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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우승작] 얼어붙은 이방인 - 17

엘사v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1: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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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안나의 그런 표정은 처음 본 것 같다. 확실하게. 아니, 평생이라고 해봤자 15년 조금이지만.

얼음성이 있었던 곳, 지금은 완전히 바위로 변해버린 그곳에서 안나와 크리스토프, 스벤 그리고 마시멜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엘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다시 엘사 특유의 장난기가 도진 것 같았다. 엘사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엘사는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킬 것 같은 얼음성의 실종에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나도 어쩔 수 없이 저 엘사와 많은 걸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크리스토프, 아까 눈꽃 봤지?”

그래. 엘사가 틀림없어. 그때랑 똑같았거든.”

왜 얼음성을 없애 버린 거지? 내가 얼음 마녀라고 해서 화가 났나? 아니면 깜짝 파티하려는 걸 알고 날 놀리는 거야?”

안나. 누구라도 그런 쪽지를 놓고 왔다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더군다나 오늘은 그 일을 겪고 처음 있는 생일이잖아.”

아니, 그렇다고 이걸 없애버려? 대체 왜?”

큭큭대며 대화를 듣고 있던 엘사가 한 번 손짓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커다란 눈꽃이 안개가 끼는 것처럼 서서히 생겨났다. 싸라기눈처럼 날리던 눈은 곧 굵은 눈송이가 되어 떨어졌다. 안나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다가 외쳤다.

언니! 장난치지 말고 나와! 진짜 화난 건 아니지?”

숨어있던 엘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점점 다가왔다.

화난 거 아니야. 안나.”

그리고 엘사는 안나에게 손짓했다. 겨울용 옷을 입고 있던 안나의 옷이 변하기 시작했다. 얼음성에서 입고 있던 그 옷으로. 안나의 옷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어깨 부위부터 서서히. 안나가 순식간에 얼음 결정에 둘러싸이더니 곧 엘사가 입었던 드레스로 변했다. 다만 푸른빛이 아닌 초록빛이었고 활발한 안나에 맞게 치마폭은 엘사의 그것보다는 아주 넓은 모양이었다. 안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춥지는 않지? 잘 조절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언니?”

생각해보니 저 성은 내가 지은 거잖아? 한 번쯤은 너와 함께 만들어보고 싶었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그 기회를 내게 줄 수 있겠어?”

어쩌면 저렇게 능청스러울까. 외교에서도 저런 능력을 발휘한다면 상대가 껌뻑 죽겠지. 예전에 나였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크리스토프. 얼음성이 만들어지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엘사가 그렇게 물었다. 크리스토프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럼요. 엘사. 이걸 처음 봤을 때부터 내 소원이었어요.”

너무 늦었네요. 빨리 보여줄 걸 그랬죠?”

엘사는 그러면서 왼손으로 안나의 오른팔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안나와 팔을 나란히 세웠다.

잘 봐 안나.”

엘사의 손에서, 그리고 안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는 계단 일부가 되었다. 얼음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던 계단이었다. 안나는 어릴 적 마법을 보여 달라고 떼쓰던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번엔 네가 생각한 모양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졌어. 안나. 어떤 모양이 좋을까?”

. 계단은 생각하지 않을래. 난 원래의 계단이 좋아. 이제 뭘 하면 돼?”

안나는 이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엘사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계단을 가리키며 외쳤다.

달려! 저 끝까지. 내가 따라갈게.”

안나가 눈으로 덮여 부드러운 첫 번째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눈은 사방으로 퍼지면서 매끄러운 얼음만이 남았다. 그리고

안나는 달렸다. 손을 쫙 펴고 마치 대관식이 있던 날 자유를 만끽하던 그 표정, 그 모습 그대로. 엘사가 뒤따르며 마법을 뿜어내었고 그에 따라 계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눈으로 빛나는 계단은 점점 매끈한 얼음으로 변해서 두 자매는 계단을 행복한 모습으로 오르고 있었다.

두 번째 여행에서 우리들의 비극을 봤기 때문일까. 지금 펼쳐지는 나와 안나의 추억에 내 눈에선 눈물이 살짝 흘러나왔다. 66년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느꼈던 이 감정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엘사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첫 번째 얼음성을 지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안나의 표정에서, 그리고 엘사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그건 해방감이었다. 13년간 숨겨왔던 마법을 해방하는 폭발. 그때 도망쳤던 엘사는 마법을 마음껏 썼을 거다. 몇 개월 전 고작해야 펜 하나 얼리고 깜짝 놀라던 엘사였다. 대관식에서 마법을 들킬까 불안에 떨던 엘사였다. 엘사에겐 이런 힘이 있었고 그때 마음껏 자신을 즐겼을 거다. 다름 아닌 과거의 내가.

엘사는 지금 그 감정을 고스란히 자신의 동생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것처럼 정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나는 그제야 기억을 지우기 전에 얼음성을 없애버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얼음성은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안나와 함께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철저하게 안나와의 추억을 지워야 했으니까.

조심히. 이렇게.”

엘사는 안나의 뒤에 꼭 붙어서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안나도 그대로 따라 했다.

어떻게 만들어볼까? 생각한 거 있어?”

아렌델 성하고 비슷하면 어떨까? 거긴 우리 집이니까. 항상 여기에도 우리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 언니도 여길 보면서 아렌델을 생각했으면 좋겠어.”

엘사가 미소 지었다.

그래. 알았어. 이제 시작할게. 발 쿵! 준비됐어?”

두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 번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발을 내려찍었다.

쿵 하고 떨어지는 두 자매의 발끝에서 커다란 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사방에서 얼음 기둥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안나는 그 속에서 엘사에게 디자이너처럼 이곳저곳을 지시했다. 이곳은 조금 낮게. 이 테라스의 울타리는 조금 높게. 엘사의 날카로운 얼음 문양이 깃들고 안나의 태양과도 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디자인이 더해져서 마침내 완성된 그 성은 아렌델 성과 똑 닮았으면서도 엘사가 만들었다는 걸 확실히 알게 해주는 눈꽃 장식이 이곳저곳에 박혀 있었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아렌델 성과도 같았다.

두 자매는 얼음성의 한 가운데, 아렌델 성의 연회장 같은 곳에서 손을 맞잡았다.

언니. 마치 이건 내 생일 선물 같잖아. 오늘 언니 생일인 거 알고 있었지?”

너랑 이 성을 만든 게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네 덕분이야. 고마워.”

에이 그래도. 아직 깜짝 파티가 남아 있는걸.”

여기서?”

아니. 여기서 이제 그걸 어떻게 해. 우리 집에서 해야겠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겠지?”

엘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최고의 파티가 될 거야. 그럼 난 여기에 좀 있다가 갈게. 누가 미리 그걸 알면 안 되니까.”

안나도 한 번 웃었다. 그리고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함께 먼저 아렌델 성으로 떠났다.

엘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얼음 성 2층 테라스에서 멀어져 가는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파티를 기대하며 엘사에게 붙기로 했다. 어떤 파티가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었다. 나는 올라프를 안나에게 같이 딸려 보내고 엘사를 보고 있었다. 엘사는 테라스의 문을 닫았다. 파티를 준비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러고 보니 엘사는 홀로 이곳에서 뭘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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