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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은시경한테 재신이 선본다고 이야기하면서 떠봤어.”

“어떻게 말입네까?”

“그냥 뭐 재신이 선보는 자리 물어봤지. 걔 예전에 비서실장님이 선보라고 닦달한 거 다 알고 있어서.”

재하의 말에 항아는 기가 차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가 좋다, 아이큐가 높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뭐하는가. 그렇게 나서서 재신이 짝은 시경이라고 호언장담하더니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도운다더니 그런 식으로 충동질을 할 줄은 몰랐던 터라 항아는 재하가 한심했다.

“그렇게 한다고 은시경 동지가 넙죽 받아서 쳐주겠슴카?”

“아니 나는 그럴 줄 알았지.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선을 보러 간다는 것도 열 받는데 자리도 자기가 선정해주어야 되면 얼마나 화나냐. 화나면 위아래도 안 보일 때가....”

“그건 개철철이 네가 그런 거지 은시경동지 성향 모르네?”

“아니, 거기서 왜 내가 나와!”

시경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항아의 입에서 개철철이가 나오자 재하도 발끈했다. 제대로 된 연애도 못 해봤다고 들었다. 허물다 못해 그래 정정하자면 모태솔로인 시경에 비하면 연애경험이 풍부한 재하가 더 이런 심리는 잘 알고 있기에 이용하면 그저 둘이 붙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맞았다.

그런데 항아가 시경을 두둔하니깐 재하도 화가 났다. 은시경은 다르다고 말하는 항아의 말에 재하는 화가 났다. 그러고 보니 WOC 훈련 때도 은시경만 보면 칠렐레 팔렐레 사르르 녹던 것이 항아 아니었나. 생각해보니 영선도 은시경한테만 약했다.

무슨 왕실유전자는 은시경에게만 약한 것처럼 걔 이야기만 나오면 싸고돌기 바빴다.

“생각해보시라요. 은시경동지가 너처럼 단순해서 그러네? 단순했으면 돌아오자마자 아가씨한테 가서 고백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됐겠지.”

“아니,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내가 어제 CCTV로 뭘 본 줄 알아? 너도 이거 들으면 이제 은시경 못 감싼다니깐.”

“있어 봤자 별 일 아니겠지. 괜히 나서서 크게 말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러는 겁네까? 그렇게 호들갑 떨어서 보면 별일 아닌 거 수두룩하지 않았네!”

그동안 별일 아닌 것을 호들갑 떨면서 말한 적이 몇 번 있었던 터라 항아가 믿어주지 않자 재하가 답답해 가슴을 손으로 쳤다. 그래도 큰일에는 진중한 왕으로 소문이 자자한데 재신이 일이 장난도 아니고 쉽게 이야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항아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괜히 재하는 이 모든 일을 시경에게 돌렸다. 아니, 따지고 보면 시경 탓이 맞았다. 후원에서 재신에게 입맞춤하던 그 자식을 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까버려도 마땅치 않았다. 마음 같아선 영창에 보내고 싶었다. 결코, 그런 모습까지 보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져 재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거 큰일이지. 재신이 후원에 CCTV 있는 것 모르지도 않을 거면서 재신이 입에... 입에...”

“입에 뭐 입맞춤이라도 했슴카?”

“그래! 그거!”

재하의 말에 항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가씨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 그 입맞춤했다고 그 난리를.... 나랑 전하 키스는 어땠는지 잊었슴카.”

“아니 그래도 우리랑 다르지. 재신이는 어!”

“뭐가 다르다고. 이건 동생 바보도 아니고 모지리라고 불릴 일입네다. 어디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겠슴다. 아가씨 아끼는 것은 내래 알고 있었지만 입맞춤할 수도 있는 것 가지고 이렇게 난리를 치다니. 뭐, 은시경 동지라도 불러서 깠슴까?”

“,,,, 아니 그게....”

“깠나보네.”

“아무튼 걔도 그냥 평범한 남자야. 나는 걔가 인내심이 어마어마해서 고자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니, 이 이야기가 아니라 재신이 선 보내?”

“보내시라요. 은시경 동지 패기도 없는데 그냥 보내버리시라요. 어차피 멋진 사람은 아가씨가 선택할 것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나도 아가씨가 은시경동지랑 잘됐으면 좋겠지만 내가 대신 결혼해서 살아줄 것도 아닌데 그렇게 패기도 없고 결정적일 때 우물쭈물하는 남자 별 볼 일 없습네다. 그리고 다 아가씨도 생각이 있는데 우리가 난리 친다고 되겠슴카.”

“하지만 은시경 재신이 좋아하는 것 분명해.”

“그렇게 연애 많이 해봤다고 여자 마음 잘 안다고 자부하더니. 은시경 동지가 마음에 들면 아가씨도 은시경 동지를 선택하겠지요. 우리가 뭐라 뭐라 한다고 해서 될 일 그르치는 겁네다.”

항아의 말에 재하가 우물쭈물했다.

“재신이는 은시경한테 마음 없데? 걔 은시경 때문에....”

“아가씨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겁네다. 마음 있다고 해서 마음 가는 데로 행동했던 누구와 달리 아가씨한테는 이것저것 생각해볼 것 많지 않겠슴카.”

항아의 말에 재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항아의 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재신과 시경은 생각이 많았고 그래서 재하는 답답했다.

가끔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필요한데 너무나도 복잡하게 생각하는 두 사람탓에 후회하는 선택을 하게 될까봐 재하는 그게 두려웠다. 재신을 잃어버릴 뻔한 그 날 이후로 재하는 모든 것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시경이 사라졌던 그 시간만큼 많은 것들이 변해 버려 이번의 선택 또한 크게 바뀔 것만 같아 무섭기도 했다.

항아가 재하를 끌어안았다.

“뭐가 기래 어렵고 무섭습네까. 아가씨 다시는 그런 선택하지 않을 것 잘 알지 않슴네까. 우리가 괜히 끼어들려고 할수록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서.... 전하는 은시경 동지만 응원하시라요. 은시경 동지가 좀 답답함네까.”

“그래. 게네가 답답해도 둘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근데 난 재신이가 은시경 선택했으면 좋겠어.”

“내래 안 그렇겠슴카. 기래도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않슴카. 누가 붙여주려고 해도 그게 잘되겠슴카.”

항아의 말에 재하는 눈을 감았다. 너무 많은 일들 속에 시경과 재신은 미로 속에 갇힌 것처럼 헤매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