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정조 모두 왕위에 오르기 까지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긴 여정을 하였습니다.
광해군은 정비의 자식이 아니라 후궁의 자식인 방계혈통이자 그 나마도 위로 임해군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 이였죠.
하지만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에게 소실이 없었고 광해군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기 때문에 왜란전인 1591년 유성룡, 이산해, 이해수등이 논의 끝에 선조에게 광해군 세자 책봉을 건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조가 신성군을 총해하는것을 안 이산해가 이산해의 어머니인 인빈과 모략을 해서 광해군 세자 책봉을 강하게 주장했던 정철과 이해수등을 좌천시키게 됩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분조 문제가 발생하자 선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실무능력이 탁월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됩니다.
광해군은 평양성 전투를 직접 지위하는 등 야전사령관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더불어 백성들과 직접 만나면서 백성들 강한 민심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명에서는 임해군이 있다는 이유로 광해군의 고명을 거부합니다.
그리하여 이미 대세로 기울었던 광해군의 왕위계승은 선조가 총애하던 영창대군파와 광해군파로 나눠지게 됩니다.
선조가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에게 시기와 질투를 보내게 되고 이것을 이용해서 영창대군파는 광해군을 페세자 시켜야 된다고 줄곧 주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늘이 도운 것인지 선조의 병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선조는 광해군에게 선위교서를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서를 받은 영의정 유영경은 문서를 감춰 버리고 광해군의 심복이자 대북파의 거두인 정인홍등에 발각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선조는 승하하게 되고 유영경 사건은 유야무야로 넘어가고 추는 인목대비에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명분은 이미 광해군에게 있기 때문에 인목대비는 광해군에게 왕위교서를 내리게 됩니다.
이리하여 17년의 긴 세월의 여정을 견뎌내고 광해군은 조선 15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뒤에도 명에서는 한동안 광해군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광해군은 두 왜란동안 명나라병사들이 조선에서 한 약탈과 명장수들의 거만함에 친명 사대주의에 큰 회의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실리외교를 펼치게 되죠.
또한 대동법 시행등 민초들의 삶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펴게 됩니다.
또한 매우 약한 왕권과 기득권 타파를 위해 천도까지 결심하게 됩니다.(많은 분이 모르더군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서인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되었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 영창대군을 사사하고 인목 대비를 감금했던 것은 서인들에게 성리학적 명분을 주게 됩니다.
그리하여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15년의 제위기간 보다 긴 18년의 유배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유배기간동안에도 왕위복원을 포기 하지 않고 귀배지 노비가 자신의 사랑방을 차지하고 자신을 쪽방으로 내보내도 묵묵히 참고 기다렸으나 결국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반면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개혁적 군주가 될 수 있다는 미명하에 벽파에게 귀주에 갇혀 죽게 됩니다.
하지만 영조는 정조를 매우 사랑하여 바로 효장세자 양자로 입적시키고 벽파의 계속된 폐세손론을 거부하며 끝까지 지켜줍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조차 시기와 질투를 받았던 광해군과는 다른 면이죠.
영조와 홍국영의 보호아래 25세 나이로 조선 22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하지만 즉위 초는 직접적인 암살자가 자신의 침실까지 들어오는 역모까지 발생하고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정조는 홍국영에 세도를 인정하며 전면에 내세우게 됩니다.
홍국영의 세도기간 동안 정조는 규장각에 자신의 세력을 착실하게 키우게 됩니다.
4년 뒤 홍국영이 정조의 권유조차 듣지 않는 상황이 왔고 홍국영의 누이동생 원빈을 위해 효의왕후 암살계획까지 세우자 정조는 그의 심복인 홍국영을 좌천시킵니다. 이 후 원빈도 급작스럽게 죽게 됩니다.
이 후 규장각에는 박지원, 박제가, 적약용, 유득공, 이가환등 유명한 남인, 노론출신 실학자, 북학파들이 모이게 되고 서얼 출신등 차별을 받던 인재들을 등용하게 됩니다. 또한 규장각에게 홍문관, 승정원, 춘추관등의 기능을 부여하며 정조의 핵심 기관으로 키워나갑니다.
더불어 장용영을 만들어 훈련도감등 벽파에게 손아귀에 있는 병권을 되찾게 위해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화성천도 계획을 세우고 화성에 행궁을 만들며 장용영 외영을 거대하게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신해박해 이후 남인, 북학파 세력은 한풀 꺾이게 되고 권상연, 윤치충이 사사되고 정약용등 외직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더불어 채제공 등이 죽게 되고 그 이듬해 정조도 의문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정조의 개혁 정치는 수포로 돌아가고 벽파 그중에서도 안동김씨가 정권을 잡고 조선의 몰락의 길로 갑니다.
두 군주 다 조선 시대 기득권 세력가 싸운 최고의 개혁군주이고 왕위 계승에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직접적은 탄핵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졌고 정조는 이상한 죽음으로 그 개혁이 꺾이게 됩니다.
왕 조차도 몇 백 년의 기득권 세력을 감당하지 못했던 사실은 현재를 돌아보게 됩니다.
길게는 일제불법침탈기부터 짧게는 대한민국정부 수립이후인 60년 동안 이 땅에 강한게 뿌리 내린 친일군사 기득권 세력들이 그 시대의 기득권 세력가 뭐가 다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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