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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항했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전편]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6.29 19:42:05
조회 2438 추천 0 댓글 39


 맨 오론쪽이 시인 박남철(1973) ^^;;;



       나는 반항했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전편]

         ---나의 문학청년 시절 이야기


                                  박 남 철                             



 하이데거Heidegger의 명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1927)에 대한 이기상 교수의 글을 정리하면서 공부해나가다보니, 내 독일어사전이 너무 낡았고 활자체도, 물론 내 시력이 더 나빠져서이겠지만, 너무 작게 보였다. 하여, 어제는 모처럼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교보문고로 나가서, 새 독일어사전 한 권과 이승훈 선생님 특집이 단숨에 눈에 들어오던 『작가세계』 봄호를 한 권 사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나의 선택의 여지도 없이, 독일어를 공부한 바 있다. 한 시골의 상업고등학교는 동, 서, 남, 북의 네 개의 반밖에 없었고, 그나마 3학년이 되면 1, 2반은 진학반이 되고 3, 4반은 취직반이 되어 갈라지게 되니, 우리 어머님의 소원이야 내가 웬만하면 취직반으로 가서 은행원이 되는 것이셨지만, 어쨌든 1, 2, 두 반만의 진학반 때문에 한 분의 독일어 선생님 외에 내가 진짜로 배우고 싶었던 불어 선생님까지 모셔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놈의 독일어...... 왜 그렇게 딱딱하고, 또 독일어 선생님은 또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들던지. 또 처음부터 무슨 정관사 변화니 또 무슨 부정관사 변화니 해가며 외워야 할 것들은 또 왜 그렇게도 많던지.


 델der 데스des 뎀dem 덴den, 디die 델der 델der 디die, 다스das 데스des 뎀dem 다스das, 델der 대로dero 대라dera...... ^ ^)))!


 나는, 그리하여, 독일어 시간만 되면 아예 책상 위에 엎드려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이나 퍼질러 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수학, 물리, \'화학 + 생물\'---3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희태 선생님이 이 두 과목을 함께 담당하셨었다---독일어 시간 들은 그렇게 나에게는, 나를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게 해주는, 잠이나 자는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이 시간의 선생님들 중에서도 꽤나 무서우신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한 해를 꿇어 입학한 1학년 때부터 나는, 1학년 주먹 랭킹 3위라는 영생이가 나를 학교 바로 옆의 구멍가게로 끌고 가서 기를 좀 죽여보려고 들다가, 완택이에게 급한 소식을 전해 들은 2학년의 주먹 랭킹 1위인 병구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영생이를 가죽장갑을 낀 주먹으로 사정없이 조져버리고 난 다음부터는, 그 누가 나를 아예 건드려보려고 들지도 않았었고, 또 2학년에 올라가서는, 어디선가 권투 글러브 두 짝을 구해온 영생이가, 교실 뒤쪽에서 권투 시합이나 한번 해보자 하여, 나는 속으로는 많이 겁이 나기도 했었으나, 어쨌거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겠지 뭐...... 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글러브를 낀 다음, 글러브를 다 끼자마자 바로 리치가 많이 긴 편인 내 오른팔을 영생이의 얼굴을 향하여 사정없이 내뻗어버렸더니, 어어라? 영생이가 바로 교실 뒤쪽의 시멘트 바닥 위로 쿵 나자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어이없는 돌발 사태에, 얼굴이 벌개질 대로 다 벌개진 영생이가 후다닥 다시 일어나더니, "야! 다시 한 판만 더 떠보자!" 해왔을 때, 나는 속으로야 가슴이 쿵쿵 뛰었었지만, 겉으로는 아주 태연한 채 미소를 지으며, "야, 인마! 한번 나가떨어져봤으면 그만이지, 뭘 또 한 번 더 떠보긴 더 떠봐? 권투 글러브 안 끼고 떴었다면 넌 지금 완전 케오 상태인 거야! 안 그래, 임마?" 하며 다시 천천히 글러브를 손에서 벗어낸 다음, 교실 바닥에다, 화난 표정으로, 힘껏 내동댕이질쳐버렸더니...... 아, 글쎄, 그 다음부터는, 이 놀랍고도 신통한 소문이 온 학교 안에 쫘악 다 퍼져버려서...... 그때부터는 상급생이고, 동급생이고 간에, 저학년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를 건드려보는 건 고사하고, 여간 안 무서우신 선생님 분들까지도 다, 웬만해서는, \'나으 수업 시간 중의 안면 방해\'를 하시려 들지를 않으시던 것, 이었던 것이었다! [계속]


 이상은 지난 4월 초에 내 홈페이지[hamir.com.ne.kr]의 \'집필실\'에서 「나\'으\' 외국어 실력 들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작성해보다가 너무 바빠서 일단 중단해놓고 있는 글의 서두 부분인데, 나의 고교 시절의 일단이 엿보이는 듯도 하여 무척 흥미로운 동시에 이 글의 말머리의 구실로서도 충분할 듯하여 한번 옮겨 적어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반항했었다, 우선은 손춘익[孫春翼(1940 ~ 2000) 아동문학가, 소설가] 선생님에게. 손춘익 선생님은 운이 없으시게도 1학년 때, 2학년 때, 연거푸 나의 담임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내가 2학년 때 『천사와 꼽추』인가 하는 동화집을 내셔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돌리시기도 하셨던 손춘익 선생님은 처음에는 집에 논 마지기나 있어서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나를 무척이나 총애해주셨다. 나에게 선거에 의하여 뽑히는 반장이나 부반장이 아닌, \'서기\'라는 제법 끗발 있는 임명직까지 하사해주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일은 곧 틀어지고 말았었다. 교내 봄맞이 백일장이 학교 부근의 어느 야산에서 행해져서 나는 \'탑(塔)\'이라는 제목을 선택하여 "오늘도 외롭게 탑은 자란다"로 종결이 되는 시를 한 편 써내고 난 토요일의 다음날인 일요일 날, 병구랑 하원이랑 윤호랑 완택이랑, 그리고 고등학교에 안 다니는 친구들이랑 범촌못으로 놀러갔다가 그만 사고를 쳐버리고 만 것이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과 신광면 사이에 있는 범촌못 혹은 \'호리(虎里)-못\'["龍淵池"]은 말이 \'못\'이지 사실상 \'댐dam\'인 곳인데, 그 댐에 먼저 놀러와 있던 한 패거리의 그 지역의 아이들과 패싸움이 벌어져서---패싸움의 내용이래야 별것도 아니었었다; 그 지역의 아이들 중 하나가 우리들 패거리와 따로 떨어져서 자기네 패거리 쪽으로 혼자 \'어린 시인\'처럼 산보해가고 있던 나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오다가, 나에게 오히려 무릎을 꿇린 채 된통 얻어터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우리들 패거리가 들이닥쳐 그 지역의 아이들 전부를 모두들 얼굴들이 부어오를 정도로 흠씬 두들겨준 일이 그 전말이었다---바로 그날 저녁으로 맞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우리들이 살고 있던 읍내에까지 나와 지서에다 신고를 해버려서, 우리들 모두는 결의를 하여 그날 밤중으로 \'쌍용시멘트회사\'가 외가라는 \'최융이 형\'을 찾아 서울로 도망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아침에 그때 당시로서는 \'도둑촌\'이라고 신문에 나기도 했었던 홍릉에 있다는 \'최융이 형\'네 집에 전화를 하여, 점심때쯤에 우리들 앞에 나타난 \'최융이 형\'이---\'최융이 형\'은 고향에 오기만 하면 "너희들, 서울 오면 꼭 내게 한번 연락하거라!"고 하곤 했었다!---우리들에게 점심 한 끼를 사준 뒤에 "너희들, 여기서 잠시만 좀 기다리거라!" 하고는 사라져버리고는 안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는 청량리역전에서 저녁까지 촐촐 굶게 생겼었다......


 이렇게 되어, 어찌어찌하여, 다시 귀향을 하게 되어 근 1주일 만에 학교엘 다시 나가보니, 손춘익 선생님의 표정이 싹 바뀌어 계셨고---지금에 와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토요일 날 실시한 교내 백일장의 주무 교사로서 일요일 날 쉬지도 못하신 채 심사를 하셔서 당신의 반 학생이라는 오해까지 무릅써가며 내 시 「탑」을 시부 장원으로 뽑으셔서 월요일 날 아침 조회 때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교장 선생님께서는 단상에 올라 계시는데, "시부 장원, 1학년 북반, 박남철!"을 아무리 불러보아도 도무지 수상자가 나타나지를 않았으니 그 얼마나 무안하셨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또 근 1주일이나 무단 결석까지 하고 말았으니!---결석 사유도 묻지 않으셨고, 벌을 주실 생각조차도 아예 않으셨다. 무단 결석을 하는 동안에 \'서기\' 직은 이미 다른 아이에게로 넘어가 있었으니, 손춘익 선생님과 나는 국어 시간에 전에처럼 서로 다정스런 눈길로 눈을 마주치며 질의 응답만 않으면 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나는 이미 중학교 때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까지 다 읽어버린 아이였으니, 이제 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돌아가신 우리 손춘익 선생님께서 얼마나 많이 머리가 아프셨을지는 가히 짐작이 가도 많이 가는 바가 있다. 손춘익 선생님께서 간혹 다른 아이들에게는 가하기도 하셨던 체벌을 나에게는 가능하면 단체 기합이 아닌 한 피하셨던 이유도 앞에서 내가 말머리로 인용한 글의 분위기를 먼저 보셨으니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실 줄로 믿는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시험을 쳤다 하면 모조리 백지를 내든가 아니면 일부러 아는 답도 틀리게 써내어, 내 학급 석차는 1학년 때에 55명 중에서 34등인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석차인 셈이다. (나는 지금 1986년 10월 23일자로 발행된 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사본을 들여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부모님의 권유대로 대구에 있는, \'5년제\'인, 입학 성적 20등까지의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준다는 조건의 \'청구공업전문학교\'를 10등 이내로는 무난히 들 것으로 예상하며 응시를 했었다가---나는 대구 \'경북고등학교\' 정도에는 무난히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의 \'중3\' 학생이었었다---오히려 면접에서 \'적록색약\'이란 청천의 벽력 같은 판정으로 탈락을 하고만 나는 1년 동안을 재수를 한다며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내게 되고 말았었다. 그 얌전하고 모범생 같았던---나는 포항 동지중학교를 전교 3등으로, \'특대생\'으로 입학했었던 단지 한 겁 많은 소년에 불과했었다---재수를 한다며 가출을 해서 서울역전에서 신문팔이까지 다 해보는 등 해대며 한 해를 완전히 놀아먹고난 뒤에도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를 전교 6등으로 입학했었던 내가, 실은, 꼴이 영 말이 아닌 셈이었던 것이다. (생활기록부상의 출석 상황을 보아하니, 그 모두가 다 \'사고 결석\' 일수로 1학년 때가 8일, 2학년 때가 16일, 3학년 때가 24일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내가 어느 날 문득 3학년 때, \'뜻한 바 있어\', 그때 당시에는 유일한 \'고3\' 필독서였던 대입 수험용 참고 잡지인 『進學』 지에 기고를 하여 내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나오게 되자, 한 시골 고등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었다.


 지난 5월호에서 진주의 정영희 군은 「돈 있는 사람만 가는 대학이어서야」라는 제목하에, 4월호의 김형원 군의 「너무 비싼 사립대 등록금」에 대하여 자못 신랄한 반론을 편 바 있다. 하지만, 나는 김 군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의 하나이다. 참으로 참신한 의견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립대학은 사립대학보다 등록금이 월등히 저렴하다. 국립대학이면 국립대학이지 사립대학보다 등록금이 싸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까닭없이 과중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은 심히 불공평한 처사이다. 김 군의 의견처럼 국립대학도 등록금을 올려받아서, 사립대학에 대한 보조는 그만두고라도 연구비 과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자기네 대학 교수들에게 안심하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현재 초, 중, 고교에서 \'육성회비\'를 거두는 목적도 이와 비슷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더 이상 어른들이 하는 일에 왈가왈부하여 당돌하다는 핀잔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영희 군의 두 가지의 \'잘못된 생각\'만은 더 지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돈이 없으면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進學』 3월호의 별책 부록 『대학 진학 안내』를 보아도 당장에 알 수가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의 어떤 대학의 모집 요강에도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자도 가함\'이란 문구를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야박한 것이 아닌, 하나의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릴 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들의 주위에서 멀어져간 친구들의 거의 반수에 가까운 많은 친구들이 "나도 돈 없사가 중학교에 못 간데이......" 하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던 것을 나는 기억하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중학교 3년을 같이 뛰놀며 공부했던 친구들의 반수 이상이 또 우리들 곁에서 탈락되어갔지 않았느냐. 과연 학교보다는 사회를 더 원해서, 식당으로, 이발소로, 신문보급소로, 그것도 아니라면 머리를 더부룩하게 기르고 목을 양 어깨에 푹 파묻고 뒷골목을 배회하고 있는 친구들이 몇이나 될까? 군도 국민학교 동창회에 참가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동창들의 얼굴에서, 진학을 하지 못한 동창들의 그 얼굴에서 그 무엇을 읽었는가를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것이다.


 둘째, 군의 표현을 빌리면 \'돈 없는 사람\'은 국립대학엘 가고, \'돈 있는 사람\'은 사립대학엘 가는 것이 통례인 것처럼 되어 있는데, 나는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하고 싶다. 좀 역설적인 예이긴 하지만, 서울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제반 물질적인 호조건들을 잘 활용하여 이른바 \'일류고\'라는 데를 들어가서 \'S 국립대\'엘 들어가기가 일쑤이고, \'돈 없는 사람\'들은 제반 경제적 악조건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세칭 \'사립 명문고\'들을 통하여, \'K, Y 사립대학\'으로 낙착되기가 십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돈 없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며 \'돈 있는 사람\' 헐뜯는 것을 무슨 독립운동이나 하는 것처럼 하는 견유철학자(?)들이 도처에 있지만, 나는 \'돈 없는 것\'을 어디다 자랑할 용기까지는 없고, 이건 결코 \'없으면서 있는 체하는 이름의 나쁜 병\'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포항 동지상고 3학년, 박남철〉


 ---박남철, 「납득할 수 없는 국립대와 사립대의 등록금」,『進學』(1972년 6월호), 제185면에서 186면 사이. ["독자의 소리" 중에서.]


 이러했었던 내가, 그해 10월엔가 11월에 치른 \'예비고사\'엘 가볍게 통과해버리자 또 한 번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고 말기도 했었다. 120명 정도 되는 진학반 학생들 중에서 석차 10등도 떨어지곤 했었던 \'예비고사\'엘 석차 100등이 될까 말까 했던 내가 통과해버렸다는 사실이 동급생들이나 선생님들에겐 도대체가 믿기지가 않았던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러했었던 내가, 또다시 서울에서 재수를 한다며 1년을 완전히 놀아먹고 난 뒤에, 그, 그렇게도 마음속으로만 몹시 가고 싶어했었던 \'고대\'에는 수학 때문에 응시조차 못해봤었지만---\'고3\' 첫해에 이미 나는 시건방지게도 \'고대 철학과\'엘 응시했었다가 수학을 한 문제도 못 풀어서 \'과락\'으로 탈락한 바가 있었다---비록 후기 대학이었을망정 \'경희대 국문과\'엘 6등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이 학교에 전해지자 다시 한번 학교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었던 모양이었다. [역시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 동기 중에서 진학을 한 학생은 10명도 채 안 되는 모양이었으며, 그나마 서울에 있는 대학엘 입학한 동기는 나 이외에는 동국대 경영과엔가 입학했었다가 2학년 때 다시 한양대 영문과엘 편입했다며 내 앞에서 꽤나 우쭐대곤 했던---그는 내 앞에서 항상 말하곤 했었다! "야! 한양대가 경희대보다 낫지? 안 그래? 그리고 또 \'국문과\'보다는 \'영문과\'가 더 낫지? 안 그래?" 딴은 그의 그 말은 맞는 말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는 크게 한 방 먹여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이, 어디가 좀 모자라도 많이 모자라는 놈아! 우리 학교가 아무리 시골 학교이긴 하지만, 그리고 또 비록 상고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학교에서도 가끔씩은 서울대에도 가고, 서울 법대에도 가고, 또 고대 상대에도 가고 해서, 오늘날 \'현대건설\'과 같은 대기업을 통째로 이끌고 있는 이명박(李明博) 선배 같은 악바리 분도 계시다는 사실도 한번 생각해보아라!---○○○라는 동기생 한 녀석뿐이었었다.]


 그리하여, 광화문의 대성학원 옆에 있던 \'새한국독서실\'의 옥탑방에서 『進學』지의 별책 부록인 『대학 진학 안내』라는 책자를 통하여 내가 \'경희대 국문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선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경희대\'의 입학 시험 과목에는 문과에는 수학 과목이 없었다는 사실. (재수를 한 끝에 1차로 응시했었던 \'경북대 철학과\'의 입학 시험에서도 나는 수학을 단 한 문제도 못 풀어서, 역시, \'과락\'으로 탈락한 뒤끝이었던 것이다.) 둘째, \'경희대 국문과\'의 교수진으로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충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黃順元(1915 ~ 2000) 시인, 소설가] 선생님이 계시고,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권두시로 올라있던 「의자」의 시인이신 조병화[趙炳華(1921 ~ 2003) 시인] 선생님도 계셨다는 사실. (조병화 선생님의 「의자」의 경우는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의 경우처럼 그렇게 충격적인 감동까지는 못 받았었지만, 그래도 \'참으로 그럴듯하고 멋있는 시다!\'라는 정도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정작 조병화 선생님께서 참으로 충격에 충격을 더한 감동까지 보여주신 작품은, 저 \'80년 광주의 5월의 비극 이후, 『○○신문』의 한 지면을 통째로 차지하시면서 보여주신 전두환 장군, 혹은 저 \'체육관 대통령 각하\'에 대한 축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셋째, 나도 앞으로는, 반드시, 돈도 잘 버는 모양인, \'잘 나가는\' 소설가가 꼭, 반드시, 기필코, 되어야만 하겠다는 사실, 등등이었었다.


 그리하여, 정작 나의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만류해주신 분이 바로 우리 황순원 선생님 당신이셨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아도 아주 아이러니컬하다. 물론 다른 학생들에게도 다 그러하셨겠지만, 선생님께서는 나에 대해서만은 유난히도 관대하셨고, 유난히도 신뢰를 아끼지 않아주셨다. 오죽하면 서울에서 \'경희여고\'를 나와서 가정과에 입학했었다가 국문과로 편입했었던 모양인, 상급생이었던, \'국민학교\' 동기 동창인 이은숙이가 방학 때면 고향 친구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우리 남철이는 황순원 선생님의 수제자다!"라고까지 뻥을 쳐대기까지 했었겠는가. 그런 내가, 대학 때 소설이라고는 내 시 「금도끼 III」[첫시집 『地上의 人間』(문학과지성사, 1984) 제107면에서 110면 사이에 소재]에도 나오듯이 탈고도 못해보고 쓰레기통 속에 처넣어버린 단편 소설 \'금도끼 III\' 한 편과 4학년 때 황순원 선생님의 \'소설창작연습\' 시간에 그 앞 대목만을 약간 발표해본 미완성 중편 소설 \'석간신문\' 외에는 소설이라고는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어느 날 문득, 대학 3학년 때, 황순원 선생님께 "선생님, 제게 필명 하나만 지어주세요! \'남철\'이라는 제 이름은 정말 싫어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우선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훌륭한 필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하고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마치 어린아이라도 다루어주시듯이, 무슨 어린 연인이라도 유혹해주시듯이, 웃어가면서 말씀해주시던 것이었다. "네 이름 \'남철\'이는 아주 듣기에 좋은 이름이야! \'남\' 하면 아주 순하게 들리고 \'철\' 하면 아주 강하게 들린다...... 그리고 \'시\'에는 \'소설\'보다도 더 대단한 게 있는 모양이야!" (나는 사실, 그때 그 순간적으로는 \'에이...... 선생님께서 괜히 나 같은 미숙한 촌놈에게 필명 따위를 하사해주시기 싫으시니까 말씀을 돌려서 하시는 거로구나!\' 하며 좀 서운하게만 생각했었다.)


 시? 시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시라도 열심히 쓰는 편이었었단 말인가? 1학년 때는 \'금도끼\'를 들고 \'요새애들\' 찍으러 다닌다고 명동에나 쏘다니다가, \'방위\' 마치고 2학년에 복학해서도 그 버릇은 개 못 주면서도, 봄과 가을만 되면 그래도 \'국문과\'라고 시화전을 하느니, \'문학의 밤\'을 하느니 해대면서 시를 한두 편씩이라도 내라니 의무적으로 내었던 것이고---나의 『문학과지성』 ’79년 겨울호 등단작 네 편은 모두 대학 4학년 1학기 때까지의 \'문학의 밤\' 행사 등에서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들이다---그것들이 약간씩 호평을 받고, 황순원 선생님과 조병화 선생님의 총애를 받으니, 모두들 나를 좀 쳐다봤을 뿐이었던 것이고, 3학년에 올라가니 \'제2대 경희문학회장\'을 하신 최상진 형이 나에게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제3대 경희문학회장\'을 하라 하셔서 할 수 없이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맡아서 했었던 것뿐이고...... 사실 그랬었던 것뿐이다. 그게 일이 그만 그렇게 \'저질러져버리고 만\' 것이었던 것일 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몇 가지만 더! 그리하여, 나에게는 『문학과지성』이라는 사실상 내 수준에는 너무 높았던 계간지를 본의 아니게 소개해주신 숨은 은인이 한 분 계신 셈인데, 그분이 누구이신지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한번 밝혀보기로 하고, 내 등단 무렵의 풍경을 제법 많이 엿볼 수 있는 졸고를 한번 전문 인용해보고 나서, 다시 내 중학교 1학년 때의 한 수업 시간의 풍경으로 돌아가면서, 이 글을 그만 마무리해보기로 하자.


 내가 대학 2학년 때였던가, 3학년 때였던가, 여름 방학 때였던가, 겨울 방학 때였던가. 시골집으로 내려가보니, 포항 동지여상 2학년인가 3학년인가를 다니시며 부엌 뒤에 딸려있던 내 골방을 자기 임의로 차지하여 사용하고 있던 그분의 책꽂이를 살펴보다가 나는 그만 혼비백산을 다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서울에서도 나는 서점에 가면 당시 새로 나온, 유사quasi-『창작과비평』과 같은 『문학과지성』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글쎄 그러한 『문학과지성』이 손때 하나 제대로 안 묻은 채로 대여섯 권 이상이나 그분의 책꽂이에, 떠억 하니, 꽂혀있는 게 아닌가! (서울에서도 나는 『창작과비평』만 하더라도, 어쩌다가 도서관 같은 데서 손에 잡히면 보다가 말다가 했었지, 술값도, 데이트 비용도 제대로 없는 판에 문고판이 아닌 책을 돈을 주고 사본다거나 특히 \'문학 잡지\'를 사본다는 일은 상상조차도 해볼 수가 없었던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은 그분의 바로 그러한 과잉된 지적 호기심 내지는 허영심에 의한 『문학과지성』 구매들을 타박을 하고 타박을 해준 뒤끝에, 정작은 또 바로 나 자신이 때로는 심심하기도 하던 시골에서의 방학 기간 중에 그만 바로 그 문제의 『문학과지성』에 빠질 대로 빠져 들어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재수록\'된 시와 소설 들과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나를 아주 미치도록 만들어주었었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바로 그때의 그분이 나와는 운명적으로 얽혀있는, 나의 문학적인 안내자 혹은 천사가 되어주셨던 셈이신데---눈시울이 좀 젖어들려고 한다!---또 그분은 내 대학 3학년말의 겨울 방학 때의, 죽음의, "자살의 굿판"에서도 끊임없이 내 곁에서 나를 간호해주셔서, 결국은 나를 살려내주신 수호천사이신 셈이기도 한데, 그분은 바로 나보다 여섯 살 아래의 나의 첫째 누이동생이신 박성화(朴性華) 님이셨던 것이다. [\'후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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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13 대문호이신 박남철 대시인님 죄송합니다 [3] 프란츠요제프(112.163) 11.12.29 265 0
39412 간만에 문갤탐방기 [1] leess(175.193) 11.12.29 99 2
39411 "목련에 대하여 V" [계간 "문예중앙" 2012년 봄호 발표 예정작] [6]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9 391 0
39410 아프니까 아다다. 푸푸(118.219) 11.12.28 53 0
39409 이 시 어때요? [3] dd(211.109) 11.12.28 111 0
39407 "타인의 과거의 선거 행위에 대하여" [5]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323 0
39406 박남철 시인 ㅇㄴㅁ(112.163) 11.12.28 122 0
39405 어떤 징조. 유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36 0
39404 초예 기표 ㅋㅋㅋ ㄹㅇㄴ(112.153) 11.12.28 76 0
39402 시하나 툭 민망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50 0
39398 참고 1), 2), 3) 항" [1]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241 0
39397 계간 『작가세계』 2011년 겨울호 '시인산책' 발표작" [3]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361 0
39394 그냥 불쌍해 지는거다 [2] ㅇㅅㅇ(1.224) 11.12.28 94 0
39393 박남철 선생님의 저런 엄청난 포스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놀라워요. [5] 비파부는아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410 0
39392 "이제 좀 전에, '네이버NAVER'에서 '박남철'을 검색해보니;" [3]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493 0
39390 외국 시에 대한 문창과학생의 변 문창문창(114.129) 11.12.28 174 0
39388 똥도 멋지게 누는 기표와 초예와 졸논에게 [3] >_<큐티스트로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241 0
39386 소살점 >_<큐티스트로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97 0
39383 모월 모일의 목년 >_<큐티스트로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153 0
39380 "목련에 대하여 V" [재탈고본] [8]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435 0
39379 도입부? time, hole, jump [6] 유야(182.214) 11.12.28 144 0
39378 "목련에 대하여 I" [1]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274 0
39374 사제師弟 시스템에 대한 단상 [1] 유야(182.214) 11.12.28 165 0
39368 "참고 1), 2), 3) 항" [1]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197 0
39364 "계간 『작가세계』 2011년 겨울호 '시인산책' 발표작" [2]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236 0
39361 코딱지를 후빈다. [1] 비파부는아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87 0
39360 아프다 문하생(175.112) 11.12.28 38 0
39356 ㅈ같은 크리스마스 [2] 허졉한학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8 48 0
39354 박남철시인님 디씨좋아하시나봐요 ㅎ 그럼 막 익명으로 섹드립같은것도남기시나 [2] ㅋㅋㅋㅋ(58.76) 11.12.28 196 0
39353 죄송한데 갑자기 소설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그러는데... [5] ㅁㄴ(211.117) 11.12.27 74 0
39352 박남철 시인님은 왜 죄다 에세이 같은것만 쓰세요? [5] ㄴㅇㅁ(112.163) 11.12.27 345 0
39351 황지우 시 질문한거 왜 답변안해주냐? 문갤러들아 111(221.144) 11.12.27 81 0
39350 자신의 추악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3] soules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108 0
39348 한시번역해줘요. [1] ㅡ긷ㄷ(220.87) 11.12.27 69 0
39347 만져주세요 [1] ㄷㄷㄷ(211.114) 11.12.27 82 0
39346 언젠가 [1] ㄷㄷㄷ(211.114) 11.12.27 43 0
39345 소설의 길이와 흡인력은 반비례ㅡㅡ [2] 55(180.224) 11.12.27 125 0
39344 아르센 뤼팡의 여왕의 목걸이 읽어보신분 ? [2] 쉢뽪쌻퀧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59 0
39343 무제 -1- [1] lenno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202 1
39339 너네가 생각하는 '시'란 뭐야? [6] 이끼천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123 0
39338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었는데.... 슬럼마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181 0
39337 "참고 1), 2), 3) 항" [1]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286 0
39335 "계간 『작가세계』 2011년 겨울호 '시인산책' 발표작" [8]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7 437 0
39333 토대중격문 (討大中檄文) [2] MBOWT(112.163) 11.12.27 77 0
39332 따르릉 문하생(58.123) 11.12.26 38 0
39330 한겨울 [3] 예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6 138 0
39327 무지무지한 이야기 유야(182.214) 11.12.26 51 0
39326 졸업논문 함부로까지마라 ㄷㄱ(58.232) 11.12.26 91 0
39325 엽편, 괴로운 남자 [1] 유야(182.214) 11.12.26 112 0
39324 코르크마개를 따는 백 한 가지 방법 [4] Heavy.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2.26 6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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