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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우승작] 얼어붙은 이방인 - 7

엘사v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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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아토할란 - 19231122


나는 기억을 찾기로 했다. 다른 수많은 이유도 있었지만, 비욘의 활약도 무시할 순 없었다. 이 바보는 삶 전체를 나에게 바쳤으니까. 나는 단 한 번뿐인 비욘의 삶을 빚졌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 놓칠 수는 없었다.

안나와의 추억을 찾는 일이 어떤 느낌을 줄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추억하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비욘을 생각하면 살짝 그걸 건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대로 견딜 만할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기억을 찾는 일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트롤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아토할란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쉬웠지만 찾는 것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안나는 총 66년을 살았다. 1820년부터 1886년까지. 나는 이 기간을 아토할란의 기억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가야 한다. 기억을 지운 대가는 상당히 컸다. 물론 내가 나올 때쯤에는 비욘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비욘을 보는 마지막이다. 비욘은 이리스에게 마지막 순간을 부탁했다. 눈의 여왕의 사인을 가진 대가였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들어간 순간부터는 별달리 할 일은 없었다. 지금부터 66년 뒤, 19891222일에 이곳을 찾아오기만 하면 되었다. 이리스는 흔쾌히 약속했다. 자신도 이 세상에 없다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부탁하겠노라고 말했고, 나는 그들에게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욘은 처음으로 1222일이 아니라 그 한 달 전인 1122일에 이곳에 도착했다. 게일에게 편지를 부탁했기 때문에 나는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아토할란은 너와 같아. 모든 걸 얼려버려서 기억들을 영구히 보존하지. 눈의 여왕에 정말 어울리는 장소야."

비욘이 말했다. 비욘과 나, 그리고 이리스는 기억의 돔의 소파에 누워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비욘에게 아토할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 기억들은 시간순으로 차곡차곡 쌓이지. 눈이 내리고 또 내려서 점점 층이 생기는 것과 같아. 그 얼음층에서 1820년부터 1886년까지 아렌델의 기억을 뽑아내서 네게 보여줄 거야. 거긴 정말로 아렌델 같을 거야. 색도, 냄새도, 소리도 모두 존재할 거니까. 하지만 대화를 하거나 간섭을 할 수는 없어. 말 그대로 이곳에 새겨진 기억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넌 지켜볼 수밖에 없지. 넌 그냥 유령처럼 기억 사이를 배회하게 될 거야.”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그게 설령 추악한 진실일지라도 나는 흘러간 역사를 보듯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리고 들어가면 너 혼자뿐이야. 아무도 널 도와줄 수 없어. 66년 동안 모든 걸 견뎌내야 하지. 아 어쩌면.”

어쩌면?”

네가 도와줄 수도 있겠다. 넌 이런 일을 대비해 놨을 거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야. 네가 네게 메시지를 남겼다고 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우습게도 안나가 내 기억을 지운다고 하는 순간 다시 기억을 찾기 위한 물밑작업을 한 것 같다. 아마도 안나는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었겠지.

그리고 단 한 가지, 심연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몰라. 저기에 들어가 본 사람은 너뿐인데 넌 기억이 없잖아. 여길 연구하면서 알아낸 건 여기가 마치 의지를 갖추고 행동한다는 거였거든. 뭘 위해서 기억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고. 위험은 그것뿐이야. 준비됐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욘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내 기억을 찾기 위해서 대대적인 아토할란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올해 1222일에도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 보았다. 아토할란에 내리던 눈을 그치게 했다. 구름을 걷어내고 햇볕을 불러왔다. 그간 차가운 어둠에 묻혀있던 아토할란이 선명하게 바다 위에서 빛났다. 안나가 내 곁에 있는 것만 같은 따뜻함이 좋았다.

준비는 끝났다. 나는 이들이 약속을 잊는다는 상황도 떠올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욘이 죽는다면 어차피 이곳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럴 바엔 아토할란과 하나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토할란만은 영원할 테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안나의 기억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자연과 인간을 잇는 다리가 아니라 정령 그 자체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억의 돔 중앙에 섰다. 비욘은 중앙에 기둥처럼 솟아있는 기계 장치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수많은 안나의 기억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안나부터 늙어서 이렌느 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때의 안나까지. 모든 시간, 모든 장소의 안나였다. 곧 있으면 내가 보게 될 그런 기억들이었다.

비욘.”

나는 비욘을 불렀다. 비욘은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비욘을 꼭 안아주었다.

널 전령으로 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그럼, 당연하지. 난 아렌델에서 널 만났던 유일한 인간일 테니까. 앞으로 다시는 없을 기회고.”

비욘도 날 꽉 껴안았다. 그가 말했다.

날 선택해줘서 고마워. 그동안 정말 행복했거든. 너와 이야기하는 순간, 눈의 여왕님을 보는 매 순간이 내게는 행복 그 자체였으니까.”

절대 잊지 않을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된다고 해도. 영원히.”

당연하지 그럼 날 잊으려고 했어? 난 그냥 전설 속의 눈의 여왕이 영원히 날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됐어. 누가 그런 영광을 누려 보겠어?”

그는 여전히 킬킬거렸다.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또 무릎을 굽혀 옆에 있는 이리스도 안아주었다.

이리스, 잘 부탁해.”

네 여왕님.”

이리스가 힘차게 대답했다. 내가 돌아오는 날,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이 아이에게 달렸다. 이 아이가 평생을 살아간 뒤, 날 기억이나 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꿈속 같은 일이라고, 그냥 어릴 적 겪었던 동화 같은 일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 영원히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평생에 해당하는 세월이 나에게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 눈의 여왕이자 다섯 번째 정령인 나에게 주어진 그런 책무. 나를 스쳐 간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 나는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무려 66. 한 사람의 일생만큼의 시간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해야만 했다. 이 순간이 아니면 기회는 없으니까. 언제든 심연 속으로 뛰어들 수는 있지만 날 빼내 줄 사람은 이리스밖에 없다.

나는 이제 심연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와 딸. 한 남자의 일생과 한 여자의 일생에 나는 들어가 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그곳에서 뭘 보든지 간에 나는 행복했었다고 말해 둘게. 우리 눈의 여왕님은 모든 걸 자기 탓이라고 여겨서 탈이니까.”

내가?”

그럼 아니야? 빨리 가. 눈물 날 거 같으니까. 만남은 길게. 이별은 짧게!”

나는 뒤돌아서 비욘의 뺨을 잡고 그의 이마에 키스해주었다. 비욘은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세상에 비욘의 얼굴이 그렇게 빨개진 건 처음 봤다. 어쩐지 복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마워. 비욘.”

?”

나 이제 여긴 평생 안 씻을 거야.”

!”

농담, 아니 진담, 아니 모르겠다. 빨리 가.”

나는 한 번 피식 웃으면서 다시 뒤돌았다. 저길 씻던지 말든지 내가 알게 뭐람.

좋은 여행이 되길. 눈의 여왕님.”

비욘이 예를 갖춰 인사했다. 나는 그에게 미소 지어주고는 심연으로 뛰어내렸다. 그 어둠은 차갑고도 따뜻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빠르게 끌어당겼다. 갑자기 우스워졌다. 내 동생의 마지막 부탁을 저버리는 일은 즐거웠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일을 결국 저질러 버린 것이다.

검은 공간. 단색의 나무와도 같은 기둥들이 서 있다.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내 손에 서리가 끼고 있었다. 나는 이게 춥다는 감각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익숙했다. 예전에도 한 번 겪은 일이라는 거다. 내 손과 발은 점점 푸른색의 얼음으로 뒤덮였다. 다리를 타고 올라온 그 얼음은 몸을 거쳐 목까지 치고 올라왔다.

바로 그 순간, 비욘의 비명이 들려왔다.

? 뭐야? 엘사! !”

, 눈을 타고 온 얼음은 드디어 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저 높은 곳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상당히 다급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끝까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이대로 아토할란과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해도 각오한 일이었다. 나는 어둠에 잠식해 들어갔다.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나는 그렇게 내 과거 속 66년의 여행길에 올랐다. 안나와의 추억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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