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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우승작] 얼어붙은 이방인 - 19

엘사v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1: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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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렌델 성 - 1842912/ 현재 1953/ 남은 시간 의미 없음


나는 그때부터 수많은 시간을 여행했다. 날 구해줄 사람은 이제 없다. 내 기억 속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벌어졌던 파티는 정말 좋았다. 비욘을 나름 추모한다고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비욘은 정말로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곳에서 나가야만 한다. 빈 곳이 가득했던 도표는 점점 채워지고 있었다. 내게 남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었다. 그걸 활용해야 했다.

1225일 아렌델 성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열리는 연말 축제에서 기뻐하는 두 자매와 달리 나와 올라프는 축 처져서 그때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때 왕실에서 준비한 큰 파티에 수많은 아렌델 사람들이 참석했었다. 연회장은 사람들로 꽉 차서 여왕과 공주를 기쁘게 해주었다.

비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토할란 밖, 그러니까 현재가 1941년에 들어와서부터였다. 정해져 있는 미래처럼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나의 전령. 나만을 위했던 그 바보 같은 전령은 그렇게 아토할란을 고칠 방법을 찾다가 죽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이곳을 고칠 방법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내가 그 전에 이곳을 탈출해서 그를 구하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비욘과 이리스, 날 기억하던 유일한 인간이 확실히 죽었다.

한편으론 안나와의 추억은 그만큼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안나는 정말 태양과도 같았다. 눈의 여왕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자 눈의 여왕을 언니로 둔 유일한 인간. 그리고 눈의 여왕이 가진 유일한 동생. 그래서 나는 안나를 기억해야 했다.

안나와의 추억들은 역시 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여왕이 된 안나와 차를 마시던 추억을 보았다. 안나의 악몽으로 시작된 전염병 사태를 해결하던 두 자매의 모험을 보았다. 13년간 갇혀 살며 크리스마스 날마다 눈사람 그림을 교환하던 그 시절을 보았다. 아토할란에서 부모님을 기리며 고립되어 있던 그 시절을 얘기하며 웃음 짓고 눈물짓는 자매를 보았다.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결혼식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렌델의 여왕을 보았다.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딸, 이렌느의 탄생을 보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울고 있는 크리스토프를 보았다. 매티어스가 드디어 탈출하여 훈장을 받고 아렌델 최고의 군인으로 칭송받는 것을 보았다. 노덜드라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안나 여왕이 과거의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안나의 심장에 얼음을 박아 넣고 얼어붙은 안나를 껴안고 우는 것을 보았다. 그 밖에 말로 다 하지 못할 많은 추억을 보았다. 하나하나 모두. 기억에 갈무리할 만한 좋은 사건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자매를 합쳐도 우리 같은 관계, 우리 같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마법이 사라진 요즘 같은 시대에는.

나는 그렇게 세 사람, 아니 나를 스쳐 간 모두의 평생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아렌델 성에서 아토할란으로 간 횟수만 해도 수십 번에 이르렀다. 그리고 단서를 모두 모아 이날로 올 수 있었다. 내가 아토할란으로 떠났던 날. 내가 아토할란을 발견하고 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던 날.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이 날. 아마도 심연으로 뛰어들었던 그 날. 안나가 날 구해줬던 날. 나는 이 시간에서 단서를 구해야 했다.

이 사건은 새벽에 깨어난 엘사가 마법의 숲의 정령을 깨운 일로 시작되었다. 몇 번째 여행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두 번째일 거다. 내 대관식이 있었던 시간대로 여행을 떠났던 날 벌어졌던 우박 사태는 바로 이 시간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엘사와 안나, 크리스토프와 스벤은 아렌델을 패비에게 잠시 맡겨두고 아토할란으로 떠났다. 아니, 저 당시에는 어디로 갔는지도 몰랐겠지만. 이들은 마법의 숲을 통과하고 난파선을 발견했다. 나는 다른 시간대를 여행하면서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시는지 알게 되었지만, 이 시간대의 엘사에게는 당연하게도 충격이었나 보다. 엘사는 자신을 탓했고, 안나는 그런 언니를 위로해주었다. 문득 내게 안나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새도 없이 두 자매는 떨어졌다. 엘사가 위험한 어둠의 바다를 홀로 건너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또다시 선택해야 했다. 엘사의 각성과 안나와의 추억 중에서.

나는 엘사 쪽을 올라프에게 맡겼다. 엘사가 정령으로 각성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안나가 날 어떻게 구했는지 그 방법을 알아야 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나가 댐을 부쉈다. 안나가 댐을 부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 시간대의 미래 시점에서 아렌델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었거든. 그 순간, 나는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바위 거인이 댐을 부술 때 그걸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감격과 더불어 목숨을 건 안나의 선택에 전율을 느꼈고, 다른 하나는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소름이 끼쳤다는 거다.

안나는 이제 없다. 물론 댐도. 진실을 알게 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거로 엘사가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냥 기록에 전해진 그대로였다. 뭔가 두 자매 사이에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안나가 여왕이 되고 엘사가 노덜드라에 남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 사건이었지만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슬픈 결말이 되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비욘도 이리스도, 안나도 죽었다. 날 구해줄 사람은, 아니 날 기억하고 있는 사람조차 이제는 어디에도 없었고 이제 나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영원히. 아토할란의 마지막 웃음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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