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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아직도 논쟁중 ?

2004.09.19 14: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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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화랑세기》... <1>어떤 책인가 한국사를 뒤흔드는 새로운 사서인가, 한 독학자의 희대의 위서 인가. 한국고대사의 비밀을 해명해줄 「역사의 타임머신」인가, 한국사의 치부를 들춰내는 「판도라의 상자」인가.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된 지 11년. 오랜 진위논쟁에도 불구하고 「화랑세기」는 고대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귀중한 사료다. 본지는 화랑세기 필사본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를 소개하는 한편 이 사서에 담긴 고대신라의 사회와 풍속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지금으로부터 11년여전인 1989년 2월16일자 국제신문 1면 머릿기사. 「花郞世紀 필사본 발견」이라는 시커먼 헤드라인이 독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당겼다.「고대 신라사 다시 써야 할 획기적 사료」, 「전설의 사서 1천3백년만에 「역사」로 확인」이라는 굵은 제목을 함께 단 이 특종기사가 지난 10년 간 한국 사학계의 최대 쟁점이 돼온 「화랑세기 논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영희기자가 쓴 그 기사는 「책이름만 전해 내려오던 국보급의「화랑세기(花郞世紀)」 필사본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화랑세기는 빈약한 고대사 자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글 내용에 있어 기존의 신라사를 다시 써야할 만큼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자못 흥분에 찬 내용으로 시작된다. 국제신문은 특종보도에 이어 재야사학자 이태길(81・광복회 부산지부장)씨의 번역으로 6회에 걸쳐 화랑세기 전문을 연재했다. 본사의 보도 이후 사학계는 큰 충격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동안 화랑과 신라사에 대한 연구는 절대적으로 「삼국사기」 등 후대의 사서에 의존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랑세기의 기사 중 삼국사기에 인용된 것은 겨우 「賢佐忠臣 從此而秀良將勇卒 由是而生(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이(화랑)에서 선발되었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에서 나왔다)」이라는 16자. 다시 말해 화랑세기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선 찾을 수 없는 고대신라 사회상과 화랑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풍부하게 실렸다는 이야기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발견은 학계에 10년 동안의 치열한 진위논쟁을 몰고 왔다. 한국 고대의 사회 및 풍속사를 해명해주는 「역사의 타임머신」이라는 찬사의 한편으론 이 책이 필사본이며 기존의 사서의 내용과는 일부 다르다는 점을 들어 후대의 위작일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던 것. 진위논쟁이 계속되던 중인 지난 95년 서울대 노태돈교수에 의해 이 화랑세기 보다 더 자세한 화랑세기(花郞世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본사가 보도했던 최초의 화랑세기는 「발췌본」으로, 95년에 새로 등장한 화랑세기는「필사본」으로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화랑세기는 1천3백여 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묻혀있다 세상에 나온 것일까. 이 책의 발췌본과 필사본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한학을 공부하다 81년 44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김종진(金鍾鎭)씨가 한문 스승이었던 박창화(朴昌和)씨에게 물려받은 것. 한학자인 박씨는 일제시대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 근무하면서 화랑세기 원본을 보고 필사한 것이며, 발췌본은 필사본의 내용 중 문란한 성관계 등 유교적인 관점에서 껄끄러운 부분을 빼고 발췌해 쓴 것이란 게 정설이다. 김종진씨가 오랜 세월 보관하던 것을 김씨의 사후 그의 아내인 김경자(56・부산 북구 모라동)씨가 89년초 당시 부산시 문화재 감정관이었던 양맹준씨에게 감정을 의뢰함으로써 세상에 나오게 된 것.  화랑세기는 서기681~687년 사이에 신라시대 역사가 김대문이 쓴 책으로, 그동안은 이름만 전해졌을 뿐 그 내용이 전혀 전해지지 않아 역사가들 사이에 「신비의 사서」로 알려진 책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처럼 후대인 고려시대에 쓰여진 사서가 아니라 당대인이 썼다는 점에서 사료 적인 가치가 더욱 크다. 이 책은 540년에서 681년까지 있었던 신라 화랑들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의 전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는 화랑들의 계보는 물론 신라시대의 왕위계승 방식, 왕실의 근친혼, 동성애 등 분방한 성 풍속과 권력 쟁탈을 둘러싼 음모 등 당시 왕족들과 화랑들의 생활상, 그리고 당대 사회의 정치사와 풍속사가 거울처럼 훤히 드러나 있다.  발췌본은 제1세 풍월주 위화랑(魏花郞)에서부터 15세 풍월주 김유신에 이르기까지 차례대로 기술돼 있으나 김유신 편은 중도에서 내용이 떨어져 나갔다. 필사본은 앞부분이 결락됐으나 15세 풍월주 김유신외에 16~32세 풍월주에 관한 기록이 더 포함돼 있다. 즉 발췌본과 필사본을 합치면 풍월주의 계보가 모두 나오는 것이다. 화랑세기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기존의 사서와도 다른 내용이 많다. 삼국사기가 신라의 골품제도를 성골과 진골로 구분하는 것과는 달리 화랑세기는 대원신통(大元神統)과 진골정통(眞骨正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김춘추의 아버지 용수와 13세 풍월주(風月主) 용춘을 이름만 다를 뿐 동일인으로 보지만 화랑세기에서는 형제로 기록하는 등 40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당시 관직 관등제도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화랑세기의 작자 김대문은 신라의 귀족 자제로 성덕왕 3년 (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 「한산기」 등 몇 권의 전기를 썼다고 한다. 김대문의 가계를 보면 1세 풍월주 위화랑이 5대조이고 4세 풍월주 이화랑이 고조부, 12세 보리공이 증조부, 20세 예원공이 조부, 그리고 28세 오기공이 부친이었다. 김대문의 부친 오기공은 화랑의 세보를「향음」으로 저술했으며 김대문은 이를 바탕으로 화랑세기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기공은 27세 풍월주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했는데 김대문은 난에 가담한 집단과 화랑세습가문으로써 난을 진압한 가계라는 사실을 역사에 남기려는 것이 화랑세기를 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학계의 치열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진위여부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러나 진본이 맞을 것이라는 시각이 조금씩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 조해훈기자 massjo@kookje.co.kr 《다시쓰는 화랑세기》... <2> 학계의 진위논쟁 박창화씨(1889~1962)가 일본 궁내성 도서료(현 서릉부)에서 한국 관련문헌자료 담당 촉탁사서로 근무할 당시 필사했다는 「화랑세기」는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 원본을 베낀 것일까, 아니면 박씨가 다른 책들을 참고로 해 창작한 것일까? 89년 본지에 의해 처음 세상에 나온 발췌본 「화랑세기」는 한국 고대사학계에 이 책의 사료 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왔고 95년 필사본 「화랑세기」가 다시 알려짐으로써 한국고대사학계는 본격적인 논쟁에 돌입했다. 지금은 국문학계까지 가세해 논란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89년 이후 지금까지 「화랑세기」관련 논문은 모두 50여 편이나 된다. 어떤 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화랑세기」가 마치 한국고대사 연구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을 불러일으킨 느낌을 받았을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대표 학자는 노태돈교수(서울대 국사학과), 진본의 필사본이 맞다고 주장하는 선두주자는 이종욱교수(서강대사학과). 그 전까지는 조심스럽게 논쟁이 진행됐으나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격돌(?)한 것은 1995년 역사학회세미나에서였다. 이종욱교수가 이 해 4월 제325회 세미나에서 발췌본 「화랑세기」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하는 발표를 하자 노태돈교수가 두 달 후 열린 한국고대사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이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며 발췌본과 필사본「화랑세기」는 1930년대 이후 1945년 이전에 박창화씨에 의해 만들어진 위서로 단정지었던 것. 여기에 여러 학자들이 가세해 진위논쟁에 불을 지폈다. 우선 위서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 노교수는 97년 「한국사연구」에 발표한 또 다른 글에서 박씨가 지은「도홍기(桃紅記)」 「홍수동기(紅樹洞記)」 「어을우동기(於乙于同記)」등 한문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남녀간의 애정과 성관계이며 박씨의 「화랑세기」도 그런 창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노교수는 『박씨의 「화랑세기」가 진본을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박씨가 쓴 다른 책들을 검토하지도 않는 등 학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자료파악과 실증 문제에 소홀했다』며 『지금의 진위논란이 학문연구에서의 상식과 규칙이 지닌 의미를 한번쯤 되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권덕영교수(부산외국어대 사학과)는 95년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 적 검토」주제의 논문을 통해 이 책은 위작인 듯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듯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최근 나온 「한국학보」 2000년 여름호에선 위서로 보는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권교수는 박창화씨가 필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어도 두 차례 이상 수정과 가필, 그리고 삭제를 가한 흔적이 있으며 이러한 글자가 무려 332자나 된다고 밝혔다. 이기동교수(동국대 사학과)도 박씨의 「화랑세기」에는 여러 화랑집단의 인적구성의 차이라든가 혹은 기질상의 차이가 상세히 기술된 점에 대해 이처럼 화랑단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술한다는 사고양식 자체가 이미 근대인의 것이므로 틀림없는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위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박창화씨가 필사본 「화랑세기」를 좀 더 신빙성 있게 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빼거나 필요에 따라 글자를 새로 더하거나 고치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어 발췌본 「화랑세기」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진본의 필사본임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반론은 이렇다. 이종욱교수는 위서를 주장하는 쪽은 박씨가 필사본을 만든 후 그것을 기초로 발췌본을 다듬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발췌본이 필사본에 비해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 이를테면 필사본에는 사다함이 「귀당비장(貴幢裨將)」이 된 것으로 나오고 있으나 발췌본에는 「귀당(貴幢)」이된 것으로 나오는 등 발췌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위서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박씨의 창작품으로 보고 있는 필사본의 향가 「풍랑가」와 「청조가」에 대해서도 이교수는 박씨가 필사했던 1930~40년대엔 향가연구가 태동단계였으므로 박씨가 현실적으로 창작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반론을 편다. 이 2수의 향가는 김완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연찬 서강대 명예교수등 국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위작이라는 설과 현존 최고의 향가라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이종욱교수는 신라의 사회체제를 현장 중계하듯이 쓴 「화랑세기」를 현재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신라인의 시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최근 기자에게 『필사본 「화랑세기」가 진본을 보고 베꼈다는 주장의 근거를 더 확보, 곧 단행본으로 발간하려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객원교수도 이미 89년에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최근 발견된 필사본에 대한 검토」주제의 논문에서 김대문이 아니고는 화랑의 세보를 이렇게 소상히 기술할 수 없으며 신라사회의 다른 문제도 연구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발췌본 「화랑세기」의 가치를 주장했다. 「화랑세기」의 가치를 인정하는 다른 학자들도 그 책에 나오는 인명 숫자 지명 관명 및 화랑관계 용어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절요」 등에 나오며 진본 「화랑세기」에도 오탈자가 없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필사과정에서 다시 오탈자가 생겼고 문체도 다소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학자인 이도학 정재훈 장지훈 이태길씨 등이 발췌본 「화랑세기」의 신빙성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했고 최광식(고려대 한국사학과) 이강래교수(전남대 사학과) 등도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있다.  국문학자인 김학성교수(성균관대 국문학과)와 이종학씨(서라벌군사문제연구소장)도 이종욱교수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또 북한 학계도 1991년 펴낸 「조선전사」 제4권에서 필사본 「화랑세기」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사료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의 목적이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를 가리려는 것은 아니다. 논쟁은 학자들의 몫으로 일단 넘겨두고, 이 시리즈는 발췌본과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해 신라시대의 사회상을 조명해보고자 하는 목적에 충실하려고 한다. / 조해훈기자 massj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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