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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 역사 분쟁의 팩트, 결론앱에서 작성

ㅇㅇ(110.70) 2021.04.24 22:40:06
조회 789 추천 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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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예전부터 가끔 민족 얘기나 친일파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쓰고 싶었던 건데 이 부분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교환했으면 좋겠다. 


1. 
nation의 번역어인 '민족'이라는 단어는 1900년에 황성신문에 처음 쓰였는데, 그때 쓰인 '민족'의 의미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고 넓은 의미에서 '동양인 전체'라는 뜻이었다.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한국, 중국, 일본이 지금처럼 아예 다른 나라가 아니었거든. 그때의 국가란 그냥 청 황제의 영토, 조선 왕의 영토, 이런 식으로 군주 개인 혹은 왕실의 사적 소유물 같은 거였지. 

그런 와중에 서구 열강이 아시아 국가를 차례로 정복하며 이권을 가져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에 맞서는 아시아인의 연대와 같은 의미가 됐다. 청일전쟁 때 조선은 중립을 취했지만, 러일전쟁 때는 매우 적극적으로 일본을 지지하고, 일본의 승리를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이유가 그거지. 

우리는 종종 태평양전쟁 이전의 일본, 심지어 한일합방 이전의 일본마저도 태평양전쟁 시기의 파시즘체제와 동일시하며 역사를 바라본다. 그러나 일본이 파시즘체제로 전환한 것은 단지 도죠 수상 시기의 짧은 몇 년 뿐으로, 그 이전의 다이쇼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였고, 그보다 더 이전의 메이지 시기에는 아시아 최초의 입헌국가 체제였지.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군주제(막부체제)를 무너트리고 자유주의와 시민주권을 쟁취한 나라였고, 메이지유신은 일종의 혁명이었던 거다. 더군다나 만주사변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은 커녕 변방의 작은 약소국에 불과했거든. (실제로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길거라고는 일본 정치인들도 믿지 않았어)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친일파'를 제국주의자와 동일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조선에는 청나라를 종주국으로 삼아 조선의 정치체제를 후진적으로 유지하려 했던 대원군과, 민중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민비, 무능하고 나약한 왕 고종이 있었지. 셋 다 세습신분제 폐지와 헌법 제정과 같은 근대적 요구를 억누르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근데 마침 옆나라 일본은 자국의 힘만으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당시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전제군주제를 무너트리기 위해 일본과 연대했던 것이고, 이것을 친일 수구 매국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친일파의 포지션은 급진적인 쪽이었던 거지. 

조선의 왕권은 청 황제의 승인으로 그 정통성을 인정받아왔는데, 청나라가 몰락하면서 자신의 권력도 위태해지자 무능한 왕 고종은 러시아 영사관으로 도망가버린다. 그리고 아관파천 시기동안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종 혼자 멋대로 조선의 철도부설권, 금광채굴권 등을 외국에 팔아넘기지. 이 시기동안 조선 말기의 모든 수탈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고종이 돌아온 후에 한 일이 뭔 줄 알아? 자기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면서 반발하는 민중을 무력으로 누른거지. 

그러자 민중은 즉각 만민공동회를 열어 대응한다. 모든 계급이 자유롭게 모인 만민공동회는 왕이 자기 맘대로 국가의 이권을 외국에 팔지 못하게 할 것,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보장할 것, 의회를 수립하고 헌법을 제정할 것 등을 요구했는데 1898년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열렸어. 작년의 촛불집회랑 비슷하지? 보수언론(황성신문)과 종교(유생들)가 고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만민공동회를 반역도당으로 몰아붙인 것도 요즘이랑 비슷해. 그 이후의 일도 비슷한데 고종은 만민공동회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면서 질질 끌다가 느슨해질 무렵에 군대를 동원해 때려잡았거든. 이 만민공동회를 주도했던 게 독립협회고, 독립협회를 주도했던게 서재필,윤치호,이완용 등이야. 우리가 매국노라고만 교육받아온 그 이완용 맞아. 그 시기에 이완용은 대신 직책을 파면당하고 독립협회 간부에서 물러나야야 했지만, 나중에 일본통감의 지원으로 다시 정부관료가 되었고,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다. 즉 오늘날 국회의 원형이 되는 기관을 이완용이 만들었다는 거지. 


후에 체결된 한일합방은 고종을 지지하는 황제파 극우세력에게는 매국이자 반역이었지만, 자유주의 입헌주의자에게는 전제군주를 몰아내고 자유와 근대로의 도약이었다고 보는게 맞아. 사실은 앞서 말했듯이 애초에 '민족'의 의미는 동양인 전체였기 때문에 매국이라든가 반민족이라는건 성립할 수가 없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온,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상이란 사료에 근거한 역사가 아니야. 


실제로 '항거'라고 칭해지는 것의 대부분은 고종 개인, 혹은 황실에 대한 봉건적 충성에 근거한 시대착오적이고 극우적인 거였거든. 안중근의 저격이 대표적인 극우테러인데, 한일합방에 반대하던 이토 히로부미(그는 헌법을 만들고 일본을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꾼 개혁적 인물이다)를 죽여준 덕분에 한일합방이 일어났으니 그것도 웃긴 일이지. 한일합방 이후 주로 기존 기득권 세력이었던 양반지주, 특히 유교 교육을 받은 계급이 지속적으로 봉기를 일으켰는데 1919년에 고종이 죽자 그런 봉기가 한꺼번에 다 없어진다. 그러니까 일제에 항거했던 민족주의란 원래 없었고 고종에 대한 충성심만 있었던 거지. 그 이후에 일어난 항일투쟁은(주로 만주에서 일어나는데) 우리도 알고 있듯이 공산주의 계열의 무장투쟁이고, 이것도 당연히 민족주의는 아니다. 


요약하자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그 무렵, 한국인 혹은 한국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조선은 전제왕정이었고 그것도 사회변혁의 요구를 폭력으로 짓눌렀지. 마침 옆나라 일본은 메이지유신이라는 자유주의 혁명에 성공했고, 조선의 진보적 인사들은 일본을 지지하고 일본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 시기 '친일'이라는 건 반민족 수구 행위나 매국이 아닌, 아주 진보적인 거였다는 것. 

참고로 한일합방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당하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한일합방은 고종이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정당하지 않다고 배워왔지만, 이때는 이미 만민공동회에서 요구했던 것이 이루어져, 국가의 업무를 왕이 아니라 내각이 결재하도록 되어있었거든. 그리고 내각 대신들은 투표에 의해 뽑힌 사람들이었고.(물론 오늘날과 같은 보통선거에 의한 것은 아니고, 투표권은 소수 귀족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 시대에는 유럽에서도 참정권은 귀족과 부르주아계급에 한정되어 잇었거든) 


당대의 가장 극단적인 황제파였던 장자연(황성신문 주필이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조갑제쯤 되는 사람이지)이 시일야방성대곡에서 한일합방을 맹비난했는데, 그 이유가 고종의 재가를 얻지 않았다는 거였지. 전제군주의 의견을 다수내각의 의견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것으로 봤다는 점에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수구적이지. 시일야방성대곡에서도 '민족'이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동양 3국의 우호를 해친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지. 그러나 장자연은 고종이 죽자마자 일본 지지(정확히는 천황지지)로 돌아선다. 군주제 지지자는 군주가 죽어도 계속 군주제 지지자로 남나봐. 


2. 
그렇다면 오늘 날처럼 '민족'이라는 단어가 중국인, 일본인을 제외한 채 '한국인'만을 지칭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말하자면 '한국인'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은 언제일까? 최근 들어서야 일방적이고 종교적인 '민족'에의 믿음에서 벗어나서 이런 연구가 시작되고 있어.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학자는 일본의 패전직후 혹은 이승만 정부수립부터로 본다. 또 어떤 학자는 박정희 정권시기부터로 본다. 놀랍지만 어떤 시기로 보든지간에 아무튼 최근 일이라는 거지. 다시 말하자면 그 이전에는 '한국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 '우리는 한 민족, 우리는 단일민족' 이런 인식이 없었다는 거지. 

그 시기에 왜 한국인만으로 한정된 '민족' 개념이 나타났는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다시 일제시기의 역사를 들추어 볼 필요가 있다. 아까 말했지만 파시즘 체제 이전의 일본은 자유주의 체제였는데, 특히 1920년대에 그 자유주의가 극에 달한다. 우리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부르는 시대가 도래한거지. 이때 처음으로 오늘날과 같은 보통선거가 실시되거든.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922년 아니면 24년일거야. 근데 여기서, 우리는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놀랍게도 그 때 일본본토에서 처음 실시된 보통선거에서, 조선인과 대만인도 모두 투표권을 취득했다는 것. 이것은 말하자면 일본인과 조선인, 대만인 모두에게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주었다는 것이지. 다시 말하자면 조선인은 피지배민족, 피정복민족이 아니라 '일본'을 구성하는 '국민'이었다는 것. 


게다가 일본에서도 '민족'이라는 단어는 마찬가지로 '동양인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일본민족/조선민족이라는 구별은 없었어. 오히려 '같은 국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 특히 학계에서 '일선동조론'이 정설로 인정되었는데, 호시노 히사시 등의 역사학자들이 '일본 황실은 조선에서 도래했으며 신라의 후예이다'라고 주장한 데에서 비롯된 거지. 이런 주장은 현재에도 정설이다. 마찬가지로 가나자와 쇼사부로는 한국어, 일본어, 류큐어를 연구했는데 그 모두에 동일한 문법체계와 동질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원래 같은 언어에서 진화된 것으로 보았지. 이것도 지금까지 정설이야. 흔히 '내선일체'라고도 하는 이런 연구들은, 조선인에게 일본 정부에 대한 복종을 요구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실제로 같은 민족이라고 인식했던 당시의 시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 시기의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라 국민지역, 즉 오늘날의 한국으로 치자면 전라도나 경상도와 같았다는 것.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받고 일본 국민으로 인정받았다는 것.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지. 비록 조선반도에서는 보통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원래는 곧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31년에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파시즘체제로 바뀌기 시작했고, 보통선거가 미루어진 거지.) 조선반도는 물론 만주의 조선인들, 그리고 아메리카나 유럽에 가 있던 조선인들에게도 모두 일본 국적이 주어진다. 외국에서 조선인은 일본 영사관의 보호를 받았으며 특히 만주에서는 일본군의 보호를 받았지. 

이태준의 소설 '농군'은 만주로 이민간 조선인들이 중국인을 냄새나는 개돼지라고 업신여기며 논밭을 빼앗아 논농사를 짓는 내용이다. 이건 만보산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조선인이 남의 땅에 가서 논농사(중국 토민은 밭농사를 짓기 때문에 옆에서 논농사를 지으면 농사를 망치게 됨)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일본인이었고 일본군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조선인을 '식민지의 억압받는 민족'의 위치에 놓아야 할까, 아니면 '식민지를 수탈하는 침략민족'의 위치에 놓아야 할까? 

싱가폴 초대 총리인 리콴유의 자서전에는, 그가 젊었을 때 한국인을 처음 보았던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리콴유 자서전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그 때문인지 한국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한국인들은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할 당시 이끌고 온 두 외인부대 중 하나였으며, 다른 외인부대는 타이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군을 돕고 있던 한국인들은 몹시 거칠게 행동했고, 일본 군인들만큼이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인에 대한 리콴유의 이런 묘사는 동남아시아인의 눈에 비친 조선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었는지를 잘 드러내주지. 우리는 우리가 전쟁과 제국주의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진짜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야. 


태국에는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이 있는데, 전범국가의 국기가 게양된 곳에 태극기가 걸려있어.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조선인 병사가 포로수용소의 감시병으로 나오는 것은 거짓이 아닐거야. 실제로 전쟁 후 전범재판에서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던 조선인들이 A급 전범이 되어 사형당했다. 연합국 포로들에 의해 조선인 병사들에 의한 포로학대가 광범위하게 증언되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당시에는 조선인이고 일본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어. 동남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이 아니라 서구열강의 압제에 맞서는 해방전쟁으로 인식했거든. 그건 단지 일본의 교묘한 전쟁 합리화가 아닌, 그 시기의 진짜 '국민정서'였어. 사실 파시즘이란 압도적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정책만 수행하는 거거든. 조선인에게 일본의 전쟁이란 '남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쟁'이었다는 거지. 

그런데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등한 자격의 국민으로서 일본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고, 만주나 동남아시아 등 '식민지'에 대한 수탈에 참여하였고, 특히 태평양전쟁 때에는 군대에 자발적으로 참전하였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접했을 때, 그로부터 얻게 되는 결론은 무엇인가? 바로 이거지. 우리도 전쟁범죄자라는 거. 맹목적인 반일감정에서 벗어나 역사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우리도 져야 한다는 거지. 또는 파시즘체제의 희생양에 대한 속죄를 우리도 해야한다는 거지. 물론 '그 전쟁은 내가 저지른 게 아니다'라고 말할테지만, 그렇게 치면 지금의 일본인이 저지른 것도 아니지. 전쟁범죄는 지난 시기의 일본이 저질렀지만, 그 지난 시기의 일본이란 한국과 대만이 일본과 동등한 자격으로 합쳐진 나라였다는 것. 


바로 여기서 '한국민족'이라는 가짜 관념이 등장하게 된다. '민족'의 범위가 축소되어 '한국인'만을 가리키게 된 거지. 왜냐?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위치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거든. 패전 직후 독일에서 떨어져나온 오스트리아와 정확히 동일해.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심지어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인이었음에도,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독일에 떠넘기고 전쟁기간동안 오스트리아인이 입은 피해를 열거했지. 그러면서 매우 손쉽게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전쟁의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한국도 정확히 그렇다는 거지. 파시즘체제 하에서 조선인에게 가해진 수탈은 일본인에게도 동일하게 가해졌어. 사실 우리가 입은 피해는 일본인도 똑같이 입었거든.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일본인으로부터 일방적인 수탈과 착취를 당했고, 완전히 결백한 피해자라고 주장하지. 이것이 '민족'의 의미가 '한국인'으로 한정된 이유야. 

한국, 한국인이라는 민족개념은 예전부터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패전 이후 전쟁의 책임감으로부터 도피하고 스스로를 무죄, 전쟁피해자의 위치에 두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민족 이데올로기는, 조선인이 일본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전쟁을 용인했던 과거에 대해 침묵하고, 오히려 과거에 대한 완벽한 순결성을 가지게끔 되어있다. 바로 이것이 민족주의를 억압이 아니라 저항으로 인식하며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이유야. 그러나 조선인이 전쟁과 제국주의에 관해 무죄이며, 오히려 순전한 피해자라는 인식은 사실 잘못된 거지. 

특히 이런 '한국인'이라는 민족개념은 박정희 정권때에 이르러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로 만들어진다. 이때의 '민족'이란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이지. 이 '민족' 이데올로기는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해 클레임을 걸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특히, 이 부분이 중요한데, '우리는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명제 하에서 한국 국민 모두가 국가에 충성하고 복무하도록 강요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민족개념은, 일제시기 '내선일체'와 마찬가지로 충청도인 전라도인 경상도인을 하나로 묶고, 모두에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고, 국가가 수행하는 정책을 '우리나라의 정책'으로 지지하게 만들어.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 하게 되지. 어떤 부분에서 어? 하느냐면, 일제시기와 동일하거든. '민족'의 범위가 조금 축소되었을 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한국인 일본인을 모두 포함하든, 한국인만을 포함하든 동일하게 작동하거든. 


3. 
자, 그럼 다시. 우리에게 지난 역사는 일본에게 강점당한 피해자의 역사였을까? 물론 파시즘 체제 하에서 피해를 입었지. 착취도 당했고 수탈도 당했고. 일본인도 파시즘 정부에게 똑같이 당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를 피해자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본의 역사를 침략자, 수탈자의 역사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역사 역시 동일하게 침략자, 수탈자의 역사로 생각할 수도 있어.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일까? 실제로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균질하게 묶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고대로부터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언어가 거의 같고 심지어 유전자도 거의 같은 일본과 한 민족으로 묶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 있던 전라도인과 경상도인을 손쉽게 묶는 것처럼.(지금은 방언만 남아있지만 실제로 150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최소 8개의 언어가 존재했다고 함) 

사실은 민족이란 근대에 이르러 어떤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허위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인데, 우리가 그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민족'의 이름으로 '친일파'를 처단한다고 하는 것은 일제 파시즘과 동일한 매커니즘을 수행하는 것이 된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시즘 시기 이전의 친일파란 전제왕정을 전복하고 자유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앞당기려는 혁명적 세력이었거든. 내 생각에 민족의 이름으로 친일파를 없애자고 하는 것은 진보나 좌파는 커녕 극우이고 파시즘적인 거야. 아주 위험한 거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스로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여기고, 그 정체성에 대한 위협, 즉 친일이라든지 매국이라는 부분에 대해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가진다. 사실 파시즘은 언제나 스스로를 빼앗긴 자, 피해당한 자의 위치에 놓고, 파시즘의 수행을 저항이라고 인식하거든.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 역시 '내가 잘났으니까'가 아니라 '나는 피해자니까'라는 저항심, 반발심에서 나오는거지. 

일본만 나쁜 놈, 우리는 착한 놈의 구도에서 읽거든. 그리고 그렇게 한국민족과 일본민족을 나누고, 한국민족끼리의 동질성을 스스로 매기면서 분노하는 태도는 일제시기 파시즘과 정확히 같거든. 


진짜 일제시기 파시즘과, 그 파시즘체제가 수행한 전쟁에 대해 반대하고 그것의 반복을 막으려 한다면 '한국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역시 허물어야만 해. 특히 '우리는 식민지인이다, 우리는 피해자다'라는 망상병에서 벗어나, 우리의 역사도 지난 시기 파시즘의 일부였다는 역사의 진실을 똑바로 봐야만 하지. 사실 우리가 위안부로 끌려가고 피해를 입은 건 아냐. 그럼에도 위안부 할머니와 우리를 같은 '민족'으로 묶고, 나를 피해자의 위치에 두며, 거기에서 생기는 저항감, 그 저항감을 공유함으로써 생기는 전체성이야말로 파시즘을 반복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장 경계해야만 한다. 


4. 
4번 부분은 사족임. 

최근에서야 이런 식으로 '민족'의 허위성을 까발리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우리가 일본 파시즘의 일방적인 수탈의 대상이나 식민지역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파시즘의 일부이자 침략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거지. 그 시작은 당연히 탈민족주의 신좌파적인 감성에서 시작됐고, 특히 이런 연구가 한꺼번에 묶여서 나온 책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다.


근데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기획한 4명의 주요 필자들 중 박지향 교수는 에릭 홉스봄(맑스주의 역사학자, 뉴레프트 리뷰의 필진이기도 함)의 제자였고, 홉스봄의 책 중 '만들어진 전통'을 번역하기도 한 사람이야. 주로 근대비판의 논조를 가지고 있지. 또 다른 필자들 중 김철 교수는 아주 급진적인 인문학자인데 박정희와 김일성 체제 모두 일제 파시즘의 연속으로 보고, 저항적으로 일컬어지는 김지하식의 민족주의도 그 연속으로 본다. 아무튼 민족주의를 모두 싸잡아 맹비난하는데 가라타니 고진도 자주 인용하고 아주 아나키한 사람이야. 특히 김철 교수의 '국민이라는 노예'라는 논문집(이 논문집에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실린 논문도 있음)에는 우리가 '한국민족은 일제 파시즘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은폐했던 부분들이 많이 실려있어. 특히 파시즘-박정희정권-한국 민중민주 세력을 모두 공통된 것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전반적인 논조는 파시즘 비판과, 일제 파시즘이 한국에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되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 특히 박정희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그냥 우익 도서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지. 왜냐면 민족주의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 '좌파'이며 자칭 저항적 위치에 있는 민중-민족주의를 마구 두들겨 까기 때문에. 혹은 애국심 내지 애족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특별히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그동안 민족주의 역사관에서의 '식민지 수탈론'의 허구성을 들추어내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고 나왔어. 그런데 여기서 '근대'란 개발독재와 같은 뜻이고, 국가가 국민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 국가의 정책이나 특히 전쟁에 국민이 민족의 이름으로 동원되는 것과 같은 뜻이야. 그러니까 부정적인 뉘앙스가 짙게 깔려있지. 이런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지. 즉 일제 파시즘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그대로 박정희에게도 돌리며, 일제 파시즘이 현재에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격인거야. 

내가 '재인식'을 처음 읽었을 때 바로 든 느낌은 '드디어 이런 책이 나왔구나'였고, 70년대식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분해해놨기 때문에 민족주의자들은 이론적으로 아무런 반박을 못하겠다는 거였어. 그런데 민족주의를 여전히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파시즘적 정서로 그걸 그냥 뚫고 가려고 하고 있지. '재인식'을 이명박과 동일시 한다거나, '재인식'의 필진들은 수구보수파라거나(필진 중에는 군사정권시기 복역했던 운동권 출신이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새끼들은 친일파라서 일본의 침략논리를 정당화하려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지. 근데 놀랍게도 그런 말도 안되는 선동을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그러면서 '재인식'=뉴라이트=친일파=이명박 이런 도식을 만들어내지. (미즈노의 불온서적에도 '친일파 뉴라이트 바로 알리기 운동'의 선동자보가 들어있다. 근데 여기서 유관순을 여자깡패로 비난했다는 김완섭은 뉴라이트랑은 아무 관련이 없을 뿐더러 광주 민주화 유공자임.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관점은 안중근=봉건적 황제파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발언임.) 

일단 '재인식'의 기획자와 필진 중 일부가 뉴라이트 소속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재인식은 신좌파적 감성으로 쓰여졌다고 생각해. 그리고 뉴라이트가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나는 신자유주의란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적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해.(우리는 '신자유주의'하면 즉각 다국적대기업과 글로벌 경제만을 떠올리지만, 신자유주의 철학은 원래 국가/민족의 축소를 기점으로 하는 것이고, 아나키즘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어) 

그리고 뉴라이트 회원 중 일부가 한나라당 의원이긴 하지만, 한나라당은 공천심사에서 뉴라이트 출신 대부분을 떨어트리고 일부만을 뽑았고, 국가주의 정당인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같은 묶음으로 바라보기 힘들다고 봐. 특히 이명박과 뉴라이트를 동일시하는 것은 수구꼴통들이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 민중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를 모두 친북용공세력으로 규정하는 것과 똑같은 것임. 그리고 '친일파'를 매국노, 민족반역자로 모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전쟁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고, 불가능한 기획이지. 무엇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조선이 아직 전제독재왕정이었을 시기 친일파란 자유주의자, 입헌주의자였거든.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기존 교과서보다 진보적이고 올바르다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민족주의 운동권보다는 뉴라이트가 훨씬 낫다고 생각해. 계급적 관점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뉴라이트가 민족주의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이거든. '재인식'은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진보적이지. 스스로 민족주의자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반일감정과 민족 이데올로기에 깊게 빠져있어서 한국을 일방적인 피해국, 식민지로 여기는 지금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비판적으로라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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