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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서울과 함께 신음하고 아파하며

운영자 2006.02.03 14:05:21
조회 2596 추천 0 댓글 4

  4. 도시 계획 전문가, 세계로 향하다

  
서울과 함께 신음하고 아파하며

  가뜩이나 찢기고 헤진 상처로 끙끙 앓고 있는 서울시에 연이어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서울이 도읍으로 정해진 지 600년 되던 해인 1994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져 안타깝게도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건설된 지 불과 16년밖에 안 된 다리가 느닷없이 두 동강이 나다니! 그것은 외국 언론에서 연일 토픽으로 다룰 만큼 망신스러운 일이었고, 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사실 성수대교 붕괴는 이미 예견되어 있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1993년에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의 거주 인구가 똑같이 500만 명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한강 다리를 이용하는 차량의 수도 급격히 늘었으며, 특히 변변한 외곽 도로가 없는 상태에서 경기 북부와 남부의 화물 차량들이 강남과 성동구 도심을 잇는 성수대교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부실 공사와 더불어 성수대교의 비극을 가져온 것이다. 서울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5년에는 도심 한복판의 삼풍백화점이 주저앉는 또 한 번의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이 붕괴 사고 역시 도시 개발 행정의 부실과 상업적 역동의 합작품이었다. 이 두 가지 엄청난 사건과 아현동 도시 가스 폭발 사건은 서울 시민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서울에 사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고, 한국에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사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들은 어쩌면 서울이 안고 있는 비극의 서막인지도 모른다. 성수대교와 같은 부실 토목공사나 삼풍백화점과 같은 부실 건축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경악하고 경계할 수가 있지만, 서울의 도시 계획 전체가 안고 있는 부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만큼 더욱 심각하고 위험하다. 도시 계획의 부실로 새로운 공사는 그칠 사이가 없었고, 또다시 재개발의 필요를 야기하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커다란 부채를 안기는 일이다. 아울러 문화의 축적이나 그 문화가 세련되게 성숙할 시간을 다 놓치게 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서울을 콘크리트만 가득한 회색 도시, 해마다 홍수를 겪는 침수 도시, 그리고 모두를 지치고 병들게 하는 소음과 공해 도시로 만든 원죄가 바로 잘못된 도시 계획과 행정 분야에 있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서울의 각종 도시병으로부터 구해낼 방법 또한 도시 계획 분야에서 찾아야 하며, 도시 환경 설계와 국가 경영 차원에서 도시 및 지역 개발 계획을 현명하게 다뤄야 한다. 도시 계획 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관료와 지성인들이 바로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오각성을 했다면, 그나마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에서 죽은 사람들이 다소나마 덜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실 시공을 비판하고 그 행정 책임자를 처벌하고 도시 계획을 재검토하는 등의 호들갑이 잠시 잠깐 동안의 눈가림으로 끝나는 데 있었다.

  시민들이나 국민들도 어느덧 이 두 가지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냉철한 비판의 목소리를 잃은 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다시 일상에 묻히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서울을 방치해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모두가 힘을 합쳐서 도시의 백년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다리가 무너지고 또 건물도 이 붕괴될 것이다. 뒤를 이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몽땅 다 쓸어버리는 대규모의 재개발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문화 유산을 축적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데, 문화는 고사하고 다음 세대에게 남길 유산이 나랏빚이라면 그것은 이미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국가 및 도시 경영이 아닌가. 따라서 대학로와 한강 개발과 올림픽 공원만으로 내가 서울에서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새로운 수도, 안전한 서울, 문화의 뿌리가 살아 있는 도시, 자연이 숨쉬는 공간, 더욱 살기 좋은 삶터를 위한 구체적인 골격을 내놓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의 내용과 더불어 앞으로 서울의 모습을 제시하는 책을 써냈다.

  그것이 1998년에 나온 『서울을 위한 참 좋은 생각』인데, 그 책이 정책 입안자나 도시 행정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책에서 나는 우선 4대문 안을 문화 및 역사적 공간으로 복원할 수 있도록 한강변을 중심으로 도심 축을 변환시킬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인천 및 영종도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체계로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공론화시켰다.

  두 번째로는 자연 녹지의 큰 골격으로 동서의 한강 녹지 지역과 같이 북한산에서부터 남산, 용산 공원, 한강, 국립 묘지, 관악산으로 연결되는 남북 녹지 지역을 만드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삭막한 서울에다 허파 역할을 할 녹지를 십자 모양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연 친화적인 도시를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을 감싸고 또 그 속에 있는 수많은 구릉과 계곡, 청계천을 비롯한 한강 지류들을 되살려 내도록 녹지 체계의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서울을 중심으로 동심원 형태로 3개 정도의 고속화 도로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도시의 교통이 한 곳으로 몰리지 않게 원활한 동선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제일 바깥과 중간의 순환 동선 사이에는 새로운 교육, 연구, 첨단 도시들이 생기게 하는 미래의 비전을 담았다. 이런 방안들은 국내외 민간 자본을 적극 참여시키면 시민의 추가 세금 부담 없이도 시간을 갖고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이미 이 같은 방법으로 여수시의 도심 개발에 참여하여 그 도시를 우리나라 도시 경영 사업의 효시로 만든 경험이 있다.

  나는 1986년 여수시 신도심 개발 계획을 세웠고, 당시 송재구 시장은 이의 집행을 과감하게 진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 시청 건물이 생겨났고, 개발 이익금으로 400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확보하였다. 그 공로로 여수시는 중앙 정부로부터 3년 동안 계속 포상을 받기도 했었다.

  여수와 같이 서울을 다시 태어나는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도시, 인간을 생각하는 쾌적한 삶터로 바꾸고 싶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와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애쓰게 되는 법. 나는 서울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고, 그만큼 아파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픔을 덜어 주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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