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침체를 겪던 서울 강남의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맛집 거리로 탈바꿈하며 부활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저녁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평일에 비교적 서늘한 날씨에도 행인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주민도 오지 않는 망한 상권’ 소리를 듣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압구정동에서만 30년 정도 거주했다는 한 시민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인파가) 오히려 다소 줄은 것"이라면서 "여름에는 예전 한창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로데오 거리 내의 한 식당 주인은 "주말만 되면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너무 떴다고 소문이 나도 곤란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상권이 확연히 살아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도 상권이 살아난 시점을 이르면 지난해 말, 늦으면 올해 봄 등으로 달리 진단하면서도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압구정 로데오의 겨울은 길고 혹독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북의 명동, 강남의 압구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곳이었지만, 신사동 가로수길·강남대로 등 다른 상권에 손님을 뺏기면서 긴 침체기를 겪었다.

침체가 계속되자 지난 2017년부터 건물주들은 ‘압구정 로데오 상권 활성화 추진 위원회’를 구성해 임대료를 낮추고 권리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권리금 없이 월세가 3.3㎡당 35만~45만원 선까지 낮아졌다.

로데오 거리의 한 식당 주인은 "임대료가 낮아지자 근처의 도산공원 상권이 로데오 거리와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식업 위주의 도산공원이 임대료가 저렴해진 로데오 거리 쪽으로 확장을 시작한 것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식당들이 들어서며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로 꾸몄다"면서 "여성들이 먼저 로데오 거리를 다시 찾기 시작하자 상권이 살아났다"고 했다. 다만 "도산공원 상권의 식당을 와인으로 비유하자면, 로데오 거리 상권의 식당은 소주"라고 했다.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도산공원 일대보다는 족발과 삼겹살, 부대찌개, 순댓국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분위기와 가격대의 식당들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로데오 거리의 부활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감정원의 중·대형상가 공실률 통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16.1%였던 압구정 상권 공실률은 3분기 13.1%로 크게 낮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3분기 서울 지역 상권들의 공실률이 대체로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3.3㎡당 임대료 역시 2분기 15만5430원에서 3분기 15만6090원으로 상승해 서울 대부분 상권의 임대료가 내려간 것과 대조적 모습을 보였다.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의 상대적 쇠퇴도 로데오 거리로서는 호재로 작용했다. 지난 3분기 가로수길 상권의 임대료는 3.3㎡ 기준 27만6870원으로 강남권역 상권 중 강남대로(33만3300원) 다음으로 비쌌지만 방문객은 주는 상황이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로수길에서 잘 나가던 식당의 셰프들이 최근 로데오 거리로 터전을 옮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