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당시 정부 출장비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에게만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처럼 사립대학에 속해있는 사람에게 여비를 지급할 법률적 근거가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나는 '평가교수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에 '평가교수단'이라는 기구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각계의 저명 학자들을 평가교수단에포함시켜 국정과 관련한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 기회로 삼았는데, 경제학 분야에서는 조순,변형윤 같은 이름 있는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거기에 나를 포함시킨 것이다. 기존 평가단 교수는 직책이 모두 총장, 학장, 대학원장 급으로 나처럼 평교수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체 90명 가운데 나이도 내가 가장 어렸다. 어쩌면 나는 대단히 우연찮은 케이스로 평가교수단에 들어간 셈이다. 일부러 그렇게 평가교수단에 들어가는 조치까지 취하면서 '부가가치세 시찰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재익 경제수석실 보좌관, 재무부 세제국장, 직세과장, 간세과장,관세과장, 국제조세과장, 그리고 나. 이렇게 7명이 해외 출장을 떠났다. 대만,영국,독일 그리고 EC(지금 EU의 전신) 본부가 있던 벨기에 브뤼셀 등을 다녀왔다. 당시에는 유럽 직항편이 없어 일본을 경유했는데, 귀국하는 마지막 날 머문 일본 호텔에서 최종 보고서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놓고 시찰단 일행끼리 토론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