준비를 모두 마친 크리스토프와 스벤을 배웅하러 트롤 친구들과 리틀락이 서 있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기, 혹시 행사를 보고 싶은 트롤 있어? 그리고 썰매 자리도 하나 비니까.”

“내가 갈게!”

손을 번쩍 튼 트롤은 리틀락이었다.

“완전히 빛이 내리쬐는 한 낮이 아니면 내가 도울 수 있을 거야! 잘 분장하면 나도 팀원으로 활약할 수 있겠지?

“좋아, 리틀락, 어서 썰매에 타!”

순식간에 크리스토프 팀이 결성됐다. 불다는 리틀락이 사람처럼 변장할 수 있게끔 이끼망토와 모자, 마스크를 준비해주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크리스토프 팀은 이른 새벽 길을 떠났다. 트롤 가족이 그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손을 흔들었다. 오전 일찍 경기가 잡히고 리틀락이 변장하여 햇빛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다면 돌로 돌아가는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경기시작 시간이 오후로 잡힐 경우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어차피 출발도 못할 뻔한 여정이다. 지나치게 신난 리틀락은 불다가 마련해준 변장 도구를 이리저리 사용해보며 스벤을 웃기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상황이야 어찌 됐든,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그토록 가고 싶었던 축제장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사람, 순록, 트롤. 세 명은 새벽 내내 노래를 부르면서 숲을 헤치고 달렸다.


동지, 크리스토프는 온 세계 얼음 장수들의 축제인 아이스 게임 현장에 와 있다. 함께 일하는 채취꾼들에게 말로만 들었던 축제 장소는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얼음조각과 커플 스케이팅, 썰매 레이싱을 즐기기 위해 잔뜩 기대한 열광적인 분위기는 눈과 얼음을 다 녹이지는 않을까 걱정 될 정도였다. 크리스토프는 아침 일찍 행사장에 도착해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들이 신나게 얼음과 눈을 가지고 게임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말 환상적인 행사가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도 전에 도착한 인파가 이 정도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이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크리스토프는 도착하자마자 경주 연습을 할 수 있는 트레일을 먼저 찾았다. 표지판은 불친절했지만 예상대로 멀리 보이는 언덕에서 참여자들이 썰매를 타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내가 맨 앞에, 그리고 리틀락 네가 내 뒤를 붙잡아.”

“알겠어.”

“사람들한테 모습이 보이지 않게 조심하고! 스벤, 가자!”

“무어엉!”

오늘따라 스벤의 표정도 무척 단호하다. 셋이 연습 트레일 앞에 도착하자 신청 부스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부터 오다니, 다들 정말 부지런한 걸?”

마스크를 단단히 동여매며 리틀락이 소근 거렸다.

“다들..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왔을 거야. 긴장된다...하지만 우린 잘 할 수 있을거야!”

크리스토프과 스벤은 배고픔과 긴장을 한 번에 해결하려고 당근을 우적우적 씹었다.

“이제 가자!”

그들이 일어섰을 때, 거센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북풍에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눌러 썼다. 어디쯤 육중한 물건이 날아가 부딪혀 굉음을 낸다.

“어어어어!”

한 순간이었다. 리틀락의 이끼 망토가 날아가 버린 것은. 그 어떤 말도 없이 리틀락은 그대로 돌로 변했다. 오전 햇빛이 강렬했고, 빛을 피할 수 있는 망토가 날아가 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어어... 리틀락..”

크리스토프는 한숨을 쉬며 썰매 위 평범하게 변해버린 돌 친구의 어깨 어디쯤을 토닥였다. 이제 그는 밤이나 돼야 트롤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됐다.

“3명이 한 팀이어야 해, 꼬마야.”

“저... 그래도, 우선 저와, 여기 제 친구 스벤인데요.”

“허허, 얘야, 이건 순록이잖니? 그리고 뒤에는.. 뭐야. 그냥 돌덩어리잖아. 장난치지 말고, 어른이나 친구를 데려와. 동물이나 돌 말고 사람 말이야. 바빠 죽겠는데 장난치지 말고 비켜. 다음 분.”

3명은 ‘사람’으로 구성된 3명을 의미했다. 동물이나 트롤이 아니라, ‘사람’ 3명. 크리스토프는 참가 요건에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섰다.

‘진짜 바보 같네. 여기까지 왔는데.’

그는 긴 한숨을 쉬었다. 참가자 자격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트롤 가족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떨궜다.

스벤이 크리스토프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껌벅인다.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언제 자기 차례가 오는지 연신 앞선 사람을 힐끔거렸다. 실망한 크리스토프의 표정과 한 발 앞서 자기 차례가 가까워졌음을 기대하는 이들의 표정이 엇갈린다.


“야, 너 뭐야.”

바닥만 보며 힘없이 걷던 크리스토프는 자신보다 한참 키가 큰 누군가와 세게 부딪혀 뒤로 나자빠졌다.

“어..으... 죄송해요...제가 잘못..”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 중, 그들이 키득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다시 한번 흔들고 위를 올려다 봤다.

“친구도 없는 게 뭘 하겠다고 여기까지 왔냐?”

“어...!”

비아냥대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챈 크리스토프는 황급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고 스벤의 안전을 확인했다. 그의 썰매를 부순, 마을 아이의 형과 그 무리들이다. 마을 아이는 이 난봉꾼 뒤에서 시선을 떨군 채 서 있었다.

“너 같은 쓰레기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돼. 더럽잖아. 여기 공기 맑은데 너 때문에 탁해져.”

“어디 가족이랑 같이 왔냐? 한번 소개 좀 시켜줘라.”

“그 뭐지, 산속에 있는 돌덩이가 가족이래. 하하하하하.”

“돌하고 말하나 보지. 돌덩이하고 인사하고. ‘안녕! 돌덩이들아, 내가 왔어.’이렇게. 으히히.”

“나 왔어! 어서 와!그럼 엄마 아빠가 돌덩이인거지? 돌덩이가 쟬 낳은거야? 뇌가 돌이겠네? 크흐흐흐흐흐.”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맘껏 조롱하고 깔보고 업신여기는 그들의 무례한 태도는 여전했다. 크리스토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쟤 봐라. 주먹 쥔다. 웃기네.”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크리스토프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 스벤과 썰매를 끌고 몇 발짝 걸었다.

“어떻게 썰매를 또 만들어 오긴 왔네. 그거 봐라,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전에 걸 부셔줬으니까 새로운 걸 만들 생각을 했잖아, 안 그래? 그 거지 같던 썰매...”

“..형 그만해..”

“아 그러고 보니 너도 고아원 출신이잖아. 넌 쟤가 왜 저러는지 알지?”

“그 말 하지 말랬잖아!”

크리스토프는 마을 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게 어디서 까불어? 요즘 지하실 맛을 못 봐서 그러지? 어어어?”

크리스토프보다 두 배는 체구가 큰, 마을아이의 형이 뒤로 넘어졌다. 그 위를 크리스토프가 타고 앉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두 쌍의 눈이 만났다. 하나는 당혹스러움에 가득 찬 눈. 다른 하나는 분노에 싸인 갈색 눈. 크리스토프는 꽉 쥔 주먹을 소년에게 겨냥했다.

“무섭다잖아!” 크리스토프는 소리쳤다.

퍽.

“걜 좀 내버려 둬!고아원 출신이 뭐가 어때서? 너하고 뭐가 다른데?”

크리스토프의 일갈에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얼굴이 가격 방향대로 보기 좋게 휙 돌아갔다.

퍽.

퍽퍽.

“자기가 원해서 고아원에 들어가는 애는 아무도 없어!”

뻐억.

온 힘을 주먹에다 싣고 연거푸 소년을 때리고 있는 크리스토프는 악에 받친 모습이다. 그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소년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주변에 서 있던 그의 동료들은 벙 찐 얼굴로 입만 벌리고 서 있다.

소년의 코에서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참혹해졌다.

“그만해! 우리 형 때리지 마!”

정신없이 그에게 주먹을 날리던 크리스토프의 팔을 잡아 챈 것은 마을 아이였다.

“네가 뭔데 우리 형 때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크리스토프는 마을 아이가 밀친 방향으로 균형을 잃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싸움 장면을 발견하고 달려온 소년의 부모는 크리스토프를 험하게 떼어냈다. 이들은 자신의 아들이 피를 흘리고 반쯤 눈을 감은 모습을 보자 매우 화가 났다. 크리스토프를 매섭게 노려보던 소년의 아버지는 손바닥을 높이 치켜들었다.

짜악.

크리스토프가 힘없이 나가 떨어진다. 그는 바닥에 어깨를 심하게 부딪혔다.

“너 괜찮니? 응? 괜찮아?”

피 흘린 소년 주위로 그의 친구와 가족들이 몰려든다. 이미 이들 사이로 구경꾼들이 한 가득이다. 한 쪽 팔로 상체를 일으키던 크리스토프는 이 상황이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입술 사이로 쎄한 맛이 기어 들어온다. 놀란 스벤이 그의 목 뒷자락 옷을 물고 그들과의 거리를 벌려준다.

“저 미친놈 보소, 우리 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웃고 있는 것 좀 봐!”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애나 데려가요!”

“저 미친 새끼, 부모도 없는 놈은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아휴,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크리스토프는 연신 히죽히죽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부어 오른 뺨을 한 손으로 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계속 웃고 있으려니까 이상하게도 눈물이 고였다. 해가 쨍쨍하고 푸른 하늘이 쾌청하게 맑은데도 비가 쏟아지는 게 이런 상황일까? 터져 나오는 웃음, 터져 나오는 눈물, 크리스토프는 이제 참지 않기로 했다. 얼굴을 덮는 것들을, 그저 내버려뒀다. 그는 괜찮았다. 괜찮아야만 했다.


크리스토프와 스벤은 미련 없이 행사장을 나섰다. 아무도 그가 가는 길을 막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많은 인파를 헤치고 밖으로 나오며, 행복한 얼굴로 손을 잡고 가족들과 입장하는 무리들을 수도 없이 마주쳤다. 아이스게임 축제 행사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은 얼굴 가득 막 솟아 오르는 꽃망울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경기를 즐겼다. 서로 손을 잡고, 크게 웃으며 껴안았다. 그들은 발을 굴렀고 환호했으며 박수를 쳤다. 올해 아이스 게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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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서사 3부작 중 마지막편입니다.

-본편이 모두 끝나면 3부작을 엮어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감상 댓글 달아주시는 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렌티 오티와 서적을 추첨해 선물드리려고 하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본 서사는 내일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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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일반 오티와 문학 렌티 디자인이 완성됐습니다. 오늘은 일반 오티 하나 먼저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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